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48화 (148/375)

148화. 비탄

교용은 갑자기 잠이 확 깨어 침상 속에 움츠려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마치 누군가 열어주지 않으면 영원히 두드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똑똑 소리는 차가운 쇠망치처럼 교용의 가슴을 두드렸고, 교용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살금살금 침상에서 내려왔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교도를 쥔 교용이 한 걸음씩 문 입구로 다가갔다.

교용이 문 앞에 다다르자, 그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녀는 교도를 꽉 잡고 귀를 문에 붙여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밖에서는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 것 같았다.

교용은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방문을 살짝 열었다.

밖엔 아무도 없었다!

교용은 무의식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래를 내려다봤고,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는 찬합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는데, 그 찬합은 오늘 교용이 녹두탕을 담았던 바로 그 찬합이었다!

교용은 천천히 몸을 숙이고 그 찬합을 빤히 쳐다봤고, 귀신에 홀린 듯 찬합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녹두탕 한 그릇이 들어있었다.

“아악―”

교용은 이성을 완전히 잃고 귀신을 본 것마냥 뒷걸음질 쳤다.

“밤에 안 자고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옆방의 문이 삐걱대며 열렸고, 포금이 외투를 걸치고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교용을 노려봤다.

교용의 처량한 모습을 본 포금은 찬합을 보지 못한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교용. 악몽을 꾼 거야, 아니면 귀신을 본 거야? 꼴이 왜 그래?”

“포……, 포금…….”

마침내 산 사람을 보자, 평소 친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교용의 눈엔 구원의 손길로 보였다. 교용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포금은 짜증을 내며 뒷걸음질 치고 바닥에 침을 몇 차례 뱉었다.

“내 이름 부르지 마. 소름 돋으니까. 교용, 귀신이라도 본 거야? 하하, 어쩐지 오늘 아가씨가 네게 밤을 지키라고 하지 않더니. 이 꼴이라면 며칠 안에 쫓겨날걸!”

포금은 말을 마치고 뒤돌아 떠났다.

그녀는 교용을 아주 싫어했다.

셋째 아가씨가 교용을 자신의 아가씨에게 선물한 뒤로, 저것이 아가씨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아가씨의 심복 시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로 어려서부터 아가씨를 모신 포금과 시서는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렇기에 포금은 방금 그저 소란을 구경하러 나온 것뿐이었고, 위로 따위는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 * *

교용은 밤새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 정요를 모실 때조차 넋이 나가 있었다.

정요는 교용의 꼴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필 오늘 둘째 나리가 오신다고 하여 교용을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

점심때가 다 되었을 때, 마침내 둘째 나리가 찾아왔다.

오늘은 원래 그의 휴일이 아니었지만, 둘째 나리는 어제 방귀를 뀌고 오줌을 지린 것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 혹시나 또 창피를 당할까 봐 휴가를 낸 바였다.

그는 밤새 고민했고, 우선 정요를 찾아 정확히 물은 뒤 한 씨를 찾아가기로 했다.

“아버지, 차 드세요.”

“너는 우선 물러나 보거라.”

둘째 나리가 낮은 목소리로 교용에게 말했다.

교용이 나간 뒤, 그는 정요의 높은 옷깃을 보고 잠시 침묵했다.

정요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어제 구사일생을 겪은 뒤로 자신감을 조금 잃었고, 더 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둘째 나리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어제 한 말은 사실이냐?”

정요는 둘째 나리의 표정을 살피며 작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염치없는 것!”

둘째 나리가 탁상을 내리치자, 이어 ‘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멍해졌다.

둘째 나리는 난감한 표정이었고, 정요는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어제 아버지께서 방귀를 뀐 후 나를 죽이려고 하셨지! 설마 어제 내 말에 화가 나신 것보다, 이것 때문에 수치스러운 마음이 더 커서였나?’

아마도 ‘처음이 어렵다.’는 말 때문인지, 둘째 나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찻잔을 들며 생각했다.

