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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12화 (112/375)

112화. 상처를 치료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모두가 기진맥진했다.

특히 다섯째 공주는 곰을 단숨에 해치운 이후 이미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정미는 여전히 비수를 잡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부의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보통 아가씨들과는 다른 길에 걸음을 내디딘 거라 생각했는데, 비수를 들고 곰을 찌르는 날까지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일은 정미에게 너무나도 큰 자극이었다.

용흔이 바람처럼 달려와 정미를 붙잡고 품에 안은 채 횡설수설했다.

“못난 계집, 괜찮지? 아무 일 없는 거냐?”

한지와 한평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한지는 복잡한 표정으로 정미를 쳐다보고는 다섯째 공주를 잡아당겼다. 그는 공주가 이미 힘이 빠진 것을 보고 사과를 하고는, 공주를 업고 몸을 돌려 말했다.

“용흔, 시간을 지체하지 마. 화량과 황봉(黃鵬)이 다쳤어. 어서 여길 떠나야 해. 피 냄새를 맡은 짐승들이 오면 위험할 거야!”

화량은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팔을 감싸 쥐고 다가와 힘없이 말했다.

“누, 누가 내게 면포를 좀 둘러줘. 더, 더는 못 버티겠어.”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한평은 다가가 화량의 상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급히 옷을 벗고 깨끗한 내의를 찢어 화량의 상처를 묶어주려 했다.

한편 정미는 용흔의 포옹에 정신이 들었다.

정미는 용흔을 밀었지만, 너무 꽉 안고 있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화를 내며 말했다.

“이거 놔요!”

이때 작은 패왕은 이성을 되찾고 곧바로 손을 풀었으며, 정미에게 바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생각했다.

‘못난 계집을 방금 안았을 때 느껴지는 게, 어릴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용흔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소녀의 솟은 가슴에 꽂혔고, 문득 뭔가를 깨닫게 되어 얼굴을 붉혔다.

공주를 안고 차가운 눈으로 용흔을 살피던 한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용흔이 설마 정미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니겠지?’

비록 한지의 마음엔 정요가 있더라도, 어려서부터 가장 가까웠던 여동생이 지금은 자신에게 냉담하게 대하고, 또 갑자기 늘 가까웠던 친우가 그 여동생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니 순간적으로 기분이 편치 않았다.

정미는 이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챌 리 없었기에, 한평에게 집중했다.

“평 오라버니, 상처가 많이 심각해요? 제가 볼게요.”

한평은 화량의 흉악한 상처가 정미를 놀래킬까 봐 그녀를 막았다.

“정미, 내가 잘 싸매면 괜찮을 거야.”

“평 오라버니, 제가 보고 싶어요.”

이때의 정미는 유난히 냉정했다.

화량이 한평을 밀어내더니, 정미의 앞으로 손을 뻗어 불쌍한 척 말했다.

“낭자, 보시오. 상처가 아주 심하지요? 하지만 당신이 내 상처를 싸매준다면, 나는 고통이 두렵지 않소.”

화량은 말하면서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너무 아프잖아, 미인 앞에서 울지 않는 게 이리 어려울 줄이야!’

정미는 그를 한 번 노려보고는 아예 지나쳐버렸다.

몇 사람이 정미를 쳐다봤고, 정미는 다른 소년인 황봉에게로 다가갔다.

황봉은 오른팔을 곰에게 물렸다. 황봉의 상처야말로 아주 심한 것이었기에, 이미 기절하여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미는 쭈그려 앉아서 허리춤의 작은 수낭을 꺼내 마개를 열고, 조심스럽게 황봉의 팔에 무언가를 뿌렸다.

황봉의 상처에 빠른 속도로 새 살이 돋아났고, 잠시 후엔 다쳤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정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산에서 사냥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미리 지혈생기부를 만들어 물에 담아놓았던 것이다.

‘과연 쓸모가 있었구나.’

다른 몇몇 사람들은 이미 놀라 멍해졌다.

한참 뒤, 용흔이 가장 먼저 뛰어왔다.

“못난 계집, 방금은 어떻게 된 일이야?”

정미가 용흔을 쳐다보자, 용흔이 여전히 기절해있는 황봉을 가리켰다.

“뭘 사용한 거야. 팔의 상처가 어떻게 곧바로 나아진 건데?”

“부수요.”

정미는 용흔에게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었고, 다시 화량에게로 돌아가 우선 경고했다.

