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51화 (151/375)

151화. 궁지에 몰리다

“아버지, 어머니, 이 여종은 이미 미쳤습니다. 저것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한 씨가 차갑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구나! 정요, 다른 사람이 다 바보라고 생각하는 게냐? 저 아이가 미쳤으니, 더욱 믿을 수 있는 거다. 미친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하지만 그날 저는 계속 지 오라버니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어요. 분신술도 아니고,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그런 짓을 한다고 저와 백부에 무슨 좋을 게 있다고요?”

“네겐 좋을 게 없겠지만, 정미에겐 확실히 나쁠 게 있지.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니더냐?”

한 씨가 차갑게 말했다.

정요는 고개를 번쩍 들고, 한 씨의 뒤에 있는 정미와 마주 봤다.

‘이제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오네. 하지만 정미는 어떻게 안 거지? 그날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 정미는 어떻게 나라고 생각한 거야? 시체를 파내서 배를 가르는 짓은 누구도 감히 아가씨가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지 못할 텐데.’

“나리, 보셨습니까? 이게 바로 제가 16년을 키운 딸입니다! 생모가 일찍 죽어 제 곁에서 자랐지요. 이 애는 적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배은망덕하게도 한쪽으로는 제 조카와 시시덕대면서, 한쪽으로는 제 딸을 해치는군요. 나리, 다른 안주인이었다면 이런 서녀를 어찌 처리했겠습니까?”

“아버지, 제가 한 짓이 아니에요. 저를 믿어주세요. 여종 하나의 말만 믿고 제가 저지른 짓이라 확정하시다니요! 만약 아무 노비가 한 말로 주인이 죄를 뒤집어쓴다면, 백부 전체가 어지럽혀지지 않겠어요?”

줄곧 입을 닫고 있던 둘째 나리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우선 이 못된 계집을 돌려보내시오. 여기서 볼썽사납게 굴지 말고!”

정요는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정미는 한 씨 옆에 기대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요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구나. 아직 제대로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닌데, 집안에선 어른들이 믿느냐 아니냐가 사건의 진상보다 더 중요한 법이니까. 더군다나, 원래는 믿음을 받는 사람이었잖아?’

* * *

정요가 끌려나간 후, 한 씨는 정미도 내보냈고 방 안엔 한 씨와 둘째 나리만 남게 되었다.

촛불이 흔들리는 방 안에서 둘째 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일은 이연원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시오.”

“나리, 아직도 그 천한 것을 감싸드는 겁니까?”

둘째 나리는 최대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시켰다.

“그 못된 것을 감싸드는 게 아니오. 하지만 당신이 잊어선 안 되지. 정요도 일단 우리 집안의 딸이오. 어머니와 큰형님네에 알려지면 우리가 어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소?”

“그래도 이렇게 놓아주어선 안 되지요!”

한 씨는 생각할수록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정미가 작년에 한지에게 고백한 일은 모두가 알게 했으면서, 그 천한 것이 다른 자와 밀통하고, 시체를 훼손한 일은 숨겨준다고? 정말 역겹군!’

“당신이 정요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겠소. 하지만 이 일은 퍼져나가선 안 돼! 곰곰이 생각해보시오. 이 일이 퍼져나가면, 정미에게도 좋을 게 있겠소? 다른 사내와 밀통하다니. 그것도 굉장하게 추한 일인데, 시신을 훼손한 죄명까지……. 언니가 이런데, 여동생에게 무슨 좋은 명성이 따라가겠소? 정미도 올해 열네 살이 되었다는 걸 잊지 마시오.”

한 씨는 화가 나 눈을 부라렸다. 그녀는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둘째 나리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에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리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부탁드릴 게 있어요.”

“말해보시오.”

“좀 전에 제게 국공부로 돌아가 태도를 알아보라 한 일은, 그냥 두시지요. 한지가 정혼한 건 둘째 치고 정혼하지 않았더라도 그 사갈 같은 천한 것을 국공부와 관계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둘째 나리는 조금 아쉬웠다.

한 씨가 만약 국공부에 정요가 위국공 세자에게 유린당한 일을 알리지 않는다면, 이 딸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 씨는 꿋꿋했다.

“만약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다른 이들이 어찌 퍼트리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정요만 이득을 보게 할 수는 없지요!”

“됐소. 그렇게 하지.”

결국 둘째 나리가 한발 물러섰다.

이제 그 서녀는 나리의 마음속에 조금의 가치도 없게 되었다.

“그 못된 계집이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당신이 적모로서 처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목숨까지 해쳐선 안 되오.”

한 씨는 내키지 않았다.

‘정요가 급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핑계로 죽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모진 게 아니라, 그 못된 것이 너무 무서워서다. 사람의 목숨을 앗았다는 죄업을 지더라도 그 천한 것이 다시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해!’

둘째 나리는 한 씨의 불만을 알아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혼한 아이가 갑자기 급병에 걸려 파혼한 것만으로도 수도엔 뜬소문이 돌 텐데, 사람이 없어지면 그 소문이 어찌 되겠소. 게다가…… 그 아이도 결국엔 내 딸이오.”

말을 마친 둘째 나리는 방에서 나갔고, 한 씨는 그곳에 홀로 남아 앉아있었다. 촛불이 꺼질 듯 깜빡거리자, 한 씨의 얼굴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했다.

한참 후, 한 씨가 외쳤다.

“설란!”

“부인, 여기 있습니다.”

“둘째를 보고 왔느냐?”

“예, 파자 둘을 두어 지키게 했습니다.”

“그쪽의 여종과 유모를 모두 나뭇간에 가두고, 내일 벙어리로 만들어 팔아버리거라!”

설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고, 같은 여종으로서 자신보다도 어린 포금과 시서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자 설란의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한 씨는 단호했고, 차갑게 말했다.

