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놀라 미치다
수 아주머니는 얼마 전 전근하여 온 사람이었다.
원래 백부의 아가씨는 두 몸종과, 두 어린 여종, 막일을 하는 파자(婆子) 하나, 유모 하나를 시종으로 두고 있었다.
그리고 정미의 유모는 그녀가 어릴 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진 몰라도 쫓겨나 버렸고, 한 씨는 그때 정미에게 아주 냉담하고 소원했기에, 다시 그 자리를 채워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미가 초경 때 그런 우스운 상황을 겪은 후, 정철은 세심하고 경험 많은 아주머니를 그녀 옆에 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안뜰의 일은 오라버니로서 관여할 수 없었기에, 한 씨의 심복 하인인 계 아주머니에게 은전을 조금 쥐여주었던 것이다.
계 아주머니가 이를 한 씨에게 알린 후, 한 씨는 수 아주머니를 골라 보내주었다.
한 씨는 교용의 빈자리도 메꾸어주고 싶어 했으나, 정미가 단호히 거절했다.
신발창 사건 이후로, 정미는 어렵사리 화미와 청가에게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고, 파자에게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때문에 쉽게 새로운 사람을 들일 수 없었다.
정미는 일단 그 파자를 가만히 두었다.
그런 시종은 정미의 방문에도 발을 들이지 못하니, 대비만 잘하면 어떠한 풍파도 일으키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이미 정요에게 매수되었으니, 언젠가 그 점을 이용해 되갚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했다.
청가의 말에, 교용은 벽을 짚고 천천히 바닥에 웅크렸다.
‘다섯째 공주께서 온 후, 셋째 아가씨는 다 나으셨어. 하지만 둘째 아가씨는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하셨지.’
교용은 둘째 아가씨를 부축할 때 느꼈던 차가운 감촉과 창백한 안색을 떠올리면 온몸이 떨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교용 언니, 왜 그래?”
교용은 계속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고, 교용 언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안색이 새파래서 무서워. 내가 언니 대신 의원을 불러올까?”
“청가, 가지 마!”
교용은 한 손으로 청가의 손목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내 얼굴이 정말 새파랗다고?”
“그렇다니까.”
청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어, 청가. 일단 나 좀 일으켜 줘. 이런 꼴을 하고 셋째 아가씨를 뵐 수는 없겠네.”
청가는 교용을 일으켜 세웠고, 교용은 비틀거리며 쇄옥거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들어간 후, 작은 거울을 꺼내 자세히 살펴봤다. 그리고 거울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거울을 내던질 뻔했다.
‘정말 둘째 아가씨처럼 새파랗잖아!’
사실 하룻밤을 꼬박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으니 안색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나 교용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어떡해, 어떡하지?’
교용은 방 안을 서성이며 불안해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아직 이렇게나 젊은데, 만약 귀신에게 목숨을 뺏긴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 귀신은 이미 내게 들러붙었는걸. 어젯밤엔 방문도 두드렸다고!’
교용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평소 잘 아는 파자에게 귀신을 내쫓을 방법을 물으러 갔다. 당연히 진상은 말하지 않고 돌려서 물어보았다.
방법을 물어본 뒤, 교용은 몰래 바깥에 나가서 그 물건을 사 왔고, 달이 나무 끝에 떠올랐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보따리를 들고 벌벌 떨며 문을 나섰다.
화원은 아주 고요했고, 하현달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교용은 은밀한 곳으로 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급히 보따리를 열어 지전과 선향, 제사상에 놓는 과일, 대야 등을 꺼냈다.
교용은 선향을 피우고 과일을 올린 뒤, 지전을 대야에 태우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잠시 후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대야에서 서서히 타들어 가던 지전들이 갑자기 크게 타올랐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교용은 깜짝 놀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모든 지전을 다 태워야만 성의가 생기는 것이라는 파자의 당부가 떠올라, 마지못해 다시 태우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교용의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떨어졌다.
교용은 온몸이 굳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반쯤 꿇은 상태의 교용은 뒤에 있는 사람의 허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상의는 말려 올라가 있었고, 복부에는 흉악한 상처가 있었다.
교용은 이빨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깜짝 놀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고, 아랫도리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왜 그 나쁜 짓을 도운 거야. 말해!”
여인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라진 목소리에 교용은 정요를 떠올렸다.
“너, 다음엔 네 주인, 둘 다 절대 도망갈 수 없어. 아무도 도망갈 수 없어!”
귀신이 갑자기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교용의 경직을 깨트렸고, 교용은 대야를 엎고 일어나 달아났다. 달아나면서도 횡설수설하며 외쳤다.
“나를 찾지 마. 찾지 말라고. 아가씨가 그랬어. 둘째 아가씨가 네 배를 가른 거라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교용은 멀지 않은 곳의 등불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교용은 겁에 질려 달렸지만, 아무리 힘을 다해 달리더라도 귀신이 뒤따르는 것을 느꼈다. 그 차가운 손은 자신의 목덜미에 몇 번이나 닿았다.
그녀는 마침내 그 빛에 다다랐고, 빛은 갑자기 아주 환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등롱을 들고 오고 있던 것이다.
교용은 한 씨를 한눈에 발견했고, 허겁지겁 한 씨에게로 다가가 발치에 엎드려 애원했다.
“부인,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냐?”
이미 반쯤 정신을 잃은 교용은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실성하여 말했다.
