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40화 (140/375)

140화. 액운

각 집안의 주인들과 하인들, 그리고 소년을 도우러 온 이웃까지, 많은 사람들 중 누가 이 말을 물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잠시 당황하더니, 급히 포대기를 열어보고는 숨을 돌렸다.

“여동생이에요!”

그러고는 그제야 정미를 쳐다보며, 갓난아기를 꼭 안고 용기 내서 물었다.

“당, 당신은 신선이신가요?”

정미의 옷섶엔 아기의 핏자국과 오물이 가득 묻어있었다. 정미는 얼른 목욕을 하며 시체를 만진 손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소년의 칭송에 눈을 부라리며 차갑게 대답했다.

“신선 아냐. 나는 그저 부의일 뿐이지.”

그러고는 정철을 잡아당겼다.

“오라버니, 나 돌아가고 싶어.”

정철은 정미의 차가운 손을 잡으며 웃었다.

“그래, 오라버니랑 같이 돌아가자.”

정철은 뒤돌아서서 한지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한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정요와 동행할 수 있음에 기뻐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정미를 두어 번 쳐다봤다.

‘정미에게 이런 능력도 있다니. 임산부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여자아이인지 남자아이인지도 알아볼 수 있다고? 세상에 이런 기이한 일이 있나!

예전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어렴풋이 떠오르는구나. 현청관의 북명진인, 그의 제자 소진진인도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하셨지. 하지만 이건 그저 경중의 소문일 뿐, 사실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정미에게서 그런 기적을 볼 줄은, 한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요는 티 나지 않게 한지를 한 번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정미, 아니면 내가 같이 가줄게.”

정미는 조금 탈진한 상태였고 정요와 실랑이할 틈이 없었기에 정색하고 말했다.

“됐어. 둘째 오라버니랑 화미가 같이 가면 돼.”

그러고는 발걸음을 돌려 조청공을 쳐다봤다.

“조 언니, 미안해. 오늘 이렇게 되어서 언니랑 산은 더 오르지 못할 것 같아.”

조청공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럼 마침 나도 조금 지쳤으니까, 같이 내려가자.”

정철이 조청공을 한 번 빤히 쳐다보며 일행이 한 사람 더 늘어나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겉으론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조청공은 정철의 따뜻하고 깊은 시선을 느끼고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정미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눈을 내리깔며 생각했다.

‘오라버니는 역시 조 언니에게 다르구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오라버니를 도와야 할까?’

하지만 정미에겐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저 저도 모르게 정요를 쳐다봤다.

‘정요도 정말 대단하다. 지 오라버니와 조 언니가 이어지는 걸 어떻게 무덤덤하게 볼 수 있지? 맞다, 정요는 태자에게 붙으려는 속셈이지!’

정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내가 있는 한, 정요는 태자와 이루어질 수 없어! 만약 태자와 이어질 길을 잃으면, 지 오라버니에게 붙으려고 하려나?’

이 생각이 떠오르자, 정미는 꽤 망설여졌다.

‘정요 같은 사람이 국공부로 시집가게 되면, 외조모와 다른 사람들을 해칠지도 몰라. 역시 안 되겠어.’

“미미, 무슨 생각 해? 너무 피곤해?”

정철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미는 창백한 안색으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피곤하긴 해. 어서 돌아가자.”

‘오라버니는 늘 대단한 사람이었으니까, 일찍이 뭔갈 생각해뒀을지도 모르지. 나는 일단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면 될 거야.’

정미와 세 사람이 산 아래로 내려갔고, 소년은 여동생을 안고 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떤 이웃이 외쳤다.

“산자, 멍하니 있지 말거라. 네 여동생은 방금 태어나 젖도 먹지 못했으니, 산바람을 이기지 못할 게다. 그러니 얼른 네 어머니를 저쪽으로 들고 가서 묻자꾸나.”

다른 공자들이 아직 충격에 빠져있는 틈을 타 이웃들은 들것을 들고 급히 떠났다.