‘왜 화가 나면 이렇게 되는 거지? 요 며칠은 흥분하면 안 되겠어.’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침착하게 말했다.

“너와 위국공 세자, 어느 지경까지 갔느냐?”

정요는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저희, 저희는 이미 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어제 이미 나를 한 번 놓아주셨으니, 간밤에 침착하게 생각하신 뒤로는 또 그러지 않으실 거야.’

“너희―”

둘째 나리는 배에서 뭔가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는 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방귀를 참은 탓에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몸을 주었느냐?”

정요는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아셔야 무사히 혼사를 무를 수 있겠지. 어쨌든 내 입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니, 나중의 일은 일단 미루자. 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고 몸을 줬다는 뜻은 아니잖아?’

“못된 것.”

둘째 나리가 천천히 세 글자를 뱉었다.

정요는 그 차분한 어조가 지금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둘째 나리도 이를 갈며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화가 나면 방귀는 물론이고 오줌을 지리기까지 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더욱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정요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못된 것. 위국공 세자는 이미 정혼했다. 설마 세자의 첩이 되려는 것이냐? 네 뻔뻔함에 백부는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서녀를 적처의 처가에 첩으로 보내다니, 이 일이 퍼져나가면 모두가 그를 권력과 명예를 위해 딸을 판 자로 여길 터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둘째 나리는 또 적장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자비 노릇을 제대로 했다면, 수도의 모든 사람들이 태자의 은애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럼 나도 장인으로서 어딜 가든 존경받았을 테고!’

정요가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혼사를 물러주세요. 위국공 세자가 이리 말했어요. 늦어도 연말 안에는 방법을 찾아 정혼을 무르고, 당당하게 저를 처로 맞을 것이라고요.”

“어리석구나. 그런 말을 믿는 것이냐?”

정요가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저는 믿을 수밖에 없어요. 딸이 이미 다른 사람과 혼약을 맺었는데, 설마 저를 그 거자에게 시집보내 화목하지 못한 부부가 되게 하실 건가요? 그렇게 되면 백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거예요. 오히려 적이 되겠지요.”

둘째 나리도 알고 있었다.

흠이 있는 몸의 딸을 시집보내면, 적이 되자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는가?

그는 정요를 노려봤고, 이 뻔뻔한 것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 시도해본 뒤론 다시 손을 대고 싶은 충동은 들지 않았다.

“아버지, 제발 저를 한 번만 믿어주세요. 연말까지만 기다려주실 순 없나요?”

“연말까지 기다리라고? 그냥 위국공부로 시집가는 것도 아주 힘든데, 파혼한 아가씨가 세자 부인이 되려 하는 게냐? 정말 황당무계하구나! 설마 위국공 세자의 첩이 되려는 거라면, 여기서 네 목을 졸라버리겠다!”

정요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절대 첩은 되지 않을 거예요. 연말이 되어도 위국공 세자와의 혼사가 성사되지 않으면, 백부의 복을 기원하는 명분으로 가묘에서 수행하겠습니다. 절대 백부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을게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둘째 나리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고, 더 이상 정요를 보기도 싫었기에, 그저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버렸다.

정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식은땀으로 등이 흠뻑 젖어 교용을 불러다 목욕 시중을 들게 했다. 그러나 마음이 풀어진 탓에 교용의 상태가 이상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 * *

정요는 뜨거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욕통 안에 앉아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늘어져 있었으나, 가늘고 긴 목덜미에 있는 푸른 멍은 가려지지 않았다.

교용은 넋을 놓고 그 푸른 멍을 바라보다가, 그곳에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정요는 아파서 숨을 들이켜고는 벌떡 일어나 교용의 따귀를 내려쳤다.

“아, 아가씨, 소인이 고의로 그런 게 아닙니다. 고의가 아니었어요…….”

교용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축축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정요는 지끈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다시 앉았다.

“됐어, 어서 씻기기나 해!”

