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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33화 (133/375)

133화. 속상함

한지는 정철의 눈빛에 오싹해졌고, 제 품에 있는 정요가 더욱 가련해 보였다.

‘최근 정미가 철이 좀 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렇게 난폭할 줄 몰랐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철이 형님은 정미를 감싸다니, 정요가 평소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낼지 눈에 훤하다.’

“정요, 괜찮아? 아프지 않고?”

정요는 계속 얼굴을 감싸고 있다가, 그제야 겨우 목소리를 내 대답했다.

“괘……, 괜찮아요…….”

정요는 한지를 밀치고 셋째 나리에게 물었다.

“셋째 숙부님, 붓기와 멍을 빼는 연고가 있을까요? 바르고 싶어요.”

셋째 나리는 제생당에 온 첫날부터 이 꼴이 된 조카를 보며 한숨 쉬었다.

“있다. 숙부가 가져다주마. 요야, 너도 들어가서 쉬거라.”

정요가 손을 내리자, 빨갛게 부어오른 뺨이 드러났다. 정요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급한 건 아니니 약동에게 시키면 됩니다. 어서 들어가서 환자가 어떤지 살펴보세요.”

셋째 나리가 정요를 빤히 쳐다보다가, 여전히 단정하고 예의 바르며 분노도 원망도 하지 않는 정요의 모습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그러마.”

셋째 나리는 당장 그 젊은 부인이 가장 마음에 걸렸기에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정요, 네가 쉬는 방이 어디에 있어? 내가 데리고 가줄게.”

한지는 부어오른 정요의 뺨을 보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당시 가만히 보고만 있어 정요를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무능함을 깊이 원망했다.

정요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 오라버니,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오늘 처음 의관에 온 것이라, 아직 쉬는 방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쉬어야 할 필요도 없고요. 이따 연고를 바르면 돼요.”

“그럼 우선 대청에 가서 앉아 있어. 여기 서 있지 말고.”

“네.”

잠시 후, 약동이 연고를 가져왔고, 정요가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지 오라버니, 세손, 일단 나가주실 수 있을까요? 약을 바르려고요.”

한지는 뭔가 덧붙이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그에게는 당연히 도울 방법이 없었다. 이 의관에는 정미와 정요를 제외하면 다른 여인이 없었기에, 그저 정요 자신이 약을 바를 수밖에 없었다.

한지는 또 마음이 아파 와 부드럽게 당부했다.

“정요, 조심하고 만약 도저히 안 되겠으면 나……, 우리를 불러.”

“네, 알겠어요.”

한지는 방에서 나와 복도에 가만히 서 있더니, 손을 들어 벽을 세차게 내리쳤다.

“한지, 뭐 하는 거야. 아프지도 않아?”

늘 진중한 한지가 뜻밖의 행동을 하자, 용흔이 당황하며 물었다.

한지는 이를 갈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용흔은 저도 모르게 복도 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미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정미’ 두 글자에 한지가 분노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정미 얘기를 해!”

용흔은 불쾌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정미가 기절했는데 물어보는 것도 안 돼?”

만약 정미를 데려간 사람이 정철이 아니었다면, 용흔은 벌써 정미에게 가보았을 것이다.

“못난 계집이 정요를 때려서 네 마음이 아픈 거 알아. 하지만 얼굴이 부은 건 그저 보기 싫은 것뿐이지만, 기절은 더 심각한 일이야. 근데도 조금도 못난 계집을 걱정하지 않다니, 그 아이는 네 친사촌동생인데!”

용흔도 처음엔 정미가 사람을 때린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한지의 모습을 보니 왠지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당연히 작은 패왕의 마음속 저울은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더욱 기울기 마련이었다.

만약 방금 정요가 정미를 때렸다면, 기절한 사람이 정요라고 해도 달려들어서 주먹으로 되갚아주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당연히 한지에게 알려주지 말아야지.’

한지는 용흔의 말에 잠시 당황하더니 더욱 분노했다.

“친사촌동생인 게 뭐 어때서? 만약 내 친동생이었어도 이렇게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다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그러고는 용흔을 한 번 쳐다보고 차갑게 웃었다.

“용흔, 네가 정미를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어. 하지만 시비를 가리지 못해선 안 되지! 계속 감싸 돌기만 해서 정미에게 좋은 게 뭐가 있겠어? 그럼 네 어머니의 눈에 들 수 있을까? 부모님의 허락이 없으면, 설마 첩으로 삼으려고?”

“닥쳐!”

용흔은 어찌하여 어머니가 정미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숙하고 성난 모습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돈도 세력도 없는 한미한 집안의 아가씨라도 다 괜찮지만, 정미만은 안된다고 했던 것이다.

‘이미 충분히 답답한데, 한지마저 내 속을 긁다니!’

“시비를 가리지 못한 것인지는, 정미가 깨어난 뒤에 다시 말하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왜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굳이 정요를 때렸을까?”

용흔이 강경하게 말했다.

‘만약 못난 계집이 그저 정요가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고 해도 깨어난 뒤에 얘기하자고! 지금 굳이 찔려 할 필요 없지!’

“너, 억지를 부리다니!”

한지가 화가 나서 소매를 뿌리치려 하는데, 정요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천으로 부은 뺨을 가리고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진한 연고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정요, 좀 괜찮아?”

“괜찮아요. 지 오라버니, 세손, 정미를 보러 가고 싶어요.”

한지는 매우 놀라 되물었다.

“뭐? 정요, 너―”

정요가 웃었다.

“저는 그저 외상이라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정미는 까닭 없이 기절했으니,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한지는 여전히 망설였으나, 용흔은 이미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럼 어서 가보자.”

