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79화 (179/375)

179화.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다

서가복의 넷째 오라버니는 머리를 긁적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러나 서가복은 기쁜 표정으로 헤죽 웃으며 말했다.

“구경거리가 생겼다. 오라버니, 어서 따라가자.”

그녀의 넷째 오라버니는 가볍게 나는 제비처럼 달려가는 여동생을 쫓아가며 외쳤다.

“왜 다 달려가는 거야. 행방은 안 봐?”

서가복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욕했다.

“바보야, 행방이 어디 날아가는 것도 아니잖아. 구경거리는 늦으면 보지도 못한다고!”

사람들은 정신 나간 사람을 끌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기에 걸음이 빠르지 않았던 터라 빠르게 정미에게 붙잡혔다.

노복이 깜짝 놀라 말했다.

“아가씨, 이게 무슨―”

정미는 노복의 긴장한 얼굴을 보자, 미소를 지어 보이며 숨을 가다듬고 말문을 열었다.

“노백(老伯), 이 나리는 담미심규에 걸렸으니, 돌아가면 어서 의원을 모셔야 해.”

“그건 당연하지요, 당연합니다.”

노복은 연거푸 대답하며 정미의 말이 조금 오지랖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용모와 분위기를 보고 감히 실례할 수도 없었다.

이때, 다른 사람들도 이쪽의 상황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정미는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짧게 말했다.

“만약 그쪽에서 모신 의원이 속수무책이라면, 제생당에 가서 정가의 셋째를 찾아. 그녀에겐 방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정미는 이 말을 남기고 쫓아온 정철을 잡아당겼다.

“오라버니, 가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후, 서가복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미 동생, 방금 한 말은 무슨 뜻이야? 제생당은 의관이야? 정가의 셋째는 누구고?”

서가는 수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구경거리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서가복은 당연히 의관 같은 것들을 신경 쓸 리 없었다.

그녀의 넷째 오라버니는 이를 알고 있었기에 입을 열었다.

“제생당이 바로 정가에서 연 의관이야. 몰랐어?”

서가복은 그를 한 번 노려보고는 정미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미 동생, 그럼 너희 의관에 신의가 있는 거야?”

정미는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정철을 쳐다봤지만, 엄숙한 그의 표정을 보자 자신이 방금 제멋대로 군것에 대해 화가 난 줄 알고는 솔직히 말했다.

“제생당엔 신의가 없어. 그리고 정가의 셋째가 바로 나야.”

서가복은 두 눈을 크게 떴다가, 한참 뒤에야 박수를 치며 웃었다.

“미 동생이 이렇게 재밌는 사람인 줄은 오늘에서야 알았네. 나보다 대단한데? 신의를 사칭해서 저들을 놀리다니.”

정미가 담담하게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농담을 치지 않거든?”

정미는 서가복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 곧장 뒤돌아 행방을 보러 갔다.

처음에 붐비던 사람들은 점점 흩어졌고, 진홍색 행방은 시험장 문밖의 돌담에 붙어있어 아주 눈에 띄었다.

정미는 정철 외에는 누가 합격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오라버니가 왜 자신을 여기에 데려왔는지도 몰라 답답해했다. 그래서 대충 몇 번 훑어보다가, 문득 어떤 이름을 발견했다.

‘최자겸’

정미는 처음엔 그 이름을 보고 누군지 깨닫지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를 떠올렸다.

‘그 거인 설융이 꼭 원수를 갚겠다고 한 그 사람 아닌가? 아직 설융에게 받을 진찰비가 많이 남았는데……. 제생당에서 일을 하며 빚을 갚기로 해 놓고, 돌려보낸 뒤론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줄이야. 그래, 최자겸은 또 정요가 퇴혼한 정혼자였던 것 같은데…….’

그 순간, 정미는 뭔가 이상함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어 고개를 돌려 정철을 쳐다봤다.

“오라버니, 봐봐―”

정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입을 다물었다.

정철도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철은 시선을 거두고 정미에게 말했다.

“미미도 봤어?”

정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최자겸이 합격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이름이 아주 뒤쪽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쉬운 일은 아닌데.”

정미는 말하다가 고소하다는 듯 웃었다.

“아버지께서 아시면 분명 괴로워하시겠네.”

“최자겸이 누군데?”

서가복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묻자, 정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말해도 모르는 사람이야.”

정철이 웃었다.

“점심이 다 되었네. 돌아가야겠어.”

서가복이 눈을 반짝였다.

“정가 둘째 오라버니, 나와 넷째 오라버니가 백미재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건 어때요?”

정철은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사양했다.

“서가 아가씨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오늘은 집에 일이 있으니, 저와 미미가 다음에 대접해드리지요.”

정철의 말에 서가복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고, 네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

정철은 그제야 정미에게 물었다.

“미미, 정신 이상도 치료할 수 있어?”

정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못 해. 아직 배울 생각을 못 했거든. 하지만 시간을 좀 주면 배울 수 있어. 오라버니, 내가 오지랖을 부렸다고 생각해?”

정미의 질문에 정철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궁즉독선기신(*窮則獨善其身: 궁하면 자신만을 돌보고), 달즉겸제천하(*達則兼濟天下: 현달하면 천하를 돌봐야 한다)’라는 말도 있잖아. 미미는 여인이지만, 평범한 사람에겐 없는 능력이 있지. 미미가 원하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돕는 네가 오라버니는 아주 자랑스러워.”

“오라버니…….”

정미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꿀물에 잠긴 것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지지해주는 사람은 영원히 둘째 오라버니일 거야. 나는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도울 일도 하지 못해. 그저 힘이 닿는 상황이라면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인연들을 도울 뿐이지.