“입 다물고 계세요. 말 한마디라도 하면 당신을 치료하고 싶지 않을 테니.”

화량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주 억울한 듯했다.

정미가 한평에게 말했다.

“평 오라버니, 옷을 여며요.”

한평은 정미를 빤히 쳐다보다가 옷을 여몄다.

화량의 상처는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정미가 부수를 뿌리자 모두가 쳐다보는 가운데 상처가 곧바로 말끔하게 나았다.

이때 모두가 아까보다 더 놀라워했고, 동시에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정미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화량은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정미를 바라보며 갑자기 달려들어 그녀의 다리를 안았다.

“현녀(玄女)로구나! 어쩐지 이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낭자가 있나 했더니, 하늘에서 내려오셨군요!”

구천현녀(九天玄女)는 도교의 신선 중 하나였다. 정미는 부의를 접한 뒤로 도교에 흥미가 생겨 전적을 몇 개 읽어본 적이 있었다.

정미는 결국 참지 못하고 화량을 걷어차며 화냈다.

“한 번만 더 건드리면 당신의 팔에 다시 구멍을 낼 것입니다!”

‘내 비수에는 아직도 곰의 피가 흥건한걸!’

화량은 무의식적으로 팔을 움켜쥐고 정미에게 웃어 보였다.

“함부로 하지 않겠소. 약속하지요.”

“못난 계집, 어디서 그렇게 신기한 부수를 얻어온 거야?”

용흔이 화량을 매섭게 쏘아보고는 그를 옆으로 밀어냈다.

정미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한지가 다가왔다.

“지금은 그런 걸 얘기할 때가 아냐. 우리가 안전한 곳을 벗어난 것 같으니, 가장 급한 일은 여기를 떠나는 것이야. 또 다른 짐승이 오면 맞서기 어려울 테니.”

그가 주위를 둘러봤다.

화량 쪽은 두 사람만 남았고, 둘 중 하나는 여전히 기절해있으며, 둘의 말은 이미 쓸모없게 되었다.

한지 쪽은 괜찮았다. 용흔의 말만 조금 다쳤을 뿐이었다.

‘일곱 명의 사람과 네 마리의 말이라.’

“이렇게 하지요. 화 공자, 당신이 황봉을 데리고 타고, 용흔은 다섯째 공주를, 나는 정미를 데리고 타겠습니다. 둘째 아우는 혼자서 타고, 어서 여길 벗어나지요.”

한지는 말하면서 힘이 빠진 공주를 용흔에게 넘겨주었으나, 용흔은 넘겨받지 않았다.

“굳이 번거롭게. 한지, 네가 면면을 데리고 가면 돼. 나는 미미를 데리고 갈게.”

한지는 화가 나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따지자면 다섯째 공주는 용흔의 친척 동생이었다.

‘친척 오라버니로서 공주와 함께 말을 타지 않고, 외간 사내가 데리고 타라고 한다고? 그거야말로 이상한 거 아냐!’

정미는 차가운 표정으로 용흔을 밀고 손을 뻗어 공주를 넘겨받았다.

“지 오라버니, 그럼 공주 전하를 내게 맡겨요. 내가 공주를 데리고 타고, 오라버니와 용흔이 함께 타면 되니까요.”

한지는 동의하지 않았다.

“숲이 얼마나 위험한데, 여자아이가 공주를 데리고 어떻게 말을 탄다는 거야.”

“정미―”

줄곧 아무 말도 없던 공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허리, 수낭.”

정미는 공주의 뜻을 알아차리고, 공주의 허리춤에 있던 수낭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청량한 술 냄새가 풍겼다.

정미는 술을 못 마시기에, 곧바로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봤다.

공주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정미는 공주의 뜻을 알아채고는, 수낭을 공주의 입가에 대고 몇 모금 마시게 했다.

공주의 창백한 안색이 점점 붉어지더니, 한지를 밀어내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정미를 잡아당겨 자신의 결따마에 올라탔다. 그녀는 기력이 충만한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고는 정미를 데리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한지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곰을 때려죽일 수 있는 아가씨는 나보다 강할 테니까!’

결국 한지는 용흔을 데리고 정미의 흑마를 타고 쫓아갔다.

흑마는 몹시 불쾌한 기색이었다!

* * *

반 시진 정도 이동했을 때, 구조에 나선 호위병들을 마주쳤다.

먼저 달아난 소년들이 구조를 요청했던 것이다.

호위장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정미와 다른 사람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일행 중에는 공주도 있었고, 왕손도 있었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백 명의 목이 베여도 충분하지 않을 일이었다.

