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새 생명
“철 형님, 정미가 언제 부의가 된 겁니까?”
한지는 늘 제멋대로였던 사촌 여동생이 어떻게 한순간에 신비한 부의가 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 결국 정철에게 물었다.
정철은 한지와 왕래가 잦지 않았지만, 정미가 늘 그에게 한지의 장점을 이야기해온 덕분에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가지 일을 지켜본 결과, 점점 한지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정철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에겐 공손하고 냉담하게 대했기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딱딱하게 말했다.
“미미의 타고난 재능과 집안의 뿌리가 있으니, 부의가 되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지.”
‘어쨌든 한 세자가 원하는 답을 곧바로 알려주지 않으면 된다. 왜 내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줘야 하지? 이 못난 자식이 미미의 마음을 다치게 했으니, 내가 손봐주지 않은 것만으로 이미 고마워해야 할 텐데!’
정철의 대답은 성의 없는 편이었으나 티가 나지 않았기에, 한지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미 누님이 정말 그 시신으로부터 아이를 낳게 할 수 있는 거야?”
그때 겨우 아홉 살 된 한우가 입을 열었다.
이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이런 기이한 일에 누가 감히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 * *
같은 시각, 정미는 이미 조산부(助産符)를 만들어 머릿속에서 아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죽은 부인에게서 아이를 낳게 하는 건, 조산부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한 게 아냐. 우선 첫 번째 난관은, 부수를 어떻게 먹일 것이냐. 이건 외상을 치료하는 부수처럼 다친 곳에 뿌린다고 효과가 날 수 없어. 이미 죽은 사람은 뼈와 살이 다 경직되었기 때문에, 복부에 뿌린다고 효과가 나는 건 불가능해.」
정미는 매일 부의 이론을 배우고 있었기에, 이 점은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 만약 환자가 부수를 삼킬 수 없는 상태라면, 내 선혈을 환자의 입술에 발라서 부수가 들어가게끔 할 수 있다고 알려줬던 걸 기억해. 생각해보니 입을 열 수 없는 시신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아혜가 모처럼 칭찬했다.
「그런 잡지식도 기억하고 있다니. 아주 의외구나.」
그러고는 정미가 거만해질까 봐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럼 뭐 하러 나를 부른 거야?」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다르니까, 혹시 더 신경 쓸 게 있을까 싶어서.’
그러자 아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미에게는 들리지 않게끔 홀로만 생각했다.
「오성(*悟性: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역시 질투할만한 것이 아니구나.」
“아혜?”
아혜는 흥미가 떨어진 듯 말했다.
「드디어 좀 똑똑해졌구나. 산모의 복부를 안마하는 운지법(雲脂法)이 있는데,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둘 다 차이가 없어. 그저 방향만 반대로 하면 돼. 얼른 조산부를 먹이고, 내 지시에 따라 안마를 하면 돼.」
정미는 그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손을 들어 바늘로 중지를 찔렀고, 몇 방울의 선혈을 짜서 그 부인의 입술에 발랐다.
소년은 한시도 정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정미가 기묘한 색의 부수를 만드는 것에도 몹시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입술에 피를 바르기까지 하자 소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정미는 그에게 눈을 흘기며 꾸짖었다.
“조용히 해!”
소년은 입을 막고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를 쳐다봤다.
부인의 푸른 입술이 갑자기 붉어지며,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소년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창백한 얼굴과 차갑게 굳은 피부, 그리고 아마도 생전에 아이를 낳느라 너무 힘을 준 탓인지 눈가엔 피눈물이 굳어있는 것 같았지만, 부인의 입술이 붉어지자 봄날 끄트머리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 같았다.
정미에겐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생생하게 실감하는 일이었다.
죽은 사람의 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섬뜩했다.
정미는 자신의 선혈을 묻힌 부인의 입술을 보자, 갑자기 구토를 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아냈다.
‘나는 부의야. 환자 앞에서 먼저 토해버리면 너무 우스운 꼴 아니겠어?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까지도 나의 나약함이 미워질 거야’.
그렇다. 정미에겐 눈앞의 부인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도 그녀가 도울 수 있다면 자신의 환자였다.
아혜가 말한 적 있었다. 자신에게 기예를 계승 받은 부의는 아무 데나 나서선 안 되지만, 나서는 순간에는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한다고!
정미는 역겨운 마음을 억누르고, 손에 든 부수를 부인의 입가에 갖다 댄 후 천천히 부었다.
연분홍색의 부수가 부인의 입술에 묻은 선혈에 닿자, 마치 어떤 신비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물은 더 이상 보통의 물이 아니었고, 영혼이 있는 듯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천천히 부인의 입술 속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문득 눈을 크게 뜨고 우는 것조차 잊은 듯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부인을 가리킨 채 정신이 나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어머니께서 물을 마실 수 있는 겁니까?”
소년이 흥분했다.
“아직 살아계신 것 아닙니까?”
정미가 그를 흘겨보며 쏘아붙였다.
“꿈도 꾸지 마. 아직 살아있는 거였다면 내가 이리 힘을 쓸 필요도 없어. 아무렇게나 소리 내지 마. 방해되니까!”
정미는 손을 뻗어 부인의 높게 솟아오른 배에 이상한 궤적을 그려냈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부인의 배가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비명을 지르려다가 정미의 경고가 떠올라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빤히 쳐다봤다.
부인의 배가 점점 더 심하게 움직였고, 마치 안에서 뭔가가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됐다!”