화량과 다른 소년들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한지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 세자, 당신의 사촌 여동생에게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겁니까?”

한지는 저도 모르게 정요를 흘끗 쳐다보고는 급히 대답했다.

“화 공자, 다른 이에게 물어야 할 겁니다. 저는 사촌 여동생과 아주 오랜만에 만나 잘 알지 못합니다.”

화량은 정요를 쳐다봤다.

“그래, 이 소저가 셋째 아가씨의 언니 맞지?”

정요가 단정하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둘도 없이 청려한 외모의 정요가 웃자, 화량은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여동생도 절색이지만, 가시가 돋친 꽃이라 멀리서 보기만 해야 할 뿐인데, 언니 쪽도 이리 괜찮을진 몰랐군.’

그는 눈을 굴리더니 정동을 쳐다봤다.

‘회인백부는, 다른 건 몰라도 아가씨들은 모두 생기발랄하구나. 정말 제각각으로 아름답군.’

화량은 평범한 외모의 진령운과 정옥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너희 정가는 부의로부터 시작된 가문이라던데, 모두가 부의를 배워야 하는 건가?”

화량은 정요의 따뜻한 눈빛에 조금 망설이다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목은백부의 큰공자다. 화 귀비께서 내 고모님이시지.”

“화 공자셨군요. 저희 집안에서 부의를 배우는 사람은 정미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재능이 없어요.”

“정말 대단하군.”

정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만약 오늘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저도 몰랐을 겁니다. 태아의 성별까지 알 수 있다니요.”

이 말에 모두가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너무 신기한 일이야.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지도 못했을걸!”

그러다 황봉이라는 소년은 뭔가 떠오른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에이, 그냥 찍어서 맞춘 거 아니야? 어쨌든 아들 아니면 딸인 거잖아.”

화량이 바로 그 소년의 따귀를 때렸다.

“찍어서 맞춘 거라고? 그럼 네가 한번 해보지 그래! 정가의 셋째 아가씨가 죽은 부인을 보자마자 태아가 살아있다고 한 걸 보지 못한 거냐?”

모두가 더욱 궁금해했다.

“맞아, 정말 이상해. 어떻게 죽은 사람의 배 속에서 아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거지? 방금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쉽네!”

부잣집 도련님들은 간이 컸기에, 누군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제의했다.

“우리 따라가서 볼까? 그 정가의 셋째 아가씨가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서 태아를 꺼낸 건 아니겠지?”

이 말에 모두가 욕을 퍼부었다.

“입 다물어, 그렇게 역겹고 공포스러운 말을 하다니!”

정요는 어떤 생각에 잠긴 듯 속눈썹을 가볍게 떨었다.

한지가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존중해주며, 땅에 묻음으로써 죽은 이는 안식을 얻고 산 자는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사자위대死者爲大, 입토위안入土爲贋)’라지. 화 공자, 역시 이 일에 말려들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액운에 씌지 않게 말입니다.”

화량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에 곧바로 소란을 피울 마음을 접었다.

그렇게 두 무리는 헤어져 각자 놀기 시작했다.

부인을 묻은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갔다. 3월의 날씨는 거리에서 잡담을 나누기 좋을 때라, 이 일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차 한잔을 따르고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듣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집중해서 들었다. 까닭 없이 나타난 갓난아기가 증거가 되었기에, 이 기이한 일은 곧바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을 때, 노름판에 빠진 소년의 아버지가 마침내 돌아왔고, 그제야 아내는 없고 딸 하나만 생긴 것을 알고 대경실색하여 급히 산에 올라 새로 올린 무덤을 보러 갔다.

그는 무덤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혼비백산할 뻔했다.

너무 얕게 묻은 탓인지, 멍석으로 감싸져 있던 부인의 시신이 드러나 있었고, 상의는 살짝 말려 올라가 복부의 상처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철면피였기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부인의 시신을 말아 들고 산에서 내려갔다. 이웃들에게서 들었던 소식대로, 그는 곧바로 시신을 회인백부로 들고 갔다.

