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80화 (180/375)

180화. 뒤얽힌 두 사람의 마음

자리에 앉자마자 조청공이 말했다.

“셋째 오라버니는 옆에 간식 가게에서 완두떡을 사 온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안 가면 못 살걸.”

조경명은 내키지 않는 듯 일어나서 정철을 한 번 쳐다봤다.

“정 형, 저와 함께 가시지요. 두 여동생들이 수다도 떨 수 있게 끔요.”

이에 정철이 일어났다.

“그러지요.”

정미는 갈수록 의아해했다. 두 사람이 가자마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조 언니, 오라버니가 돈을 갖고 있지 않아서 잠시만 기다려줘. 가서 주고 바로 올게.”

“그럴 필요 없는데―”

조청공이 대답했을 때 정미는 이미 나가버린 상태였기에, 그녀는 고개를 휘젓고는 소매에서 음악상자를 꺼내 연구에 집중했다.

정미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은 뜻밖에도 긴 복도 끝에 있는 계단 근처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미가 몰래 몇 걸음 다가가자, 조경명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정 형, 경고하건대 제 여동생은 이미 정혼했습니다. 앞으로 그 아이에게 이상한 물건을 선물하지 마세요!”

정미는 귀를 쫑긋 세우며 이 말을 들었고, 마음이 찌른 듯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정미는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방으로 되돌아갔다.

“정 동생, 왜 그래?”

정미는 정신을 차리고 조청공에게 웃어 보였다.

“아니야. 오라버니들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따라잡지 못했어.”

“내가 쫓아갈 필요 없다고 했잖아. 우리 셋째 오라버니가 은전을 꽤 가지고 있고, 간식 몇 개를 사는 것뿐이니까.”

“응.”

정미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쓰라려 왔다.

‘오라버니가 몰래 조 언니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미 조 언니에게 선물을 준 적이 있다고?’

정미는 계속 자신을 위로했지만, 기분이 축 처졌다.

‘나는 둘째 오라버니를 이해해. 하지만 오라버니처럼 예의 바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미 정혼한 조 언니에게 선물을 주다니, 조 언니를 아주 좋아하는구나!’

“정 동생?”

정미가 눈살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청공이 그녀를 불렀다.

정미는 조청공을 바라봤다.

그녀는 조청공을 미워할 수 없었다. 만약 조청공이 한지와 정혼하지 않았다면, 정철과 아주 훌륭한 한 쌍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미는 영원히 여동생으로 남아 불결한 마음을 안고 공상할 수밖에 없었다.

“정 동생, 고민거리가 있어?”

조청공은 밝고 세심한 성정이었기에 정미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진한 차향이 기분을 홀린 것인지, 아니면 마주 앉은 사람이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어서인지, 정미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김 사이로 말문을 열었다.

“조 언니, 만약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을 은애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 거야?”

조청공은 잠시 멈칫하더니 정미의 표정을 살폈다. 정미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조청공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정미는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조청공이 시원스럽게 웃으며 음악상자를 꺼내 사랑스럽게 토닥였다.

“이런 것들을 만지고 있을 땐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아. 나는 혼인 하고도 이런 것들을 연구할 수 있기만 하면 돼. 어떤 사람과 함께 하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아.”

“이상한 사람에게 시집갈까 봐 두렵지 않아?”

조청공이 빙긋 웃었다.

“내 부모님과 오라버니 모두가 나를 아끼는걸. 그러니까 내게 골라준 사람은 품행이 괜찮은 사내일 거라 믿어.”

정미는 한지를 떠올렸다.

‘품행으로 말하자면, 한지도 모자랄 건 없었어. 그저 정요를 좋아할 뿐이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조청공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정 동생, 이 음악상자는 아직 다 연구해보지 못했어. 하필 기진방에도 계속 물건이 들어오지 않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마음을 베풀어주라. 조금만 더 가지고 놀게.”

정미는 눈을 떨구고 그 음악상자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 희한한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씁쓸함만이 남아있었다.

‘그래, 이 물건은 원래 조 언니에게 갔어야 하는 걸지도 몰라.’

“조 언니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냥 줄게.”

조청공은 잠시 멍해졌다.

“어떻게 그래. 이렇게 진귀한 물건을…….”

정미가 손을 휘저었다.

“나한텐 그저 희한한 물건일 뿐이야. 하지만 조 언니에겐 진귀하지. 이 음악상자가 조 언니를 만난 것도 영광일 거야.”

조청공은 방긋 웃더니 시원스럽게 물건을 챙겼다.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 내가 다 연구해내면, 네게 작은 걸 하나 줄게.”

“좋아.”

정미도 따라 웃었다.

이각(*二刻: 30분) 뒤, 정철과 조경명이 돌아왔다.

“셋째 오라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차가 다 식었다고.”

조경명이 간식 몇 상자를 찻상 위에 올려놓았다.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섰거든. 그렇지요, 정 형?”

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았지요.”

조경명이 웃었다.

조청공은 아무렇지 않게 간식 상자를 열고 완두떡 하나를 꺼내 정미에게 건넸다.

“정 동생, 이 완두떡 좀 먹어봐. 다른 가게에선 이 맛이 안 나.”

정미는 완두떡을 건네받고 한 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맛있네.”

그러고는 곁눈질로 정철과 조경명을 훑어보았고, 두 사람의 분위기가 많이 좋아진 것을 느꼈다.

차와 간식을 다 먹은 뒤, 네 사람은 찻집을 나와 각자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 조청공이 조경명에게 물었다.

“셋째 오라버니,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와 아는 사이야?”

“응? 아니.”

조경명이 시치미를 떼자, 조청공이 그를 노려보았다.