“오늘의 일은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

용흔이 경고했고, 화량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 절대 말하지 말거라!”

호위병들이 귀찮아서 내버려 두고 시합을 했다는 걸 어른들이 알게 되면, 얼마나 혼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호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화량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정미를 바라봤고, 정미가 아무 반응이 없자 낙담하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더니, 또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낭자가 어느 집안인지 알았으면 됐어. 나한텐 고모가 계시니까.’

화량 일행이 떠나고, 남은 한평이 곰 발바닥 한 짝을 들고 물었다.

“공주 전하, 이 곰 발바닥, 필요하십니까?”

공주는 곰 발바닥을 한 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눈을 피했다.

그러자 한평은 곰 발바닥을 정미에게 건넸다.

“정미, 네가 가져가. 홍소(*紅燒: 고기·물고기 등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 살짝 볶고 간장을 넣어 익혀 검붉은색이 되게 하는 중국 요리법의 한 가지)해서 먹어도 좋고, 사슴 고기와 섞어서 만두로 만들어 먹어도 아주 맛있어.”

정미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한평이 설명했다.

“너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내가 곰 발바닥을 베어왔어.”

정미는 곰 발바닥을 보자마자 그 피범벅이 된 곰의 코가 떠올라 구역질이 났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필요 없어요. 가지고 싶은 사람이 아무나 가져가게 해요.”

그때 공주가 정미를 잡아당겼다. 정미는 공주의 뜻을 알아채고 한평과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와 공주 전하는 먼저 가볼게요. 더 늦으면 장공주께서 걱정하실 거예요.”

정미가 가려고 하자, 용흔이 급히 다가왔다.

“정미, 아직 그 부수가 어디서 난 건지 말하지 않았어.”

정미가 용흔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만든 겁니다. 부의를 배우고 있거든요.”

용흔은 뭔가 떠오른 듯 놀라며 말했다.

“어쩐지 얼마 전 네가 북명진인에게 점화(點火)를 받았다는 얘길 들었는데, 터무니없는 소린 줄 알았더니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군?”

정미는 전에 동궁에서 태자비에게 그런 말을 한 뒤, 빠르든 느리든 소문이 점점 퍼질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흔의 말에도 그리 놀라지 않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저희 집안은 부의로부터 시작된 가문이니, 진인의 점화를 받은 뒤 집안의 의서를 보고 점점 성과를 보고 있답니다.”

“쯧쯧, 못난 계집아. 성과를 보고 있는 정도가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소진 도사보다 더 대단한 것 같은데! 넌 모르지, 우리 어머니께서 소진 도사를 얼마나 믿으시는지. 그래서 소진 도사가 자주 우리 왕부에 드나드는데, 너 같은 능력은 한 번도 못 봤는걸.”

정미는 굳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담담하게 말했다.

“부의에겐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저는 그분과 비교할 수 없어요.”

용흔이 뭔갈 더 말하려고 하자, 한지가 막아섰다.

“됐어, 용흔. 날이 지고 있어. 공주와 정미가 장공주부에 돌아가면 우리도 각자 돌아가야 하는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선 안 돼.”

모처럼 정미를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용흔은 눈살을 찌푸리고 한지를 밀어낸 뒤 정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못난 계집아, 상사일(上巳日)이 되면 우리 같이 답청을 가자.”

한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매년 상사일마다 친한 사람들끼리 놀러 가긴 했지만, 용흔이 이렇게 말하니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사절은 옛날부터 미혼인 남녀들이 서로 만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용흔의 태도는 너무 분명한 것이었다.

한지가 정미를 한 번 쳐다봤고,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용흔은 그렇다 치고, 정미는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신경 쓰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이미 묵인한 건가? 나는 정미의 친 사촌 오라버니인데, 정미가 잘못을 저지르는 걸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지.’

정미는 당연히 묵인하지 않았다. 그저 어려서부터 자신을 괴롭힌 남자아이가 사춘기에 눈을 떴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정미는 예민한 아이였기에, 한지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뭔가 떠오른 듯 용흔에게 말했다.

“그날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은데, 지 오라버니와 둘이 잘 노세요.”

정미가 공주와 손을 잡고 떠나자, 한지와 용흔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보고 잘 놀라는 게 무슨 뜻이지?’

서로 흘끔 마주 보고는, 두 사람은 또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우리가 모르는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한평, 먼저 가봐. 나는 세손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에서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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