* * *

석양이 기울며 날이 저물자, 백부의 문 앞에 몰려든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다.

염송당 안, 각방의 어른들이 맹 노부인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맹 노부인은 차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됐다, 모두 돌아가서 식사를 들거라. 그리고 정요는 오늘 산에서 하루 종일 놀았으니, 너도 피곤할 테지. 남아서 나를 돌볼 필요 없다.”

정요는 연분홍색의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채였고, 맹 노부인의 말에 방긋 웃으며 말했다.

“조모님, 정요는 힘들지 않아요. 여기서 자는 게 익숙해져서, 조모님에게서 떨어지면 잠에 잘 들지 못할 정도예요.”

맹 노부인은 기분이 좋아져 웃었다.

“말도 잘하는구나.”

이때, 갑자기 앞마당의 하인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어떤 자가 시신을 백부 앞에 놓고, 셋째 아가씨께서 자신의 아내의 시신을 모욕했다며 백부에게 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아로 가겠다고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맹 노부인이 탁자를 내리치며 칼날 같은 눈빛으로 정미를 쳐다봤다.

정미도 깜짝 놀라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맹 노부인은 연신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그래, 네 이 못난 계집이 또 사고를 친 게지. 그렇지?”

이때 정철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며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모님, 당장 일이 급하니, 먼저 무슨 상황인지 묻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맹 노부인은 그제야 숨을 돌리고, 보고를 올린 하인에게 소리쳤다.

“정확히 말해 보거라!”

하인이 급히 말했다.

“그자가 말하기를,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난산으로 죽어 산에 묻혔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 백부의 셋째 아가씨를 마주쳤는데, 아가씨께서 배 속의 태아가 아직 살아있다고 하셨고, 그의 아들은 아직 어려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해 셋째 아가씨께서 태아를 꺼내는 것을 동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전 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려 했는데, 아내의 시신이 흙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배에는 큰 상처가 있었다고, 저희 아가씨께서 배를 갈라서 아기를 꺼낸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인의 말에 염송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들이켰다.

맹 노부인은 염주를 매만지며 호통쳤다.

“못된 계집, 이런 황당한 일을 저지르다니!”

사자위대(死者爲大). 죽은 자를 소중히 여기는 때였기에, 시신을 훼손한 일은 아주 악질적인 것이었다. 태아를 살려낸 공로가 있더라도, 책망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관아까지 간다면 볼기를 맞고 감옥에 가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정미는 아가씨였기에, 백부에서 그녀의 목숨은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일이 퍼져나가면 치명적인 타격이 될 터였다.

누가 감히 시체의 배를 가른 여인을 가까이 하겠는가?

정미는 맹 노부인의 책문에 갑자기 정요를 쳐다봤다.

정요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정미가 쳐다보자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 다정한 자매의 정에 정미는 오히려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고 정신이 맑아졌다.

‘당황해선 안 돼. 이 일은 아직 만회할 여지가 있어!’

정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모님, 저는 다른 사람의 시신을 모욕한 적 없습니다. 오늘 저는 조 시랑 댁의 다섯째 아가씨와 놀러 가기로 약속했고, 시신의 배를 가를 수 있는 날카로운 물건은 물론, 작은 교도마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 아기의 탯줄은 둘째 오라버니가 끊어준 거예요. 다른 사람이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만 듣고 제게 벌을 주지 말아 주세요.”

사실 맹 노부인도 이 연약한 손녀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다. 그저 정미가 쓸데없는 일에 간섭한 것에 화가 났을 뿐이었다.

그저 평범한 부인일 뿐인데, 왜 쓸데없이 배 속에서 아기를 꺼낸단 말인가?

아기를 꺼내 준 걸로 조그마한 이득도 얻지 못한 건 둘째치고, 그 천한 무뢰한에게 걸려버렸으니 더욱 난리가 날 것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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