소설리스트

교난-256화 (256/375)

256화. 사숙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북명진인은 뒤에 바짝 따라오던 소진 도사를 한 번 쳐다봤다.

이건 여인의 급계례이고 도를 닦는 데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다곤 해도, 세속으로 나왔으니 이런 장소엔 여제자를 데려오는 게 아무래도 편하긴 했다.

한편 소진 도사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현청관 밖에 있었던 소진 도사는 사부가 보낸 도동(*道童: 도를 닦는 도사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을 따라 돌아가던 중 급히 하산하던 사부를 마주치게 되었다.

사부는 그저 오늘은 정가 셋째가 급계하는 날이고 현청관으로 데리고 가 배사례를 치러야 한다는 말만 급하게 전했다.

소진 도사는 아직도 어리둥절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사부님이 언제부터 정가의 셋째를 제자로 삼을 준비를 하신 거지? 왜 이전에 조금의 언질도 없으셨던 거야? 정가의 셋째가 사부님의 제자가 된다면, 내 동문이자 사매가 되는 건데 앞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지겠군. 몇 번이나 내 일에 훼방을 놓았는걸. 설마 앞으로 내 경쟁 상대가 되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소진 도사는 기분이 좋지 않아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노위국공, 빈도와 스승님이 찾아온 이유는 정가 셋째 아가씨를 데리고 현청관으로 가 의식을 치르기 위함입니다.”

북명진인의 ‘마중’이 소진 도사의 입에선 ‘데리고’가 되었고, 한 마디 차이였지만 사람들의 귀엔 꽤 다르게 들렸다. 그러나 어떤 의식인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아 그 뜻이 명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엔 이미 충분했다. 북명진인의 등장으로 받은 충격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막을 수 없었다.

“일찍이 들었습니다. 정가 셋째 아가씨가 부술에 정통하다지요. 설마 진인의 마음에 들어 제자로 받으시려는 걸까요?”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진인께선 이미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기로 선언하셨다던데요. 소진 도장께서 바로 진인의 마지막 제자 아닙니까.”

“그러니까 정가 셋째 아가씨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 진인께서 전례를 깨트렸다는 말 아닙니까.”

“그저 보통 기명 제자일지도 모르지요. 정가 셋째 아가씨의 나이도 아직 어린데 진인의 입실 제자(*入室弟子: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제자)가 되면 지나치게 높은 서열에 오르게 되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널찍한 검은색 예복을 입은 정미가 천천히 걸어와 북명진인 앞에 마주 섰다. 그러고는 소진 도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두 손을 합장하여 인사를 올리고는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인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과분한 대우에 소녀가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지금 상황까지 와서 내 사부의 신분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바보지.’

정미는 주눅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이런 상황이라면 체면을 위해 억지로라도 정신을 붙잡곤 했다. 그 모습은 모든 사람의 눈에 북명진인과 정미가 평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기이한 상황이었지만 너무나도 태연한 정미의 태도에 사람들은 할 말조차 잊고 말았다.

소진 도사의 안색이 변했다.

‘이 태도는 대체 뭐지? 뭐가 잘났다고? 사부님이 정말 저 아이가 눈에 들어 전례를 깨트리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해도 뭘 믿고 이리 방자하게 구는 거지?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분수를 모르는군!’

“미야―”

노위국공은 외손녀를 무척 아꼈지만 북명진인이 대량에서 어떤 지위인지 훈귀 중 최상층인 그가 모르지 않을 리 없었기에 외손녀의 태도가 북명진인의 심기를 건드려 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참지 못하고 조용히 불렀다.

소진 도사는 북명진인이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정미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차가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정가의 셋째―”

이 소리에 북명진인은 마침내 정신이 들었고 소진 도사를 담담하게 흘겨봤다.

소진 도사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북명진인은 복잡한 심정을 거두고 정미에게 정중하게 답례했다.

“사매.”

‘사실 그저 이 ‘사매’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복잡했던 거라고!’