“셋째 오라버니, 나도 귀가 있어. 오라버니가 먼저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를 알아본 거잖아?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오라버니를 돕지 않을 거야.”

조경명은 다급해졌다.

“그러지 마. 사실…… 전에 내가 기진방에서 괜찮은 물건을 찾아서 네게 사주려고 했는데, 누구한테 뺏겼잖아? 그걸 뺏어간 사람이 바로 정철이야.”

“아, 그런 거였구나. 별일 아니네.”

조경명의 얼굴이 붉어졌다.

“별일 아닌 건 맞아, 근데 그러다 나중에―”

그는 손을 뻗어 조청공의 옷깃을 가리켰다.

“그러다 나중에 네가 그 물건을 손에서 떼고 있지 않은 것을 보았고, 그 물건이 바로 우리가 서로 쟁탈하려던 물건이었지. 그래서, 큼큼, 방금 조금 오해가 있었어.”

“오해?”

조경명이 멋쩍게 웃었다.

“나는 정철이 네게 선물한 줄 알고, 그자가 너를―”

조청공은 잠시 당황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셋째 오라버니, 온종일 허튼 생각만 하지. 나는 이미 정혼했고,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는 내 정혼자와 사촌 형제라고. 오라버니가 그런 오해를 하다니, 정말 창피해!”

조경명이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맞아, 맞아. 내가 무모했어. 하지만 오해는 풀었고, 정철도 그리 좀스러운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돼.”

조청공이 그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걸어가자, 조경명은 급히 그녀를 따라갔다.

* * *

곧장 회인백부로 돌아간 정미는 여전히 마음이 답답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필 정철도 최근 갈수록 여동생이 불편해져 어떤 태도로 여동생을 대해야 할지 알지 못했고, 쓸쓸한 얼굴로 걸어가는 여동생을 보고 뭐라 말하려다가 결국 침묵을 지키며 장청원으로 돌아갔다.

해 질 무렵이 다 되어갈 때쯤, 정가의 둘째 나리도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이연원으로 왔다.

한 씨는 마침 신발을 만들고 있었고, 둘째 나리가 들어오자 급히 실을 자른 뒤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나리.”

한 씨는 이제 나리가 와도 예전만큼 기쁘지 않고 그저 침착함과 약간의 호기심만 남았음을 느꼈다.

둘째 나리는 벗은 외투를 곧바로 바닥에 내던지며 외쳤다.

“딸을 아주 잘 키우셨소!”

한 씨는 잠시 멈칫했다.

“미가 왜요?”

“미가 아니라, 정요 말이오!”

한 씨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정요요? 요양하러 교외로 보낸 아이가 왜…….”

한 씨는 갑자기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

“설마 정말 천연두여서, 마을 사람들에게 옮겨버린 건가요?”

“아니, 아직 마을에서 잘 지내고 있소!”

둘째 나리는 굳은 표정으로 연유를 설명했다.

“내가 그 최자겸이 분명 합격할 거라 했지. 오늘 행방이 붙었고, 역시나 이름이 올려져 있더군! 다 당신이 딸을 아주 잘 키운 탓이지. 만약 그런 간교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진사 사위를 들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거였구나!’

한 씨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고는 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그 천한 것의 혼사를 날리게 해주시다니요. 그렇지 않았음 젊은 진사 나리에게 시집갔을 텐데, 얼마나 역겨웠겠습니까!

그런데 철이가 그 최자겸이란 아이는 분명 합격하지 못할 거라 하지 않았던가?’

한 씨는 마음속 의혹을 꾹 참으며 둘째 나리에게 권했다.

“나리, 안타까워 마세요. 정요는 욕심이 많아서 정말 시집갔다고 해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찌 키운 건지 묻지 않소. 그 나쁜 계집은 어려서부터 당신을 따라왔으니! 정말 하나같이 내 시름을 덜어주질 않는군!”

둘째 나리는 눈을 부라리며 소매를 뿌리치고 나가버렸다.

한 씨는 가슴 한쪽이 시려왔지만, 이 씁쓸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정철을 불렀다.

정철이 들어와 한 씨에게 예를 갖췄다.

“어머니를 뵙습니다.”

한 씨는 그를 가까이 불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철아, 네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그 최자겸이란 자가 급제했다던데?”

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오늘 행방을 보러 갔는데, 정말로 최자겸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한 씨는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곧바로 물었다.

“하지만 네가 그때 최자겸은 합격하지 않을 거라 하지 않았니.”

정철은 한 씨가 이리 물을 것을 일찍이 예상한 듯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전시(殿試)가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 조금 더 기다려보시지요.”

한 씨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나도 전시에 대해선 알고 있다. 그건 회시를 통과한 공사들의 순서를 다시 매기는 것이지, 합격자를 빼는 것이 아닐 텐데.”

한 씨는 정철의 표정이 여전히 침착하자, 더는 추궁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됐다, 어쨌든 최자겸이 장원에 급제한다고 해도, 우리 집안과는 조금의 관계도 없어졌으니.”

‘그 천한 것이 이득을 볼 수만 없다면 된 것이지.’

한 씨가 화제를 돌렸다.

“식사는 했니?”

“아직 안 했습니다.”

“그럼 미와 함께 식사를 하거라.”

정철의 어리둥절한 눈빛에 한 씨가 아무렇게나 말했다.

“최근 미가 또 살이 빠졌던데,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거나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겠지. 철이 너도 알지 않니. 나는 그 아이와 별로 친하지 않고 너에겐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으니, 네가 미와 함께해주면 나아질지도 모르지.”

정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정철은 이연원에서 나온 뒤 잠시 망설였지만, 한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자 결국 참지 못하고 비서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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