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이혼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리라고요?”
둘째 나리는 멈칫했다.
잠깐 기억을 잃었던 젊은 시절, 조용한 산촌과 꽃처럼 아리따운 아내 그리고 늘 곁에 붙어있던 자식들이 떠올랐다. 둘째 나리는 그 생활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후 회인백부 공자라는 신분이 떠올라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백부로 돌아왔고, 강제로 혼인한 거칠고 어리석은 부인과 서로 마음이 잘 맞는 총명한 아내를 비교하며 둘째 나리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산골에서 사숙을 운영하는 선생의 사위였다면 몰라도 백부의 둘째 공자로서 시골 처녀라는 신분은 고상한 자리에 오를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부인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결국 위국공부의 적녀였고.’
이후 관직에서 순조롭게 앞길을 다져나갈 때, 위국공부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최소한 아무도 일부러 그의 앞길을 방해하진 않았다. 이에 위국공부의 사위라는 신분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둘째 나리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맹 노부인의 말에 오히려 당황하게 되었다.
맹 노부인은 진작에 준비해온 듯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마. 태자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계속해서 이 일을 고려하고 있었다. 한참 생각해보니, 이게 가장 좋은 결과일 것 같더구나. 그러지 않으면 백부엔 볕 들 날이 없을 게다. 원래는 이 이야길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철이의 출신이 마침 좋은 동기가 되겠구나. 그 애가 먼저 이야길 꺼냈으니, 그 아이의 뜻대로 해주거라.”
“하지만 어머니, 동 이낭의 신분은―”
둘째 나리가 망설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만약 지금 아내를 내쫓아버리면 비난을 받을 겁니다.”
맹 노부인은 찻잔을 들고 몇 모금 들이켜 목을 따뜻하게 데우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했다.
“둘째야,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다. 동 이낭의 신분은 딱 적절하지.”
“무슨 뜻입니까?”
“지금 백부의 상황에 네가 새로 아내를 맞는다면 어떤 후처가 오겠느냐? 훈귀나 고관들의 적녀는 생각지도 못할 테고 서녀나 소관들의 여식은 네가 달가워하겠느냐?”
둘째 나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이대로 지금의 부인과 지내는 게 낫지. 최소한 평판이라도 좋으니.’
“그러니 말이다. 좋은 여인을 들일 수 없으니, 차라리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리자는 게지. 동 이낭의 부친은 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지 않더냐. 게다가 너희도 한때는 정식 부부였고. 지금 아내와 헤어지고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리면, 사람들은 네가 은혜를 보답했다 하지 누가 너를 매정하다 하겠느냐?
그리고 내가 방금 말했듯이 동 이낭의 아이들 말이다.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리면 두 아들은 적자가 되고, 동이는 입궁까지 할 수 있지 않으냐. 만약 네가 새로 부인을 들이면, 그 부인이 적녀를 낳고 그 적녀가 또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느냐? 우리 백부가 십몇 년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
둘째 나리는 이미 맹 노부인의 말에 설득된 듯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말씀이 맞습니다. 동 이낭은 그동안 본분에 만족하며 조용히 지내왔지요. 저도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리고 싶습니다.”
맹 노부인은 입을 삐죽였다.
‘본분에 만족하며 조용히 지냈다고? 어느 집 첩이 공자와 아가씨가 자신더러 어머니라 부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동 이낭 일가는 둘째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동 이낭 때문에 기분 나쁜 건 한 씨이니, 그동안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뿐이지. 동 이낭을 정처로 올리고 나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율은 다시 바로잡아야겠어.’
둘째 나리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아들이 정말 그 사람을 내쫓으면 위국공부에서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맹 노부인은 손을 들어 귀밑머리를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말했다.
“누가 내쫓는다고 했느냐? 이혼하면 되지 않느냐?”
“이혼이요?”
둘째 나리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어머니께서 생각이 깊으십니다!”
‘이혼은 부부가 쌍방으로 합의해야 하니 둘 중 누구도 빚지는 게 없지. 위국공부도 사위인 나를 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니 기꺼이 이혼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둘째 나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곧바로 그 멍청한 여인과 상의하러 가보겠습니다. 장로분들도 다 계시니 지금 결정하면 따로 찾아갈 필요도 없겠군요.”