부인의 배를 안마하는 데 집중하던 정미가 갑자기 이 두 글자를 뱉고는 명령했다.
“어서, 네 어머니의 바지를 벗겨!”
“네?”
소년이 멍해졌다.
정미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설마 또 내가 나서야 하는 거니?”
‘나는 여전히 연약한 소녀인데, 방금 한 일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시체의 바지를 벗기는 일은 절대 할 수 없어. 더 이상 억지로 버텼다간 정말 토를 할지도 몰라!’
소년은 정미의 재촉에 순간 망설인 후, 곧바로 어머니의 바지를 벗겼다.
정미가 외쳤다.
“넌 등 돌리고 있어!”
소년이 등을 돌리자, 정미가 긴장한 눈빛으로 부인의 다리 사이를 쳐다봤다.
반다경(*半茶頃: 차를 반 잔 마실 정도의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시커먼 것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미는 그것이 아기의 머리임을 알아보았다. 머리는 성인 사내의 주먹만 한 크기였다.
이런 출산 과정은 신비한 부수의 힘을 빌린 것이었기에, 보통의 출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작은 아기는 어떤 신비한 힘에 밀려 나와, 빠르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기가 차가운 들것 앞으로 완전히 나왔을 때, 정미는 손수건으로 아기를 받쳐 안아 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부의의 열세 가지 과목은 몹시 복잡했다. 정미는 태산과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태산과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미는 지금까지 주로 산모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을 공부해왔고, 태아가 태어난 후의 일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아혜, 아혜, 이제 뭘 해야 해?’
정미는 예쁘고 연약한 아기를 안고 당황스러워했다.
아혜가 귀찮은 듯 물었다.
「울었어?」
‘안 울었어!’
아혜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어서, 아기를 거꾸로 들고 등을 살짝 쳐봐! 울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정미가 급히 아기를 거꾸로 들고 등을 여러 번 쳤고, 그제야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소년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내 여동생, 내 여동생이 태어난 건가요?”
“그래.”
정미는 소년의 기쁨과 불안이 뒤섞인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그제야 자신도 그 기쁨을 느낄 수 있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혜의 한마디에 웃음기가 굳어버렸다.
「얼른 탯줄을 잘라!」
정미는 아기를 품에 안고 관찰하며 아혜에게 물었다.
‘아기의 배꼽에 이어진 이상한 끈을 말하는 거야?’
「그래! 자르고 매듭을 지어.」
정미는 손발이 뻣뻣해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떻게 묶는지는 둘째치고, 지금 교도(*交刀: 가위)조차 없는데 탯줄을 어떻게 자르란 거야?’
도움이 필요해진 소녀는 가장 친한 사람을 떠올렸다.
정미가 크게 외쳤다.
“둘째 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
멀리 피해있던 사람들은 이미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상태였고, 정미의 외침에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중 정철은 여동생의 부름에 발바닥에 불이 난 듯 가장 먼저 도착했다.
정미는 정철을 보고 한숨 돌린 듯 말했다.
“오라버니, 어서 이리 와봐.”
정철은 근처로 다가왔고, 갓난아기를 발견하자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미미, 정말 잘했어.”
정미는 뿌듯해할 여유가 없었고, 급히 도움을 구했다.
“오라버니, 이 아기의 탯줄을 잘라야 하는데, 교도가 없어. 어떡하지?”
정철은 잠시 당황하더니 여동생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약해졌다.
‘겪어본 적 없는 이야기도 책으로 지어내는데, 탯줄 하나 자르는 것도 못 할까?’
정철은 마음속의 불안을 꽁꽁 숨긴 채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침착하게 품에 소지하고 있던 비수를 꺼냈다.
그런데 정미가 급히 막아섰다.
“오라버니, 이 비수는 평소에 피를 묻혔던 거잖아. 소독도 하지 않았는데, 쓸 수 없어!”
정철의 웃음이 굳더니 속으로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딸도 아닌데, 탯줄 자르는 걸 왜 내가 해야 하는데…… 게다가 맨손으로!’
“오라버니―”
소녀의 나긋한 목소리에 정철은 가볍게 기침하고는 단념하고 손을 뻗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따뜻하고 매끄러운 탯줄에 닿자, 정철은 이상한 느낌을 참으며 힘을 주었고, 이내 탯줄이 끊어졌다. 미지근한 액체가 정철의 손가락에 튀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정철은 가볍게 한숨 쉬고는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고, 정미가 손을 뻗는 것을 보고는 급히 물었다.
“미미, 뭐 하는 거야?”
“매듭을 묶어야 해.”
정철이 정미의 손을 막았다.
“내가 할게.”
정미는 멍해졌다.
‘오라버니가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정철은 이런 순간에 정미의 찬양하는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았다.
‘태아의 탯줄을 자르는 일 따위 나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고!’
상황을 잘 정리했을 때쯤,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미가 화미에게 명령했다.
“어서 방석과 수건을 가져와.”
그것들은 답청을 나올 때 꼭 챙기는 물건들이었다.
화미가 얼른 물건을 건넸고, 정미는 서툴게 아이를 싸서 소년에게 건넸다.
“자, 잘 안고 있어. 돌아간 뒤에는 젖동냥을 꼭 해야 해. 만약 없으면, 타락(*駝酪: 우유)도 괜찮아.”
소년은 혈육을 품에 안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누군가 물었다.
“남자아이야, 여자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