세 사람은 그렇게 방문 앞에 도착했고, 정철의 들어오란 말이 들리자 그제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셋째 나리가 침으로 정미의 인중혈을 찌르고 있었다. 잠시 후, 정미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더니 마침내 깨어났다.

“미야, 깨어났느냐?”

정미는 그 부인을 구하느라 피를 너무 많이 쓴 탓에 여전히 안색이 창백했다. 그녀가 이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셋째 숙부님, 그 부인은 잘 모셔두었나요?”

셋째 나리는 그제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걱정 말거라.”

“그럼 됐습니다.”

정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제야 다른 사람을 둘러보았다.

“정미, 일어났으면 다행이다. 다들 계속 걱정했는걸.”

정미가 쳐다보자, 정요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한지는 무의식적으로 정요를 붙잡았고 경고하듯 정미를 바라봤다.

정미는 그저 한지의 표정이 유난히 웃기다고 생각하다가, 시선을 거두며 깜짝 놀랄만한 말을 내뱉었다.

“둘째 언니, 왜 부인을 해친 거야? 그 부인은 내가 심혈을 다 기울여서 살려낸 사람이야! 그 부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생당의 백 년 동안의 명예가 모두 물거품이 된다고!”

그러자 정요의 눈시울이 곧바로 붉어졌고, 정요는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꾹 참았다. 따듯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눈빛에 정요가 더욱 가련해 보였다.

“정미,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정요는 고개를 돌리며 울음을 삼켰고, 그러자 뺨을 가렸던 천이 풀려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정요는 천을 줍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정미를 마주 봤다.

“나는 그 부인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해칠 리가 있겠어? 정미, 최근 내게 응어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자매 사이가 틀어진 것은 작은 일이라, 금방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친자매 사이에 하룻밤을 넘기는 원한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죄를 내게 씌워선 안 돼. 나, 나는 정말 감당할 수 없어―”

정요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어깨를 들썩였다.

한지는 정요의 어깨를 토닥이며 불쾌한 듯 정미를 바라봤다.

“정미, 너와 정요는 친자매야. 정요는 네 언니라고.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하면 되지,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어? 방금 밖에서 의관으로 급히 돌아와 놓고선, 정요가 그 부인을 해쳤다고? 그런 도리가 어디 있어?”

“한지.”

정철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정철의 목소리는 흐르는 샘물처럼 청월하고 따뜻하여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정철은 어린 시절 노위국공에게 창을 배웠기에, 자주 위국공부를 드나들었다. 한지와 교류가 많진 않았지만, 그는 정철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꽤 자주 목격했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양손의 피부가 벗겨졌음에도 창법을 백번이나 연습한 뒤에야 멈추던 정철의 모습이었다. 두 손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조부님께 혼이 났지만, 다음날에도 그대로 와서 연습을 했다.

때문에 한지는 정철이 자신의 고모가 낳은 친사촌 형님은 아니라지만, 늘 경복과 미묘한 질투가 뒤섞인 감정을 느끼곤 했다.

‘조부님이 철 형님이 고모네 아들이 아님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야. 철 형님이 고모네 아들이었다면 우리 가문의 창법이 한 단계 더 높아졌을 거라 하셨지.’

정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지, 정미와 정요 사이의 일은 본인들에게 듣지. 잘못한 사람에겐 오라버니로서 잘 가르칠 테니, 안심하렴.”

한지는 꽤 난처해하며 말끝을 흐렸다.

“철 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정철은 완곡하게 말했지만, 뜻은 분명했다. 한지가 정요와 정미는 친자매라고 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당연히 친오라버니가 교육하는 게 맞았다. 사촌 오라버니인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었다.

한지는 국공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세자에 책봉되었기에 눈치가 아주 빨랐다. 정철과 정가의 셋째 나리가 있는 자리에서, 그가 우선 발언할 수는 없었다. 방금은 그저 저도 모르게 좋아하는 사람을 감싼 것뿐이었다.

정철의 잔잔하고 따뜻한 말투에 한지는 그렇다는 대답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오라버니.”

정미는 정철에게 웃어 보였고 그제야 차갑게 얼은 마음에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철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천천히 말해. 힘들면 더 쉬고.”

정철의 말투는 방금 일어난 일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담담했다.

정요는 속으로 화를 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정미는 정요를 보며 냉소했다.

“둘째 언니가 벌인 일이면서, 감당할 수 없다고 하다니. 정말 우스워!”

“정미, 왜 계속 내가 그 부인을 해쳤다고 하는 거야?”

정요가 셋째 나리를 쳐다봤다.

“셋째 숙부님, 아시잖아요. 저는 계속 책을 읽고 있었어요.”

셋째 나리는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다.

봐야 할 환자가 많았기에, 정요가 계속 책을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조카가 부인을 해쳤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건 둘째 치고, 그 부인의 남편이 계속 방에서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요가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 안에 부인의 몸에서 피가 흐르게 했다면 들키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가 아는 정요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릴 아이가 아니었다.

셋째 나리가 가볍게 기침했다.

“아마 무슨 오해가 있는 듯한데―”

정미는 조소를 내뱉고는 정요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둘째 언니, 사람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면 그 방에는 왜 들어간 건데?”

확신에 찬 정미의 말에 정요의 표정이 굳었고 단호하게 부정했다.

“들어간 적 없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정요는 확고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언제 내가 그 방에 들어간 걸 봤다는 거야? 회임한 부인과 부인의 남편이 지키고 있는데 들어가서 뭐 하려고? 그런 주장을 하려면 증거가 있어야지!”

정미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말 들어가지 않았다고?”

“그래!”

“알았어.”

정미는 피곤함을 애써 참으며 셋째 나리에게 말했다.

“셋째 숙부님, 죄송하지만 그 부인의 남편을 데려와 주세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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