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23화 (123/375)

123화. 사람을 구하다

셋째 나리가 급히 입구로 가자, 들것 위에 누워있는 사람이 보였다. 요를 덮은 환자는 새까만 머리카락과 창백한 얼굴만 드러내고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기서 욕을 하고 끊임없이 지전(*纸钱: 제사 때 태우는 종이돈으로 일종의 노잣돈)을 던지고 있었으며, 그중 한 노파는 울고 불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고,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사람들에게 팔을 붙들려 목숨을 내던질 것만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셋째 나리가 나오자, 노파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당신이 이 의관의 주인이지요? 당신을 압니다. 이웃 사람들이 다들 당신의 의술이 좋다기에, 우리 집안에 누가 아프면 당신을 찾아왔었지요. 양심껏 말하세요. 제 며느리가 여기서 진료를 본 것이 맞습니까?”

셋째 나리는 기절해 있는 젊은 부인을 다시 쳐다봤고, 그제야 확실히 알아보았다.

이 부인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이 부인이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월경이 반년에 한 번 찾아왔으며, 이번 월경은 왠지 모르게 멈추지 않아 이곳을 찾아온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셋째 나리가 맥을 짚으려 할 때, 마침 둘째 형수가 마찰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힌 뒤 기절한 정미를 데리고 들어왔던지라, 그는 급히 정미의 상처를 보았고, 그 부인은 다른 의원에게 넘겨주었다.

여기까지 떠오르자, 셋째 나리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의원이 오진을 한 것이로구나!’

셋째 나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노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말 좀 해보세요. 오랫동안 의관을 운영했으니 당신들 과실로 사람이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겁니까?”

노파가 목놓아 울었다.

“동네 사람들, 시비를 가려 주시오. 이 제생당은 우리 평민들이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는데, 이렇게 넘어가서야 되겠습니까! 제 며느리는 겨우 열여덟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모든 가족들이 손자만을 미치도록 기다렸는데, 어렵사리 얻은 아이를 이 의관에서 기혈양휴라 진단했고, 지금 출혈이 멈추지 않아 아이는커녕 며느리도 죽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럴 리가. 제생당이 수도에서 가장 크고 좋은 의관은 아니지만, 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의관인데, 이런 오진을 볼 리가 없지 않나? 멀쩡한 회임을 기혈양휴로 진단했다고?”

어떤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뭐라고? 얕은 도랑에서 배가 뒤집히기도 하는걸. 의원들이 오진을 볼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그 며느리는 정말 안타깝군.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다니, 누구에게 따질 수 있단 말이야!”

계속 제생당을 좋게 보던 사람이 말했다.

“혹시 여기서 진료를 본 게 아닌데, 돈을 뜯어내려고 사람을 실어온 거 아니야? 정말 며느리를 아낀다면 이렇게 사람을 실어오지 않을 텐데.”

이 말에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사람들은 반문했다.

“그럼 왜 다른 의관에 가지 않고 굳이 여기로 왔겠어?”

혼란스럽고 난잡한 소리에 셋째 나리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고, 의원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이 환자는 저희 의관에서 진료를 봤습니다.”

이 말에 모두가 떠들썩해졌다.

노파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젊은 사내는 셋째 나리와 끝장을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셋째 나리는 젊은 부인을 한 번 쳐다보았다. 더는 가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책임은 져야 했기에 한숨 쉬며 말했다.

“이렇게 하지요. 우선 사람을 들여보내고, 만약―”

이때, 청량한 소녀의 목소리가 셋째 나리의 말을 끊었다.

“셋째 숙부님, 사람을 들여보내세요. 제가 한번 볼게요.”

갑자기 나타난 소녀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미의 말이란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 한 소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소녀는 유모를 쓰고 있었고, 수수한 청색 치마를 입고 별다른 장신구를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허리춤에는 귀여운 모양의 염낭을 몇 개 차고 있었으며, 딱 봐도 나이가 많지 않은 소녀로 보였다.

“셋째야.”

셋째 나리의 표정이 살짝 변했고, 정미를 향해 조용히 외쳤다.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곳에서 당연히 정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위국공부의 사람들은 모두 키가 컸다. 정미는 외모도 체격도 외가를 닮아 셋째 나리 옆에 서 있어도 한 뼘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정미가 이렇게 똑바로 서서 휘장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으니 또래의 소녀들보다 더욱 듬직해 보였다.

“셋째 숙부님, 제가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정미는 차분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가장 열심히 배운 것이 바로 태산과였기에,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셋째 나리가 정미의 가까이 다가가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미야, 저 젊은 부인은 안색이 이미 새파래져 곧 숨이 넘어갈 거다. 얌전히 의관 안에서 기다리고, 나서지 말거라.”

정미는 모자에 달린 얇은 천 너머로 셋째 나리를 쳐다봤다.

셋째 숙부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고 준수한 외모였지만, 눈에는 고단함이 묻어나와 거의 열 살이 많은 아버지보다도 연륜이 느껴졌다.

그동안 정미는 셋째 숙부가 의관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젊은 부인을 멀리서 보았을 때, 살릴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하는 듯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저 부인을 살리지 못하면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해. 하지만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셋째 숙부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돌아갔을 땐 조모님의 구박을 받을 텐데, 그걸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

“숙부님, 하게 해주세요.”

정미가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 해보려는 거잖아요. 두 생명에겐, 제가 시도해볼 가치도 없는 건가요?”

