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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78화 (178/375)

178화. 행방이 공표되다

정미는 이제 제생당을 드나들 때 예전처럼 대문을 이용하지 않았고 옆문으로 드나들었다. 사철은 제생당으로 향하다가 입구에서 정미와 정철이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철 오라버니? 왜 다시 돌아왔어요?”

정미는 어리둥절했다.

아가씨들의 체면은 중요한 일이었다. 사철은 사효의 마음이 걱정되어 예의를 차릴 겨를도 없이 정철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뒤, 반짝이는 눈으로 정미를 바라봤다.

“정미, 일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잠깐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

정미가 정철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봐, 나는 저기 앞 길목에서 기다릴게.”

정철이 멀리 걸어가자, 정미가 사철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사철은 조급함을 숨길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말투만은 여전히 온화했다.

“방금 내가 부수를 가지고 돌아가서 사효가 마셨는데, 갑자기 얼굴의 여드름이 더 많아졌다고 해서. 왜 그런 건지 물어보러 왔어.”

“많아졌다고요?”

정미의 안색이 조금 변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부수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니까.”

사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미가 설명했다.

“일단 독소를 빼내야 하니까, 초반엔 얼굴의 여드름이 더 많아질 거예요. 괜찮아요. 여드름이 한꺼번에 나타난 이후론 다시 없어지기 시작할 테니까요. 내일 오라버니가 다시 와서 내게 상황을 알려주고, 오늘은 조용히 변화를 지켜보면 돼요.”

“그런 거였구나.”

하지만 사철은 여전히 의아했다.

정미가 옅게 웃으며 물었다.

“절 못 믿는 거예요?”

“그럴 리가. 그저 내가 부의에 대해 잘 몰라서, 호기심이 일어서 그래. 그럼 나는 우선 돌아가서 사효에게 알려줄게. 그 아이가 걱정하지 않게끔.”

사철이 급히 말하자, 정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전 이만…….”

그런데 자신을 따라 사철도 발걸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정미가 의아하다는 듯 사철을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방금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너무 실례했어. 철 형님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고.”

정철은 길목에 선 채로 정미와 사철이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선남선녀 한 쌍을 보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지만,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 다 마쳤어?”

사철의 귀밑이 살짝 붉어졌다.

“마쳤습니다. 방금은 마음이 너무 급해서 실례를 범했네요. 양해 부탁드려요, 철 형님.”

“그래, 이해해.”

“형님이 정미를 데리고 나온 건 일이 있어서겠지요. 그럼 저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집에도 일이 있어서요.”

사철은 말하면서 정미를 한 번 더 쳐다봤다.

사효의 비밀을 지켜달라는 뜻이었다.

정미는 이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눈짓은 정철의 눈에도 들어왔다.

사철이 떠난 뒤, 한참을 조용히 걷던 정철이 말문을 열었다.

“요즘 사철이 자주 제생당에 드나들었어?”

“이틀밖에 안 왔어.”

정미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틀?”

정철은 무심한 척 물었다.

“사가의 누가 아픈 거야?”

정미는 사효의 비밀을 지켜야 했기에 오라버니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핑계를 댔다.

“저번에 내가 이모할머님의 병을 알아냈잖아. 사철 오라버니는 효자니까, 내가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해서 소갈증에 대해 알아보려고 제생당에 나를 찾아온 거야.”

“그런 거였구나.”

정철은 눈을 내리깔고 담담하게 말했으나, 몰래 주먹을 쥐며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사가의 동생은 정말 경왕세손과는 비교할 수도 없구나. 핑계도 정말 잘 찾는군. 정미와 만날 적당한 명분도 찾고, 효자라는 미명까지 얻을 수 있다니.’

“오라버니?”

정미는 오라버니의 기분이 왠지 좋지 않다고 느껴졌다.

정철은 정신이 들어 평소와 같은 표정을 되찾았다.

“왜?”

“혹시 기분이 안 좋아?”

정철은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아니!”

그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설마 미미가 알아챈 건가? 안 돼. 나는 조금도 질투하지 않았어. 조금도!’

정미는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며 조금 마음이 아파져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나도 알아. 오라버니의 기분이 당연히 좋지 않겠지.”

“허튼소리 마. 사가의 동생은 덕행이 높은 훌륭한 자제인 데다가, 온화하고 우아하잖아. 미미가 그 동생과 잘 지내면, 오라버니는 당연히 기쁘지.”

정미는 잠시 멍해지더니 피식 웃었다.

“오라버니,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내 말은, 오늘 공표되는 행방 말이야. 그거 때문에 오라버니 기분이 안 좋겠다고 생각한 건데?”

늘 담담하던 정철의 얼굴에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정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정철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뭔가 깨달은 건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나온 말인지, 정미가 물었다.

“오라버니, 사철 오라버니가 나를 찾아오는 게 싫은 거야?”

이 말에 정철이 갑자기 기침을 해댔다.

정미가 급히 다가가 등을 두드려줬다.

정철은 그녀를 밀어내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또 허튼소리를 하면, 화낼 거야.”

정미는 억울한 마음에 갑자기 손을 뻗어 정철의 소매를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내가 싫어진 거야?”

“그럴 리가.”

여동생의 상심한 모습에, 정철은 방금의 엄한 표정과 말을 후회했다.

“하지만 예전보다 내게 훨씬 무섭게 대하잖아. 태도도 갈수록 이상해지고.”

정철은 이마를 짚었다.

