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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32화 (132/375)

132화. 분노하여 때리다

소녀는 다시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고, 이 귀공자가 짜증이 난 것 같자 결심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저를 구해주셨으니 좋은 분이시겠지요. 좋은 마음을 끝까지 베풀어주시고, 저를 데려가 주세요.”

용흔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급히 정미를 흘끗 쳐다보고는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소녀가 쭈뼛대며 말했다.

“제겐 공자의 은혜를 갚을 능력이 없으니, 앞으로 공자의 곁에서 모시며 짝이 되어드리고 싶습―”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용흔이 펄쩍 뛰었다.

“닥쳐!”

그는 정미를 보지 않으려고 꾹 참으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소녀를 노려봤다.

“어찌 이리 배은망덕한 것이냐!”

소녀는 당황했다.

‘왜 이 귀공자는 연극 속의 귀공자들과 다른 거지?’

“내가 선의로 너를 구해줬더니, 감히 너를 끝까지 책임지라 요구하는 것이냐? 뭐가 짝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지! 정말 웃기구나. 우리 왕부에선 바닥을 쓰는 여종들조차도 세심하게 교육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지. 그런데 너는 곧바로 나의 짝이 되어 모시려고 한다니, 그렇게 날로 먹는 도리가 어디에 있느냐!”

“공, 공자님…….”

소녀는 멍해졌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그저 얼굴을 가리고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를 데려가지 않으신다면, 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요…….”

용흔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여봐라!”

덕승루의 머슴은 이미 이 나리의 신분을 알았기에 서둘러서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명령하십시오.”

용흔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방금 이 아가씨를 겁탈하려던 사람이 누군지 너는 알고 있겠지?”

“압니다, 알지요.”

머슴은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기에, 그 사람의 신분은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용흔도 자세히 알긴 귀찮은 듯 입을 삐죽였다.

“알면 됐다. 어서 가서 그자에게 알려라. 방금 내가 잘못 건드린 듯하니, 어서 이 규수를 데리고 가라고!”

용흔의 말에 모두가 당황했다.

작은 패왕의 상식을 벗어난 발언에, 노래하던 소녀는 놀라 달아났다.

“형님, 정미, 위로 올라가자.”

정미가 정철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흰 이미 먹었습니다. 저는 장공주부에도 가야 하니, 올라가지 않겠어요.”

정미는 한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우둔했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요에게 어리석게 굴었던 것까지 떠오르게 했다.

정철은 당연히 정미를 작은 패왕에게서 떨어트려 놓고 싶었기에, 용흔이 만류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저도 정미를 배웅하러 가보겠습니다. 세손, 다음에 같이 술이나 한잔하지요.”

용흔은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정철만은 조금 두려워했기에 정철의 말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못난 계집이 없다면, 나도 정가의 둘째 형님과 같이 술 마실 생각이 없다고!’

정철의 얼음 같은 표정을 살피며, 용흔은 감히 정미에게 상사절에 만나자고 얘기를 꺼낼 수 없었고, 아쉬운 눈으로 남매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못난 계집을 만날 줄 알았더라면 여동생을 데리고 올걸. 여동생이 상사절 얘기를 꺼냈다면 못난 계집이 분명 승낙했을 텐데.’

용흔은 의기소침한 채 상 옆에 앉아서 차를 마셨고, 아무 생각 없이 밖을 힐끗 쳐다보다가 멍해졌다.

정철과 정미가 거리에서 하인의 차림을 한 사내에게 붙들려 있던 것이다. 용흔이 앉아있는 자리에서는 그 하인의 초조하고 황공한 표정이 아주 잘 보였다.

그리고 정철은 정미를 데리고 급히 달려갔다.

용흔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 공자님, 아, 아직 돈을 내지 않으셨는데요!”

머슴은 쫓아가려다 엄두가 나지 않아 용기를 내서 외쳤다.

용흔을 따라온 호위가 은 조각 하나를 머슴에게로 날려 보냈다.

머슴이 받은 은 조각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고, 아까 망가진 상과 의자를 고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머슴은 기뻐하며 주인에게 보고하러 갔다.

“용흔, 어디 가?”

용흔이 막 쫓아 나가려는데 마침 한지가 들어왔고, 두 사람은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한지가 용흔을 붙잡고 묻자, 용흔이 다급하게 말했다.

“방금 정가의 둘째 형님과 정미가 저기 서서 어떤 하인과 뭔가 얘기를 나누더니, 급하게 저 방향으로 달려갔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봐 따라가 보려고.”

한지가 급히 물었다.

“어느 방향?”

“저쪽!”

용흔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지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쪽은 아마도 회인백부의 제생당 방향일 거야. 정미가 최근 계속 제생당에 있었잖아. 의관에 무슨 일이 난 것 아닐까?”

정미가 젊은 부인을 살린 일은 이미 백성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그 부인의 출신이 평범한 탓에 상류층에는 아직 이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가서 보면 알겠지!”

두 사람은 급히 제생당으로 향했다.

* * *

“미미, 오라버니가 업어줄게.”

정미가 숨을 헐떡이자, 정철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제생당에서 나올 때는 시간이 여유로웠기에, 천천히 걸어서 운상의까지 왔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급한 상황에서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마부를 찾느니 뛰어가는 게 더 빠르다고 판단했다.

“아니야, 다……, 다 왔으니까…….”

정미는 초경 이후 점점 사리 분별을 잘하게 되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대낮에 오라버니에게 업혀 거리에서 달리는 일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오라버니와 아무리 친하더라도, 어……, 어쨌든 사내니까.’