셋째 나리는 정미를 빤히 쳐다봤다. 눈에는 기쁨과 걱정이 뒤섞여 복잡한 감정이 드러났고, 결국 깊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다,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 숙부가 책임질 테니.”

정미가 미소짓자, 셋째 나리는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를 안으로 들이거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한번 보자.”

“예.”

의관의 머슴들이 급히 사람을 들었다.

“뭐 하려는 겁니까, 건들지 마세요!”

젊은 사내는 앞으로 나서서 머슴들을 세차게 밀어냈다.

노파가 목놓아 울었다.

“백 년 된 의관이 사람을 죽였는데, 인정하지도 않고 데리고 들어가 치료하겠다고 우리를 속이려고까지 하다니, 시신을 없애고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게 아닙니다. 저희 제생당에 부의가 있는데, 며느리분의 상태는 보통 수단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의에게 맡겨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나리가 부드럽게 설명했다.

자신의 의관에서 오진을 했으니, 부드럽게 권하는 것 외엔 입장을 낼 수 없었다.

“부의?”

노파는 역시 셋째 나리의 말을 듣지 않았고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여러분, 모두 들어보세요. 모두 몸이 불편하면 여기에 와서 진료를 보지 않습니까. 여기 부의가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본 적이 없는데!”

둘러싼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맞아, 제생당에 부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걸. 그랬으면 내 아들이 크게 일이 났었을 때 부의를 찾으러 몇십 리나 떨어진 곳에 가지 않았겠지.”

“그런데 나는 제생당 뒷주인의 조상이 부의 출신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있네……”

“그게 뭐라고. 그건 나도 들어봤어. 하지만 백 년 전의 일이네. 백 년 전엔 우리 집 조상도 벼슬을 하셨는걸. 하지만 지금 우리 집은 돼지를 잡고 있지 않나?”

셋째 나리는 노파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의 마음속 정미는 아직 어린 아가씨였기에, 이렇게 쉽게 사람들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미는 사람들의 숙덕거림을 들은 체 만 체했다. 그녀는 젊은 부인의 안색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을 보고는, 더는 다른 걸 고려치 않고 노파와 반장(半丈)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차갑게 말했다.

“예전엔 못 봤더라도, 앞으론 자주 볼 겁니다. 제가 바로 부의니까요.”

이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수군대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젊은 사내는 화가 나서 정미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어디서 난 계집애가 자기더러 부의라는 거야! 설마 이 의관은 사람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불쌍해하기는커녕, 젊은 아가씨가 우릴 놀려먹도록 두는 겁니까?”

셋째 나리는 정미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금 정미에게 이를 허락해준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러지들 마시오―”

셋째 나리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정미가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봤다.

조카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다.

“셋째 숙부님, 비켜주세요. 제가 말할게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셋째 나리는 몸을 비켜주었고, 정미는 다가가서 젊은 사내와 마주섰다.

소녀 앞에서, 젊은 사내의 기세는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말투는 여전히 사나웠다.

“어린 계집은 얼른 비켜, 성가시게 굴지 말고!”

정미가 냉소했다.

“당신한테 물을 것이 있습니다.”

젊은 사내가 대답하지 않자, 정미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의 아내가 지금 어떻습니까?”

젊은 사내는 이 말에 다시 흥분하며 이마에 핏대가 섰고 이를 갈며 말했다.

“어젯밤 모신 의원이 말하기를, 이미 가망이 없으니 뒤처리를 준비하라 했습니다. 당신네 의관이 사람을 죽였는데, 내게 어떤지 묻는 거요?”

주변은 다시 수군대기 시작했고, 정미는 들은 체 만 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가망이 없다 하셨지요. 하지만 제겐 한 줄의 희망이 보입니다.”

소녀의 목소리는 원래 낭랑하고 높았지만, 목소리를 더 크게 하니 사람들은 곧바로 그 수군댐을 멈춰버렸다.

주변엔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당신들은 저 사람의 가족으로서 저를 의심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제게 시도해보라고는 하지 않는군요. 이게 무슨 도리입니까?”

정미는 젊은 사내를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면 당신들이 환자를 여기까지 들고 온 것은, 원래부터 환자를 구할 작정인 대신 그저 돈을 물어내란 소리를 하러 온 것입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젊은 사내는 정미의 말에 수치스럽고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이제 막 쫓아 나온 한 씨가 깜짝 놀라며 재빨리 정미의 곁에 다가와 그를 노려봤다.

“사람을 때리려는 겁니까?”

‘나 한명주가 누구와의 싸움을 두려워하겠는가!’

싸우려고 안달이 난 어머니의 모습에 정미는 머리가 아파 왔고,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기며 사내에게 말했다.

“돈은 제게 있습니다. 이 이웃들의 앞에서 묻겠습니다. 당신의 아내와 아이를 구하고 싶습니까?”

셋째 나리는 반짝이는 눈으로 조카를 바라보았고 마음 같아선 정미에게 갈채를 하고 싶었다.

그는 왜 여인과는 말로 다툴 수 없는지 이제 알게 되었다.

‘정미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 말 두세 마디로 저 사내를 이겨버리다니.’

사내는 정미에게 말려들어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살릴 겁니다. 당연히 살릴 겁니다!”

사내는 말을 마치고 흉악하게 한마디를 남겼다.

“만약 살리지 못한다면, 당신들과 끝장을 볼 테요!”

정미는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있는 머슴들에게 말했다.

“거기서 뭐 하느냐. 어서 환자를 데리고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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