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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47화 (147/375)

147화. 귀신을 보다

쇄옥거 안,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요는 자신이 기절한 이후의 일을 교용에게 자세히 물은 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

교용은 정요의 잠긴 목소리를 듣자, 조금 당황하며 급히 대답했다.

“둘째 나리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푹 쉬시고, 내일 아가씨를 찾아오시겠다고요.”

“그래, 알겠어. 콜록콜록.”

정요는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입에서 손수건을 떼보았고, 그러자 손수건 위에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교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가씨―”

정요는 그녀를 흘겨보며 꾸짖었다.

“시끄럽게 굴지 마. 그때 입술을 깨물다가 터져서 그런 거야. 큰일이 아니라고!”

교용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럼 다행이에요. 소인이 얼마나 놀랐는데요.”

정요는 교용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었다.

“네가 이리 충성스러울 줄은 몰랐는데.”

교용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 소인은 아가씨를 따른 뒤로 평생 아가씨를 모시기로 결심했는걸요. 아가씨께서 무사하셔야 소인도 무사하지요.”

“알면 됐다.”

정요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갑자기 또 기침을 해댔다. 목의 통증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교용, 큰주방에 가서 녹두탕을 가져와. 저녁 식사는 너네끼리 나눠 먹고.”

정요는 수중에 돈이 있었지만, 감히 정미처럼 자신의 마당에 작은 주방을 만들어 먹고 싶은 것만 만들어 먹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저 순순히 큰주방에서 식사를 가져와야 했다.

“소인이 바로 가보겠습니다.”

교용은 찬합을 들고 큰주방으로 갔으나, 아직 여름이 되지 않은 탓에 주방엔 녹두탕이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다행히 교용은 통이 큰 사람이었기에, 둘째 아가씨에게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주방의 아주머니들이 모두 나서서 하려고 했다.

녹두탕을 끓이는 건 아주 간단하지만,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각 방의 여종들이 와서 저녁 식사를 가져간 뒤에도, 교용만 그 자리에 남아 기다리고 있었다.

“교용, 녹두탕이 다 되었단다. 담아주마.”

“감사합니다, 유(劉) 아주머니.”

교용이 은 조각을 넣어주었다.

유 아주머니는 무게를 손짐작했다. 은 조각은 동전 몇십 개와 바꿀 수 있는 무게였다.

“조심히 들고 가.”

유 아주머니쯤의 나이가 되면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국그릇을 교용에게 건네고는 바깥 하늘빛을 보더니 잔소리를 했다.

“날이 어두우니 얼른 돌아가야 해. 밖에 오래 있지 말고.”

교용은 정요가 오래 기다렸으니 안 그래도 얼른 돌아갈 생각이었고, 주방일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이에 무심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유 아주머니는 교용이 자신의 말을 담아두지 않는 것 같자,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이 아주머니가 널 위해 하는 말이야. 젊은 아가씨는 원래 음기가 많은데, 이 시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으니 불결한 것과 부딪혀선 안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교용은 어제부터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기에, 그녀의 말을 듣고는 크게 화냈다.

“아이고, 아직도 못 들었어? 백부에 귀신이 나타난다니까!”

교용이 멍하니 있자, 유 아주머니는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어제 셋째 아가씨께서 어떤 죽은 부인의 아이를 받아주었잖아. 그래서 그 부인의 원혼이 셋째 아가씨께 들러붙어서 아프신 거래.”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녹두탕이 바닥에 엎어졌다.

“아이고, 안 데였니?”

유 아주머니가 얼른 쭈그려 앉아서 깨진 그릇을 치웠다.

교용은 이미 온몸에 오한이 나 손발이 차가웠다. 그녀는 치맛자락이 젖는 것도 고려치 않고 쭈그려 앉아서 유 아주머니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주머니, 방금 그 말, 무슨 말이에요?”

긴장한 교용은 아주머니를 세게 붙잡았고, 아주머니는 아파서 그 손을 급히 뿌리치며 불쾌한 듯 말했다.