‘그거야 네가 갑자기 내게 입맞춤을 했잖아.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지금 이상한 게 누군데! 내가 아무리 강철같은 심장을 가졌다고 해도 이런 고통은 견딜 수 없다고…….’

두 남매의 분위기가 어색해질 무렵, 갑자기 어디선가 기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 정미, 어떻게 이런 우연이!”

두 사람이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자, 서가복이 기쁜 표정으로 그녀의 넷째 오라버니를 잡아당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정미의 입가가 씰룩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금 오라버니한테 그런 말을 하지 말걸.’

서가복은 눈 깜짝할 새 가까이 다가와 방긋 웃었다.

“정가 오라버니, 행방을 보러 가는 거예요?”

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요!”

서가복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넷째 오라버니를 한 번 노려보더니 성을 냈다.

“오라버니,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 좀 봐. 역시 정미를 데리고 행방을 보러 가고 있잖아. 나도 가서 구경 좀 하고 싶은데, 오라버니를 데리고 가려고 해도 싫다고만 하고!”

서가의 넷째 공자가 중얼거렸다.

“여기 시험을 본 사람도 없는데, 볼 게 뭐 있어.”

“넷째 오라버니!”

서가복이 경고하듯 그를 한 번 노려봤다.

정철이 춘시를 놓친 일은 서가에도 일찍이 전해졌다.

“정가 오라버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제 넷째 오라버니는 늘 덤벙대고, 말을 잘 못하거든요.”

정철은 빙긋 웃으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정미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두 사람이 지금 고의로 정철의 기분을 나쁘게 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그녀는 정철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라버니, 어서 가자.”

“같이 가, 같이 가자.”

서가복은 허물없이 정미의 다른 쪽 손을 잡으며 환히 웃었다.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 법이니, 정미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조용히 이를 갈며 끌려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행방이 공표된 곳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환호하는 사람도 있었고, 통곡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그 자리에서 혼절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서가복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가까운 곳에 서서 히죽이며 현장을 구경했다.

그녀는 누가 합격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떠들썩함을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미가 앞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정철이 붙잡았다.

“사람들이 좀 흩어지면 보자. 그래도 안 늦어.”

서가복이 공감했다.

“맞아, 행방이 뭐 볼 게 있다고. 사람 구경이 재밌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 가리켰다.

“저 사람 좀 봐. 합격한 걸까, 아닌 걸까? 왜 울다가 웃다가 하는 거지, 정신 나간 거 아냐?”

서가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오십이 넘어 보이는 사람이 미친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붙잡는 중이었다.

정철이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말했다.

“합격했어. 다만 쓸모가 없게 되었군.”

“그게 무슨 뜻이지?”

서가의 넷째 공자가 고개를 돌리고 묻자, 정철이 설명했다.

“아마도 합격한 걸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좋아서 미쳐버렸다고요?”

서가복이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담.”

그때, 그 미친 사람이 갑자기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철은 정미를 자신의 뒤로 잡아당겼다.

서가복은 정철 앞에서, 미친 공사(貢士)와 싸우려는 협녀 같은 모습을 보이려는 듯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넷째 오라버니는 손을 뻗어 미친 공사를 막으며, 그를 쫓아온 몇 사람들에게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내 여동생과 친우에게 부딪혔다면, 이 자가 미친 자든 아니든 흠씬 때려줬을 것이다!”

쫓아온 사람들 중 나이가 어려 보이는 어떤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어찌 조금의 동정심도 없는 것이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노복(老僕)이 그를 잡아당기고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나리께서 평생 시험을 봐오시다가 어렵사리 급제했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정신을 잃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 이걸 어떻게 하지요. 마님께서 이를 알게 되시면, 분명 마님께서도 살아갈 수 없으실 텐데…….”

노복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그는 광목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고, 손도 투박하며 거칠었다. 이것으로 보아 기뻐서 미친 나리 또한 하인을 부릴 수는 있지만, 집안 사정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듯했다.

서가복의 넷째 오라버니는 이를 보고는 더 이상 뭐라 말하기가 곤란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됐다, 됐어. 어서 이자를 데리고 돌아가게. 여기서 발광하다가 대단한 사람과 시비가 붙으면, 우리만큼 좋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복은 눈물을 닦으며 몇몇 사람과 함께 그 미친 나리를 데리고 돌아갔다.

정미와 남은 일행들은 그 사람들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서 걷고 있던 사람들이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정말 불쌍하구나. 맹 나리가 시험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그러는 동안 수염도 다 하얘졌다고. 그러다 어렵사리 급제했는데 미쳐버리다니. 맹가의 부인도 참 안타까워.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했거늘. 아직 아들을 잃은 고통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고생 끝에 겨우 낙이 오는가 싶었더니 남편이 미쳐버렸으니 말이야. 정말 더 이상 살지 못하겠구나. 쯧쯧.”

이에 정미의 마음이 흔들렸다.

담미심규(*痰迷心竅: 담(痰)이 심규(心竅)를 막아 정신착란이 생기는 병)란 병은 편침과(砭針科)에 해당했고, 정미가 치료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미는 아직 그 방면의 부적을 배울 겨를은 없었지만, 최소한 치료할 수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단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정미는 정철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 사람―”

정철은 여동생이 이런 장면을 보고는 힘들어하는 줄 알고 위로했다.

“사람은 각자 운명이 있는 법이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오라버니, 금방 다녀올게.”

정미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그 사람들이 멀리 가버리는 것을 보자, 결국 결심을 내리고 치맛자락을 든 채 그 방향으로 달려갔다.

정철은 의아해하며 급히 그녀를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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