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74화 (174/375)

174화. 사가에 재방문하다

“무슨 일이길래 허둥지둥하며 나를 부른 것이오?”

둘째 나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최근 그는 이상한 병 때문에 사교활동이 적었고, 때문에 기분도 좋지 않았다.

한 씨는 정요 때문에 마음이 혼란했기에 둘째 나리의 기분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놀라운 소식을 털어놓았다.

“방금 정요를 모시는 파자가 와서 보고하기를, 정요가 천연두에 걸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뭐라―”

둘째 나리의 큰 소리와 함께 이상한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둘째 나리의 얼굴이 곧바로 빨개졌다.

‘망할, 흥분하니까 또 병이 도지는군!’

하지만 지금은 한 씨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는 것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천연두’라는 단어에 완전히 놀라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대량에서 천연두의 공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아주 무서운 악증(*惡症: 고치기 힘든 병)이었다.

“확실하오?”

황제 앞에서도 거침없이 말하던 둘째 나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니요, 일단 파자의 보고를 듣자마자 사람을 보내 나리를 모셔오라 한 겁니다. 태의를 모셔볼까요?”

한 씨가 물었다.

한 씨는 당연히 그 천한 것에게 태의를 모셔주기 싫었다. 하지만 서녀에게 큰일이 났는데, 적모로서 의원도 불러주지 않으면 안 좋은 소문이 날 것이었다.

하지만 둘째 나리는 뜻밖에도 펄쩍 뛰며 노발대발했다.

“태의를 부르기는 무슨.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오?”

한 씨는 욕설을 듣자 잠시 멍해졌으나, 둘째 나리는 여전히 대로했다.

“태의를 불러 그 못된 계집이 정말로 천연두를 얻은 것이 확실해지면, 우리 백부의 사람들이 문밖으로 한 발짝이나 나갈 수 있을 것 같소?”

“그, 그럼 어떡해요? 아니면 제가 몰래 사람을 보내 평범한 의원을 불러오거나, 셋째 나리를 모셔올까요?”

“누구도 불러선 안 되오!”

둘째 나리는 하찮다는 듯한 눈빛으로 한 씨를 쳐다봤다.

“이 세상에 바람이 새지 않는 담이 어디 있소? 천연두 같은 악질이면 더 하지. 게다가 셋째의 곧은 성정이라면 확신하는 순간 스스로 백부의 문을 닫을 것이오. 그럼 태의와 무슨 차이가 있겠소?”

“그럼 나리의 뜻은―”

둘째 나리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마치 자신의 친딸이 아닌 아무 개나 고양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증상이 천연두 같다면 뭐하러 의원을 부른단 말이오! 어쨌든 그동안 혼자 처소에서 지냈고 그 아이의 시중을 든 건 파자 둘 뿐이었으니, 정말 천연두에 걸렸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진 않을 거요. 당신이 마차를 불러 그 못된 계집을 교외의 마을로 보내시오. 만약 정말 천연두에 걸린 거라면 바깥으로 보내는 건 응당한 일이고, 만약 아니라면 다 나은 뒤 다시 데리고 오면 되지 않소.”

둘째 나리가 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데리고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소. 그 못된 계집의 심성이 좋지 않으니, 마침 마을에서 심신을 수양하면 좋겠군.”

한 씨는 멍하니 둘째 나리의 말을 듣다가 여전히 준수한 그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낯설다고 생각했다.

한 씨는 그 천한 것을 무척이나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결국엔 그 천한 것도 나리의 친딸이었다.

‘병증이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의원도 부르지 않고 이렇게 보내버리다니.’

한 씨는 가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미였어도, 나리가 이렇게 하셨을까?’

한 씨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을 알 수 있었다.

“당신, 멍하니 뭐 하는 거요?”

한 씨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노부인께 알릴 필요는 없을까요?”

“말하긴 해야지. 그 못된 계집의 한증이 점점 중해져서 의원을 불렀는데, 의원이 백부에 머무는 것보다 교외에서 양병하는 게 더 좋겠다고 말했다 하시오.”

“알겠어요.”