“잠깐.”
맹 노부인이 음침하게 웃었다.
“이혼을 하더라도 철이는 여전히 네 양자인 게다. 이 세상에 이혼한 뒤 여인 쪽이 아들을 데려가는 도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하하, 그 애가 철이를 기필코 양사자로 두겠다 하지 않았느냐. 절대 그 뜻대로 이뤄줄 순 없지!”
둘째 나리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철이가 황상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그 아이의 능력이라면 앞으로 여전히 장래성이 있습니다. 만 보 물러서서 철이가 관직을 하지 못하더라도 양자의 신분으로 집안 재산을 관리해주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요.”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럼 정미는―”
맹 노부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못된 것은 네가 그 애와 이혼하지 않더라도 일찍이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 아이 얘기는 뭐 하러 꺼내느냐!”
* * *
둘째 나리는 곧바로 이연원으로 향했다.
“저와 이혼하시겠다고요?”
결국 이 지경이 되었으니, 한 씨가 이 사내에게 조금의 원망도 없다면 그건 거짓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마음을 다친 적이 너무 많아서인지 지금 상황은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한 씨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그럼 정미는 어떡합니까?”
둘째 나리는 평온하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정미도 백부의 아가씨이니 원래라면 백부에 남아야 마땅하지. 하지만 그대 모녀가 한마음인 걸 내 알고 있으니, 그대가 데려가고 싶다면 막지 않겠소.”
한 씨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차갑게 웃었다.
“그럼 철이는요?”
“철이?”
둘째 나리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철이는 당연히 남아야지. 어찌 되었든 간에 적어도 십 년은 나를 아버지라 불렀으니.”
“그건 안 됩니다!”
한 씨가 단호히 거절하자 둘째 나리의 태도가 강경해졌다.
“당신, 아들을 데리고 집안을 떠나는 건 어느 집안에서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오!”
둘째 나리가 소매를 뿌리치며 떠났다. 한 씨는 콧방귀를 뀌었다.
* * *
한 씨와 둘째 나리 쌍방은 양보 없이 팽팽하게 대치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틀도 되지 않아 회인백부 둘째 공자가 정가의 아들이 아니기에 양사자에서 양자로 바뀐다는 소식이 수도에 널리 퍼졌다.
충정후 부인 류 씨가 충정후의 귀를 꼬집으며 울었다.
“나리, 전 모르겠습니다. 이 혼사는 반드시 취소해야 합니다! 나리께서도 저번엔 마지못해 진행하자고 하신 건 압니다. 하지만 정가의 둘째 공자는 주워온 아이랍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어찌 안단 말입니까? 우리 용이를 어찌 그런 출신도 불분명한 사람에게 시집보낸단 말입니까! 게다가 양자에게로요! 양자는 나중에 가업을 이을 권리도 없지 않습니까. 인정 많은 부모들이 조금 나눠주느냐 마느냐지요. 매정한 자들은 아무렇게나 쫓아낼 뿐입니다. 설마 그때가 되어 용이가 손가락만 빨며 지내길 원하시는 겁니까?”
“부인, 이 손 좀 놓아주시오. 얼른 놓으시오! 잠시 고려 좀 해봅시다.”
“뭘 더 고려하신다는 겁니까?”
충정후가 고려한다는 건 당연히 황상의 태도였다.
‘황상의 태도가 요즘 변덕스럽단 말이지. 나를 마주치실 때마다 버럭 화를 내시고 말이야. 설마 내가 황상과 사위를 다퉜기 때문은 아니겠지?’
충정후는 이 말을 차마 류 씨에게 알리지 못하고 조용히 식은땀을 닦았다.
귀가 몇 번이나 잡아 당겨지고 머리엔 큰 짐이 내려앉아서 그런지 충정후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류 씨의 결정을 묵인했다.
회인백부가 충정후부로부터 퇴혼 소식을 전해 받았을 때, 맹 노부인과 둘째 나리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한 씨가 마침내 이혼에 동의했다.
* * *
부부는 백 년 동안 만들어진 인연이며, 부부가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며, 한 침상에서 같이 자는 것은 천 년 동안 만들어진 복분(福分)이니,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할 땐 그저 얇고 얇은 이혼서 한 장뿐이었다.
