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발견
두 파자는 힘이 좋았기에 이 일을 숨기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곧바로 침상보로 이미 죽은 순자를 둘러싸 화원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사람이 거의 가지 않는 은밀한 구석에 구덩이를 파서 묻었다.
거처로 돌아간 뒤, 두 사람은 현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침상에 웅크려있는 정요를 위로했다.
“둘째 아가씨, 그 순자란 자식은 원래 자기 분수를 모르는 놈이었습니다. 늘 처녀들과 젊은 부인들을 희롱하곤 했지요. 그런데 감히 아가씨에게까지 눈을 돌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네요. 순자가 죽은 건 인과응보입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이 일은 잊으세요.”
정요는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불안해했다.
“하지만―”
다른 파자가 말을 이었다.
“두려워 마세요, 아가씨. 노노(*老奴: 늙은 종)들이 순자를 화원에 묻었고, 아무도 알지 못할 겁니다. 순자의 아비가 아들이 보이지 않아 사방으로 찾는다고 해도 후원까지 찾으러 오진 못 할 거예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정요의 작은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걸. 나, 나는 고의로 그런 게 아냐. 갑자기 창을 넘어 들어와서 당황한 나머지 비녀를 휘둘렀는데 목을 찌를 줄은 몰랐어…….”
“잘하셨어요. 아가씨께선 귀녀이신데, 만약 정말 그 몹쓸 놈에게 당했다면 그거야말로 죄악이지요. 그러니 순자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정말?”
정요의 안색이 조금 따뜻해졌다.
두 파자는 이 소심하고 연약한 둘째 아가씨가 어느 날 결국 둘째 부인에게 이 일을 드러낼까 봐 연거푸 위로했다.
정요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럼 내게 따뜻한 물을 한잔 내올 수 있어? 몸 안팎이 다 추운 느낌이야.”
서로를 마주 보던 파자 중 하나가 뒤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한 물 한잔을 가져왔다.
“깜짝 놀라셨으니, 따뜻한 물로 몸을 좀 데우세요.”
정요가 잔을 들고 천천히 들이키자, 두 파자는 피곤함이 밀려들어 방으로 돌아가 다시 잠을 잤다.
정요는 뜨거운 잔을 들고 흔들거리는 문발을 바라보며 웃었다.
곧 여름이 다가왔다. 환절기가 되면 백부에선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가씨들의 옷과 장신구, 그리고 규방의 휘장과 문발을 모두 계절에 맞게 바꾸어주곤 했다. 하지만 정요의 문발은 몇 개월 전과 똑같았다.
정요의 얼굴에 비분함과 울분이 스쳤고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잔을 꽉 움켜쥐었다.
물은 아주 따뜻했다. 한 씨의 명령에 의해 감금당한 이후로, 사흘이 멀다 하고 얼음물로 목욕을 했으며, 마시는 물마저 차가운 물이었다. 정요는 이미 따뜻한 물을 언제 마셨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따뜻한 물을 다 마셨고, 온몸에 온기가 돌자 몸을 숙여 침상 머리맡에 있던 장을 열어 종이 포장을 꺼냈다.
정요는 종이를 펼쳐 계란과 갈자초만 꺼냈고, 벽 모퉁이의 화분대 옆으로 걸어가 남은 물건을 화분 안에 묻었다.
물건들을 감쌌던 종이까지 태워 잿더미로 변한 뒤, 정요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침상 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순자가 원망스럽냐고? 당연히 원망스러웠다.
‘그러니 방금 그 비녀를 찔렀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던 거지. 급소를 정확히 찔러서 다행이야. 내가 원한 것이 바로 일격에 목숨을 앗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어찌 내 몸을 더럽힌 비천한 신분의 사내가 살아있도록 놔둘 수 있겠어!’
하지만 순자의 뜻밖의 출현은 역시 다행인 일이었다.
‘여기 연금당한 뒤, 매일 구박 받고 하늘도 땅도 도와주지 않았지. 며칠 동안 절망하며 겨우 버티고 있었어. 그러니 순자의 출현은 내게 기회가 되어준 거야.’
