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20화 (120/375)

120화. 정철의 비밀

정철은 당연히 사유재산을 가져선 안 됐다. 부모님이 모두 계시고, 아직 분가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일이 밖으로 퍼져나가면 어디서든 정철의 잘못이 될 터였다.

하지만 겸손하고 예의 바른 겉모습과는 반대로 정철은 절대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홉째 당숙 부부로부터 보내진 전날 밤부터 정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당시 부모님과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기에, 어렸던 정철은 밤에 조용히 일어나 그들의 창밖에 서 있었다. 그는 부모님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그에게 냉정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계속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니까, 어머니께서 오늘 밤은 내게 더 잘해주시지 않을까?’

어린 정철이 이런 생각을 하며 드디어 결정을 내렸을 때, 평생 잊지 못할 말들이 들려왔다.

“여보,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세요. 셋째가 백부에 가는 건 호강하는 것 아니에요.”

“아이고…….”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어린 정철의 귀에 들렸고,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총명했던 정철은 몰래 창밖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곽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하러 한숨을 쉬어요? 능력이 있으면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지, 당신이 은을 잘만 벌어오면 내가 셋째를 보낼 생각을 했겠어요?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7-8년을 키웠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은 개를 키워도 정이 든다고요!”

“그런 뜻이 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라고요? 그럼 무슨 뜻인데요? 온 가족이 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 셋째를 보내지 않으면 둘째를 보내야 할 거예요. 백부가 둘째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건 일단 넘겨두고, 노백야와 노부인이 언제까지 살아있을 것 같아요? 그 둘이 세상을 뜨면 둘째 집은 분가하여 나가야 될 텐데, 그때가 되면 우리 둘째더러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 살리라고요?

당신은 참을 수 있어도, 저는 못 참겠네요. 이왕 이렇게 정해졌으니 셋째를 보냅시다. 그 아이가 이 시골에서 벗어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면 우리도 부모로서 충분히 떳떳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날은 바람이 아주 차가웠기에, 정철은 창밖에 서서 몸이 시려왔다.

그는 어머니의 말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둘째 형님을 보내면 둘째 형님이 집안을 책임지느라 고생할 거라 말하면서, 날 보내는 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는 거라고?

예전엔 어머니가 늘 닭 다리를 큰형님과 둘째 형님에게 주고, 나에겐 닭 꽁무니만 주며 닭 꽁무니가 가장 맛있는 것이라고 할 때 몰래 속상했던 날들이 떠오르는구나. 앞으론 그러지 않을 거야. 속상해해선 안 돼. 나와 큰형님, 그리고 둘째 형님은 원래 다른 처지이니까.’

내키지 않아서였는지 놀라서였는지, 정철은 창밖에 서서 방 안에서 정구백이 뻐끔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소리를 들었다.

뻐끔대는 소리가 마침내 멈추었을 때, 정구백이 말했다.

“그래, 당신 말을 듣도록 하겠소. 대신 내일 아침에 셋째를 보낼 때 좋은 옷을 입혀 보내주시오.”

어린 정철은 결국 말없이 돌아갔다. 이후 친자가 아님에도 저를 위해 좋은 옷을 마련해준 정구백을 생각하며, 그런 좋은 옷을 몇 벌이고 사입을 수 있을 만큼의 은냥을 곽 씨에게 뜯겨도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어쨌든 간에, 그들은 자신을 몇 년이나 키워준 사람이니까.

점점 백부에 자리를 잡게 된 정철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그가 정가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가족들로부터 쫓겨나는 것만이 걱정될 뿐이었다. 그는 그때를 대비해서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 씨와 미미에게 의지가 되고 싶었다.

이것이 정철이 처음 육출화재를 열게 된 계기였다.

이후 정철은 어른들을 따라 정가촌으로 가서 제사를 지낼 때, 마을 사람들이 말한 곽 씨가 아이를 낳았던 그 밭으로 몰래 가보았다.

그는 그곳의 지형을 일찍이 머릿속에 새겨둔 바였다.

정철은 그때 곽 씨가 여기서 자신을 데려온 것이라면, 강을 따라 흘러 내려온 것이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서재의 분점을 그 강의 상류에 있는 도시와 진(*镇: 중국의 행정 단위로, ‘읍내’과 같은 개념)에 열었다.

서재를 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정철은 그 도시와 진들에 찻집도 몇 개 열었다. 이렇게 하면 그의 출신을 서서히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실 정철은 자신이 어떤 출신인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친부모를 찾는 일도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그가 알지 못하며, 그에게 변고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를 모두 파악하고 대비하고자 했다.

“오라버니, 공부하고 있어?”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철은 마음을 가다듬고 급히 장부를 어떤 서랍에 집어넣고 외쳤다.

“미미, 들어와.”

정미는 치맛자락을 들고 문턱을 넘어 들어왔고,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꾸짖었다.

“오라버니, 내가 말했잖아. 밤에 책을 보면 눈이 나빠진다니까.”

“오후에 다 보지 못해서 그래. 마침 그만 보려던 참이었어.”

정철은 여동생을 살펴보며 눈을 반짝였다.

정미의 방문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비밀과 부담감을 벗어던지면, 정철도 그저 아직 관례를 치르지 않은 청년일 뿐이었다.

어떤 청년이 몰래 마음에 둔 사람을 갑자기 만났을 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기쁨이 평생 오라버니의 명분에서 그칠지라도, 정철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미미, 오늘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와 함께 태자비 마마를 뵈러 궁에 갔다던데?”

“응.”

“태자비께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정철은 정아가 갑자기 정미와 어머니를 부른 것이 수상쩍게 느껴졌다.

“별일 없었어.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화 귀비가 아홉째 공주를 데리고 왔거든.”