정미는 저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지금의 거절은 완전히 본능적인 부끄러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정미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고, 정신을 차려봤을 땐 정철의 등에 업힌 채였다.

“오라버니?”

놀라고 부끄러운 와중에 정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정미는 이미 열네 살이었고, 목소리는 점점 어린아이의 낭랑함을 벗고 여인의 교태스러움이 생겨났던 바였다.

정철이 잠시 멈칫하더니 더욱 속도를 높였다.

“미미, 사람을 구하는 건 급한 일이야. 체력을 비축해야 해.”

정미는 정철의 등에 업혀 입을 뻐끔거리다가 다물었다.

‘방금 오라버니의 말은 내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것이었구나…….’

점심때라 길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호기심에 두리번거렸다.

정미는 행인들의 뜨거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고, 고개를 숙여 정철의 어깨에 얼굴을 숨겼다.

“미미, 걱정 마. 제때 가면 부인에게 아무 일 없을 거야.”

정철은 정미를 업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아무 부담이 없는 듯 여전히 따뜻하고 맑았다.

익숙한 위로의 목소리에 정미는 갑자기 마음이 놓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라버니, 나는 두렵지 않아. 힘들면 나를 내려줘도 돼.”

“거의 다 왔어.”

제생당에 거의 도착했을 때, 정철은 정미를 내려주었다.

정미는 정철의 등에서 내려오며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빨리 도착했다고? 오라버니는 나를 업고 있으면서도 흑마보다 빠르네!’

정미는 다급하게 치맛자락을 들고 제생당으로 향했다.

셋째 나리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었고, 정미를 보고 그제야 홀가분한 듯 말했다.

“미야, 와줬구나. 어서, 어서 가보거라!”

“셋째 숙부님, 무슨 일이에요?”

“모르겠다. 방금 그 부인의 남편이 갑자기 달려 나오더니 부인이 또 피를 흘린다고 하길래, 내가 들어가서 살펴보았다. 심상치 않은 것 같더구나.”

“그럴 리 없어요!”

정미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단호하게 부정했고,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셋째 숙부님, 누가 이 안에 들어간 적 있어요?”

“없을 거다. 일찍이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해놨고, 그 사내는 계속 방 안에서 지키고 있었는걸.”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부인이 있는 곳에 도착했고, 안에서 사내의 고함이 들려왔다.

정미가 방에 들어가자, 사내가 곧바로 달려 나왔다.

“신의님, 어서 봐주세요. 제 아내가 또 피를 흘립니다. 아이를 살릴 수 없는 겁니까?”

사람들에게 있어,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것을 재차 잃어버리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기 마련이었다.

“시끄럽게 굴지 마세요. 제가 볼 테니.”

정미는 부인의 곁으로 다가갔고, 피로 물든 치맛자락을 흘끗 보고는 부인의 얼굴을 살피더니 안색이 변했다.

“신의님, 어떻습니까?”

“나가!”

정미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고 도와줄 환안이 없었기에 방해가 되는 유모를 곧바로 벗어던지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셋째 숙부님,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오지 않게 하세요!”

사내가 소란을 피우자, 정미는 그 사내를 흘겨보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상 소란을 피웠다간, 돌이킬 방법이 없을 겁니다!”

갑자기 정미의 얼굴을 본 탓인지, 사내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차가운 말투에 멍해졌다.

그가 잠시 멍해진 틈을 타 머슴이 그를 끌고 나갔다.

방문이 쾅 하고 닫혔고, 모두가 문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일분일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고, 날카로운 화살처럼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잠시 뒤, 한지와 용흔이 쫓아 들어왔다.

이와 동시에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정미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조금의 혈색도 없었고, 슬프고 굳은 표정이었다.

사람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미야, 환자는…… 어떻게 되었느냐?”

셋째 나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미는 힘없이 문틀을 짚고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정요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정요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고, 정미와 눈이 마주치자 물었다.

“그래, 정미야. 환자는 어떻게 되었어?”

정미는 정요를 보며 얇은 입술을 꾹 다물더니, 갑자기 손을 높게 들어 정요의 뺨을 내리쳤다.

정미의 거센 따귀에 정요의 왼쪽 뺨이 곧바로 부어올랐고 입가엔 피가 흘렀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정요!”

좋아하는 사람이 까닭 없이 얻어맞아 처참한 모습이 되자, 한지는 비틀거리는 정요를 급히 부축했다.

정요는 어지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지의 팔에 기대어 몸을 떨었다.

한지는 마음이 아파 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정미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엔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정미,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찌 아무 이유 없이 정요에게 화풀이를 할 수 있어?”

정미의 눈은 안개가 서린 듯 초점이 없었고, 한지의 꾸짖음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멀리 셋째 나리를 흘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환자는 괜찮습니다.”

그러고는 말을 마치자마자 뒤로 넘어가 버렸다.

기절하는 순간 정미는 생각했다.

‘방금 따귀에 힘을 너무 써버렸구나.’

“못난 계집―”

용흔은 정미가 일말의 정도 없이 정요의 따귀를 때린 것에 깜짝 놀라있었지만, 정미가 기절하는 것을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철이 이미 정미를 받아든 상태였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셋째 숙부님, 미미를 데리고 들어가 쉬게 하겠습니다.”

셋째 나리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가거라. 정미는 아마도 탈진한 것 같으니, 이따 인삼탕을 끓여서 보내라 하마.”

“예.”

정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지를 훑어보고는 정미를 안고 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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