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111화 (111/375)

111화. 위험에 부닥치다

“정미, 가자.”

한지가 정미를 잡아당겼으나, 정미가 피하며 공주를 쳐다봤다.

‘나는 공주와 함께 왔어. 가고 싶다면, 당연히 공주의 의견을 들어야 해.’

뜻밖에도 공주가 갑자기 손을 뻗어 정미를 붙잡았다.

“저들과 겨뤄.”

공주는 간단명료하게 말했지만, 정미는 공주의 뜻을 알아차렸다.

공주는 정미가 덕소 장공주의 반쪽뿐인 제자라도, 장공주의 명성을 떨어트릴 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미는 멈춰섰다.

정미는 원래 일을 마주했을 때 다른 사람 뒤에 숨는 성정이 아니었고, 이 사람들이 자신이 누군지 알았으니, 시합을 하든 집으로 돌아가든 성가신 일은 똑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몸을 사릴 필요가 있겠어?’

정미가 화량을 차갑게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정미는 화량이 자신을 찾는 이유가 미인을 얻기 위함인지는 알지 못했고, 그저 화량이 먼저 잘못을 저질러놓고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에 더욱 싫어졌을 뿐이었다.

“정미―”

한지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인이 이런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맞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촌 오라버니로서 당연히 사촌 여동생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됐어, 한지. 그저 시합일 뿐이잖아. 겨우 저자들과 시합하는 건데 무서워해서야 되겠어?”

용흔은 짜증이 났고, 정미가 동의한 것을 보고는 그도 동의했다.

‘승패와 상관없이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예전처럼 괴롭힐 수 있으니 상관없어. 그나저나 저 녀석들이 왜 정미와 겨루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용흔은 몰래 정미를 흘끗 보고는 생각했다.

‘뭐, 정미가 기쁘면 됐지. 정미가 기뻐야 나와 말다툼을 해주니까. 작년은 일 년 내내 한지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나를 상대하는 것조차 귀찮아했잖아.’

이 생각이 들자, 용흔이 노여워하며 한지를 한 번 훑어봤다.

정미는 그런 용흔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용흔은 정말 갈수록 속이 좁아지는구나. 지 오라버니가 내게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지 오라버니에게 화가 나다니. 내가 지 오라버니를 좋아하지 않은 지 한참 돼서 다행이지. 용흔이 내가 지 오라버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얼른 알아채야 할 텐데. 그래야 내게 귀찮게 굴지 않을 테니까. 괴롭히려면 나 말고 정요를 찾아가라고!’

소년과 소녀들은 각기 다른 마음을 안고, 시합 규칙을 정했다.

경마로만 하면 이 숲은 달리기에 불편하니, 사냥으로 하기로 정했다. 어느 쪽이 사냥을 가장 많이 하고, 사냥감이 얼마나 사나운지 보기로 했다.

당연히 사나운 사냥감이 사냥감의 숫자보다 더 중요했다. 예를 들면 열 마리 토끼를 잡아 와도 한 마리의 오소리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정미와 공주가 용흔 쪽으로 들어가자, 양측의 인원수가 비슷해졌다. 해가 서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자, 그들은 재빠르게 시합을 시작했다.

숲은 원래 훈귀(*勳貴: 사업이나 나라를 위하여 두드러지게 세운 공로가 있는 귀족)들에게 사냥의 용도로 제공된 것이라, 범위를 표시해 정기적으로 사냥꾼들이 흉수를 사냥하여 귀족들의 안전을 지키곤 했다.

하지만 소년들은 한창 혈기왕성할 때라, 처음엔 저쪽이 토끼를 잡으면 이쪽이 사슴을 잡거나 하는 식이었으나, 한쪽이 돼지를 잡아버리자 다른 한쪽은 마음이 급해져 점점 범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서로가 서로를 쫓으며 안전한 곳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정미는 승마를 할 줄 알았지만, 정말 할 줄 아는 정도에 그쳤다. 며칠 동안 덕소 장공주에게 겨우 배우기 시작했으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다섯째 공주가 정미를 가르친 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승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었다.

