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57화 (157/375)

157화. 생트집을 잡다

사철은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었기에 여동생이 자신의 실수를 얘기하자 젓가락을 집은 손을 멈칫하더니 정미를 흘끗 쳐다봤다.

정미는 사효가 사철을 언급하자 사철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의 시선은 또 마주치게 되었다.

정미의 속은 순수했다. 게다가 한지 이후론 사내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에, 사철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그리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사철에게 시원스럽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효의 말을 들었다.

사철도 삐뚠 성정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이 소녀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년의 어쩔 수 없는 쑥스러움을 느꼈지만, 담담하게 웃고는 다시 식사를 들었다.

허 씨는 이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두 집안이 엇비슷하고, 두 아이의 마음이 잘 맞는 것보다 더 안심되는 게 뭐가 있겠는가? 아니면, 오늘 이 기회를 틈타 한 씨를 떠볼까?’

허 씨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됐다. 오늘 두 노부인께서 아프신데, 이런 일을 꺼내는 건 그리 알맞지 않아.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까.’

* * *

사가를 떠나오는 마차에서 정미는 참지 못하고 아혜에게 물었다.

‘아혜, 소갈증을 조양(*調養: 건강이 회복되도록 몸을 보살피고 병을 다스림)하는 부적을 배우고 싶어. 어때?’

아혜가 단호히 거절했다.

「싫어!」

‘왜?’

아혜는 언짢은 듯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소갈증은 성가신 병이고, 조양하는 부적만 해도 배우는 데 최소한 3개월은 걸릴 거야. 몇 달 뒤면 네 큰언니도 출산을 할 텐데, 아직 배울 태산과의 부적도 많이 남았다고. 설마 그 체력을 이걸 배우는 데 다 쓰려고? 나중에 네 큰언니한테 문제가 생겼을 때 울지나 마.」

정미는 아혜의 말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성내며 말했다.

‘그럼 큰언니가 출산한 뒤에 배울게.’

아혜는 ‘흥’ 코웃음을 치고는 더 이상 정미를 상대하지 않았다.

단 노부인을 국공부의 거처로 보내드린 뒤, 한 씨는 단 노부인이 소갈증을 앓는다는 걸 모두에게 알렸다.

병세를 알아챈 데에 정미의 공로가 크다는 걸 알게 된 노위국공은 곧바로 정미의 얼굴에 뽀뽀를 했고, 정미는 발을 동동 구른 뒤 한 씨의 뒤로 숨었다.

‘외조부님은 어릴 때부터 나한테 수염을 비비더니, 어째서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은 거야!’

* * *

우여곡절 끝에 백부로 돌아온 정미와 한 씨는 심신이 피로해 푹 쉬려고 했으나 여종에게서 어떤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정명의 통방인 예인(蘂儿)이 회임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정명은 회인백 세자였고, 아내인 장(張) 씨에게도 이제 막 세 살이 된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 이후로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기에, 이 통방이 회임하여 백부의 4대를 낳아주는 것은 서출이라도 기뻐할 일이었다.

한 씨는 설란에게 자양제 등의 선물을 보내라 명령해 성의를 표했다.

한바탕 일이 끝난 후, 정미가 멍하니 있자 한 씨가 물었다.

“미야, 왜 그러니?”

오늘 딸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었기에, 한 씨는 정미가 볼수록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따뜻하게 물었다.

평소였다면 정미는 한 씨에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일을 들으니 조금 큰 충격을 받아 참지 못하고 묻게 되었다.

“어머니, 큰오라버니의 그 통방이요. 큰오라버니의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거예요?”

한 씨는 조금 당황하더니, 그러려니 하고 대답했다.

“그 애는 네 큰 사촌 오라버니의 사람이야. 네 올케언니도 아들을 낳았으니, 당연히 네 큰 사촌 오라버니에게도 아이를 낳아줄 수 있지.”

정미의 멍한 모습에 한 씨는 생각했다.

