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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38화 (138/375)

138화. 살아있는 태아

‘저 부인은 이미 죽은 것이 분명한데, 왜 미간에 어두운 빛이 은은하게 흐르며 아직 살아있는 것 같지?’

정미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고, 그 부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미미.”

정미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본 정철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한지와 몇몇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 화량 일행을 막고 있었다.

“한 세자, 이런 쓸데없는 일에도 참견하는 겁니까?”

화량이 정요와 다른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렇게 많은 여동생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이런 재수 없는 일을 마주쳐도 화나지 않는다고요?”

한지가 공수했다.

“화 공자, 관용을 베풀 수 있을 땐 베풀어야 마땅하지요. 다른 이들이 나들이의 흥을 깨트렸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소년의 처지는 확실히 가련하지 않습니까.”

“가련하다고?”

화량이 차갑게 웃었다.

“가련한 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이 몸을 재수 없게 했으니, 그냥 보내줄 순 없습니다!”

화량은 후궁을 다스리는 귀비를 고모로 두고 있기에, 평소 또래 공자들은 별로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저 작은 패왕 정도에게만, 얻어맞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도였다.

“너희 모두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냐. 어서 이 시체를 멀리 들고 가거라.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여기 있는 도련님들 중 누가 시체를 들어봤겠는가.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결국 곰에게 팔을 물렸던 소년인 황봉이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멍하니 서서 뭐 하느냐, 화 공자의 명령을 듣지 못했나? 얼른 와서 사람을 들고 가!”

“예, 예!”

주인들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사동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저리 가!”

상복을 입은 소년은 미친 짐승처럼 몸을 구부린 채, 가장 먼저 다가온 사동에게 돌진했다. 부딪힌 사동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이 개자식, 죽을래!”

그 사동은 일어나서 소년을 발로 걷어찼다.

다른 사람들은 곧바로 들것을 들러 갔다.

“멈춰!”

그때 소녀의 목소리가 높게 울렸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동작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봤다.

정미가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왔다.

정철은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아무 말 없이 정미의 뒤를 따랐다.

“너―”

화량은 정미의 얼굴을 알아보고 곧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저도 모르게 두 다리를 벌벌 떨었다.

“주인님, 왜 그러십니까?”

사동이 주인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급히 다정하게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화량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정미를 주시했다.

사동은 정미를 보자마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규수이긴 하지만, 주인님의 다리가 풀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정미는 화량을 한 번 힐끗 쳐다본 뒤 그를 지나쳤고, 들것 앞에 멈춰서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정미가 부인의 아주 가까운 곳에 쭈그려 앉은 것이었다.

“미미―”

줄곧 담담하게 일관하던 정철도 이상하단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정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잠시 그 부인을 살펴보다가, 차츰 시선을 내려 높이 솟은 흰 천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손을 들어 부인을 덮고 있는 흰 천을 젖혔다.

“뭐 하는 거야!”

소년이 크게 외치자 정철이 담담하게 소년을 응시했다.

소년은 정철을 보자마자 잠시 멍해지더니, 그를 알아본 듯 중얼거렸다.

“은인님, 당신이었군요…….”

소년은 정철을 보다가 다시 정미를 쳐다봤다. 아마 그날 이 공자의 옆에 서 있었던 소녀임을 알아본 듯, 소년은 이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나 그녀가 어머니의 시신을 다치게 할까, 시선은 계속 정미를 따라갔다.

정미는 높게 솟아오른 부인의 배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손을 들어 부인의 배를 눌렀다.

사람들 모두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타고난 겁쟁이인 정동은 이를 보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고는 귀신을 본 듯 정미를 다시 쳐다봤다.

‘시, 시체를 만지다니, 나와 싸웠던 손으로 시체를 만지다니!’

‘너무 역겨워!’

정옥과 한우 등 나이가 조금 어린 아이들도 깜짝 놀라 눈을 가렸다.

화량은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고 이빨을 덜덜 떨어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화량은 아직도 언젠가 더욱 분발하여 정미를 취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얻어맞은 걸 헛되이 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미가 사람을 때리는 것 외에 시체를 만지는 짓까지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취미는 화량도 견딜 수 없었다!

“미미,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정철이 쭈그려 앉아서 정미의 다른 쪽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미미를 잘 알고 있어. 이렇게 어린 소녀가, 시체를 만지는 걸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역시, 소녀의 부드러운 손은 눈처럼 차가웠고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정철은 저도 모르게 정미의 손을 꽉 쥐었다.

정철의 손은 길고 컸으며 뼈마디가 또렷했고, 손바닥에는 평소 무술을 연습하느라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익숙한 거친 손에 정미는 마음이 놓인 듯 잡힌 손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다.

정철의 생각이 맞았다. 열네 살의 소녀에게 낯선 시체를 만지는 일은 당연히 무서운 일이었다.

정미는 온몸에 휘몰아치는 공포에 피가 마르는 듯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미도 시체를 만지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부터 다시 악몽을 꿔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무섭다고 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정미의 평온하고 침착한 모습만 본다면, 정미가 차가운 시체를 만지는 것이 아니라 기절한 사람을 만지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의 발밑에서 한기가 솟아올랐다.

