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42화 (142/375)

142화. 인명(仁名)이 널리 퍼지다

“아버지, 그만 하세요. 같이 돌아가요―”

사내가 소년의 따귀를 내리쳤다.

“안에서 먹고 밖으로 기어나가는 놈 같으니라고! 너를 때려죽여야겠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부인의 시신을 가리고 있는 멍석을 들추었고, 그러자 시신의 끔찍한 상처가 드러났다.

“그럼 네 어미의 배에 있는 상처는 어찌 생긴 거란 말이냐? 응?”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똑똑히 보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눈을 피했다.

정철도 부인의 배에 있는 상처를 똑똑히 보았다.

역시 도상이었고, 깔끔하게 베여있었다.

그는 굳은 눈빛을 한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몸을 숙여 멍석으로 부인의 시신을 가려주었다.

“대형, ‘사자위대(死者爲大)’의 도리를 안다고 하면서, 어찌 아내의 시신을 사람들 앞에 드러낸단 말이오?”

그러고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의 이런 행실이 아내를 존중하는 거라 할 수 있소? 이렇게 되니 더욱 확신이 드는군. 이 상처는 당신이 벤 것이고, 우리 백부를 위협하러 온 것이라고!”

“헛소리!”

사내는 펄쩍 뛰며 노발대발했다.

정철은 갑자기 그의 왼손을 덥석 잡아 높이 들었다.

“이자의 손이 보이십니까?”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백부의 대문 앞 등불이 밝아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왼손의 새끼손가락이 반 토막 나 있지요. 제가 듣기로는, 수도의 노름장에 이런 규칙이 있다던데. ‘도박꾼이 은 오십 냥 이상을 빚지고, 삼 개월 동안 다 갚지 못하면 왼손의 새끼손가락을 자르는 걸로 갚는다’. 제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대형은 노름에 목숨을 건 자겠지요. 맞습니까?”

그를 잘 아는 이웃은 정철이 제공한 좋은 차와 좋은 간식을 먹고는, 자연스레 외쳤다.

“양 씨는 열흘 중 아흐레는 도박을 하고, 나머지 하루는 노름빚을 피하고 있지!”

사정을 모르던 사람들은 뭔가 깨달은 듯, 정철의 말을 더욱 믿게 되었다.

정철은 사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손목을 꽉 붙잡았다.

“오늘은 이자의 아내가 출산일이었고, 난산 때문에 사망하였지요. 그리고 저희가 산에서 이 부인을 묻으려던 산자와 다른 이웃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이자는 자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자는 어느 도박장에서 노름에 빠져있지 않았을까요?”

그때, 부인을 들고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분분히 말했다.

“맞습니다. 오늘 산자의 어미가 난산을 겪고 있을 때, 산자가 내 아내를 찾아 와 산파가 되어 달라 부탁했지요. 그러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우리도 이자를 여기저기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산자의 아비는 찾지 못했습니다!”

몇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자,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부인들은 곧바로 침을 뱉었다.

“퉤, 그렇게 흉악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니!”

분위기가 뒤바뀌었으나, 정철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이었다.

“술 냄새가 지독한 걸 보니, 도박장에서 돈을 잃고 또 술로 시름을 달랬나 보군. 집으로 돌아간 뒤 아내가 난산으로 죽은 걸 보고 산으로 올라가 봤다가, 빚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이런 방법을 떠올리고 술김에 아내의 배를 벤 것이겠지!”

“아닙니다―”

정철은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말했다.

“당신의 아내는 이미 죽었고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백부에선 당신의 죄를 묻지는 않겠소!”

정철은 모두에게 읍을 했다.

“여러분, 저희 백부는 부의로부터 시작된 가문입니다. 제 동생은 재능이 출중하여, 부의를 공부하는데 전심을 다하고 있고, 이미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의원은 부모의 마음을 가진다고 하지요. 때문에 산에서 산자와 다른 이웃분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부인이 이미 죽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아이를 받아준 겁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가리켰다.

