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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24화 (124/375)

124화. 멀어지기 시작

머슴들은 조심스럽게 젊은 부인을 들고 의관 안으로 들어갔고, 정미는 사내를 흘끗 보고는 몸을 돌렸다.

노파가 젊은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이 멍청한 놈아, 어린 계집이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믿다니. 우릴 속이려고 한 말이 분명한데! 사람이 죽으면 증거도 뭐도 없게 되는데, 네 처를 데리고 들어가서 어떻게 할지 누가 아느냔 말이다!”

젊은 사내의 표정이 또 변했다.

그때 셋째 나리가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머님, 여기 있는 이웃분들이 다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저희 제생당은 백 년 동안 이어진 의관입니다. 며느리분을 살릴 수 있든 없든, 어머님께 분명히 말씀드릴 겁니다.”

그러고는 둘러싼 사람들에게 읍을 하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서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모두가 잇달아 소리쳤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그러자 노파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못하고 그저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았다.

젊은 사내가 의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정미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

“그쪽은 모친을 모시고 밖에서 기다리세요. 당신의 감정이 격해져서 나를 방해할 수도 있으니.”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셋째 나리가 곧바로 말했다.

“아우님, 가족들과 함께 저희 의관의 응접실에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차도 마실 수 있고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젊은 사내가 거절했다.

“여기 주인이 만약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긴 의자를 몇 개 가져오시오. 여기 입구에 앉아서 기다릴 테니! 사람이 죽든 살든 오늘 안에는 결과가 날 것이니, 여기 이웃분들이 증인이 되어주시오!”

“좋아, 문제없소. 우리가 증인이 되어주겠소!”

수도의 백성들은 대부분 어려움 없이 지내는 편이었기에, 이런 일은 아주 드물었다. 모처럼 떠들썩한 일에 모두가 이 일을 끝까지 구경하고 싶어 했다.

셋째 나리는 맥이 빠진 듯 한숨을 쉬고 머슴들에게 긴 의자를 가져오라 명령했다. 그는 나이가 많은 노파가 밖에서 기다리다가 또 사고가 날까, 차와 간식도 준비해왔다.

젊은 사내는 의자에 앉아 의관의 대문을 노려봤다. 먹고 마실 기분이 아닌 듯했다.

노파는 눈물을 다 닦고 매실떡을 한 조각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대추 간식을 소매에 집어넣었다.

셋째 나리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 씨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긴 제가 볼 테니, 가서 정미 좀 보세요.”

그러고는 멈칫하더니 더욱 조용히 말했다.

“만약, 만약 살리지 못할 것 같으면, 바로 정미를 데리고 후문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남은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한 씨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정미가 정말 살리지 못한다면 이 사람들이 또 소란을 피울 텐데, 제가 나서야지요! 도련님은 저들에게 한주먹거리일 겁니다. 우리 의관이 무너지게 둘 순 없지요!”

셋째 나리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형수님의 관심에 정말 감사하구나!’

“이미 사람을 보내 병마사의 관차를 모셔오라 했습니다. 만약 소란이 일어나게 되면 나서주고, 일이 그 정도까지 커지지 않으면 백부가 권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나서지 말라고 말해뒀습니다. 어쨌든 이 일은 의관이 잘못한 것이니까요.”

한 씨는 급한 성정이었지만 솔직한 사람이었기에, 이 일이 의관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며느리가 젊은 나이에 아이와 함께 죽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깝기에 동정심도 일었다.

“도련님, 아주 잘하셨습니다.”

“예, 어서 들어가세요.”

셋째 나리가 이마를 짚었다.

한 씨는 그제야 안으로 들어갔고, 들어서자마자 정미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정미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도제(*徒弟: 견습공, 제자)가 앞을 막아섰다.

“둘째 부인, 셋째 아가씨께서 안에 계십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혼자 있는가?”

한 씨는 속으로 자신의 딸이라면 분명 남들보다 뛰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젊은 부인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진으로 약을 잘못 복용하여 큰 출혈이 난 것이고, 의원이 뒤처리를 준비하라 했으니 미백부 같은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테지.’

그러나 한 씨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정미의 그 미백부가 한 씨의 피부를 다시 뽀얗게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한 씨가 어찌 딸을 이렇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환안 아가씨도 안에 계십니다.”

도제가 대답했다.

한 씨는 환안이 있다는 말에 더욱 불안해했다.

“가서 의자를 하나 가져오거라. 내가 여기서 뭐라도 도울 게 있는지 지키고 있을 테니.”

도제는 곧바로 태사의(*太師椅: 등받이와 팔걸이가 반원형으로 되어 있고 다리를 접을 수 있는 나무 의자)를 가져왔다.

한 씨는 의자에 앉아 손수건을 꽉 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머슴이 다가와 말했다.

“부인, 둘째 나리께서 부르십니다.”

한 씨는 눈살을 찌푸렸고,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같은 상황에 나리는 왜 소란을 피우는 거람?’

그러나 한 씨는 몸을 일으켜 둘째 나리에게로 향했다.

방에 들어서자, 둘째 나리가 상반신을 일으켜 버티며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오?”

그는 평생 동안 이 정도로 화난 적이 없었다.

셋째 동생이 먼저 뛰쳐나가고, 곧이어 딸이 뛰쳐나가더니, 결국 아내까지 나가버리지 않았던가. 혼자 남은 그는 허리를 다쳐 침상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더욱 화나는 점은, 그의 시중을 들 사동 하나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고 싶어서 눈이 시퍼레질 지경이었고, 지나가던 머슴이 그를 발견해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씨는 고통에 창백해진 둘째 나리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파왔고, 옆에 앉아서 자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둘째 나리의 표정이 싸늘해지며 침상을 내리쳤다.

