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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86화 (186/375)

186화. 자수 신발의 위력

부인은 설융의 발치에 엎드려 그의 발목을 꽉 붙잡은 채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정 의원님, 우리 나리께서 행방에 이름을 올린 그날부터 정신이 이상해지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어느 의원을 불러도 속수무책입니다. 저희 집 노복의 말을 들어보니, 그날 어떤 소저가 제생당의 정 의원에게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더군요. 지금 당신이 우리 집안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부인이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부탁드립니다, 정 의원님. 저희 나리를 살려주세요. 저희 나리께서 나으실 수만 있다면, 장생위패(*長生位牌: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의 복록과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위패로, 죽은 이를 제사 지낼 때 쓰는 것과는 달리 살아있는 이를 위해 세운 위패임)를 세워 모시겠습니다.”

설융의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부인, 어서 일어나세요.”

“저희 나리를 살려주시겠다 응하지 않으시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치료해드려요. 꼭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설융은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정미가 입을 삐죽였다.

‘이 머저리가. 자기가 치료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저렇게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거야?’

설융이 손을 뻗어 부인을 부축했다.

“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정 의원께서 분명 치료해주실 겁니다.”

정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 참, 저 바보가 날 한 방 먹이려는 거지?’

부인은 반쯤 일으켜졌다가 다시 무릎을 꿇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 당신이 정 의원님이 아니신가요?”

“예, 제가 아닙니다.”

설융이 머리를 긁적이며 둔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장부를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분이 부인께서 찾으시는 정 의원이지요.”

설융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쳐다보자, 부인은 그제야 유모를 쓴 소녀를 발견했다.

부인뿐만 아니라, 각각 나이가 많고 어린 두 하인도 깜짝 놀랐다.

“그, 그날의 아가씨 아니십니까?”

정미는 아무렇게나 앉아서 차분하게 말했다.

“접니다.”

“어…….”

두 하인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미친 나리를 꽉 붙들고 부인을 쳐다봤다.

부인은 별 고민 없이 무릎을 꿇은 채 정미의 앞으로 갔다.

“아가씨, 제발 저희 나리를 봐주세요.”

부인이 정미를 완전히 믿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 부를 수 있는 의원은 다 불렀고, 돈도 아주 많이 썼으니, 가망이 없음을 알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정미가 가만히 앉아서 말했다.

“우선 일어나세요. 부인께서 무릎을 꿇고 계신다고 해도 치료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정미의 얼굴은 유모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너무 냉담한 탓인지 부인은 감히 방금 설융의 다리를 끌어안고 통곡했던 것처럼 굴 수 없었고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일어섰다.

정미가 정신이 나간 나리를 가리켰다.

“입안에 있는 걸 빼내세요. 제가 검사하기에 좋지 않습니다.”

젊은 하인은 정미가 명의라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뺄 수 없습니다. 저희 나리의 병이 심해지면 혀를 깨물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럼 나도 볼 수 없으니 다른 명의를 찾아보게.”

정미가 아무렇게나 말했다.

그녀는 우연히 인연이 된 사람에게 가끔 선의를 베풀었지만, 호의를 무시당한다면 가차 없이 쳐냈다.

“셋째 아가씨―”

설융이 정미를 부르자 그녀가 그를 흘겨봤다.

“직접 치료할 수 있다면 나서도록 하세요.”

설융이 멋쩍은 듯 입을 다물고는 뒤돌아서 부인에게 권했다.

“부인, 저희 정 의원님의 부의 기술은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 의원님의 말씀을 들으시면 됩니다.”

부인은 고집이 센 성정이 아니었다. 설융의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급히 부군의 입에 물린 수건을 빼내었다.

미친 환자는 두 하인에게 팔을 꽉 붙들려 있었기에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수건을 빼자마자 곧바로 말했다.

“내가 합격했어, 합격했다고. 하하하하! 아내에게 알리러 가야겠어. 부인, 부인은 어디 있소?”

부인이 입을 막고 흐느꼈다.

“나리, 여깄습니다. 저 여기 있어요.”