선한 마음을 품고 선행을 많이 베풀면,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악몽 속의 운명을 맞지 않도록 도울지도 몰라.’

“왜 멍해졌어?”

정철이 손을 들어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이 붙어있기에, 정미는 익숙한 맑은 향기가 느껴졌다.

정미의 시선이 홀린 듯 아래로 내려가 정철의 입술에 꽂혔다.

정철의 입술은 아주 예뻤다. 입술색은 자연스러운 분홍색이었고, 분명 얇은 입술인데도 입을 맞추면 따뜻해 정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정미는 참지 못하고 입맛을 다시며 까치발을 들었다.

하지만 정철은 뭔가 눈치챈 듯 갑자기 뒤로 물러났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발이 걸려 하마터면 바닥에 창피하게 넘어질 뻔했다.

정미는 정신을 차렸다. 원래는 부끄러워하며 당황해야 했지만,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니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정철은 몸을 바로 세우고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또 장난을!”

그는 억지로 진지한 모습을 지어냈지만, 마음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방금 미미가 내게 또 입맞춤을 하려 한 건가? 아니, 아니. 내가 또 허튼 생각을 하다니. 다시 입맞춤할 리 없지. 미미가 저번에 호기심 때문이라고 직접 말했는걸. 입맞춤이 아니라면, 그저 어린 아가씨의 장난이겠지. 그래, 미미가 어릴 때 응석을 부리며 업어달라 했던 것과 같아. 최소한, 미미의 마음은 그때와 같을 거야.’

정철은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꽃처럼 웃는 소녀를 보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나도 결국엔 사내인데, 미미는 늘 이렇게 아이처럼 겁 없이 행동하는구나. 만약 내가 한 번이라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정철은 감히 더 생각할 수 없었고, 그저 화로 마음속 깊은 곳의 설렘을 떨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정미, 또 장난치면 오라버니가 정말 눈감아주지 않을 거야!”

반 장 정도 떨어져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 오라버니가 마치 사갈을 피하는 것 같은 모습을 하자, 정미는 마음이 쓰라려 왔기에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라버니, 난 아무것도 안 했는걸.”

‘나를 때려죽여도 방금 입맞춤을 하고 싶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거야. 오라버니가 좋게 말할 리 없지!’

정미의 성정은 확실히 조금 상도를 벗어나는 면이 있었다. 보통의 아가씨였다면 자신의 오라버니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아주 창피해서 그 사람을 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정미는 처음의 충격 이후론 여전히 오라버니를 멀리하기 아쉬워했고, 심지어 오라버니를 더 그리워하기까지 했다.

정미의 사고는 아주 간단했다. 어쨌든 그녀와 오라버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니, 지금 최대한 오라버니와 함께 있는 게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소녀는 순진한 얼굴로 오라버니를 쳐다보다가, 오라버니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한 모습을 하자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나도 이렇게 손해 볼 필요가 없지 않나? 어쨌든 미래에 오라버니가 내 것이 될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입맞춤을 해두는 게 이득 아닌가?’

정미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흔들며 이 생각을 떨쳐냈다.

‘내가 미친 게 분명해. 오라버니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걸!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냐. 오라버니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내가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건 안 돼!

……만약 입맞춤을 한 뒤에 또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정미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 생각은 악마의 유혹처럼 다시 한번 시도해보고픈 마음을 가지게 했다.

정철은 정미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하다가 이러면 안 된다고 느꼈다.

‘정미의 표정을 보니, 내가 너무 깊이 생각한 것 같아. 계속 이러면 도리어 어색해지는 것 아닐까?’

정철은 가볍게 기침하고 앞쪽을 가리켰다.

“찻집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쉬었다 가자.”

정미는 오라버니와 계속 함께 있고 싶었기에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매가 찻집에 들어서고 머슴이 그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갈 때쯤, 그들은 어떤 사람을 마주쳤다.

그 사람은 열아홉 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정철을 보자마자 잠시 멈칫하더니 무의식중에 물었다.

“당신은?”

정철이 그를 알아봤다.

“우연이군요, 여기서 대형을 마주치다니.”

정미는 정철의 옆에 서 있었고, 그 사내를 알지 못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쯤 열려 있는 내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

목소리와 함께 새하얀 옥 같은 손이 대나무 문발을 걷었고,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정미는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조 언니?”

정미는 여기서 조청공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운선산에서 헤어진 뒤로, 조청공은 항상 바쁜 것 같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청공도 아주 기뻐하며 빠르게 정미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정 동생, 여기서 만날 줄이야.”

“나도 생각지도 못했어.”

조청공이 그녀를 잡아당기며 안으로 걸어갔다.

“같이 차 마시자.”

그러자 정미가 고개를 돌려 정철을 쳐다봤다.

조청공은 그제야 두 사내를 떠올렸고 정철에게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 이쪽은 제 셋째 오라버니예요. 셋째 오라버니, 이분은 회인백부의 둘째 공자와 셋째 아가씨야. 나와 셋째 아가씨는 친한 친우고.”

조청공의 셋째 오라버니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

“원래 알던 사이였구나.”

정철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 이름은 외자 ‘철’ 이고, 자는 ‘청겸’입니다, 대형은?”

조청공의 셋째 오라버니는 여동생을 한 번 쳐다보더니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조경명(趙景明)입니다. 아직 자는 없습니다.”

서로 소개를 마친 뒤, 조경명이 손을 뻗었다.

“만난 김에 들어오시지요.”

정미는 조청공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며 마음속으로 의아해했다.

‘둘째 오라버니와 조가의 셋째 오라버니를 보니, 두 사람은 아마도 마주친 적이 있는 사이 같은데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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