정미의 급계례가 이제 막 끝났을 때쯤 자리에 참석한 부인들은 모두 평소 단정하고 고상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북명진인의 말에 귀를 후비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거겠지? 분명 잘못 들은 걸 거야.’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

황 씨가 손을 뻗어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응? 안 아프잖아! 역시 꿈이었구나.’

이때 옆에 있던 부인이 작게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아직 꼬집지도 않았는데 아프다고? 역시 꿈이었구나!”

그러자 두 부인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그제야 깨달았다.

부인이 다리를 매만지며 작게 투덜거렸다.

“황 며느님, 손힘이 아주 강하시네요!”

황 씨는 멍하니 정미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강해도 오늘 받은 충격보단 강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은 빈객들의 속마음을 정확히 대변했고 특히 소진 도사의 마음과 완벽히 일치했다.

‘사부께서 방금 뭐라 하신 거지? 사매? 절대 그럴 리 없어!’

“사부님, 어찌―”

그러나 소진 도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마자 북명진인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소진, 어서 사숙(*師叔: 사부의 사제를 일컫는 말)께 인사드리지 않고 뭐하느냐.”

‘사숙께 인사드리라고? 사숙이라고!?’

소진 도사는 순간 엄청난 타격을 받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한참 동안 정미를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래 그저 충격을 받았을 뿐이었지만, 소진 도사가 이렇게 침묵하니 점점 정신이 돌아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듣기로는 소진 도장이 황손이 바보라는 걸 알아보고 황가에서 정가 셋째 아가씨에게 죄를 씌웠다지. 셋째 아가씨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태자비에게 부수를 먹였고 그래서 황손을 해친 거라고. 그럼 소진 도장과 정가 셋째 아가씨 사이에 앙금이 꽤 있지 않을까?’

“큼큼, 소진. 멍하니 뭐 하고 있느냐?”

북명진인이 소진을 꾸짖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나보다 남이 더 놀라워하니 좀 낫군.’

소진 도장은 그제야 충격 속에서 목소리를 되찾았고, 희고 보드라우며 심지어 앳되기까지 한 얼굴의 맞은편 소녀에게 몇 번이나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야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사숙을 뵙습니다.”

정미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진 사질(*師侄: 사형, 사제, 사저, 사매의 제자), 그리 예를 갖출 필요 없습니다. 아직 배사례도 치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고는 북명진인을 쳐다봤다.

“북명 사형, 소진 사질과 함께 올 줄은 몰라 대면식을 준비하지 못했네요.”

“그건 급하지 않네, 급하지 않아. 사매, 우선 나를 따라 현청관으로 가지.”

북명진인은 어린 사매의 입에서 계속 ‘소진 사질’이라는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채 친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진 도사는 피를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선후배 서열을 유난히 중시하고 현청관은 더욱 엄격했다.

‘그럼 앞으로 정말 이 어린 계집에게 공손하게 사숙이라 불러야 하는 건가? 갑자기 죽고 싶어졌는데 어떡하지!’

북명진인은 당연히 제자의 괴로움을 알지 못했고 고개를 돌려 멍한 표정의 노위국공에게 말했다.

“노우, 배사례는 우리 현청관에서 아주 성대하고 장중한 의식이오. 내 스승께서 그대와 사매의 가까운 가족들을 초대하라 전하셨소.”

한때 적군의 목을 베어오던 노위국공이 떨리는 목소리를 참지 못하고 북명진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진인. 스, 스승이라 함은 설마…… 국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노위국공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고 걸음조차 다급해졌다.

“진인,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그러고는 뒤돌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내도 데리고 가고 큰아들도 데리고 가고 딸들도 데리고 가야지. 만약 손자들도 몇 명 데리고 갈 수 있다면 더 좋고.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어찌하면 좋은가? 국사께서 정원을 몇 명으로 두셨을까?’

