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61화 (161/375)

161화. 사철의 방문

“미미, 아이처럼 굴지 말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얘기해보자. 혼자 속으로 앓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이번에 정철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고 의자에 앉아서 따뜻한 목소리로 권했다.

“나는―”

정미는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오라버니가 소매를 안고 친밀한 시간을 가지다가 나에게 입맞춤을 한 꿈을 꿨다고 말하라는 거야? 그리고 가장 황당한 건 꿈속의 나는 피할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는 거야. 오히려 원했어. 오히려 원했다고!’

그것이 바로 정미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정미는 이미 열네 살이었고 철없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건 절대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비정상적인 일은 정미로 하여금 조금도 더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게 했다. 정미는 답을 찾으면, 영원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정철은 옆에 앉아서 정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여동생에게 아주 큰 난제가 있음을 이미 알아챈 상태였다.

정철의 마음은 아주 약간 가벼워졌다.

‘최소한 방금 미미가 그런 말을 한 건 그저 마음이 좋지 않아서였고, 정말 내가 싫어서가 아니었다는 뜻이니까.’

“미미, 혼자보다 둘이서 생각하는 게 더 낫잖아. 오라버니에게 해줄 수 없는 말이 있는 거야?”

“해줄 수 없는 말이 있는 건 오라버니잖아.”

정미는 아무렇게나 말했다.

정철의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자, 정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제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려 했잖아!”

‘만약, 만약 오라버니가 내게 말해줬다면 내가 그 춘화인지 뭔지를 사지도 않았을 텐데. 오라버니가 말해주기만 했으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 수 있었겠어? 그럼 황당한 꿈도 꾸지 않았을 거라고! 그 꿈을 꾸지 않았다면, 오라버니를 이렇게 피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어쨌든, 모두 오라버니의 잘못이야!’

정철은 굉장히 난처한 표정이었다.

‘미미가 아직도 어제의 일로 속이 상해 있었구나.’

이렇게 되니, 정철은 방금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

“미미, 아직도 어제 일로 소란을 피우는 거면, 오라버니는 정말 갈 거야.”

정미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른 가.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마. 어쨌든, 어쨌든 난 앞으로 오라버니를 보지 않을 거니까!”

쨍그랑―

찻잔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정미가 손을 풀고 보자, 드물게 창백한 얼굴의 오라버니가 보였다. 그러자 정미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정철은 이미 벌떡 일어나 입가엔 옅은 웃음기를 띈 채였고 목소리도 가벼웠다.

“그래, 그럼 오라버니는 가볼게.”

그는 곧바로 뒤돌아갔고 정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정미는 마음이 혼란스러워 급히 외쳤다.

“오라버니―”

상황이 급한 나머지 정미는 발을 헛디뎌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철은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는 빠르게 정미를 안아 올려 다시 침상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급히 물었다.

“다쳤니?”

정미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

정철이 담담하게 대답하고 다시 뒤돌아가려는 순간, 정미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정철이 몸을 돌려 조용히 정미를 쳐다봤다.

정미는 오라버니가 무정하게 떠나가는 모습에 깜짝 놀라있었다.

‘오라버니가 앞으로 내게 이렇게 대하는 건 원치 않아! 하지만, 어떻게 해야 내 마음속 응어리를 풀 수 있을까?’

그 순간 정미는 급한 나머지 눈을 꼭 감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오라버니, 내게 입을 맞춰봐.”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정철의 머리가 침상 기둥에 부딪혔다.

정미는 급히 눈을 떠 오라버니가 말할 수 없이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이마를 문지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정미는 다시 눈을 감고 재촉했다.

“오라버니, 얼른―”

‘내가 멍청했어. 꿈은 현실과 다른걸. 꿈속의 내가 머리가 좀 이상했던 걸 수도 있잖아? 맞아. 분명 그런 걸 거야. 꿈을 제어할 수 있다면, 내가 어찌 그런 황당한 꿈을 꿀 수 있겠어.

지금 오라버니가 내게 입맞춤을 하기만 하면 내 진짜 반응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다시 오라버니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어.’

정철은 눈을 감고 침상에 누운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미는 얌전했고 계속 떨리는 속눈썹만이 정미가 깨어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정철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깨어있는 미미가, 내게, 내게 입맞춤을 해달라 한다고? 미미가 깨어있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꿈에서도 이런 상황은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 주위에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정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뜨고 애원했다.

“오라버니, 제발. 입맞춤 해봐. 응?”

정미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려 촘촘한 머리카락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정철은 소녀의 연약한 눈빛과 소리 없는 눈물에 더 이상 반항할 수 없었고,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몸을 숙였다.

정미는 급히 눈을 감았고, 두 손으로 저도 모르게 이불을 꽉 쥐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왠지 또 다른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떡해, 큰일이야. 아직도 그저 긴장되고 부끄럽기만 하고, 역겨움과 반감은 느껴지지 않아. 어떡하지? 당황하면 안 돼. 오라버니가 아직 입을 맞추지 않았으니, 아직은 모르는 일이야.‘

정미는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그 입술은 정미의 이마에 살짝 스쳐 지나갔다.

정미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오라버니?”

정철은 똑바로 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웃었다.

“왜 아직도 어릴 때처럼 응석을 부리는 거야.”

정철은 반드시 이 입맞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만 했다.