정요는 손수건 안에 감싼 갈자초를 소중히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역시 나는 죽을 운명이 아니구나. 당귀, 복령, 내가 이것들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그 파자들이 내게 달여줄 리가 있겠어? 내가 정말 필요한 건 애초부터 갈자초 뿐이었어. 다행히 순자가 가져와 줬구나.’
순자의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면, 솔직히 정요는 그리 역겨운 기분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분노가 더욱 차올랐다. 순결을 잃었으니, 어떤 계획들은 완전히 바꿔야만 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이렇게 조용히 죽는 것보다는 낫지!’
정요는 빙긋 웃었다. 요 며칠 동안 처음으로 편안히 잠에 들 수 있었다.
* * *
한편, 정미는 잠에 들지 못하고 한참이나 뒤척였다.
어제 그녀가 정철을 속였을 때 그는 그 말을 믿는 듯했지만,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단기간 내에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좌절한 정미는 날이 밝자마자 우각궁을 들고 궁술을 연습하러 나섰다.
내일이면 덕소 장공주부에 가야 했다. 앞으로는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의 치맛자락을 잡는 느낌에 정미는 고개를 숙였고 웃음을 지었다.
“반어, 꽤 부지런하네. 이른 아침부터 나를 따라가려고?”
정미는 며칠 간 오후마다 활을 연습했고, 반어는 그때마다 매번 따라와 구경했다.
반어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몇 번 ‘야옹’거리다가 정미의 발목에 매달렸다.
정미는 어쩔 수 없이 반어를 안아 들었다.
“알겠어. 하지만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돼. 무딘 화살이지만, 그래도 맞으면 아플 거야.”
“야옹―”
반어는 꼬리로 정미의 팔을 쓸며 그녀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굴었다.
정미는 입꼬리를 올린 채 환안을 데리고 늘 가던 장소로 향했다.
백부엔 연무장이 없었기에 활을 연습하기에 아주 불편했다. 다행히 정미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외진 장소를 찾았고, 일부러 무딘 화살을 쓰고 있으니 사고가 날 일도 없었다.
정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환안에게 당부했다.
“내가 활을 쏠 땐, 반어를 안고 내 뒤에 서 있어. 어디 못 가게.”
매번 여기 올 때마다 정미는 같은 명령을 했었기에, 환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소인이 계속 반어를 잘 보고 있을게요.”
정미도 습관처럼 한마디 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 활 연습에 집중했다.
화살 한 통을 다 쏜 뒤, 정미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고, 환안은 반어를 내려놓고 화살을 주우러 갔다.
자유를 얻은 반어는 잽싸게 뛰어다니다가 잠시 뒤 화살 하나를 물고 돌아왔다.
“반어, 물건을 주울 줄도 알아?”
정미는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요 며칠 동안 반어는 그저 모든 것을 게으르게 쳐다만 볼 뿐이었다.
정미의 말에 반어는 ‘평범한 사람 주제에 감히 고양이를 깔보다니.’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고는 다시 달려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화살 하나를 물고 왔다.
환안은 화살을 줍지도 않고 한쪽에 서서 이 희한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환안은 정미보다도 놀라워하며 손뼉을 치고 반어의 이름을 부르며 반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반어는 이 응원을 꽤나 즐기는 듯 다시 달려나갔고, 화살을 찾지 못하자 맨입으로 돌아가기가 꺼려져 웬 신발 한 짝을 물고 돌아왔다.
환안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반어, 왜 아무거나 물고 다니는 거야. 어서 내려놔. 냄새나지도 않니?”
그러나 정미는 웃지 않았고, 반어가 내려놓은 신발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사내의 신발이었다. 흙이 묻어 조금 더러워 보이긴 했지만, 거의 새것 같았다.
‘화원 뒤쪽에 왜 사내 신발이 있는 거지?’
정미는 신발 밑창에 묻은 어두운 갈색을 발견하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피?’
사람을 구할 때면 피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정미는 그것이 바로 핏자국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정미의 마음속에 의문이 스쳤다. 그녀는 손수건을 받쳐 그 신발을 주웠다.