“그 아이가 바로 산자의 품에 있는 저 아이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한참을 얌전히 있던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우렁찬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불쌍한 아기구나.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여의고, 아니, 태어나기도 전에 어미를 여의고, 이런 염치없는 아비를 두게 되다니!’

정철의 청량한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나왔다.

“제 여동생은 인심 많은 의원이지만, 어쨌든 아가씨입니다. 부의의 신분이 있더라도, 이런 비방은 견뎌낼 수 없을 겁니다. 오늘 정가의 둘째인 제가 여기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들 제 여동생의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의원이 사람을 구할 마음을 잃지 않게끔 말입니다!”

“걱정 마세요, 둘째 공자님. 오늘 일은 우리 모두가 똑똑히 봤으니, 이 양심 없는 놈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할 겁니다!”

“그럼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정철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는 사내를 잠시 노려보더니 뒤돌아 떠났다.

“의자와 물건들을 다시 가지고 돌아가고, 문을 닫거라.”

대문이 닫히자, 어질러진 문 앞에는 어둠이 점점 짙어졌다.

사내는 떠날 수 없다는 듯 여전히 크게 외쳤다.

“나는 아내의 배를 가르지 않았어. 분명 너희 백부에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내의 얼굴로 썩은 채소와 상한 계란이 날아왔다.

어떤 사람은 회인백부의 차를 마시다가 찻잔이 정교하며 예쁘다고 생각하여 몰래 소매 속에 숨겨놨으나, 당장 흥분한 나머지 다른 물건이 없자 소매 속의 찻잔을 꺼내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은 그 사내의 이마에 부딪혔다.

사내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뿔뿔이 흩어졌다.

연극은 어둠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회인백부의 셋째 아가씨가 인심을 베풀어 갓난아기를 구한 기이한 일은 봄날 밤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 * *

정철은 염송당으로 돌아와 맹 노부인에게 일이 잘 해결되었음을 알렸다. 맹 노부인은 그제야 정미에게 하던 훈계를 그만두고 돌려보냈다.

비서거에 돌아온 뒤, 정미는 환안에게 분부했다.

“얼른 따뜻한 물 한 대야를 떠와. 손을 더 씻어야겠어!”

환안은 멍해졌다.

“아가씨, 아까 목욕하시지 않았어요?”

정미가 노려보자, 환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급히 따뜻한 물을 떠 왔다.

“아가씨, 물 가져왔어요.”

정미가 고개를 돌렸다.

청록색의 청화자기에 연화문이 그려진 세숫대야였고,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정미의 얼굴을 덮어주어 그녀의 표정을 가려주었다.

정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뜨거운 물에 넣었다.

환안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가씨, 뜨거워요!”

“뜨거운 건 괜찮아. 환안, 가서 비누를 가져와. 계화 향으로.”

환안은 곧바로 계화 향의 비누를 건넸다.

정미는 비누를 들고 손에 비볐다. 그러자 잠시 후 새하얗던 두 손이 빨개졌다.

환안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물러나며 조용히 화미에게 물었다.

“대체 아가씨께서 왜 저러시는 거람? 돌아오시자마자 목욕을 두 번이나 하시고, 지금은 정신없이 손을 씻고 계시잖아. 뜨거운 물 때문에 손도 빨개지셨는데, 얼마나 아프실지!”

화미가 가볍게 기침했다.

“너무 많이 묻지 마. 오늘 아가씨의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마음대로 하게 해드려.”

환안은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미는 두 손을 물 안에 넣고 빨개진 손을 보며 넋이 나가 있었다.

당시엔 배 속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모든 두려움과 역겨움을 뒤로 했지만, 지금에서야 그 감각이 떠올라 생각할수록 괴로운 것이었다.

정미는 조용히 수건으로 손을 닦다가, 아무래도 그 시체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 몹시 불안해했다. 그녀는 수건을 던져버리고 침상에 쓰러져, 베개를 안고 뒤척거렸다.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었다.