정미는 말 위에 앉아 우각궁을 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많은 사냥감을 잡았을 때 정미는 토끼 한 마리밖에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용흔이 정미 곁으로 달려와 비웃었다.

“못난 계집아, 이게 네 오후 동안의 성과냐? 너무 형편없는데.”

정미는 용흔을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앞을 쳐다봤다.

“무슨 상관이에요!”

용흔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제 동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자신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계속 다퉈서는 안 된다고. 이에 용흔이 웃으며 말했다.

“못난 계집아, 기다려보거라. 내가 네게 노루를 잡아줄 테니까. 노루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때 화량이 다가와서 방금 잡은 어린 노루를 들고 말했다.

“낭자, 보시오. 내가 노루 한 마리를 잡았는데, 이따 구워보시는 게 어떻소? 마침 내가 늘 소금을 가지고 다니는데…….”

“할 줄 모릅니다.”

정미는 이 사람이 작은 패왕보다도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 고기를 구워봤겠어. 가끔 밖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늘 둘째 오라버니가 내게 구워줬는걸. 게다가 할 줄 안다고 해도 이 사람들에게 구워주고 싶지 않아. 기껏해야 다섯째 공주와 평 오라버니에게 구워주겠지.’

정미는 말의 복부를 걷어차 속도를 올려 두 사람을 지나 공주를 쫓아갔고, 남은 용흔과 화량은 서로를 마주 봤다.

용흔이 냉소했다.

“노루가 뭐라고, 이 몸은 표범도 잡을 수 있다!”

“표범이 뭐라고, 나는 호랑이도 잡을 수 있는데!”

두 소년은 하늘이 뚫어지도록 허풍을 떨었고, 서로를 노려보고는 말을 걷어차 앞으로 달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을 따돌리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비명과 말의 처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미와 그리고 공주 곁을 떠나지 않던 한지, 한평이 서로를 마주 봤다.

“안 돼, 용흔과 화량이다!”

한지는 고삐를 잡고 그 방향으로 떠나며 급히 한평에게 분부했다.

“둘째 아우야, 정미와 다섯째 공주를 잘 보고 있거라!”

정미도 그 비명을 들었기에 창백한 얼굴로 한평에게 물었다.

“평 오라버니, 용흔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한평이 안심시켰다.

“걱정 마. 큰형님네가 쫓아갔으니까. 아마 무슨 야수를 만난 걸 거야.”

정미는 저도 모르게 고삐를 꽉 쥐었다.

“평 오라버니, 우리도 가봐요.”

그녀는 늘 용흔이 미웠지만 사고를 당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가자.”

공주가 갑자기 목소리를 냈고, 한평의 동의를 기다리지도 않고 화살처럼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한평은 이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정미를 데리고 따라갔고, 쫓아가면서도 정미에게 당부했다.

“내 뒤에 꼭 붙어있어. 상황이 좋지 않으면 얼른 도망가고.”

“네.”

정미가 대충 대답했다.

세 사람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아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용흔과 화량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화량의 팔뚝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고, 바닥에 쓰러진 채로 한평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기어왔다. 용흔은 곰 한 마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검고 노란 줄무늬에 구리방울 같은 눈을 가진 호랑이가 한지 일행과 얽히고 있었다.

“아, 안 되겠어, 너무 무서워!”

그중 한 소년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고, 더는 이 무서운 광경을 견딜 수 없어 말을 돌려 달아났다.

소년의 움직임에, 곰은 사냥감을 찾았다는 듯 용흔을 버리고 맹렬히 그 소년을 쫓아갔다.