“아가씨?”
환안은 어리둥절했다.
정미는 환안의 물음을 듣지 못한 듯 신발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반어, 어디서 이 신발을 물고 온 거야?”
반어는 정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정미는 그 신발을 꽉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반어가 방금 돌아다닌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가더니 반어에게 손짓했다.
그 동작은 반어가 알아듣는 것이었기에 곧바로 정미를 따라갔다.
정미는 다시 신발을 가리키며 반어를 쳐다봤다.
정미와 시선을 마주친 반어는 그동안 살이 더 쪄 동그란 것이 마치 털공 같았다.
정미는 마음이 혼란스러워 신발을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돌아와 걷던 중 멈춰서서 반어를 바라봤다.
어떤 일들은 갑자기 번뜩하고 깨달을 때가 있는데, 그건 동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어는 갸웃거리며 정미가 든 신발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달려갔다.
정미는 급히 따라갔고, 반어가 멈췄을 때 그녀도 멈춰서서 한곳을 빤히 쳐다보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곳의 흙은 분명히 새로 덮은 듯했다. 그리고 여기는 화원에서 가장 외진 구석이라 나무나 꽃을 심는다고 해도 여기까지 올 리는 없었다.
손을 뻗어 무의식적으로 흙을 파던 정미가 입을 열었다.
“환안, 돌아가서 꽃삽 두 개를 가져와.”
환안은 어리둥절했다.
정미가 그녀를 쳐다보며 꾸짖었다.
“어서 가지 않고!”
“아, 예!”
환안은 그제야 대답하고는 재빨리 달려갔다.
발이 빠른 환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헐떡이며 돌아왔다.
“아가씨, 여기요!”
정미는 꽃삽을 건네받고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길 좀 파보자.”
환안은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기에, 정미의 말에 별다른 말 없이 삽을 들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예상한 대로 그 흙은 단단하지 않았고, 아래로 파내려갈수록 정미의 마음속 불안은 커져만 갔다.
정미는 이 속에 무엇이 파묻혀있는지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보기 전까진 감히 믿을 수 없었다.
이 나이대의 호기심과 은근한 두려움은 행동을 멈출 수 없게 했다.
갈색 옷이 눈에 들어온 환안이 비명을 질렀을 때, 정미는 그제야 한걸음 물러났다. 손은 저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아가씨, 이, 이게 뭐예요?”
이 충격은 어린 여종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터라, 환안은 손에 들고 있던 삽도 떨어트린 채 두려운 눈빛으로 정미를 쳐다봤다.
정미는 그 신발을 보았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인지, 처음 놀란 뒤로는 환안보다 훨씬 침착했다.
“사람인 것 같은데…….”
“사람이요?”
환안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
분명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인데도, 정미는 환안에게 농담을 쳤다.
“당연히 죽었기 때문이지.”
말하면서 흙 사이로 살짝 드러난 갈색 옷을 흘끗 본 정미는 두려움이 다시 몰려왔지만 애써 차분한 모습을 지어내며 분부했다.
“환안, 가서 둘째 오라버니를 데려와.”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늘 정철이었다.
이것은 습관이자 본능이었다.
“예.”
환안이 일어나서 달려나가다가 다시 바람처럼 되돌아왔다.
“아가씨, 그냥 아가씨께서 가보세요. 소인이 여기를 지킬게요.”
정미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안 무섭니?”
환안은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
“무서워요. 하지만 아가씨께서도 여길 지키는 게 무서우시잖아요.”
어린 여종의 창백한 안색과 두려움을 꾹 참는 눈빛을 마주하자, 정미는 악몽 속 한 장면을 떠올렸다.
환안은 그녀를 지키다가 화살에 맞아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도 꼿꼿이 서 있었다.
정미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내가 여길 지킬게. 네가 걸음이 빠르니까, 어서 가.”
“아가씨―”
정미가 눈을 부라렸다.
“뭘 꾸물대고 있어. 죽은 사람이 날 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환안은 그제야 입술을 꽉 물고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