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31화 (131/375)

131화. 소란스러운 식사

서가복은 그 여윈 소년을 흘끗 훑어보고는 꾸짖었다.

“좀도둑아, 얼른 훔친 돈을 내놓지 않고!”

정미는 그 소년의 눈에 절망이 스쳐 가더니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가복 언니, 그냥 둬. 돈을 뺏긴 사람도 떠났는데, 누구한테 내놓으라는 거야?”

서가복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정미의 옥 같은 이마를 살짝 눌렀다.

“바보야, 당연히 네 둘째 오라버니한테 내놓으라는 거지.”

정미는 미백부를 마신 뒤로 피부가 아주 연해졌기에, 서가복이 갑자기 이마를 누르자 곧바로 붉은 자국이 나타나며 눈에 띄었다.

붉은 자국이 미인의 이마에 나타나니 귀엽고 가련해 보이게 만들었지만, 정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철은 마음이 아파 와 말투가 더욱 차가워졌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준 돈이니 돌려받을 생각도 없고요. 서가 아가씨께서 마음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

서가복은 정철의 냉담한 표정이 정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는 정철에게 돈을 돌려주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이 좀도둑만 좋은 일인데. 돈을 다 쓰면 다시 도둑질을 할걸요!”

“아니에요!”

계속 말이 없던 소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년은 방금 얻어맞은 탓에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기에 더욱 거칠고 고집이 센 것처럼 느껴졌다.

정철이 소년을 힐끗 쳐다봤다.

정철의 얼굴엔 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소년은 왠지 모르게 곧바로 입을 다물고 그를 경외하게 되었다.

정철이 시선을 거두고 서가복에게 말했다.

“소년의 손에는 굳은살이 있습니다. 아마도 힘든 일을 많이 해서겠지요. 이런 아이는 그리 게으르지 않습니다. 방금 그 부인은 몸집이 컸으며, 행동도 민첩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 소년을 쫓을 때 거리가 그리 많이 차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 소년이 돈을 훔치자마자 들켰고, 그리 익숙하지 않은 풋내기임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부인에게 잡혔을 때, 얻어맞을지언정 죽어도 돈은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돈은 소년에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닌 것 같군요. 그래서 목숨도 아끼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이 돈도 낭비하지 않을 거고요.”

정철은 소년을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서가복에게 말하는 듯 소년에게 말하는 듯 말을 이었다.

“부모 대신 아이를 가르칠 마음도 없고, 동전 몇 개 때문에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돈은 잃어버린 셈 치겠습니다. 원래 그저 작은 일이었으니, 서가 아가씨께서도 더는 추궁하지 마세요. 저와 여동생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서가복과 소년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이, 이 좀도둑을 슬쩍 본 것만으로, 그렇게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고요?”

서가복이 중얼대며 물었고 정철이 대답하기도 전에 소년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며 이마를 땅에 조아렸다.

“은인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 저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집에는 동전 하나도 있지 않았고, 어머니께 산파를 불러드리지 못할까 봐…….”

정철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게 그리 자세히 말할 필요 없다. 어쨌든 도둑질은 나쁜 것이야. 이 난관을 헤친 후에는 스스로 살아가야 할 거다.”

그러고는 정미를 잡아당겼다.

“미미, 가자.”

“어, 잠깐만―”

서가복이 그들을 쫓아갔다.

남은 소년은 기어 일어나서는 푸른색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쏜살같이 떠났다.

정철은 정미를 데리고 앞으로 나아갔고, 서가복은 둘의 뒤를 따라붙었다.

“정가 둘째 오라버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진짜였다니.”

“서가 아가씨의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철의 교양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아가씨를 난처하게 만들 리 없었다.

하지만 단호한 정철의 성정도, 용감하고 뻔뻔한 서가복에겐 타격이 없었다. 서가복은 오히려 눈을 더욱 반짝였다.

“칭찬하는 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정미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 아가씨가 자신의 오라버니를 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눈에 찬양심이 가득 차서는 말이야!’