“어리석은 것!”

한 씨는 멍해졌다.

둘째 나리는 멍청한 것을 보는 눈빛으로 한 씨를 바라봤다. 원래는 한 씨와 쓸데없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고 방금까지 혼자서 그렇게 고생한 탓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셋째가 총명하여 그동안 의관을 잘 운영하는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 정말 지극히도 어리석군!”

한 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리, 무슨 뜻이십니까? 저는 도련님의 처분이 타당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타당하다고? 뭐가 타당하다는 것이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 의관이 오진했다고 인정한 것은 제생당과 백부의 명성을 망치는 것과 다름없지 않소!”

“도련님은 제생당에서 본 환자가 확실하다고 하셨―”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정해선 안 됐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나중에 그 집에 은을 좀 쥐여주면 그 정도로도 성의를 다 한 일이었을 텐데!”

“성의를 다했다고요?”

한 씨가 멍해졌다.

둘째 나리는 차갑게 웃었다.

“어찌 성의를 다한 게 아니겠소. 다른 의관이었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배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오. 한낱 평민이 무슨 도리가 있겠소? 개미가 나무를 흔들 수 있을 리 없지 않소?”

한 씨는 둘째 나리의 차가운 입꼬리를 보았다. 갑자기 그의 웃는 얼굴이 추해 보였기에, 그녀는 더는 깊이 생각할 것 없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미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러 가야겠습니다.”

한 씨가 급히 떠나려 하자, 남은 둘째 나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잠깐, 어찌 그 못된 계집의 말에 따라주는 것이오―”

그러나 이미 한 씨는 떠나고 없었다.

* * *

때는 해가 높이 뜬 정오였다. 구경꾼들은 식사를 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상황이 무척 궁금한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서 배를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를 하러 간 사람들도 급히 돌아왔고, 휴대용 의자까지 들고 와 앉았다. 계속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오래 서 있던 탓에 다리가 아파 왔다.

그때 노파가 갑자기 간식이 담긴 쟁반을 바닥에 밀쳐버리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거지요? 그러다 우리가 기다리는 걸 포기했을 때 흐지부지 마무리할 생각인 게 분명해!”

쟁반엔 간식 부스러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쟁반이 바닥에 떨어지자 어떤 아이가 몰래 잡으려고 했고, 어른이 아이를 발견하고 잡아서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그러자 아이는 크게 울기 시작했다.

현장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들아, 더 기다리지 말거라. 어서 네 아내를 데리고 나와!”

노파가 젊은 사내를 밀었고, 사내는 어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안으로 향했다.

이때, 의관에서 갑자기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사람들은 여종 차림을 한 아가씨를 바라봤다.

여종은 아주 아름다웠고 불그스름한 뺨은 이슬이 스며든 듯 촉촉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쫓았으나, 그녀는 셋째 나리에게로 걸어갔다.

셋째 나리는 고작 여종에게 조마조마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환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리, 저희 아가씨께서 말씀하시길, 환자는 깨어났으나 완전히 회복하려면 움직이지 않고 의관에서 사흘을 머물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이냐?”

셋째 나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그제야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고, 두려움과 긴장이 몰려왔다.

줄곧 침착하던 셋째 나리가 불안한 듯 환안을 쳐다보며 그녀가 다시 한번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깨어나셨습니다. 소인이 직접 보았어요. 저희 아가씨께선 정말 대단하세요.”

셋째 나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고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깨어났으면 됐다. 깨어났으면 됐어.”

셋째 나리는 돌아서서 허리를 똑바로 펴고 크게 외쳤다.

“어머님, 아우님, 환자가 깨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관에서 사흘 동안 요양한 후 나갈 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깨어났다고? 그럴 리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가망이 없을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저 집의 이웃인데, 어제 저 집이 시끌벅적한 탓에 나도 잠을 편히 잘 수 없어 일어나서 가봤거든. 어떤 의원이 뒤처리할 준비를 하라고 하는 걸 똑똑히 들었는데.”

“설마 그 아가씨가 정말 대단한 부의였던 건가?”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게다가 여인이었는걸. 어쨌든 나는 깨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구만.”

노파도 이를 믿지 않았고, 기뻐하며 의관으로 들어가려는 아들을 잡아당기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셋째 나리를 노려봤다.

“제 며느리가 깨어났다고요?”

“깨어났습니다.”

셋째 나리는 그제야 평소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정미를 믿었다. 정미의 의술뿐만 아니라 일을 처리하는 방식까지도 믿고 있었다.

‘정미가 깨어났다고 했으니, 틀림없이 깨어났을 것이다.’

“놀리지 마세요. 우리가 당신네 의관에 책임을 지라고 찾아온 것 같나요? 오늘 아침에 보니 며느리가 이미 가망이 없는 것 같아서, 그제야 여기까지 데려와 공정한 처리를 요구하려고 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어린 계집이 나와서 살릴 수 있다고 하더니, 며느리가 깨어났다고요? 우리를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세요!”

노파는 처음부터 자칭 부의라고 하는 그 소녀가 며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아까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그저 제생당이 웃음거리가 되어 일을 더 크게 키운 뒤, 더 많은 돈을 받아내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며느리는 불쌍하지만, 최소한 아들에게 새 아내를 붙여줄 돈은 있을 것이다. 남은 돈으론 방 두 칸을 더 지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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