‘앞으로 이 입맞춤을 아주 소중히 간직하게 되더라도…….’

부끄러운 와중에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정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차분한 척 말했다.

“미미, 오라버니는 먼저 가볼게. 더 이상 엉뚱한 생각은 말고. 오후에 오라버니가 같이 활 연습을 해줄게.”

“오라버니, 기다려봐!”

정미가 그의 소매를 덥석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안돼.”

‘이마에 입맞춤을 하는 것으로는 내 응어리를 풀 수 없어. 어릴 때 입맞춤을 안 해봤던 것도 아니면서!’

정철은 순간 정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안된다는 거야?”

정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늘 결단력 있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으니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피할 순 없었다.

갈수록 곤혹스러워하는 오라버니의 눈빛을 보던 소녀는 아름다운 손가락을 뻗어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여기에 해야 해.”

정철은 완전히 멍해졌다.

‘분명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 거야!’

정철은 손날로 자신을 내려쳤고 정미의 비명 속에서 비틀거렸다.

“오라버니, 왜 그래?”

정미는 목소리마저 잠겨있었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해는 하면 안 되지. 오라버니는 나를 놀래켜 죽일 셈인가?’

“나, 난 괜찮아.”

정철은 이마를 짚고 고통과 어지러움을 참으며 생각했다.

‘방금 너무 세게 내리쳤나 봐…….’

“왜 자기 자신을 때리고 그래?”

정미가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정미의 행동에 정철은 깜짝 놀라 가슴이 떨려왔다. 그는 여동생이 강제로 입맞춤을 하려는 걸로 착각하고는 부리나케 도망쳤고 문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환안과 화미가 급히 달려왔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나가!”

두 여종은 서로를 마주보다가, 정미의 안색이 아주 좋지 않자 더는 말을 건네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방 안엔 정미 혼자 남게 되었다. 소녀는 침상 기둥을 안고 거의 울다 쓰러질 뻔했다.

‘아직 내 마음도 알지 못했는데, 오라버니가 완전히 오해하게 됐잖아!’

정미는 침상 기둥을 안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마음이 점점 식어갔다.

문밖의 세 여종들은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청가가 일어나 문을 살짝 두드렸다.

정미는 침상 기둥을 안고 있던 손을 풀었고 놀라움인지 기쁨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청가는 조용히 이를 악물고 뻔뻔하게 대답했다.

“아가씨, 소인입니다. 청가요.”

정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오라버니가 어찌 올 수 있겠어. 나한테 깜짝 놀라 도망갔는걸.’

정미는 괴로워하며 자신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겼다.

‘만약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았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지금 이건 밑천도 못 건진 꼴 아냐! 난 역시 바보야!’

“내가 말했잖아.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가씨, 부인의 처소에서 어떤 시종이 왔는데, 사가의 공자께서 오셨으니 아가씨께서 손님께 인사하라 전하셨어요.”

“안 만나!”

정미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으나 뒤늦게 사가의 공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청가가 화미와 환안을 바라보자, 화미는 청가를 밀쳤다.

청가는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가씨, 부인께서 말씀하시길, 사가의 공자께선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이고, 아가씨께 드릴 선물도 가져오셨으니 어서 오라고 하셨어요…….”

잠시 후, 안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서 단장해줘.”

환안과 다른 여종들은 그제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미는 목석같이 앉아 여종들이 자신을 단장하는 걸 내버려 두었다. 마음은 아직도 도망간 오라버니에게 있었다.

‘사가의 친척 오라버니가 왔으니, 오라버니도 거기 가 있을 거야. 오라버니가 나한테 놀라서 도망쳤으니, 또 만났을 땐 어떻게 반응하는지 봐야겠어.’

“아가씨, 됐어요.”

환안이 빗을 내려놓자 화미가 활짝 웃었다.

“아가씨, 정말 아름다워요.”

정미는 정신을 차린 후 서양경 안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화려하게 꾸민 거야?”

“손님을 보러 가시니까요. 당연히 얕보여선 안 되지요.”

화미가 급히 설명했다. 부인이 아가씨를 번듯하게 꾸며달라고 당부했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정미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기에 일어나며 말했다.

“환안이 날 따라오도록 해.”

정미는 자신의 악몽 속에서 환안이 목숨을 바쳐 자신을 지켰던 장면을 봐서인지 그저 손님을 맞으러 갈 때도 환안을 데리고 가야 더욱 안심이 되었다.

긴 복도와 화원을 지나 이연원에 도착하자, 입구의 여종이 외쳤다.

“셋째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정미가 방에 들어가자 시선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조금 전 자신에게서 도망친 오라버니만이 보였다.

그 순간, 두 남매는 서로를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시선을 마주하던 정철이 먼저 눈을 피하며 다시 사철을 쳐다봤다.

‘미미는 화려한 의복을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이렇게 꾸미고 온 걸 보니 확실히 미미의 마음속 사가의 동생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야. 역시 아까는 내가 너무 많이 생각했어.’

그러나 정미는 오라버니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자 마음이 아주 아파 왔다. 그녀는 소매 속에 가려진 손을 꽉 쥐며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 오라버니.”

정미는 인사를 건넨 후, 사철에게 무릎을 살짝 굽히며 예를 갖췄다.

“사철 오라버니.”

사철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정미에게 몸을 살짝 굽히며 답례하고 있었다.

“미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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