그러나 서가복은 전혀 편애하지 않고 정미의 팔짱을 꼈다.

“미 동생, 이런 오라버니가 있는 게 정말 부러워. 내 4명의 오라버니를 다 합쳐도 정가의 둘째 오라버니의 반도 미치지 못할걸.”

정미는 친하지 않은 사람이 팔짱을 끼자 온몸이 굳었지만, 오히려 서가복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아지고 있었다.

‘서가복이 뻔뻔하긴 하지만 둘째 오라버니를 만나자마자 들러붙다니 안목은 꽤 좋구나.’

“서가 아가씨, 저는 여동생을 장공주부에 배웅해줘야 하니, 다음에 다시 뵙지요.”

서가복은 잠시 멍해졌고 눈에 실망이 스치는가 싶더니 웃으며 말했다.

“곧 상사절이니, 미 동생, 그때 같이 답청을 가자.”

서가복은 이 남매의 사이가 좋으니, 상사절에 당연히 함께 있을 거라 짐작했다.

“최근 계속 장공주께 승마와 활을 배우고 있어서, 그때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 그래서 가복 언니에게 확답을 줄 수 없어.”

정미가 완곡하게 거절하자, 서가복은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리더니 방긋 웃었다.

“그래, 그럼 미 동생이 시간이 날 때 다시 만나자.”

‘얼굴도 다 나았으니, 앞으로 회인백부에 놀러 갈 수 있지 않을까?’

* * *

서가복과 헤어진 후, 정미는 덕소 장공주부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정철에게 붙잡혔다.

“오라버니?”

정철이 웃었다.

“바보야, 곧 점심인데 배도 안 채우고 가려고? 뭐 먹고 싶어?”

멀지 않은 곳에 바로 백미재가 있었지만, 봄이 되어 양육갱은 그리 인기 있지 않았다. 정미는 백미재 맞은편의 덕승루(德勝樓)를 가리켰다.

“오라버니, 오리구이 먹으러 가자. 덕승루의 오리구이가 아주 맛있거든!”

오리고기는 찬 성질의 음식으로, 이런 따뜻한 때 먹어도 괜찮은 음식이었다.

정철은 거절하지 않고 정미와 함께 덕승루로 향했다.

둘은 일찍 방문한 편이었고 2층으로 가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아래층의 대청에서 음악 소리와 여자아이의 맑은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뒤 음식이 나오자, 정철은 바삭한 오리껍질과 부드러운 오리고기를 춘병(春餠)에 놓고, 양념과 오이채를 넣어 말고는 정미에게 건넸다.

정미가 건네받아 먹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덕승루가 아주 마음에 들어. 오리도 맛있고, 노래도 있고.”

하지만 정철은 앞으로 덕승루에 정미를 데리고 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아가씨가 노래를 부르는 곳은, 소란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정철이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아래층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아래층에서 뭔가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정미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자, 정철이 여유롭게 웃었다.

“미미가 잘못 들은 거겠지.”

‘어쩜 이렇게 공교로울 수 있지? 용흔 그 자식도 덕승루에 밥을 먹으러 오다니!’

위국공부의 온천마을에서 용흔이 정미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정철은 정미를 숨겨 그 자식에게 머리카락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감히 내게 대들다니? 이 몸은 경왕세손이다. 무적의 ‘작은 패왕’이라고도 하지. 한마디만 더 대들었다간 널 가만두지 않겠다!”

아래층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고, 이는 위층의 두 사람에게도 똑똑히 들려왔다.

“용흔인가?”

정미가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놀라운 일도 아니지. 용흔은 늘 사고를 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사고를 치러 가는 길일 테니까.’

정미는 다시 젓가락을 들고, 오리고기를 돌돌 싸서 정철에게 건넸다.

“오라버니, 먹어. 식으면 맛없어.”

정철은 이를 건네받았고, 기분이 썩 괜찮다고 생각했다.

