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25화 (125/375)

125화. 처음 알려지다

“못 믿으시겠다면, 왜 당장 들어가서 확인하지 않으십니까?”

노파는 꼼짝도 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들어가라고요? 나와 아들은 절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네 의관은 양갓집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마을 사람들 앞에선 무슨 짓을 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노파가 아들을 잡아당겼다.

“아들아, 어미 말을 듣거라.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된다. 만약 들어가자마자 저들이 우리를 추궁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셋째 나리가 실소했다.

‘이 노파는 정말 지독하구나,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제생당은 백부에서 운영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백 년 동안 운영해온 곳이었다. 그 백 년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백부를 믿고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어쨌든 젊은 부인은 이미 깨어났으니, 셋째 나리는 편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웃었다.

“만약 믿기지 않으신다면, 마을 사람 몇 분과 함께 들어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셋째 나리는 다른 사람들이 증인으로 나서주길 바랐다. 이 모자가 들어가서 환자가 깨어난 걸 확인하고 인정하더라도, 쓸데없는 추측이 나오지 않게끔 하고 싶었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렵기에, 만약 이 노파가 원래 이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함께 돌아간 이후 며느리가 이유 없이 죽어버려도 의관에선 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셋째 나리의 말에 구경꾼들이 열렬히 호응하더니, 노파가 말을 하기도 전에 열여 명의 사람이 나와 모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노파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고, 일행은 셋째 나리를 따라 의관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환안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다가, 젊은 부인이 있는 방 앞에 멈춰서 말했다.

“여기 계십니다.”

따라온 사람들은 조금 망설였지만, 젊은 사내는 곧바로 문발을 걷고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취화(翠華)……!”

이 외침에 바깥의 사람들도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젊은 사내는 부인의 손을 잡고 통곡하고 있었고, 부인은 눈을 뜨고 부드럽게 사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기척이 들리자 부인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고 많은 사람이 보이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는 맨 앞에 있는 노파에게 말했다.

“어머님―”

노파는 어지러워하며 부인의 앞으로 걸어갔다.

“취화야, 정말 살아난 게냐?”

부인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님, 곧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대우(大牛)가 제 옆에서 울고 있었어요. 이,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 의문이 스쳤고, 시선은 저절로 유모(帷帽)를 쓰고 있는 아가씨를 찾았으나,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다.

환안이 셋째 나리에게 말했다.

“나리, 아가씨께선 너무 피곤하셔서 쉬러 돌아가셨습니다. 내일 다시 와서 계속 부인을 치료하겠다고 하셨어요. 부인의 아이를 지키려면요.”

이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라고 하였소?”

젊은 사내가 펄쩍 뛰며 환안의 손목을 잡았다.

환안은 얼른 피하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때, 사내는 이미 성질이 누그러져 절박하게 물어댔다.

“낭자께서 방금 뭐라 하셨소? 내 아내, 내 아내의 배 속에 아직 아이가 있단 말이오?”

오늘 아침 아내를 들고 올 때, 사내는 의관과 끝장을 볼 준비를 하고 친우들에게 뒤처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해놓았던 바였다. 하지만 아내가 이렇게 살아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지금 자신의 아내뿐만 아니라, 배 속의 아이도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 말도 안 돼!’

아무도 환안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단지 성인 한 명을 살리는 것이었다면, 진정한 신의(新醫)가 찾아왔을 때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부인은 어젯밤부터 피가 멈추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이까지 살릴 수 있단 말인가!’

환안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정미가 전달한 말을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저희 아가씨께선 아이가 아직 살아있으니, 여기서 사흘 동안 치료를 받으면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부인만 살리고 싶은 거라면, 지금 바로 돌아가도 됩니다.”

“어머니―”

사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노파를 쳐다봤다.

노파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이를 지켜야지. 아이를 지켜야 해.”

그러자 셋째 나리가 입을 열었다.

“이만 됐습니다. 환자는 휴식이 필요하니, 모두 확인하셨으면 나가주세요.”

증인이 된 구경꾼들은 이 깜짝 놀랄 소식을 들고 나갔고, 이 일은 아주 빠르게 거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미는 온몸이 피곤하여 마차 안의 낮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

한 씨는 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뭔가 말을 하려다가도 잇지 못했다.

마차는 삐걱대며 한참을 달렸고, 한 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미야, 네…… 네가 어떻게 한 것이니?”

정미가 눈을 떴다.

정미는 몽롱해 보였다. 부인을 살리느라 너무 많은 피를 사용한 탓에 힘이 빠진 듯했다.

“저는 부의잖아요, 어머니.”

정미가 웃으며 말을 아꼈다.

힘이 없어서도 있었지만, 말해봤자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의만의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였다.

전심전력으로 그 부인을 구하며 부인의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지켜냈을 때, 정미는 정말로 새 생명을 창조해낸 기분을 느꼈다.

정미는 부의의 열세 과목 중에 태산과를 가장 먼저 배웠지만, 앞으로 가장 좋아할 과목도 태산과일 거라 생각했다.

작은 생명을 구하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마차는 계속 앞으로 향했고, 정미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머니, 배고파요.”

한 씨는 멍해졌다.

한 씨는 딸이 자신에게 배고프다고 말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차녀는 열네 살이 아니라 네 살의 어린아이 같았다.

‘네 살 때 이 아이는 어땠었더라?’

한 씨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피어올랐다.