흑곰이 소년을 쫓아가자, 화량을 따라온 다른 세 소년들이 바로 소리를 지르며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그들은 다행히도 아주 잠깐 사이에 흔적도 없이 달아날 수 있었지만, 제일 처음 도망친 그 소년은 말을 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곰을 보자마자 몸을 떨어댄 탓에, 흑곰은 초인적인 속도로 달려 그 말을 쓰러트리고 말았다.

소년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흑곰이 다가가 소년의 얼굴을 마주 보며 덥석 물었다.

죽음을 직면한 소년은 본능적으로 급히 두 손으로 앞을 막았다.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 바라보자, 오른 팔뚝이 흑곰에게 크게 물려있었다.

바로 이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흑곰의 등에 화살이 꽂혔다.

공주가 말을 채찍질하며 흑곰의 눈앞에까지 달려왔고, 곧바로 말에서 뛰어내려 흑곰의 앞발을 꽉 잡았다.

공주는 그렇게 큰 흑곰과 맞서면서도 한 발짝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정미는 이미 얼굴이 창백해질대로 창백해져 있었다.

한지 일행은 멀지 않은 곳에서 호랑이와 싸우고 있었고, 공주는 곰과 맞서고 있었다. 양쪽 모두 아주 큰 위험이라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정미는 우각궁을 들었다가도, 팔이 계속 떨려 다시 내려놓았다.

‘안 돼, 아직 궁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잖아. 만약 잘못 쏘면 흑곰을 다치게 하지도 못하고 괜히 곰이 더 미쳐 날뛸지도 몰라. 갑자기 이 균형이 깨져서 공주를 해칠지도 모른다고. 만약 더 잘못 쏘면, 공주를 맞출 수도 있고…….’

정미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에서 뛰어내려 한 걸음씩 공주에게로 다가갔다.

그때 뭔가에 옷이 잡아당겨졌고, 정미가 고개를 돌리자 흑마가 정미의 옷을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흑, 놔 줘. 공주가 버티지 못하면 우리 모두 죽을 거야.”

흑마는 정미의 옷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꼬리로 자신의 윤기 나는 피부를 쓸었다.

정미는 순간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안 죽어. 내가 널 데리고 갈 테니, 우리 둘이 도망치자!’

정미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전쟁터로 치면 탈영병이나 마찬가지인데!’

정미가 어두운 표정으로 꾸짖었다.

“얼른 놔. 안 놓으면 앞으로 사탕을 주지 않을 거야!”

흑마는 잠시 망설이더니 억울한 듯 정미를 놓아주었다.

정미는 비수를 만지작거리며,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 걸음씩 공주에게로 다가갔다. 공주의 옆에 가까이 닿았을 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 흑곰의 급소를 아십니까?”

“코.”

공주는 타고나길 힘이 좋았지만, 그녀도 한계가 있었기에 이렇게 흑곰과 힘을 겨루기엔 이미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힘겹게 한 글자를 내뱉는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정미는 비수를 꽉 쥐고 흑곰의 코를 노려봤다. 흑곰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리가 조금 풀렸지만, 비수를 꼭 쥐고 다가갔다.

흑곰은 시력이 좋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예감했는지 갑자기 정미의 방향을 바라봤다.

곰이 입을 벌려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냈다.

정미의 두피에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긴장한 가운데, 흑곰에게 바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인 정미는 곧장 비수를 들어 곰의 코에 내리꽂았다.

처량하고 날카로운 곰의 울음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호랑이와 싸우던 한지 일행은 동작을 멈추고 정미를 바라봤고, 호랑이마저도 이쪽을 바라봤다.

정미는 피범벅이 된 비수를 들고 헛웃음을 짓고 있었고, 공주는 이미 흑곰의 몸 위에 올라타 곰의 눈에 주먹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한지 일행은 숨을 들이마셨고, 용흔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호랑이를 노려봤다.

호랑이도 깜짝 놀란 듯, 피를 흘리는 흑곰을 흘끗 보고는 꼬리를 숨기고 달아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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