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59화 (159/375)

159화. 오장상하이구색(*吾將上下而求索 : 나는 계속 탐구해보겠노라)

정철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아름다운 복숭아 꽃잎을 만지려고 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곤 마음을 급히 접은 뒤 차갑게 말했다.

“미미, 그동안 오라버니가 너를 너무 용인해줘서 이렇게 대담하게 구는 거지?”

정미는 억울한 듯 손을 풀었다.

“오라버니,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야.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정철은 한숨을 쉬고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 네가 시집갈 때가 되면, 어머니께서 알려주실 거야. 내가 네 오라버니긴 하지만 이런 것들은 너와 얘기할 수 없어. 그러니까 오라버니를 난처하게 하지 마. 응?”

정미는 실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내가 말했잖아. 나는 시집을 가지 않는다니까.”

정철이 웃었다.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마. 미미, 한지가 네 마음을 상하게 한 걸 알아.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냐. 나중에 더 좋은 사내가 널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오라버니……, 오라버니도 신경 쓰고 있을게. 너에게 좋은 부군을 찾아줄 수 있도록.”

정미가 벌떡 일어나 그를 흘겨봤다.

“오라버니, 정말 미워 죽겠어!”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달려나갔다.

방 안에 덩그러니 남은 정철은 한참 뒤에야 조금 전 무의식적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며 힘없이 웃었다. 그는 이내 아무 책이나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읽어도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정철은 책을 아무 곳에나 놓고는 익숙한 창을 들고 뒤뜰에 가서 창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 * *

단숨에 비서거로 돌아온 정미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금 내가 너무 화낸 것 같은데.’

정미는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내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말할 때마다 오라버니가 믿지 않아서, 그래서 화가 난 거겠지. 흥, 나한테 말해주지 않으면 반드시 내 스스로 정확히 알아내고 말겠어!’

정미는 침상에 누워 결심을 내렸고, 이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하자 정말 무언가 떠올랐다.

‘예전에 봤던 이야기책에 있었던 것 같아. 서생과 어떤 아가씨가 혼인을 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 서생과 술을 마시던 친우는, 그제야 서생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닫고 어떤 걸 쥐여주었다고 했지. 그 물건이 뭐더라?’

2-3년 전 봤던 책이고, 그때의 정미는 한수 선생이 쓰지 않은 이야기는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몇 번 훑어보고는 아무 곳에 내버려 뒀기에, 그 물건이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정미는 급히 서재로 달려가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의 책들을 한 권씩 자세히 찾아보았고, 반 시진 정도 후에야 그 이야기책을 찾을 수 있었다.

《치인기(痴人記)》라고 적힌 그 이야기책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하지만 정미는 전혀 꺼리지 않고 급히 펼쳐본 후, 마침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물건은 춘화라고 하는 것이었구나. 환안을 보내서 하나 사와 보라고 해야겠어.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어머니와 오라버니에게서 연이어 좌절을 겪은 소녀는 그렇게 다짐했다.

정미는 행동이 빠른 사람이으며 이 점은 한 씨를 쏙 빼닮은 부분이었다.

그녀는 환안을 불러 사동의 모습을 하고 춘화를 사러 가라고 명령했다.

환안은 나이가 많지 않았기에 사내처럼 꾸미니 확실히 잘생긴 사동 같았다. 그녀는 주인이 명령하자 급히 외출했다.

정미는 초조하게 기다렸고, 환안은 날이 저물 때쯤에야 돌아왔다.

“샀어?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

정미가 작게 묻자 환안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빼앗았어요!”

“빼앗아?”

정미의 학구열은 환안의 말에 찬물을 끼얹은 듯 식어버렸다.

‘이 계집이 내게 화를 불러오는 건 아니겠지?’

“네, 아가씨께선 모르시지요. 이 물건이 어찌나 잘 팔리는지요. 소인이 사러 갔을 땐, 한 권만 남아있었다구요. 마침 다른 사동도 사려고 했는데, 소인이 힘이 세서 빼앗을 수 있었어요!”

환안은 뿌듯한 듯 말하고는 정미의 어두운 표정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소인이 뭔가 잘못을 저질렀나요?”

“아니야.”

정미는 이빨 사이로 겨우 세 글자를 내뱉었다.

“잘했어!”

정미는 그 사동이, 아는 집안의 공자의 하인만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언젠가 마주치면 아주 창피할 테니까!

‘아니면 혹시, 그 춘화가 그리 중요한 물건이 아닐 수도 있잖아?’

정미는 이렇게 자기합리화하며 환안에게 이를 악물고 물었다.

“이 물건, 열어보진 않았지?”

“안 열어봤어요! 소인이 어찌 감히 아가씨의 명령을 어길 수 있겠어요. 보세요. 몇 겹이나 둘러쌌다고요.”

정미가 물건을 건네받은 뒤 살펴보자, 작은 책 모양의 물건은 정말로 손수건에 겹겹이 싸여있었다. 정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 어렵사리 구한 보물을 잘 숨기고 난 뒤 가볍게 기침하고는 말했다.

“됐어, 그럼 이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구나.”

아침저녁으로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것은 대부호 가문들의 규칙이었다. 이는 회인백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미는 먼저 한 씨에게로 갔다가, 한 씨와 함께 염송당으로 향했다.

* * *

염송당 안의 분위기는 조금 엄숙했다.

정요가 급병이라는 구실을 얻게 된 이후로, 아무도 맹 노부인의 머리를 안마하지 않은 탓에 그녀는 다시 불면증과 두통을 앓게 되어 계속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입을 델 정도로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던 맹 노부인은 뭔가 신경을 건드렸는지 그 찻잔을 바닥에 내던지며 꾸짖었다.