‘미도 이미 열네 살이 되었으니 아직 남녀의 일에 대해 알려줄 때는 아니지만 어떤 것들은 말해주어야겠구나.’

한 씨는 정미를 잡아당겨 옆에 앉히고는 설명했다.

“사내가 소성년식을 치르고 나면, 집안의 어른들은 선량하고 숙련된 여인을 골라 사내의 통방으로 붙여준단다. 하지만 사내가 혼인하여 적처가 적자를 낳기 전에는 통방은 회임할 수 없어. 때에 맞춰 피임탕을 먹어야 하지. 미야, 기억하거라. 나중에 네가 시집간 뒤에도 마찬가지란다. 그렇지 않으면 서자가 장자가 되기 때문에, 평생이 괴로울 거야.”

정미는 사내가 소성년식을 치른 이후 집안에서 어느 한 여인을 그에게 붙여 모시게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전에 한지에게도 통방이 생겼던 것을 알았으나, 정미는 이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정미는 늘 그 ‘모신다’는 뜻이 환안과 화미가 자신을 모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 어떻게 남주인의 아이를 낳는다는 거지? 그럼 소매도 둘째 오라버니의 아이를 낳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진 정미는 더욱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남녀 사이엔, 도대체 어떻게 아이가 생기는 걸까?’

정미가 갈수록 멍해지자, 한 씨는 그녀를 꼬집었다.

“미야, 알아들은 거니?”

정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한 씨가 웃었다.

“이해했으면서 왜 그리 멍청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아마도 분위기가 좋고 정미의 호기심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인지, 정미는 곧바로 마음속의 의혹을 입 밖으로 꺼냈다.

“어머니, 그럼 큰오라버니는 어떻게 예인과 아이를 가진 거예요?”

한 씨는 딸이 이런 질문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얼굴이 곧바로 붉어졌다.

어머니로서 어찌 부부간의 일을 딸에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딸이 시집가기 전날에야 조용히 춘화를 쥐여주며 아무도 없을 때 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정미는 이제 겨우 열네 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을 알려줄 때가 아니었다!

“어머니?”

정미가 눈을 깜빡였다.

한 씨는 얼굴이 더욱 붉어져서는 꾸짖었다.

“그런 이상한 걸 왜 묻니? 네가 시집갈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하지만―”

정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씨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하지만’은 없다. 어린 아가씨가 또다시 이런 이상한 질문을 했다간,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다!”

정미는 마침내 입을 닫고 성내며 한 씨의 거처를 떠났다.

* * *

비서거로 돌아오자 정미는 더욱 답답해졌다.

‘내가 시집갈 때 알게 된다고 하셨지. 하지만 난 시집을 가지 않을 계획인걸. 설마 평생 알지 못하게 되는 건가?’

정미는 큰오라버니의 통방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둘째 오라버니와 소매도 아이를 낳는지 알고 싶었다.

여기까지 떠오르자, 어린 소녀의 마음은 반어에게 잡혀 긁힌 듯 따가워졌고, 더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 아무 외투나 걸친 뒤 반어를 안고 장청원으로 갔다. 하지만 뜻밖에도 허탕을 치고 말았다.

팔근이 알렸다.

“둘째 공자님은 목욕하러 가셨습니다.”

장청원은 집안의 자손들이 공부하는 곳이었고, 방 안의 책상과 의자는 모두 대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조용하고 서늘한 그곳엔 목욕하는 곳이 없었고, 날씨는 아직 찬물로 목욕할 때가 아니었기에, 정철이 목욕하려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정미는 팔근의 말에 곧바로 반어를 안고 정철의 거처로 향했다.

때는 아직 햇살이 좋은 오후였기에 정미가 도착했을 땐 문을 지키는 사동이 졸고 있었다.

잠에서 깬 사동은 들어가서 정미가 왔음을 보고했고,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말했다.

“셋째 아가씨, 공자께선 아직도 목욕을 하고 계십니다. 우선 들어가서 기다리시지요.”