“귀신이 저를 쫓아오고 있어요!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둘째 아가씨, 둘째 아가씨께서 굳이 그 부인의 배를 갈라야 한다고 하셔서…… 저, 저는 그저 둘째 아가씨의 명령에 따라 도와드렸을 뿐이에요!”
“교용을 데리고 들어가거라!”
응접실 안, 한 씨는 교용의 정신 나간 듯한 진술을 듣고 난 뒤,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정미를 한번 쳐다보고는 설란에게 명령했다.
“너는 서재에 가서 나리를 모셔오고!”
* * *
둘째 나리는 자신의 괴상한 병 때문에 근심이 가득해 침상에서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어두운 표정으로 외투를 걸친 후 급히 한 씨에게로 향했다.
한 씨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교용을 보고는 어리둥절해했다.
“이 늦은 시간에 어찌 된 일이오?”
한 씨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놀라서 이성을 잃은 교용은 계속 어떤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고, 둘째 나리는 잠시 이해를 하지 못하다가 이내 무슨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표정은 밤의 그림자보다 더욱 어두워졌고, 발을 들어 교용을 걷어차고는 차갑게 말했다.
“정말 황당하구나!”
“나리, 어찌해야 할까요?”
한 씨는 모처럼 총명하게도 나리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어찌하다니? 우선 그 못된 계집을 불러오거라!”
예전 같았으면 나리는 여종 하나의 말만 듣고, 그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딸이 이런 황당한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정요가 자신이 다른 이와 정을 나눴다고 얘기한 뒤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둘째 나리는 이미 속으로 어느 정도 이 일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한 씨가 상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쇄옥거로 가서 둘째를 데려오거라.”
* * *
쇄옥거 안, 정요는 두꺼운 이불을 두른 채 떨고 있다가 이연원에서 사람이 왔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평소라면 한 씨는 오늘 이미 그녀를 혼냈기 때문에 더 혼내고 싶어도 이리 빨리 행동하진 않았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에 부르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정요는 눈을 번뜩 뜨고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 듯 시서에게 명령했다.
“옷을 갈아입고 바로 가겠다고 전해줘.”
“예.”
시서는 상란에게로 갔고, 포금은 정요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아가씨, 두껍게 입으세요. 아직도 몸이 너무 차가워요. 밤엔 바람도 많이 불고요.”
정요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교용은?”
포금은 아가씨가 또다시 교용을 언급하자 불쾌한 듯 입을 삐죽였다.
“계속 방 안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정요가 손을 들어 올려 옷을 입히던 포금의 행동을 제지했다.
“포금, 어서 교용의 방으로 가서 있는지 없는지 봐봐!”
“아가씨―”
“어서, 상란에게 들키지 말고!”
정요가 엄격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이를 본 포금은 급히 교용의 방으로 가보았고, 잠시 후 돌아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 아가씨, 교용이 방에 없어요!”
“없다고?”
정요의 안색이 굳었고, 포금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없습니다. 소인이 가서 봤는데, 이불도 잘 개어져 있고 조금의 온기도 없었어요. 나간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정요는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큰일 났구나…….”
“아가씨―”
포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요는 설명할 겨를도 없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옷은 내가 알아서 입으마. 포금, 어서 가서 란(蘭) 파자를 불러와. 그리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서 지키고 있어!”
란 파자는 쇄옥거의 막일을 하는 파자였고, 평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시종이었다. 포금은 정요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그녀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더는 지체하지 않고 급히 파자를 찾으러 갔다.
잠시 후, 란 파자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정요는 미리 준비한 물건을 란 파자에게 넣어주며 진중히 당부했다.
“내일 아침에 몰래 이 물건을 운상의의 지배인에게 전달해. 오늘 밤이나 내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개의치 말고 꼭 이 물건을 보내야 해!”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란 파자가 나간 뒤에야, 정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악의 상황으로 교용이 상사절의 일을 폭로했다면, 어머니가 내 여종들을 모두 처리할 거야. 하지만 막일을 하는 파자 정도는 그리 신경 쓰지 않을 테지. 그럼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하더라도, 그 증표가 운상의에게 전달된다면 살아날 기회가 있을 거야.’
정요는 옷을 다 입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상란을 따라 이연원으로 향했다.
* * *
방에 들어서자, 한 씨 부부가 나란히 앉아있었고, 바닥에는 생기를 잃은 표정의 교용이 보였다. 정요는 뭔가 깨달은 듯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을까요?”
“무슨 일인지는 네게 물어야겠구나!”
한 씨는 정요를 보자마자 눈에 분노가 일었다.
‘이 천한 종자가 여기저기 시시덕거리는 것도 모자라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르다니, 정말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구나!’
“정요, 네 몸종이 상사절에 일어난 일을 다 알려주었다! 네가 할 말이 있느냐?”
한 씨가 차갑게 물었고, 정요는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미친 채 멍하니 있던 교용이 갑자기 달려들며 크게 울었다.
“살려주세요, 아가씨. 살려주세요. 사람이 죽는 건 등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귀신이 찾아왔어요. 어떡하죠?”
“교용―”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요도 허둥지둥하였다.
“대담하구나, 어서 이거 놔!”
교용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절대 놓지 않았다.
“아가씨, 무섭지도 않으세요? 그럼 아가씨가 그 귀신에게 말해주세요. 아가씨가 배를 가른 것이라고요. 소인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소인과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입 다물어!”
정요는 교용을 힘껏 걷어차고는 똑바로 꿇어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