정미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조금 부끄러워했다.

정철은 재촉하지 않고 따뜻하게 정미를 바라봤다.

정미는 잠시 부끄러워하다가, 가장 친한 사람 앞에서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오라버니, 화량이라는 자를 알아?”

“화량?”

정철이 웃음기를 거두었다.

“들어는 봤어.”

정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큰언니의 추측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화 귀비가 온 이유가 조카를 대신해서 우리를 보려고 한 것일 수도 있어.”

“응?”

정철은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화가 치밀어오르고 있었다.

‘화량 같은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 미미를 노린다고?’

“그래서?”

“화 귀비는 나와 정요에게 두 마디 정도 한 다음 아홉째 공주를 데리고 나가 놀게 했어. 그러고는 그냥 갔어.”

정철의 마음이 놓였다.

‘어떤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화 귀비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군.’

정철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조금 화가 났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다니? 이해할 수가 없네.’

곧이어 정미의 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내가 장공주부에서 나왔을 때, 화량 그 염치없는 놈이 내 마차에 숨어있던 거야!”

우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철이 홍목 책상의 모서리를 부러트리고 만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정미는 분노에 심취해있어 그 소리를 듣고는 멍하니 사방을 둘러봤다.

정철의 손은 아직 책상 모서리에 있었으나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미미. 계속 말해봐.”

‘이 책상, 너무 부실하구나. 미미가 가면 뭔가로 고정해놔야겠어. 아쉬운 대로 쓸 수는 있겠지?’

“응.”

정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라버니를 흘끔 봤고, 갑자기 쑥스러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미미?”

정미가 여기 멀쩡히 앉아 있었으므로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정철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고, 말투에 보기 드물게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오라버니, 화량 그 자식은 아주 파렴치한 놈이야. 내게 첫눈에 반했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더니, 내게 입맞춤을 하지 않으면 마차에서 내리지 않을 거라 했어.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내 마차에 타고 있다는 걸 알릴 거라 했다고!”

정미가 결국 털어놓았다.

아가씨의 마차에 변태가 탄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일을 어머니에게는 말하고 싶지도 않으니, 오라버니가 아니면 누구에게 자신의 황당함을 토로할 수 있겠는가?

화량의 협박에도 침착하게 조금씩 그 변태 자식을 함정에 빠트렸지만, 그 속의 긴장과 공포는 정미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때 정미는 뭔가 잘못되어서 화량에게 제압당하거나 화량이 비명을 지른다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정미는 얌전히 당하고만 있을 성정이 아니었고, 본능에 따라 맞서는 사람이었다.

“네게 입맞춤을 한 거야?”

정철의 표정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정미는 이를 보고, 오라버니는 어두운 표정이어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뿌듯한 듯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뒀겠어?”

정철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 자식에게 말했어. 그 자식이 내게 입맞춤을 하는 건, 나의 평판을 더럽히는 일이니, 내가 입맞춤을 하면 된다고!”

정철은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멍해졌다.

“오라버니? 왜 그래?”

정미가 오라버니를 슬쩍 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정철이 정신을 차리고 겨우 말을 쥐어 짜냈다.

“그럼 미미가 말해봐, 그 자식의 어디에 입맞춤을 했어?”

‘내일 미미가 그 변태 자식에게 입맞춤을 한 곳을 도려내서 개에게 먹일 테다!’

“내가 왜 입맞춤을 해?”

정미는 꾸짖는 듯이 정철을 흘끗 보고는 뿌듯함을 숨기지 못했다.

“속인 거야. 그 자식이 눈을 감고 내 입맞춤을 기다릴 때, 손수건을 꺼내서 입에 쑤셔 넣고 두들겨 팼어. 그리고 마차 밖으로 걷어차 버렸지.”

그러고는 조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오라버니, 화량 그 자식은 화 귀비의 조카잖아. 만약 돌아가서 고자질하면 큰일이 나는 거 아냐?”

정철은 그제야 차가운 얼굴이 풀리며 웃었다.

“미미가 아주 잘한 거야. 앞으로 그런 변태를 만나면 스스로 안전이 보장되는 선에서 그런 자식들의 뜻대로 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해야 해.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라버니가 있으니까.”

오라버니의 말에, 정미는 완전히 안심이 되어 환하게 웃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만 있으면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정철이 정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내 동생이니까, 당연히 지켜줘야지. 시간이 늦었어. 일찍 돌아가. 이따 바람이 불면 감기 걸릴라.”

“응, 오라버니. 그럼 가볼게. 공부 그만하고 일찍 쉬어.”

정철이 정미를 문까지 배웅했다.

환안이 등을 들고 앞을 비췄고, 정미는 뒤에서 한참을 걷다가 돌아보고는 정철에게 손을 흔들며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정철은 정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둠 속에 서 있다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선 후, 그는 다시 장부를 보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학생들은 부지런했기에, 서재는 늘 다른 가게들보다 일찍 열었다.

그리고 아직 열지 않은 육출화재의 문밖에는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 사동 차림의 사내들이었으며, 모두 괜찮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부잣집의 하인이 분명했다.

이것은 이제, 수도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됐다.

이유는 계절이 끝날 때마다 육출화재에 신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신간은 한수 선생이 직접 쓴 것이었고, 총 열 부밖에 되지 않아 가격을 높게 부르는 사람만이 살 수 있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한 달을 기다려야 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쇄한 것이었다.

한수 선생의 필체는 아주 아름다웠고, 무엇보다도 한수 선생이 이야기를 따라 그린 그림이 가장 절묘했다. 그 섬세한 필법과 대담한 채색은 절대 시장에 넘쳐나는 그림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이 책을 차지하게 되면, 한 계절 내내 동무들 사이에서 뽐낼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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