한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간에 그녀는 그 천한 것을 보내버릴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나설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한 씨는 정요가 사람을 속일까 두려워 설란에게 가서 멀리서 확실히 온몸에 홍진이 난 것이 맞는지 보고 오라 했고, 그제야 마차를 부르라 명령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수도 제일 재녀라는 오랜 명성을 가진 회인백부의 둘째 아가씨는 작은 마차를 타고 소리소문없이 백부를 떠나 교외로 향하게 되었다.

마차 안에서 두 파자는 부모를 잃은 듯 슬퍼했으나 두 사람의 가족이 모두 백부에 있었기에, 그녀들이 가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끊기리란 것을 알았다.

한 씨가 앞으로 가족들을 살펴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두 파자는 눈물을 머금고 응할 수밖에 없었다.

마차 안에서 말없이 있던 정요는 조용히 창발을 열어 아쉬운 듯 밖을 쳐다봤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햇살은 아름다웠다. 정요가 드디어 그 새장에서 탈출한 것이다!

정요는 품 안에 숨긴 금계랍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나올 수만 있다면, 어쨌든 희망은 있는 거야.’

* * *

정요가 떠난 일은 마치 작은 돌을 호수에 던진 수준이었다. 잠시 작은 물결이 일어난 후, 이내 일상을 되찾았다.

사철의 소성년식이 코앞이라, 한 씨는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사가로 향했다.

정미는 기분이 좋았다.

이틀 전 덕소 장공주부에 가서 승마와 활을 시험했고, 덕소 장공주는 정미의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칭찬했다. 특히 궁술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정미는 그것이 부수로 얻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성장한 것은 매일 힘들게 연습한 덕분이기도 했기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날은 정철도 정미와 함께 덕소 장공주부에 갔는데, 정미는 승마와 궁술 시험이 끝난 뒤 정철이 보였던 진실한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미소라면, 앞으로 어떤 고생이든 기꺼이 할 수 있었다.

“셋째 언니,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

정동이 정미의 옆에서 걸으며 작게 말했다.

정미가 눈을 깜빡였다.

‘언제부터 정동과 이렇게 친해진 거지?’

그러고는 입술을 오므리며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소성년식에 참석하는데, 굳은 표정이어서 되겠어?”

공격을 당했는데도 정동은 조금도 화내지 않고 더욱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 언니, 둘째 언니가 병이 위중해서 교외에 가서 양병을 하게 되었잖아. 앞으로 안 돌아오겠지?”

“그게 뭐 어때서?”

정동이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그냥, 좋잖아. 앞으로 아무도 언니에게서 지 오라버니를 빼앗지 않을 테니.”

정동은 정미와 정요의 관계가 빠르게 악화된 이유가 당연히 위국공 세자 때문이라 생각했다.

정요가 사라진 상황에서 정미가 이렇게 예뻐졌으니, 예전처럼 위국공 세자에게 잘 대해주기만 하면, 그가 좋아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만약 정미랑 위국공 세자가 잘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사철 오라버니를 떠올리지 않겠지.’

정동은 자신이 정미의 마음을 들어맞췄다고 생각했고, 마침 사철 오라버니를 두고 다투는 강적을 제거했다고 생각하자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하지만 정미가 정요의 부추김을 들은 뒤 한지에게 고백한 것이었고 그때 이후로 악몽을 꾼다는 것을, 정동은 알지 못했다. 정미는 그 일에 대해 치부라고 생각했기에 듣자마자 표정이 차가워졌다.

“내 앞에서 지 오라버니 얘기하지 마! 지금 내 눈에 지 오라버니랑 셋째 남동생은 똑같아 보이니까.”

정미는 소매를 뿌리치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셋째 남동생과 같다고?’

정동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기가 찼다.

‘정미는 셋째 남동생을 아주 싫어하는걸. 이렇게 말하는 건 분명 나를 놀리려는 거겠지.’

정미에게 무정하게 버림받자, 정동은 습관적으로 눈물이 차올랐지만 빠르게 차분함을 되찾았다.

‘늘 입만 살아가지고. 나는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아!’

* * *

사가에 들어간 뒤 나이 어린 아랫사람들은 안내인을 따라 응접실로 갔다. 뜻밖에도 그곳엔 위국공부들의 아랫사람들이 이미 와있었다.