“왜 그래?”

교용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은 조각을 집어넣으며 억지로 웃었다.

“제가 겁이 많거든요. 아주머니 덕분에 주의하게 되었네요. 아주머니,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유 아주머니는 바닥의 그릇 조각들을 한쪽으로 쓸어모았다. 손에 또다시 은이 쥐어지자 조금 전의 불쾌한 기분이 곧바로 사라졌고, 곧바로 이야기보따리를 열었다.

“어제 공자님들과 아가씨들께서 산에 오르셨다가 난산으로 죽은 부인을 마주쳤잖아? 그렇게 죽은 부인은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아주 사납기 마련이지. 죽은 뒤에도 원한이 풀리지 않아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에 가지 않는대.”

교용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로 중얼거렸다.

“그, 그럼 셋째 아가씨를 따라온 거예요?”

유 아주머니가 입을 삐쭉이며 웃었다.

“그래. 셋째 아가씨가 아기를 받았으니까. 다행히 우리 아가씨께서는 좋은 일을 하신 거라, 부인의 원혼이 따라오긴 했지만, 셋째 아가씨를 불편하게 하는 정도에 그쳤지. 그 귀신도 참 어리석지. 뭐하러 아가씨를 따라온 거람. 따라가려면 그 사내를 따라갔어야지!”

“사내를 따라간다고요?”

교용은 눈동자도 꿈쩍하지 않고, 유 아주머니의 말꼬리를 반복했다.

이야기를 하느라 흥에 겨웠던 유 아주머니는 교용의 안색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부인의 남편 말이야. 그 사내가 돈을 뜯어내려고 아내의 배를 갈랐잖아. 큰 죄를 저지른 것 아니겠어? 그 귀신이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에게 복수를 하러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겠지. 우리 백부에 와서 뭐 하는 거람!”

“그 귀신이 정말 알까요?”

교용이 몸을 벌벌 떨었다.

주방에 있었지만 몇 개의 부뚜막은 이미 불을 끈 상태였기에, 교용은 왠지 모르게 한기를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옷자락을 여몄다.

유 아주머니는 득의만만하게 호주머니에서 해바라기 씨를 꺼내 까먹었다.

아주머니는 교용이 깜짝 놀란 모습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만족감을 느꼈고 더욱 흥이 나서 말했다.

“당연히 알지.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다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 집안사람들이 지금 헛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거라고.”

교용은 목숨을 구할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눈을 반짝였다.

“아주머니, 뭐가 헛소문이라는 거예요?”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어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요. 사실 그런 게 아닌 거죠? 셋째 아가씨는 그저 아픈 것뿐이잖아요.”

“아니.”

유 아주머니는 힘차게 껍질을 뱉었다. 그 껍데기는 하마터면 교용의 얼굴로 튈 뻔했으나, 교용은 피할 생각도 없이 아주머니의 ‘아니.’ 두 글자에 멍해졌다.

“그 귀신이 우리 집안에 온 건, 은인이 어디 사는지 보려고 한 게 아닐까 생각해. 나중에 셋째 아가씨에게 보답을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귀신은 음기가 강하니까, 셋째 아가씨께서 버티지 못하고 아프게 되신 거야. 지켜보라고, 셋째 아가씨는 분명 빨리 나으실 테니까. 그때가 되면 귀신은 분명 그 사내를 찾으러 갈걸!”

“아악―”

교용은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유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실소했다.

“이렇게 놀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어쩐지 겁이 많다고 하더니. 겁먹지 마. 셋째 아가씨는 그 귀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는걸. 우리 집안에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한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은 그냥 듣고 넘기면 돼.”

교용은 이미 혼란스러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달려나갔고, 달려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어. 그 귀신이 분명 찾아올 거야. 원한을 갚으러 올 거라고…….”

“얘, 녹두탕은 안 가져가는 거니?”

유 아주머니는 벌써 사라진 교용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뒤돌아서서 중얼댔다.

“정말 겁이 많구나!”