사동은 주인이 셋째 아가씨에게 아주 잘 대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셋째 아가씨를 문밖에서 기다리게 했다간 나중에 욕을 먹을 게 뻔했다.

“응.”

정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단정한 수도의 집안에서는 소성년식을 치루기 전엔 아들에게 여종을 붙여주지 않았다. 때문에 정철의 거처에는 아가씨들의 거처처럼 여종과 파자들이 아주 많지 않았고, 여종은 소매밖에 없었다.

정미가 들어가자 안은 아주 조용했고 정철을 급히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미의 시선은 계속 욕실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정미는 기쁜 표정으로 빠르게 두 걸음 다가서서 정철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머리는 풀어헤쳐져 있었고,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방금 목욕하고 나온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열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 하나가 따라다니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 소인이 머리를 말려드리겠습니다. 아직 날씨가 추우니 머리가 젖어있으면 감기에 걸리실 수 있어요.”

정철은 고개를 돌린 채 따뜻하게 말했다.

“됐다, 내가 스스로 하면 돼―”

그렇게 말하면서 정철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정미를 발견했고 잠시 당황했다.

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여 제 옷가짐이 단정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용히 안심하고는 웃으며 다가갔다.

“미미, 왜 왔어?”

평소였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말이지만, 정미는 지금 소매가 둘째 오라버니의 머리를 말려주겠다는 말을 들은 뒤라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고, 정철이 또 ‘왜 왔냐’고 물으니 더욱 가슴이 답답해졌다.

‘뭐가 왜 왔냐는 거야? 내가 올 때가 아니었다는 뜻이야?’

정미가 고양이를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철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소매, 우선 물러나거라.”

소매는 정철의 말을 아주 잘 들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정미에게 예를 갖춘 뒤 물러났다.

방 안에 두 남매만 남게 되었을 때, 정철이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 미미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말하다가 순간 멈칫한 정철의 시선이 정미의 왼쪽 뺨에 꽂혔다.

정미는 미백부를 마신 뒤로 피부가 아주 투명하고 얇아진 상태인지라 지금 왼쪽 뺨의 붉은 자국은 더욱 눈에 띄었다.

정철은 아주 많은 책을 써왔기에 그 붉은 자국을 보자 저절로 뭔가가 떠올랐다.

‘설마 입맞춤 자국?’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탐색하듯 물었다.

“미미, 오늘 어디 다녀왔어?”

정미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이 답답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정철 앞에서는 늘 제멋대로 굴고 응석을 부렸기에 정철의 질문엔 대꾸도 하지 않고 ‘흥’하며 등을 돌려 버렸다.

뜻밖에도 반어는 정미의 행동에 따르지 않았고, 짧은 다리를 버둥거려 정미의 품에서 벗어나 정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정미는 벌떡 일어나서 화냈다.

“반어, 이 양심도 없는 것. 얼른 돌아와!”

“야옹―”

반어는 내키지 않는 듯 한 번 울고는 도발하듯 혀를 내밀어 정철의 손가락을 핥았다.

“나쁜 고양이 같으니라고, 너까지 날 괴롭히다니!”

정미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울먹거렸다.

정철은 몸을 숙여 반어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정미를 잡아당겨 진지하게 물었다.

“미미, 오라버니에게 알려줘. 누가 널 괴롭혔어?”

“오라버니잖아!”

정미가 그를 노려봤다.

정철은 잠시 멈칫했다. 계속 누군가 여동생에게 강제로 뽀뽀를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미미, 오라버니는 미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정철은 두근거림을 꾹 누르고 침착하게 물었다.

정미도 자신이 생트집을 잡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핑계를 대며 말했다.

“방금 장청원에 오라버니를 찾으러 갔는데, 오라버니가 없었어. 멀리서 여기까지 온 데다가 오래 기다리기까지 했단 말이야.”

‘그랬구나.’

정철은 실소하며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라버니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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