그때 사 노부인이 벌떡 일어나 노위국공 앞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맏며느리 허 씨가 손을 뻗어 부축하려 했지만 옷자락조차 잡히지 않았다.

“형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노위국공을 부르고는 우아하게 귀밑머리를 매만졌다.

“저도 정미의 이모할머니입니다. 잊지 마세요.”

‘오래전 내가 아직 쌍아계를 틀고 다니던 여자아이일 때 운 좋게 국사를 한번 뵌 적 있었는데, 정말 천상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놀라웠지. 남은 생에 다시 그 선인의 풍채를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거야.’

노위국공의 입술이 한참 떨렸다. 욕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내는 중이었다.

‘언제부터 이모할머니도 가까운 가족에 포함됐다고?’

정당 안의 사람들이 정신이 돌아오자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사라고? 비바람을 부를 수 있고 이미 신선이나 다름없는 그 국사?’

빈객들은 대부분 한 씨의 또래였고 다들 속으로 미친 듯이 외쳤다.

‘노부인, 이 급계례는 제가 아니라 노부인께서 오셨어야지요! 저희는 서열이 낮아 관계를 맺어보려고 해도 안 된다고요.’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북명진인이 급히 말했다.

“노우, 스승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빈도는 사매와 함께 먼저 가보겠소. 준비가 다 되면 출발해도 되오. 배사례는 정오 무렵에 시작될 예정이니.”

“예, 예.”

노위국공이 횡설수설하며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 가지.”

정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노위국공과 단 노부인에게 절을 올린 후 눈을 들어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모습을 찾고는 그에게 살짝 미소 지었고 그제야 뒤돌아서 북명진인과 나란히 밖으로 나갔다.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소진 도사는 여전히 제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북명진인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불렀다.

“소진, 어서 따라오지 않고 뭐 하느냐.”

‘스승님이 제자를 받았다고 왜 내 제자가 반응이 느려진 거지? 그럼 손제자들은 또 어쩌려고?’

정미도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소진 도사가 복잡한 표정으로 가까이 따라오자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진 사질, 그날 황궁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소녀가 너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두려워 마세요, 사질. 사숙은 죄를 묻지 않을 겁니다.”

북명진인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사매,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전에 황궁에서 제가 스승님인 청령 도장을 언급했는데 소진 사질이 현청관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거든요.”

북명진인이 소진 도장을 쳐다봤다.

소진 도장은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울분을 참으며 말했다.

“소진이 잠시 어리석었습니다.”

정미는 더는 소진 도사를 쳐다보지 않고 빙긋 웃으며 북명진인에게 말했다.

“사형, 제자를 꾸짖지 마세요. 소진 사질의 서열이 낮아서 저희 스승의 존호를 몰랐던 것 같으니 용서할 만합니다.”

북명진인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어린 사매와 내 제자의 사이가 좋지 않구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열을 중시하는 도인이 누굴 감싸야 할지는 뻔하지 않겠는가?

북명진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진, 최근 세속에 너무 자주 돌아다니고 수양은 적게 하더니, 도교의 규칙도 잊은 모양이구나. 관으로 돌아가면 네 사숙께 차를 올리고 사과드리거라!”

소진 도사의 우아한 얼굴은 이미 우거지상처럼 일그러져있어 도인의 기품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곤혹스럽고 난처한 표정만 남아있었다. 그녀는 이를 갈며 겨우 말을 쥐어 짜냈다.

“사부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소녀의 밝고 당당한 눈과 마주치자 소진 도사는 급히 고개를 숙여 눈에 드러난 분노와 원망을 숨겼다.

‘어린 것이 명리를 얻었다고 이리 오만방자하게 굴다니 정말 화가 나 죽겠구나!’

정미는 또 너그럽게 웃었다.

‘응, 미운 사람이 내게 화가 나도 꾹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나도 좀 너그럽게 굴어주지 뭐. 어린 것이 설친다고? 어린 나이를 빌미 삼아 호되게 제압해두지 않으면 호호백발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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