“어서 가지 않고 뭐 하느냐!”

한 씨는 이런 방법까진 쓸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안채에서 아무렇게나 호의를 베풀었다간 뒤통수를 맞고도 이용당할지 모른다!’

한 씨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미도 그동안 많이 억울했겠구나…….’

촛불이 그리 밝지 않은 조용한 방 안, 한 씨는 왠지 모르게 정미가 보고 싶어졌다.

“상란, 가서 셋째 아가씨를 모셔오거라.”

잠시 후, 상란이 돌아와 보고했다.

“부인, 셋째 아가씨는 이미 잠에 드셨습니다.”

“그래, 알겠다. 너도 물러나 보거라.”

한 씨는 마음속 실망감과 허전함을 꾹 누르고는 조용히 침상에 올랐다.

* * *

다음 날 아침, 정철이 문안 인사를 와서 물었다.

“어머니, 어제 잘 주무셨습니까?”

“그래.”

한 씨는 정철이 새 옷을 입은 것을 보고는 물었다.

“오늘 외출하니?”

정철이 웃었다.

“덕소 장공주부에 가보려고 합니다. 미미가 이틀 동안 가지 못했으니, 휴가를 쓰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마침 미미 대신 휴가를 이틀 더 신청해주고요.”

“어제 들어보니 정미가 많이 나았다고 하던데.”

“무리하는 것이겠지요. 항상 안색이 창백해 보이던데, 며칠 더 쉬는 게 좋겠습니다. 승마와 활을 쏘는 건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요.”

한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원래부터 꼼꼼한 아이였으니. 그럼 가보거라.”

하지만 정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일이 더 있니?”

그러자 정철이 공손하게 말했다.

“어머니, 정요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제가 그 애의 거처를 지나갈 때, 정요 쪽의 여종과 유모가 모두 끌려가고 있던데요.”

“아, 정요가 어제 까닭 없이 한증을 앓았는데, 그 하인들이 정요가 귀신에 씐 거라 함부로 지껄이더구나. 이리 주인을 함부로 얘기하는 하인들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니. 그래서 내가 내쫓아버리고, 나중에 성실하고 정직한 자들을 몇 골라 모시게 하려고 한단다.”

“그런 거였군요.”

정철이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팔근이 이른 아침부터 저 대신 책을 사러 나갔다가, 정요의 막일 파자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 파자의 행동이 은밀한 것이, 아가씨의 방에서 귀중한 물건을 훔쳐 파는 것일까 봐 데리고 돌아왔다 하더군요.

저는 팔근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혼냈는데, 뜻밖에도 마침 정요의 하인들이 팔려나가는 걸 보았지요. 다시 보니 팔근의 걱정도 틀린 게 아닌 것 같군요. 아마도 그 파자가 상황이 어지러운 틈을 타 아무 물건이나 훔쳐 팔려고 했나 봅니다. 정요의 일은 제가 끼어들 수 없으니, 그 파자를 어머니께 데리고 왔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일단 철이 너는 일을 보러 가거라. 그 파자는 내게 맡기고.”

한 씨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그 파자가 혼란한 틈을 타 한몫을 하려고 한 것이라 여겼다.

한 씨는 막일을 하는 파자까지 처벌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파자는 주인의 방문에도 들어가지 못하니, 무고한 사람을 벌해봤자 음덕만 해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파자가 물건을 훔쳤다면, 쉽게 용서할 순 없었다.

‘한사람 더 내쫓는 것쯤은 개의치 않으니!’

* * *

쇄옥거 안, 정요는 생기 없는 나무 인형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머니가 내 시종들을 벙어리로 만들어 내쫓고, 다른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다니. 앞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말인가?

그나마 내가 한발 앞서서 그 증표를 파자에게 전달해서 다행이지. 태자가 운상의로 갔을 때, 지배인이 그 물건을 태자에게 전해주면 태자가 분명 날 도와줄 거야!’

정요는 운상의의 암실 안에서 나눴던 정을 떠올리며 확신에 찬 웃음을 지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정요가 고개를 들자 몸집이 좋은 파자 두 명이 보였다.

둘 중 주걱턱을 가진 파자가 어두침침하게 말했다.

“둘째 아가씨, 목욕하실 시간입니다.”

이에 정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며칠만 지나면 월경일이었다. 또 얼음물에 몸을 담그면 분명 아이를 가지는 데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여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둘째 아가씨, 오시지요.”

정요는 황급히 두 사람의 손을 밀어냈다.

“잠시 기다리거라.”

정요는 몸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갔고, 화장함 안에서 금비녀 두 개를 꺼내 돌아와 두 사람의 손에 쥐여주었다.

“내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너무 추울까 걱정이 되니, 좀 따뜻한 물로 해줘.”

두 파자는 금비녀를 잡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주걱턱의 파자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따뜻한 물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더 지체 마셔요. 부인께서 아시면 큰일납니다.”

한 씨가 엄격하고 신속하게 쇄옥거의 하인을 팔아버린 일은 안주인을 안중에 두지 않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바였다.

정요는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욕실로 들어갔고, 두 파자는 합세하여 정요를 욕통 안으로 집어넣었다.

“악―”

뼈에 사무치는 차가운 물의 온도에 정요는 마치 얼음으로 된 침이 자신의 모든 피부를 찌르는 것만 같다고 느꼈다. 정요는 악귀처럼 두 사람을 노려봤다.

“너희, 너희가 감히 나를 속여?”

주걱턱의 파자가 급히 대답했다.

“아이고, 아가씨. 오해하신 겁니다. 보세요. 원래는 이것들도 넣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요.”

정요가 눈을 돌려보니 그곳엔 수박만한 얼음이 놓여있었다.

정요는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어머니가 이리도 악독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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