그가 고개를 돌려 부인을 쳐다보더니 안색이 곧바로 변해 외쳤다.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닙니다. 내 아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는 말하면서 더욱 세게 발버둥 쳤고, 두 하인이 하마터면 그를 놓칠 뻔하자 설융이 급히 도왔다.

부인은 몹시 비통해했다.

“나리, 잘 보세요. 제가 나리의 부인이 아니면 누구란 말입니까?”

그가 눈을 부릅뜨고 고함쳤다.

“당신은 내 장모님이지 않습니까! 아내를 데려가지 마세요. 아내를 데려가시면 안 됩니다!”

그는 두 눈이 벌겋게 된 채 이를 꽉 깨물었다.

부인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안 돼, 나리께서 또 혀를 깨물려고 하신다. 어서 막아!”

젊은 하인이 수건을 그의 입에 쑤셔 넣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심히 발광한 탓인지 한참 동안 그의 입을 열지 못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미친 나리가 스르르 쓰러졌다.

“이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젊은 하인이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정미를 노려봤다.

정미가 자수 신발을 다시 신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때려서 기절시켰다. 치료하기 편하게.”

이 말에 사람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정미를 쳐다봤다.

설융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수 신발로 사람을 때려 기절시켰다고? 셋째 아가씨는 힘이 아주 세구나…….”

정미는 이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신발 밑창은 딱딱하니까, 뒤통수를 정확히 노려 때리면 됩니다.”

설융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생각했다.

‘앞으로 의관 일을 열심히 해서, 최대한 빨리 셋째 아가씨의 빚을 갚아야겠어. 그리고 짐을 싸서 조용한 곳을 찾아 공부해야지. 혹시 셋째 아가씨의 미움을 샀다간…….’

그는 자신의 뒤통수를 매만져보았고, 더는 상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미가 그를 노려봤다.

“멍하니 뭐 하고 있습니까. 어서 환자를 평상 위로 올리세요. 다시 깨어나면 또 성가셔질 테니.”

이 말에 몇 사람들이 얼른 환자를 평상 위로 옮겼다.

정미는 그제야 망진을 자세히 할 수 있었다.

잠시 관찰하자, 그자의 병세가 심각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정미는 마음속으로 계산했다.

이 정도의 담미심규는 그저 한 번 삐끗한 것뿐이라, 치료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자를 지키고 있거라. 약을 지어올 테니.”

자수 신발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방 안의 사람들은 정미가 나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부인이 설융에게 말했다.

“저희 나리도 참 불쌍하지요. 젊은 나이에 수재가 되었는데, 이후 몇십 년 동안 시험을 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거인이 되었더니, 이 꼴이 되어버렸지요. 저는 나리가 나을 수만 있다면, 관직이든 진사 나리든 다 필요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부인. 정 의원께서 약을 지어주셨으니, 분명 나으실 겁니다.”

설융이 위로했다.

그 말에 젊은 하인이 참지 못하고 투덜댔다.

“그걸 어찌 압니까. 신발 밑창으로 이리 능숙하게 사람을 때리는 의원은 처음 봅니다.”

설융은 그저 억지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미는 반 시진 정도 지나서야 검붉은색의 물을 한 잔 들고 나타났다.

부인이 대담하게 물었다.

“정 의원님, 저희 나리께서 아직 기절해 계신데, 어찌 약을 드신단 말입니까? 깨워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정미는 물잔을 설융에게 건네고는 평상 옆의 의자에 앉아 은침으로 손가락을 찔렀고, 짜낸 피를 환자의 입술에 바른 뒤 다시 물잔을 건네받아 그의 입술에 따랐다.

물잔 속 물에 생명이라도 깃든 듯, 물줄기가 한 줄로 뭉쳐지더니 천천히 그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정미가 일어났다.

“기다리세요. 환자가 일어나면 어떤지 봅시다.”

그렇게 다시 반 시진이 지났을 때, 환자가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눈동자를 굴리고 또 굴리다가, 마침내 초점을 찾았다.

“소아(小娥)?”