‘오늘 밤은 제대로 잘 수 없겠구나.’

이때, 바깥에서 환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둘째 공자님께서 오셨습니다.”

정미는 의아한 듯 일어나 앉았다.

“둘째 오라버니?”

“예, 고양이도 한 마리 안고 오셨어요.”

환안은 조금 흥분한 듯 말했다.

정미는 일어나서 외투를 걸치고 나갔다.

“들어오시라 해.”

정미가 적절히 차려입고 바깥방으로 나오자, 정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아까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고, 머리에 꽂은 벽옥 비녀는 조금 삐뚤어져 머리카락 한 올이 살쩍으로 떨어진 채였다. 늘 온화하고 자중한 정철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살짝 제멋대로인 느낌이 들게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정미는 그의 뺨에 축축한 홍조가 어린 것을 발견했다.

정미가 물었다.

“오라버니, 나갔다 왔어?”

정철의 시선은 정미의 붉은 손가락에 꽂혔고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품 안에 있는 털이 보송보송한 것을 건넸다.

“미미, 이게 뭐게?”

정미는 그제야 그 보송보송한 것에 시선이 꽂혔다. 그것은 범 무늬의 고양이였다.

평범한 색의 고양이였고,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보통 고양이들보다 조금 통통하고 얼굴이 커서 더욱 사랑스러웠다.

정미는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이 고양이, 엄청 뚱뚱해!”

그 고양이는 정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항의하는 듯 울며 불만스럽게 꼬리를 흔들었다.

“미미, 이런 고양이는 튼튼하고 키우기 좋으니까, 앞으로 네 벗으로 삼게 해줄게. 어때?”

정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중얼댔다.

“오라버니…….”

‘어쩐지 염송당에서 나오자마자 급하게 떠나더니, 고양이를 사러 갔던 거구나.’

정미는 저도 모르게 그 고양이를 꽉 껴안았고,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에 안 들어?”

정철은 뭔가 마음에 걸린 듯 말했다.

“원래 흰 털에 파란 눈을 가진 고양이를 사려고 했는데, 지금 그런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가씨가 아주 많다더라고―”

“아냐. 난 이 뚱뚱한 고양이가 좋아.”

정미가 급히 대답했다.

‘이 시간에 나가서 이런 고양이를 사온 것만으로도 이미 쉽지 않은 일인데, 어디 가서 그런 귀한 고양이를 찾을 수 있단 말이야.’

고양이의 따뜻한 털이 손에 닿았고, 고양이의 꼬리는 수시로 정미의 손등을 쓸었다.

정미는 마음속 공포심이 반쯤 사라진 것을 느꼈다.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 부드럽고 작은 친구를 안고 있을 땐 기나긴 밤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라버니, 고마워.”

그러자 정철이 따뜻하게 웃었다.

“바보야, 뭐가 고맙다는 거야.”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오라버니는 네가 아주 자랑스러웠어.”

정미는 조금 쑥스러워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사실 나도 후회하지 않아. 다음에 이런 일을 다시 마주치더라도 난 또 그렇게 할 거야.”

표정이 살짝 변한 정미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라버니, 그 부인의 배 말이야, 정말 누가 갈라놓았어?”

정철은 정미가 무서워할까 봐 잠시 망설였으나, 정미가 재촉했다.

“오라버니, 말해봐.”

정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미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뒷걸음질 치며 아무렇게나 외쳤다.

“정요일 거야!”

“미미, 그게 무슨 말이야?”

“오라버니, 정요가 한 짓이야. 분명 정요가 한 짓이라고!”

정철이 고개를 저었다.

“미미, 그 상처는 아주 깔끔했어. 누가 봐도 숙련자의 짓이었지. 정요의 행실이 평소 어떻든 간에, 이 일은 아가씨가 저지를 수 있는 짓이 아냐―”

“할 수 있어!”

정미는 순간적으로 정철의 말을 끊었고, 정철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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