“고작 차도 제대로 끓이지 못하다니, 어서 꺼지거라!”

“모두 소인의 잘못입니다. 다 소인의 잘못이에요. 노부인,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세요.”

아복은 급히 꿇어앉아 깨진 찻잔을 정리하며 도자기 조각에 손이 베이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곧바로 정리해서 나갔다.

복도에 있던 아희가 아복을 붙잡고 조용히 물었다.

“노부인께서 또 화가 나신 거야?”

아복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요즘 노부인의 신경이 갈수록 곤두서는 것 같아. 오늘 차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는데, 갑자기 화를 내셨어. 이러다가 언젠간 작은 실수로 쫓겨날지도 몰라. 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살면 좋을지!”

집안 어르신들을 모시는 여종들은 모두 체면이 있었기에 잘못을 저질러 쫓겨나는 것은 아주 큰일이었다.

아희도 덩달아 걱정했다.

“어쩌면 좋아. 둘째 아가씨의 병이 다 나으면 좋을 텐데.”

“병을 얻는 건 막을 수 없고, 병이 낫는 건 느리다잖아. 둘째 아가씨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 혼사도 취소할 정도인데, 금방 나을 리 없지.”

“그럼, 기회를 틈타 둘째 아가씨를 보러 갈까?”

“그것도 좋지.”

복도에서 두 여종이 이런 얘기를 상의하고 있을 때, 방 안에선 맹 노부인이 격노하고 있었다.

“정요의 병은 도대체 어찌 된 것이냐? 내가 가보려고 해도 너와 둘째가 막으니 알 수가 없구나. 늘 튼튼하고 건강하던 아가씨가 어찌 이리 심하게 아플 수 있단 말이냐?”

“병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요의 병이 가볍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머님께선 연세가 있으시니, 만약 병이 옮으신다면 저희의 불효 아니겠습니까.”

맹 노부인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정요에게 좋은 의원을 불러주지 않은 탓 아니더냐?”

한 씨는 몰래 이를 갈았다.

‘이 망할 노인네, 방 안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서녀에게 좋은 의원을 보내주지 않았다고 말하다니. 내게 창피를 주려는 거잖아! 또 사람들이 함부로 입을 놀리겠구나.’

“어머님, 정요의 병이 조금 이상해서 몇몇 의원을 불렀지만 아무도 뭔갈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럼 태의를 모시거라! 평범한 태의도 찾지 못한다면, 원판(院判)을 모시고, 원사(院使)를 모시면 될 것 아니냐? 우리 백부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체면도 없어선 안 되지. 나는 상관없으니, 넌 어서 가장 좋은 의원을 정요에게 불러 치료해주거라!”

한 씨는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내일 바로 모시겠습니다.”

이때, 정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조모님, 손녀가 최근 부법 집록을 배우고 있는데, 마침 두통과 불면을 완화시킬 수 있는 부적을 배웠어요. 한번 시도해보시겠어요?”

“그런 부적도 있느냐?”

맹 노부인이 의심하자 정미가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있지요. 조모님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정가의 부법 집록에는 아주 많은 부법이 기록되어 있는걸요. 아쉽게도 손녀가 우둔한 탓에, 이제야 그런 부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일찍이 알았다면 진작에 조모님께 써드렸을 텐데요.”

정요가 갇힌 뒤로 한 씨는 마음을 놓았지만, 정미는 정요의 능력을 가장 잘 알았기 때문에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정미는 곰곰이 생각했다.

‘정요가 방 안에 갇힌 이후에도 여전히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모님뿐일 거야.’

정미는 조모가 얼마나 정요를 아끼는 믿지 않았다. 그저 정요가 조모의 두통과 불면을 완화해준 것 때문에 조모가 그녀를 아끼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부수가 더 좋은 효과를 낸다면, 조모는 정요가 누구였는지조차 떠올리지 않으시겠지.’

두통과 불면을 완전히 치료하는 부법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배우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정미는 그 시간을 맹 노부인을 위해 쓰고 싶지 않았고, 노부인의 병을 완전히 치료하면 그녀가 팔팔한 정신으로 자신과 어머니를 더욱 괴롭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통과 불면을 단지 완화만 시키는 부적은 쉽게 배울 수 있었기에 마침 정요의 기둥을 부러트리는 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써보지.”

아팠다가 안 아픈 것엔 적응하기 쉬웠지만, 안 아프다가 아픈 것엔 적응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정요가 맹 노부인에게 안마를 해주기 전엔 노부인은 몇십 년간 겪었던 통증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잠시 좋아진 이후에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자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맹 노부인은 아직 정미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도해보아야 했다.

정미는 빠르게 부수를 만들어 맹 노부인에게 건넸고, 맹 노부인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부수를 마셨다. 잠시 뒤, 노부인은 이마를 어루만졌다.

“노부인, 좀 어떠세요?”

모두가 다정히 물었다.

맹 노부인의 인상이 잠시 펴지더니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많이 좋아지는구나. 이 부수는 꽤 쓸모 있어.”

“다행이에요.”

정미가 따라 웃었다.

모두가 물러나며 인사할 때, 맹 노부인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미야, 이걸로 된 것이냐?”

정미가 돌아보며 웃었다.

“안심하세요. 이 부수 한잔으로 한 달은 괜찮으실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구나.”

맹 노부인이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만약 부수 한잔으로 한 달 동안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매일 안마를 받는 것보다 훨씬 낫지.’

* * *

정미는 비서거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뒤, 흔들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평소처럼 아혜에게 한 시진 정도 부법을 배웠다.

그러고는 그제야 씻고 침상에 올라, 아직 꺼지지 않은 침상 등을 빌려 몰래 그 새로 산 보물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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