잠시 후, 입구에서 또 기척이 느껴져 다시 몸을 돌린 유 아주머니는, 교용이 거기 서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게 오히려 더 깜짝 놀랄 일이거든!”

어둠 속 교용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웃는 얼굴은 조금 처량해 보였다.

“녹두탕을 깜빡했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주인이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꾸중을 들을 거야. 이번엔 잘 가지고 가.”

“알겠어요.”

교용은 이미 힘이 빠져 말을 많이 할 수 없었기에, 찬합을 들고 안절부절 해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백부 안은 이미 몇 개의 등불이 켜져 있었으나, 아직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탓에 오히려 캄캄한 밤보다 스산한 느낌이었다.

교용은 돌아가는 길에 흔들리는 꽃나무 가지가, 마치 귀매(*鬼魅: 도깨비 혹은 귀신) 같다고 생각하며 더욱 소름 끼쳐 했다.

그녀는 찬합에서 녹두탕이 새어 나오는 것도 고려치 않은 채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화원을 지날 땐 나무가 더욱 무성했고, 어떤 큰 나무에 가려 등불이 나뭇가지 사이로만 들어온 터라, 얼룩덜룩한 그림자는 더욱 섬뜩했다.

교용은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사방을 둘러봤고, 걷고 걷다가 갑자기 앞의 검은 그림자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쇄옥거로 가려면 이 길을 꼭 지나야 했다. 멀리 돌아가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았다.

교용은 숨을 죽이고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갔고, 눈을 부릅뜨고 그곳을 노려봤다.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면 곧바로 달아날 셈이었다.

그러나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그저 나무 한 그루였다는 걸 깨달았고, 이유는 모르지만 조금 시들어 있어서 봄날에도 싹을 틔우지 않아 가지만 남은 상태였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팔뚝처럼 보여, 교용이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릴 만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역시 내가 놀란 것뿐이야.”

교용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 말을 마치자마자, 교용의 눈이 커졌다.

마른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소리 없이 서 있던 것이다. 미약한 등불로 그것이 부인 차림을 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어지럽게 풀어 헤쳐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인의 진홍색 치마였다.

교용은 멍하니 그 여인을 쳐다봤고, 줄행랑치고 싶었지만 두 다리는 힘이 빠져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때 그 부인이 갑자기 손을 들어 얼굴 앞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천천히 헤집었다.

어두운 불빛 때문에, 교용은 여인의 붉은 입술밖에 보지 못했다. 갑자기 그 여인은 하늘거리며 떠나갔고, 그곳엔 풀과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 남았다.

그 순간, 이상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교용은 무의식적으로 코를 훌쩍였고, 그 냄새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피비린내였다!

교용은 그 여인이 왜 진홍색 치마를 입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진홍색 치마가 아니라, 분명 그 난산으로 죽은 부인의 피로 물든 걸 거야!’

“아악―”

찬합이 바닥에 떨어졌으나, 교용은 주울 생각도 하지 않고 도망쳤다.

* * *

“꼴이 왜 이래?”

정요는 교용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교용은 문밖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왔고, 그제야 비로소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가씨, 죄송해요. 소인……, 소인이 넘어져서……”

정요의 안색이 구겨졌다.

“그 말은, 녹두탕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교용은 고개를 푹 숙이고 모기처럼 작게 대답했다.

“네…….”

‘만약 아가씨께서 다시 주방에 가서 가져오라 하신다면, 차라리 죽고 말겠어!’

정요는 관자놀이가 펄떡 뛰는 것을 느꼈고,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생각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짜증을 내며 손을 휘저었다.

“됐다, 물러나거라. 오늘 밤은 네가 지킬 필요 없어. 시서(*侍書: 정요의 여종 이름)를 불러와.”

“예, 감사합니다, 아가씨!”

교용은 이미 놀라서 넋이 나가 있었고, 정요와 함께 있기가 싫어 급히 물러나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밤이 되어 정신이 몽롱한 사이, 갑자기 누군가 교용의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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