‘미미가 내려가서 보지 않다니, 그 녀석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나 보구나. 다행이다. 나중에 미미는 따뜻하고 예의 바르며, 자상하고 세심한 청년에게 시집가야 하니까, 작은 패왕은 멀리할수록 좋지.’

정철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아래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상이 뒤집히는 소리인 듯했고, 정철은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어나서 말했다.

“미미, 내려가서 한번 보고 올게.”

작은 패왕은 제멋대로 구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만약 정말 큰일이 나서는 안 됐다. 경왕세자비에겐 이 외동아들 하나밖에 없었기에, 정철과 정미가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면 책임을 묻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정미가 따라 일어났다.

“오라버니, 나도 따라갈래.”

정철이 고개를 끄덕이고, 유모를 정미에게 씌워주고는 당부했다.

“내 뒤에 붙어있어.”

정철이 정미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자, 대청 안의 손님들이 입구로 도망간 채 소란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덕승루의 머슴이 목숨을 걸고 혼란스러운 싸움판에 끼어들며 애원했다.

“나리, 그만 때리세요. 인명사고가 나면 정말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싸움이라곤 하지만, 사실 용흔이 일방적으로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를 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내의 하인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괴로워하고 있었다.

용흔은 머슴에게 짜증이 나 그를 걷어찼다.

“뭐라고 떠드는 거야. 이 몸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풍부한 경험 덕분에, 용흔도 어떻게 사람을 때려야 죽지 않는지는 알고 있었다.

“세손―”

정철이 정미를 데리고 다가갔다.

그러자 용흔의 손이 멈췄고, 정철 남매인 것을 확인하고는, 잡고 있던 사람을 바닥으로 밀치며 말했다.

“꺼져,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그 청년은 화사하게 입고 있었고, 딱 봐도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다. 하지만 계급이 너무 낮은 탓에 용흔을 알아보지 못했고, 철판에 걷어차이자마자 허겁지겁 일어나 달아나버렸다. 그의 하인도 얼른 뒤따라갔다.

“두 사람이 왜 여깄어?”

용흔은 정철 뒤에 붙어있는 정미를 보자마자 급히 차림새를 단장하고, 창가의 자리로 데려갔다.

“자, 자, 우선 여기 앉아.”

정철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물었다.

“세손,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용흔이 눈을 부라렸다.

“정말 재수도 없지. 난 그냥 한지네를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일찍 온 거야. 대청 안에 노래를 부르고 있길래 여기 앉았더니, 방금 그 무뢰한이 노래를 부르는 아가씨를 강탈하려 했다고!”

용흔은 조용히 정미를 훑어보고는 정의감에 가득 차 말했다.

“나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

이때 쭈뼛쭈뼛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세 사람이 쳐다보자, 흰옷을 입은 소녀가 비파를 안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뭐 하는 짓이냐?”

용흔이 뜻밖에도 침착하게 물었고, 정미는 용흔을 빤히 쳐다봤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공자님, 방금 정의롭게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호색가에게 순결을 잃었을 것이고, 그럼 저는 살아갈 수 없었을 거예요. 엉엉엉―”

용흔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용흔을 잘 아는 정미는, 그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그래. 내 앞에서 울지 말고. 괜찮으면 어서 가보거라.”

소녀는 이 정의로운 귀공자가 자신의 눈물에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듯 울음을 그쳤다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공자님, 방금 그 호색가를 물리쳐주셨지만, 공자님께서 떠나신 뒤 그가 다시 와서 저를 보면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여기 오지 않으면 되지.”

용흔은 더욱 짜증이 났다.

‘모처럼 못난 계집을 마주쳐서 상사절에 만나자고 얘기하려 했는데 이렇게 눈치 없는 사람에게 걸리다니. 이 알지도 못하는 여인이 또 성가신 일에 꼬이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못난 계집 앞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던 게 아니라면 이 여인과 쓸데없는 대화도 나누지 않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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