부인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나리, 깨어나셨습니까?”

미친 거인의 성은 맹(孟)씨였고, 보통 맹 나리라고 불렸다.

맹 나리의 눈빛이 더욱 또렷해지더니 고개를 움직여 보고는 물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요?”

부인은 입을 막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소아, 왜 그러는 것이오?”

맹 나리가 일어나려고 애쓰자, 노복이 급히 다가가 그를 눕혔다.

“나리, 가만히 누워 계세요. 지금 의관에 계십니다.”

“내가 왜 의관에 있는 것이냐?”

이 말에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노복은 부인을 쳐다봤고, 부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정미를 쳐다봤다.

정미는 이미 그들에게 반선(半仙)이나 다름없었다.

“방을 붙인 그날, 거기에 당신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정신이 나가버렸고, 그래서 우리 의관에 오게 되었지요.”

정미가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합격했다고?”

맹 나리가 멍한 표정을 짓자, 부인이 깜짝 놀랐다.

“나리, 왜, 왜 그러세요? 저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맹 나리는 정신이 번쩍 들어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왜 우는 거요. 내가 합격했다면, 하늘만큼 기쁜 일이 아니오? 앞으로 부인은 복을 누리면 되겠구려.”

부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정미를 쳐다보았다.

정미는 부인이 맹 나리가 다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미쳐버릴까 봐, 자신에게 진상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미는 마음속으로 계산한 것이 있었기에 부인의 눈빛을 무시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맹 나리, 요 며칠 동안 실성하여 알지 못하셨지요. 이번 춘시의 성적은 폐기되었습니다. 이번 달 22일에 재시험을 봅니다.”

맹 나리가 멍해졌다.

“폐기하였다고요? 어째서입니까?”

정미가 부인을 쳐다봤다.

“이건 부인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직접 나리께 알려주세요.”

“저는―”

부인이 망설이자 맹 나리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아, 어서 말해주시오.”

부인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저, 저는 두렵습니다―”

정미도 아무 말 하지 않자, 맹 나리가 깨달았다.

“내가 다시 미칠까 봐 두려운 것이오?”

부인은 감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어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표정으로 맹 나리를 쳐다봤다.

맹 나리가 웃었다.

“다 나았으니 어서 내게 말해주시오. 안 그럼 조급해져서 머리가 아플 것 같소.”

부인은 그제야 용기를 내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주었다.

맹 나리는 계속 조용히 듣다가, 부인의 설명을 다 들은 뒤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나리―”

맹 나리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위로하듯 웃었다.

“소아, 걱정 마시오. 이미 한 번 미쳐보았더니, 다신 미치고 싶지 않소. 곧 있으면 시험일이니, 곧바로 돌아가서 시험을 준비하도록 하지. 합격하든 못하든,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겠소.”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리다가 입을 막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맹 나리가 노복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를 일으켜주게.”

맹 나리는 노복의 부축을 받아 평상에서 내려와 정미에게 읍을 했다.

“아가씨의 은덕은 잊지 않겠소.”

정미가 비켜주며 말했다.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저는 의원이고, 병을 치료하는 게 본분이니까요. 맹 나리의 시험이 끝나면 진료비를 내러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맹 나리는 잠시 당황하더니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하지요, 당연합니다. 인선(*仁善: 어질고 착함)하신 아가씨군요.”

부인은 다가와 정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몇 번 부딪히더니, 일어나서 맹 나리를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때, 정미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라 외쳤다.

“잠시만요!”

정미는 빠른 걸음으로 맹 나리의 곁으로 가 말했다.

“맹 나리, 발병했을 때 지각이 있으셨는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참고가 될 수 있게 이 병증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습니다.”

맹 나리는 당연히 응했고, 자신이 실성했을 때의 감각을 자세히 설명한 뒤, 여러 번 감사 인사를 하고서야 떠나갔다.

정미는 붓을 쥐고 빠르게 맹 나리의 말을 기록했고, 다 쓴 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자신이 깨달은 점까지 써 내려간 후, 그제야 작은 책자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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