‘만약 목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이 덜렁대는 것을 쫓아냈을 텐데!’

목욕을 마친 정요는 옷을 다 입고 말했다.

“됐다, 오늘 네 정신이 이상한 것 같으니, 가서 쉬어. 포금에게 내 머리를 빗으러 오라고 전해라.”

교용은 지금 말씨름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급히 물러나서 포금을 불러왔다.

* * *

같은 시각, 둘째 나리는 이연원에 들어서는 중이었다.

“나리께서 어찌 오셨습니까?”

한 씨는 둘째 나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평소와 달리 나리를 만난 기쁨보다 의아함이 더 컸지만, 한 씨는 의식하지 못했다.

둘째 나리는 차분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오늘 관아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어제 몸이 조금 좋지 않았소.”

둘째 나리가 한 씨를 바라봤다.

최근 한 씨는 점점 생기가 돋아나, 전혀 서른이 넘은 부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둘째 나리는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게다가 차분한 마음이야말로 지금 둘째 나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자칫하면 한 씨 앞에서 창피를 당할 수 있었다.

“의원은 모셨습니까?”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오. 이틀 정도 쉬면 괜찮으니, 의원은 부를 필요 없소.”

분노하면 방귀와 소변을 보는 병이라니, 어찌 의원을 부를 수 있겠는가!

한 씨는 둘째 나리의 상냥한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아, 그저 차 한잔을 따라 건네고는 자신도 한 잔을 들고 고개를 숙여 한 모금 마셨다.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씨가 조용히 생각했다.

‘예전엔 늘 저 문을 쳐다보며, 이 사람이 나타나길 바랐는데.’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리가 정말 나타난다고 해도 부부 사이에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한 씨는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활발하고 밝던 한 씨는 말도 많았고, 그녀의 모친은 늘 그녀를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참새 같다 말하곤 했다.

혼인 전날 밤, 기대감에 잠도 못 이루던 한 씨는 그에게 할 말이 아주 많았다. 그가 이 혼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기쁨을 나누어준다면 그도 천천히 마음을 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신혼 첫날 밤, 한 씨는 홀로 잠에 들었고, 이후에도 그는 한 씨의 말을 자세히 들어주지 않았다.

한 씨는 둘째 나리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나리도 많이 늙었구나.’

둘째 나리가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정요의 그 혼사 말이오, 일단 무르는 게 어떻겠소?”

한 씨가 깜짝 놀랐다.

“나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겨우 정한 혼사를 취소하다니요? 그럼 정요는 한 번 파혼한 아가씨가 되지 않습니까?”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어쨌든 이 혼사는 취소하겠소.”

“안 됩니다. 어찌 까닭 없이 파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우리 백부의 명성에도 해가 될 거예요!”

한 씨가 단호히 거절했다.

파혼이 정요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겠지만, 정요가 혼인하지 못하면 집안에 계속 머물며 한 씨의 눈에 거슬릴 테고, 기회를 틈타 태자와 밀통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황실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으니까.’

“당신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혼사는 취소해야만 하오!”

둘째 나리의 언성이 높아졌고, 동시에 배가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급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한 씨의 눈빛에 천천히 말했다.

“당신의 조카가 저지른 일 아니오!”

꾸중하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말투에, 한 씨는 잠시 멍해졌다가 중얼거렸다.

“제 조카요?”

“그래. 위국공 세자 말이오. 그 녀석이 정요의 몸을 가졌소. 흠이 있는 몸을 어찌 다른 집안에 시집보낼 수 있단 말이오?”

“그럴 리 없어요!”

한 씨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벌떡 일어나자, 둘째 나리가 냉소했다.

“그럴 리 없다고?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어느 아가씨가 그리 말할 수 있겠소?”

“그 천한 것, 천한 것!”

한 씨는 화가 나 방 안을 맴돌았다.

‘그 천한 것이 태자와 밀통하면서, 한지와도 밀통하고 있었다니! 정말 미천하고 역겹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