한지는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보았고, 정미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정요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두 집안의 아이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아는 사이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뒤섞여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한추화는 정미를 잡아당기고 아래위로 살펴봤다.

“정미, 살이 빠졌어.”

“언니도 마찬가지야.”

한추화는 원래도 계란형 얼굴이었는데, 턱이 더욱 날카로워져 평소보다 훨씬 우아해졌고 부드러운 모습은 조금 덜어진 채였다.

정미는 전에 국공부에서 무심코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언니가 사위 들이는 일 때문에 걱정이 많아 힘들었나 보다…….’

정미는 원래부터 한추화에게 동정심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나이가 어렸기에 다른 사람의 혼인에 대해선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 감정은 정미를 철들게 했고, 다시 한추화를 보니 그녀의 울적함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정미의 눈가에 담긴 동정심을 눈치챈 한추화는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는 살이 좀 빠져도 돼. 하지만 정미는 더 빠지면 안 돼. 너 좀 봐, 버드나무 가지 같잖아.”

그러고는 정철을 흘끗 쳐다봤다.

“철 오라버니, 최근에 정미를 잘 돌봐주지 않았구나.”

그저 놀리려고 한 말이었지만, 정미는 왠지 모르게 당황하며 감히 오라버니를 쳐다볼 수 없어 급히 말을 이었다.

“아니야. 내가 키가 커서, 그래서 살이 빠진 거야.”

정미는 곁눈질로 빠르게 정철을 한 번 훑었다. 정철이 아무 표정도 짓지 않자 괜히 실망감이 들었다.

한추몽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미 언니는 포동포동했었는데. 우리 집에서 한 번 기절한 이후로 점점 말라가더니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어. 완전 전화위복이네.”

“추몽.”

한추화가 경고하듯 한추몽을 흘끗 노려봤다.

한추몽은 늘 한추화를 아주 두려워했지만, 최근엔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큰언니가 아무리 무서워 봤자, 사위를 들이는 일로 근심 걱정이 가득한데 데릴사위로 오려는 사내 중 좋은 사내가 어디 있겠어? 나중에 내가 시집가게 되면, 국공부의 셋째 아가씨라는 신분으로 아무리 별로인 사내를 만나도 큰언니보다 훨씬 훌륭할걸.’

그러나 한추화에게 아직 위력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한추몽은 입을 삐죽대다가 화제를 돌렸다.

“왜 정요 언니는 안 보여? 아직도 다 안 나았어?”

한지의 손이 멈칫하더니 이쪽을 쳐다봤다.

정요가 교외로 보내진 일은 아직 퍼지지 않았기에 위국공부의 사람들은 이 소식을 알지 못했다.

정미는 정요 얘기를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아서 무표정으로 눈을 떨구고 차를 마셨다.

정동이 눈을 굴리더니 한숨 쉬며 말했다.

“병증이 심해서, 백부 안에서 요양하기엔 좋지 않대. 그래서 교외로 나갔어.”

이 말에 한지가 손에 쥐고 있던 옥 장신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옥 장신구는 작은 사자 모양이었는데 땅콩보다 훨씬 큰 크기였다. 둥글둥글하니 이렇게 떨어져도 깨지지 않았고, 계속 데굴데굴 구르다가 정미의 발치에서 멈췄다.

방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

만약 정미가 그것을 주워서 한지에게 돌려주었다면, 그저 작은 의외의 일로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정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를 본체만체하며 계속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작은 사자는 가련하게 정미의 발치에서 가만히 있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그중 실수로 작은 사자를 굴러 떨어트린 한지가 가장 난처해했다.

제자리에서 손을 뻗어 주울 만한 거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줍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곧바로 한지는 귀 끝까지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추화마저도 놀란 눈빛으로 정미를 한 번 쳐다봤다.

‘정미가 정말로 포기한 건가?’

이렇게 생각하자, 한추화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한추화는 큰동생인 한지가 정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님을 진작 알아보았다. 만약 정미가 계속 그 마음을 포기하지 못했다면 앞으로 기쁜 일이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추화는 당당하고 제멋대로인 정미가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지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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