네 살의 딸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때의 한 씨는 부군과 아들의 죽음에 깊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딸이 모든 불행을 가져온 것이라 여겼기에 딸을 아주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모녀는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에, 그때의 모습이 기억날 리가 없었다.

딸의 또렷한 눈동자를 보며 한 씨는 갑자기 당황했다.

“뭐가 먹고 싶니?”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객차 안 탁자 위의 대추떡을 발견했다.

“대추떡이 있는데, 먹겠니?”

정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래요.”

정미는 대추떡을 아주 좋아했다. 단지 그 안의 대추를 먹지 않을 뿐이었다.

한 씨가 얼른 대추떡을 가져다주었다.

정미는 몸을 일으켜 마차 벽에 반쯤 기대었고, 손수건으로 대추떡을 받치고 먹었다. 한 씨는 따뜻한 차를 따라서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정미는 한 씨를 흘끔 보고는 속으로 의심스러워했다.

‘오늘 어머니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아, 맞아. 아버지가 허리를 접질렸었는데. 아직도 의관에 계시는 건 아니겠지?’

정미는 생각에 잠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젊은 부인과 소란스러운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아버지를 잊고 있었구나. 그럼 아버지는 아직도 혼자 그 방에 누워서 굶고 계시는 건가?’

정미는 갑자기 식욕이 돋아나 대추떡을 한입 베어 먹었고, 떡 안의 대추를 뱉어내는 것을 잊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먹었다.

다 먹고 난 뒤, 정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목메지는 않니? 어서 차를 마시렴.”

한 씨가 급히 말했다.

정미는 한 씨를 마주보며 방긋 웃었다.

“네.”

‘보아하니, 어머니도 오늘은 아버지를 완전히 까먹고 계신 것 같아. 절대 알려드리지 말아야지!’

마음을 정한 정미는 더욱 맛있게 대추떡을 먹었다.

대추떡을 다 먹은 뒤, 그녀는 마음이 기뻐서인지 기력이 조금 회복되어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이를 본 한 씨가 딸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미야, 이 어미는 네가 부의의 재능이 있는 줄로만 알았지, 이 정도의 능력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이건 소진 도사보다 더 대단한 것 같구나!”

정미는 지금 그 속 좁은 소진 도사에게 호감이 없었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머니, 그 소진 도사요,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이에요?”

“어디서 왔냐고?”

한 씨가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도 몰락한 관리 집안의 딸이었던 것 같구나. 소진 도사의 아버지는 죄를 지었다고 들었어. 자세한 건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소진 도사는 어려서부터 현청관에 들어갔고, 나중에 아주 뛰어난 부의 재능을 보여 북명진인의 제자가 되었단다. 지금은 북명진인이 암묵적인 국사이기에, 황상의 존중도 받고 있지.

소진 도사는 어려서부터 그에게 배웠으니 마찬가지로 능력이 뛰어날 게다. 궁의 비빈들부터 훈귀 관리들의 여식까지 모두 소진 도사를 굳게 믿지. 평소 궁의 내원에 자주 출몰하니, 인맥으로만 봐도 귀부인보다 훨씬 나을 거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니 조금 이상해서요.”

정미가 입을 삐죽이며 하는 말에 한 씨는 어이가 없었다.

딸의 말은 어쩐지 소진 도사가 천한 일을 하는 여편네들과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말이 새어나가면 큰일이 날 터였다.

“미야,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돼. 소진 도사는 귀비마마와 태후마마 앞에서도 떳떳한 사람이란다.”

“알겠어요.”

정미는 이미 소진 도사에게 편견이 생겼기에 그녀에 대한 좋은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때 한 씨가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너도 아주 대단하구나. 네 큰언니의 회임에 계속 걱정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안심할 수 있겠어.”

한 씨의 말에 정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니, 어제 궁에 들어갔을 때, 제가 언니의 안색을 살펴봤는데 배 속의 태아에게 좋지 않은 것을 복용한 것 같았어요. 당시에 언니한테 말해주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요. 언니가 제 말을 듣지 않고 그걸 계속 복용하면 큰일이 날까 봐 두렵네요.”

한 씨는 어제 정미가 자신과 장녀 앞에서 한 말을 떠올렸고 표정이 굳었다.

태자비뿐만 아니라 한 씨 자신조차도 어제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았다.

‘결국엔 정미도 어린 아가씨인데, 정말로 사람의 얼굴만 보고 뭔갈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오늘 정미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부인을 살려냈잖아!’

한 씨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미야, 이따 백부로 돌아가면 넌 먼저 내려서 푹 쉬거라. 나는 궁에 가서 네 큰언니를 봐야겠다.”

“네.”

마차가 회인백부에 도착하자, 한 씨는 내리지도 않고 곧바로 황성으로 향했다.

* * *

마침 소진 도사도 동궁에 있었다.

부수를 태자비에게 건네려고 할 때, 궁녀가 보고를 올렸다.

“태자비마마, 한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정아는 뜻밖의 상황에 그 부수를 아무렇게나 옆에 내려놓았다.

“어서 들어오시라 해라.”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정아의 마음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어제 오셨었는데, 오늘 또 오셨다고? 설마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소진 도사는 평소 귀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기에 눈치껏 말했다.

“가족께서 방문하셨으니, 빈도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도사님.”

소진 도사는 궁녀를 따라 나가며 한 씨를 지나쳤다.

한 씨는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소진 도사를 보고 멈칫하더니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소진 도사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고는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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