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55화 (155/375)

155화. 호전

정미가 급히 아혜와의 대화를 멈추고는 한 씨에게 말했다.

“어머니, 이모할머니께 설탕물을 한잔 드시게 해요. 그럼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어요.”

“설탕물?”

한 씨는 당황했다.

사가의 맏며느리 허 씨가 왕 태의를 쳐다봤다.

왕 태의는 아까 한 씨가 왜 하 태의를 모셔오지 않았냐고 말한 것 때문에 이미 기분이 상해있었고, 또 어린 아가씨가 이리 말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허튼소리, 노부인은 소갈증을 앓고 계십니다. 설탕물을 마셨다간 두 병의 증상이 동시에 일어나 더 위험해질 겁니다!”

정미는 왕 태의와 마주 보며 차분히 말했다.

“두 병이 동시에 일어난 게 아니에요. 이모할머니의 증상은 원래 간질이 아니었어요. 소갈증 때문에 체내에 당분이 부족한 거지!”

정미가 왕 태의의 진단을 완전히 부정하자, 왕 태의는 견디지 못하고 엄하게 말했다.

“황당하군요, 정말 황당합니다. 소갈증 환자는 체내에 당분이 너무 많아서 소변에 당이 많은 증상이 있는 건데, 어찌 당분이 부족할 수 있단 말입니까!”

허 씨도 참지 못하고 거들었다.

“그래, 노부인께선 소갈증을 진단받으신 뒤로 계속 달게 드시지 않았다. 그리고 몸이 진단을 받기 전보다 훨씬 좋아지셨고. 왕 태의 덕분이지.”

허 씨는 당연히 어린 아가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미가 나서서 치료한 것은 총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제생당에서 오진한 부인을 살렸을 때, 나머지 한 번은 상사절날 죽은 부인의 태아를 살렸을 때였다.

처음 치료했을 때는 구경 온 사람들이 모두 평민 백성들이었기에, 고관과 귀인들에게까지는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 두 번째 때에는 화량과 부잣집 자제들이 있었기에, 돌아간 뒤 각자의 가족들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그 자제들은 불성실한 도련님들이었기에, 집안 어른들은 그들의 말을 그리 믿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웃어넘겼고,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이 일어 서신을 보내 정미를 초대해 보고 싶어 했지만, 그마저도 그리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허 씨는 정미에 대해 듣지 못했기에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정미는 아주 다급해졌다.

‘이 이모할머니와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모할머니에게 큰일이 나면 외조모님은 분명 견딜 수 없을 거야. 외조모님은 이미 아프신데 이 충격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어!’

다른 집안에서 아랫사람인 정미가 의견을 더 낼 순 없었다. 정미는 한 씨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어머니, 저를 믿어주세요.”

“미야―”

한 씨는 조금 망설였다.

이건 인명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었고 게다가 다른 집안의 일이기에 한 씨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정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저도 바보가 아니에요. 어찌 이모할머니의 병으로 헛소리를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부의잖아요. 잊으셨어요?”

정미의 말에 한 씨는 정미가 부수로 다 죽어가는 부인을 살렸던 일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씨는 굳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환자는 자신의 친이모였기에,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외조카로서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 미의 방법이 통하지 않더라도 내가 책임져야지!’

한 씨는 위로하듯 정미의 손을 토닥이고는 사 노부인의 장자인 사광량(謝廣良)에게 말했다.

“모를 수도 있겠지만, 미는 정가의 부의 술법을 이어받았어. 이미 배운 성과를 보이고 있고, 두 사람의 목숨을 살린 적도 있지. 내가 보니 이모님을 이리 두어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한번 시도해보는 게 어떻니?”

“그건―”

사광량은 크게 망설였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왕 태의가 단호히 부정했다.

태의는 성정이 둥근 편이었으나, 능력으로 버는 돈이기 때문에 자질에 대해 의심받으면 아무리 성정이 좋더라도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왕 태의는 한 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

“한 부인, 이건 인명과 관련된 중대한 일입니다. 아무리 따님을 아끼시더라도 어린 아가씨의 허튼소리를 믿고 행동해선 안 됩니다!”

‘내 딸이 무슨 허튼소리를 했다는 거야!’

한 씨는 기분이 상해 원래 불안하던 마음도 사라져버려 차갑게 웃었다.

“바로 인명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해봐야 하는 겁니다. 이모님은 약을 드신 지 한참 되었는데도 호전되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다른 방법을 써봐야 하는 겁니다!”

그러고는 사광량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모님의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기만 할 셈이냐?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사광량이 여전히 망설이자 한 씨가 사납게 말했다.

“만약 이모님이 설탕물을 드신 뒤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내게 책임을 물어라. 되었느냐?”

“사촌 누이, 그런 말 하지 마―”

사광량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

이때 단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광량아, 네 어머니는 내 여동생이기도 하다. 네 사촌 누이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시도해보자꾸나.”

큰이모도 이리 말하니 사광량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좋습니다. 자! 설탕물을 가져오거라!”

“아버지, 설탕물은 여기 있습니다.”

계속 침착하던 사철이 도자기 잔을 건넸다.

사광량은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자, 사철이 설명했다.

“쓸지 안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져와 준비해놨습니다.”

사광량이 웃음을 지으며 아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잔을 허 씨에게 건넸다.

“어머니께 먹이시오.”

“정말 황당하구나, 황당해!”

왕 태의가 소리 질렀다.