이혼하는 날, 위국공부에선 위국공 부부가, 회인백부에선 장로가 자리에 나와 증인이 되어주었다.
한 씨는 차가운 눈빛으로 둘째 나리가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나리에게서 종이를 건네받은 뒤 자세히 살펴보더니 간결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 씨는 오늘 침향색(*누런빛을 띤 갈색)의 여우 털 상의와 진홍색 무늬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얼굴엔 연분을 얇게 발라 피부가 더 하얘 보였고 꽃처럼 아리따운 모습이었다.
한 씨가 감사 인사를 하자, 둘째 나리는 마침내 그녀를 마주 봤다. 눈 깜빡하면 다신 그를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냉정하고 딱딱한 표정의 한 씨를 보자 둘째 나리는 왠지 약간 아쉬워졌다.
하지만 그 조금의 아쉬움마저 맹 노부인의 헛기침 소리에 화로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둘째 나리가 공수했다.
“그럼 앞으로 각자 스스로를 잘 챙기고 다시 만날 때가 있을 테니 훗날을 기약하지.”
한 씨는 둘째 나리의 다정한 말을 듣고도 꿈쩍 않고 소매에서 천천히 뭔갈 꺼내 높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각자 잘 챙기든 말든 정가 둘째 나리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이건 여기 계신 분들 앞에서 처리해야겠습니다.”
한 씨는 작은 책자를 둘째 나리 앞으로 밀었다.
둘째 나리는 책자를 잠시 훑어보더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그녀의 혼수 내역서잖아!’
맹 노부인도 그 책자를 보고는 둘째 나리보다도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한 씨가 시집올 때 위세 등등한 십리홍장(*十里红妆: 처가에서 시가까지 10리의 길을 붉은색의 옷을 입고 혼수품과 함께 붉은 가마를 타고 가는 혼례 과정)은 물론이고 가져온 혼수는 이연원을 가득 채우고도 다 넣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동안 회인백부의 사정은 한 번도 여유로운 적 없었고 며느리의 혼수를 일부러 대놓고 쓰진 않았지만, 그것으로 자질구레하게 메꾼 적이 적지 않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둘째 나리의 생사가 불분명할 때도 한 씨의 혼수로 들어온 점포 중 하나를 팔아 온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했었다. 지금 한 씨의 혼수를 똑같이 돌려주려면 백부는 피를 토해야만 할 터였다!
방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한 씨는 손을 뻗어 책자의 한쪽을 펼쳐 희고 고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적혀있는 능라 주단들은 아직 다 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오래되어 입고 나가지도 못할 테니 저도 필요 없습니다. 이 외에 다른 건 정가 둘째 나리께서 사흘 안으로 준비해주셨으면 하고요. 그때가 되면 제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제 큰오라버니께서 오실 겁니다.”
둘째 나리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이게 무슨―”
한 씨가 빙긋 웃으며 둘째 나리의 말을 끊었다.
“나리, 제 큰오라버니와 정가 장로들이 계신 앞에서 설마 저와 이혼하면서 혼수를 돌려줄 준비도 하지 않았다 하실 겁니까?”
둘째 나리가 그런 창피를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내를 내쫓든 이혼을 하든 아니면 의절을 하든, 부부가 찢어지면 대량의 율법에 따라 혼수를 여인 쪽에 반환해야 했다. 가끔 사내 쪽에서 혼수를 떼어먹다가 소문이 퍼지게 되면 큰 창피를 당하곤 했다.
혼수도 되돌려주지 않는 사람에게 다른 집 여식이 어찌 기꺼이 시집오겠는가?
둘째 나리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궁지에 몰려 백부가 이 손실을 부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나리가 이혼할 시 혼수를 반환해야 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겠는가? 평민 백성들도 다 아는 일이니 관리 나리인 그도 당연히 알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한 씨의 타협과 양보 그리고 평소 거침없이 돈을 쓰는 모습에 익숙해져 그 방면으론 생각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둘째 나리 스스로는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제 한 씨에게 있어 한 사내의 자존심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한 씨를 빤히 쳐다보다가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