‘설마, 정미가 귀신에 들린 건가?’

“정미, 그러지 마. 그동안 의관에서 열심히 진료를 본 건 알지만, 이러면 안 돼―”

정미는 고개를 들어 그런 말을 하는 정요를 무섭게 훑어봤고, 소년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아직 살아있어!”

예상치 못한 말에 사람들은 모두 떠들썩해졌다.

“뭐, 뭐라는 거야?”

화량은 다리가 더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사동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말을 더듬었다.

“저 시체의 배속의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고 하십니다!”

산비탈엔 적막이 흘렀고, 높은 지대에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정미는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줬는지도 생각하지 못한 채, 야윈 소년을 빤히 쳐다봤다.

“내가 네 여동생을 꺼내는 걸 동의할 거니?”

소년은 멍하니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했고, 소년의 이웃들이 입을 열었다.

“산자(山子)야, 안 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네 어미는 숨을 거둔 지 몇 시진이나 지났다. 배속의 아이도 처음엔 살아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미 죽었을 거다!”

“아니, 이 부인은 원래 가사상태였고, 숨을 거둔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어. 그래서 배속의 아이도 지금은 살아있지.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면 아이의 목숨도 확실치 않아!”

정미가 크게 외치고는 다시 소년에게 물었다.

“얼른 말해. 살릴 거야?”

소년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쯤이었고,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사방을 둘러보다가, 정철을 발견하자 갑자기 왠지 모르게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소년은 정미와 시선을 마주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살리겠습니다. 제 여동생을 살려주세요!”

소년의 말에 정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정철을 쳐다봤다.

“오라버니, 사람들을 멀리 떨어트려 줘.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건 좋지 않아.”

“알았어.”

정철은 걱정스럽게 정미를 쳐다보다가, 그녀의 확고하고 밝은 눈동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 저기 가서 기다려. 조 아가씨, 정요, 정동, 너희도 날 따라와.”

정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둘째 오라버니, 정미를 도울 게 있을지도 모르니 남아있고 싶어…….”

그러자 정철이 담담하게 정요를 훑어봤다.

“너희 같은 아가씨는 이런 일에 나설 필요 없어.”

정요는 멈칫하다가 참지 못하고 정미를 쳐다봤다.

“하지만 정미는―”

정철은 모두를 한 번 둘러보고는 대답했다.

“정미는 부의야. 의료인은 부모의 마음을 가지는 법이니, 당연히 다르지.”

정요가 몰래 이를 갈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오라버니 말이 맞아. 오라버니 말을 들을게.”

정철이 발걸음을 떼고 먼 곳으로 향하자, 한지와 다른 사람들이 따라 걸으며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연신 정미를 쳐다봤다.

정철이 화량을 지나칠 때, 걸음을 멈추고 예의 바르게 물었다.

“화 공자는 안 가십니까?”

화량은 사실 조금 무서웠지만, 이렇게 가버리면 체면이 서지 않다고 생각해 목을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내가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아는 건가?”

‘고작 백부 출신 주제에, 세자도 아니면서 감히 내게 명령한다고?’

정철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봄바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럼 화 공자께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화량은 당황했다.

‘더 물어보지 않는 거야? 이러면 안 되지!’

이때 정철이 고개를 돌려 한지에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부인이 출산하는 일은 불결한 일이니, 사내는 피하지 않으면 불운이 닥칠 거라 말하던데. 이미 죽은 부인의 출산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한지는 눈살을 찌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나도 모릅니다. 아마도 더 재수 없지 않을까요?”

‘대체 정미는 언제 부의가 된 거야? 이미 죽은 사람의 배 속에 있는 태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설마 전에 산에서 사냥을 했을 때, 정미가 화량과 황봉을 치료하며 사용했던 신비한 부수도 직접 만든 건가?’

여기까지 생각한 한지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정미를 바라봤다.

기억 속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진 소녀가 죽은 부인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몸을 숙이고 고개를 돌려 소년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한지는 순간 멍해졌다.

‘저 사람이 정말 정미라고?’

한지는 정미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 것에 놀라워하다가, 뒤돌아보는 순간 정요의 멍한 표정이 보이자 눈살을 찌푸리고 가볍게 기침했다.

한지는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따뜻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요는 그에게 온화하게 웃어 보이고는 자신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지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정요는 눈을 내리깔고 입꼬리를 씰룩였다.

‘한지와 지나치게 엮이고 싶지는 않지만, 한지가 다시 정미를 새롭게 보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소꿉친구라― 하하.’

정철 일행이 점점 자리를 떠나자, 화량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따라나섰다.

“화 도련님?”

화량의 무리가 의아해했다.

‘화 공자를 위해 여기서 꾹 참고 버티고 있었는걸. 안 간다고 하지 않았나?’

화량이 매섭게 그들을 노려봤다.

“변소가 급하다!”

“아.”

그들은 알았다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화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를 갈며 말했다.

“다들 가만 서서 뭐 하는 거야? 따라오지 않고!”

‘정말 다들 멍청하구나. 이렇게 가까이 있다가 불운이 씌면 어쩌려고! 매일 같이 어울려 지내는데, 나에게까지 옮아선 안 되지!’

화량의 말에 소년들이 발을 들자, 그들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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