허 씨는 왕 태의를 보며 잔을 들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 노부인은 왕 태의로부터 소갈증을 진단받은 뒤로 쭉 약을 복용하며 식단을 개선했고 최근 건강이 아주 좋아졌던 바였다.

‘왜 부군마저 이런 위험한 상황에 왕 태의의 말을 듣지 않고, 아직 급계도 하지 않은 어린 계집의 말을 듣는 거지?’

사내들은 대부분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한 편이었기에 사광량은 머뭇거리는 허 씨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지체한다면 어머니께선 삼키지도 못하실 거요!”

‘큰이모님과 사촌 누이까지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어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만약 어머니께 결국 큰일이 난다고 해도, 하늘의 뜻이리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소갈증은 원래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 약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엔 소갈증 때문에 죽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알겠습니다.”

허 씨는 왕 태의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사 노부인의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설탕물을 먹였다.

왕 태의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려고 했지만, 발만 움찔대다가는 왠지 가고 싶지 않아졌다.

‘이 웃음거리를 끝까지 보고 말겠다. 사 노부인에게 큰일이 나면, 저 한 씨 모녀가 어찌 하는지!’

정미는 사 노부인이 설탕물을 마실 때부터 그녀의 상태를 관찰하며 아혜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아혜, 소갈증도 부수로 치료할 수 있어?’

「아니.」

정미가 깜짝 놀랐다.

‘부수로도 안 된다고? 부수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치료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니!’

「부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야.」

‘하지만 부수는 죽어가는 임산부도 살렸는걸.’

아혜가 차갑게 비웃었다.

「무지하구나! 이건 다른 성질의 병이라고! 요컨대, 가장 어렵고 복잡한 것이 바로 내과 질환이야. 특히 소갈증은 병인이 복잡해서, 부수는 그저 증상을 완화 시키고 몸조리를 하여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어.」

그러고는 한마디 더 보충했다.

「당연히 평범한 약보다는 효과가 좋지. 아, 맞다. 소갈증은 유전되는 거야.」

‘유전?’

아혜는 종종 정미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쓰곤 했다. 정미는 아혜 앞에선 어리석고 무지한 아기나 다름없었다.

「나 참, 나이 차이가 있는 건 정말 성가시구나.」

아혜가 중얼거리고는 단념하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만약 네 이모할머니에게 소갈증이 있으면 그녀의 부모와 자녀에게도 같은 병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야.」

‘정말?’

정미는 외조모의 부모님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지만, 갑자기 어떤 질문이 떠올랐다.

‘그, 그럼 내 외조모님은? 내 이모할머니의 친언니인데, 네 말처럼…… 유전 될 수 있는 거야?’

「축하해, 정답이야! 그럴 가능성이 크지.」

정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계속 큰언니가 안전하게 황손을 낳기를 기다리며 외조모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부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외조모의 병이 만일 소갈증이라면 치료할 수 없잖아! 외조모님도 나중에 이모할머니처럼 이렇게 무섭게 아프게 되시는 걸까?’

‘아혜―’

정미는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최근 내 외조모님께서는 식사량이 많이 느셨어. 근데도 살이 빠지셨고, 방금은 시력도 흐릿해졌다고 하셨지. 이, 이것도 소갈증이야?’

정미는 희망을 안고 물었으나, 아혜는 무정하게 대답했다.

「알면서 왜 물어?」

정미는 뭔가를 더 물으려 했으나, 갑자기 환호성이 들려와 정신을 차렸다.

방 안의 사람들이 사 노부인의 곁을 둘러싸고 기뻐하고 있었다.

“노부인, 깨어나셨군요!”

사 노부인은 멍하니 단 노부인을 쳐다봤다.

“큰언니, 왜 온 거야?”

단 노부인은 희색이 만면했다.

“깨어났으면 됐다, 깨어났으면 됐어. 명주와 함께 널 보러 왔지.”

사 노부인은 그제야 정미 모녀를 바라봤고, 정미를 쳐다보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큰언니, 왜 명주 옆에 있는 사람이 옥주처럼 보이지?”

단 노부인이 웃었다.

“뭐가 옥주라는 거니. 저 아이는 정미야. 내 외손녀라고!”

이때 사광량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모르시지요. 이렇게 빨리 깨어나실 수 있었던 것도 정미 덕분인걸요. 저희 모두가 간질 발작인 줄 알았는데, 정미만 소갈증 때문에 체내에 당이 부족한 것이라 알아보았어요!”

사 노부인은 깜짝 놀라 왕 태의를 바라봤다.

“소갈증은 체내에 당분이 너무 높아서 단 걸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어찌 당분이 부족하다는 거지요?”

왕 태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멍하니 있다가 결국 공수하며 억지로 말했다.

“소관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무도 왕 태의가 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허 씨가 다가와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네고 왕 태의를 보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허 씨가 고개를 돌리자, 한 씨가 급히 비틀거리는 단 노부인을 부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가 깜짝 놀라 묻자 한 씨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어머니께선 여기 오실 때부터 몸이 편치 않으셨어. 마차에서 내릴 땐 눈도 조금 흐릿하셨고.”

사광량도 다급해졌다.

“사촌 누이, 큰이모님도 연세가 많으신데 불편하신 몸으로 어찌 이곳까지 온 거야? 왜 말리지 않았어. 만약 큰일이라도 나면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방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겨우 호전된 사 노부인도 조급해했다.

“큰언니, 정말 보이지 않는 거야? 또 어디가 불편한데?”

“괜찮다. 걱정 말거라―”

단 노부인은 이마를 짚고 안심시켰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정미가 갑자기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가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 태의,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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