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96화 (96/375)

96화. 위험에서 벗어나다

징 소리가 세 번 울리자 시험장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고, 수험생들은 느리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수험생들은 두 번의 검사를 거쳐야 했는데, 처음은 입구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압수하여 시험장으로 들고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들어간 후 어떤 방에서 머리부터 신발창까지 다시 한번 검사 받게 되는 일이었다.

저번에 벽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그 거자는 바로 두 번째 검사에서 시험 요점을 적어놓은 쪽지가 걸려 쫓겨난 것이었다.

정미는 멀찍이 서서 정철의 앞에 선 사람들이 하나씩 시험장에 들어가며 점점 정철의 차례가 오는 것을 바라봤다.

이때, 정철이 고개를 돌렸다.

정미는 까치발을 하고 그에게 손을 흔들며 힘내라는 손짓을 해 보였고, 이에 정철은 빙긋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펑펑’하고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를 받고 있던 정철이 몸을 돌려보자,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던졌는지 모를 폭죽이 화광을 반짝이며 사방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더욱 공포에 질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고, 한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달리자 뒤의 사람들도 우르르 따라가고 있었다.

혼잡한 인파들은 통제력을 잃은 용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녔고, 비명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놀라고 겁이 나 벌벌 떨었다.

“미미!”

정철은 바구니를 옆에 던져버리고 혼잡한 인파 속으로 급히 달려갔다.

“어, 어, 시험 안 치십니까?”

검사인이 당황하며 급히 정철을 불렀지만, 그 잘생긴 거자는 강물에 떨어트린 물방울 하나처럼 이미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쯧쯧, 안타깝군.”

‘그렇게 준수하게 생겼으면서, 만약 합격하게 된다면 4월 전시(殿试)에서 탐화랑(*探花郎: 시험에서 3위로 합격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데.’

전시는 황제가 직접 인재를 선발하는데, 글이 좋은 것보다 서법(書法)이 좋은 것이 중요했고, 서법이 좋은 것보다 외모가 준수한 것이 더욱 중요했다.

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퍼졌는지는 그 같은 하급 관리가 알 수 없었지만, 역대 탐화랑은 모두 일갑 세 사람 중 가장 준수한 사람이었다.

“아가씨!”

한편 정미와 환안은 순간적으로 들이닥친 인파 속에서 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정미는 환안이 인파를 따라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며 안간힘을 써 자신에게로 오려는 것을 보자 급히 크게 외쳤다.

“환안, 반대 방향으로 오면 안 돼!”

말을 반도 하지 못했을 때, 정미는 옆 사람에게 밀려서 비틀거리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고, 혼잡한 가운데 누군가 발을 밟았는지 고통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정미는 마치 자신이 새장 안에 빽빽이 들어찬 새처럼 계속 밀쳐지다가 어느새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엄마―”

갑자기 어디선가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보니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아이의 아랫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정미는 급히 몸을 숙여 그 아이를 안았고 곧바로 크게 밀쳐져 단번에 균형을 잃고 말았다.

“으앙―”

품 안의 어린아이가 깜짝 놀라 크게 울었고, 정미는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를 세게 안은 채 눈을 감고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정미는 누군가의 단단한 품에 안겼다.

“미미!”

그리고 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정미의 귀에 들려왔다.

“오라버니!”

“미미, 걱정 마.”

정철은 정미를 지키며 파리처럼 어지럽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의 몸을 치는 것을 꾹 참았고, 머리는 곧 산발이 되었다.

정철은 무술로 몸을 단련했지만, 이런 인파 속에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고 그저 강물 속에서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지 않는 반석처럼 정미를 감싸고 조금씩 옆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두 남매는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다다랐고, 정철은 정미를 안고 옆 상점의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2월의 향기가 담긴 신선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들어왔고, 정미는 숨을 크게 헐떡이며 그제야 살았다는 감각을 느꼈다. 한 손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정철을 끌어안은 채 그 품에 기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철은 인파를 한 번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시력이 좋았기에, 실수로 넘어져 사람들에게 짓밟힌 후 피범벅이 된 시체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안 되겠어.’

여동생에게 지옥 같은 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정철은 가볍게 정미를 다독거렸다.

“미미, 오라버니를 따라와.”

그는 정미의 품에 안겨 놀라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아이를 걷네 받았고, 정미의 손을 꽉 잡고는 지붕 위를 뛰었다.

귓가에 휙휙 하고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정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왜 꿈에서든, 현실에서든, 겨우 목숨을 구한 상황엔 늘 오라버니가 곁에 있는 걸까?’

얼마나 달렸을까, 정철은 정미를 안고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사방은 고요했고 양쪽엔 높은 벽이 있었다. 벽의 갈라진 틈으로 연한 덩굴잎이 보였고, 두 사람은 좁고 긴 골목에 있었다.

“오라버니…….”

정미는 정철 품에 안긴 어린아이를 밀어내며 그를 세게 안았다.

“다신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할 줄 알았어.”

“괜찮아, 괜찮아.”

정철은 창백해진 얼굴의 소녀를 보며, 그녀가 겪는 고통을 대신 받아줄 수 없음이 한스럽다고 생각했다.

정철의 옷깃을 잡은 정미의 손이 갑자기 멈칫했다.

“오라버니, 시,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했어!”

정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온몸의 피가 식은 듯 한순간에 몸이 차가워졌다.

‘오라버니는 열네 살부터 스무 살까지 육 년 동안 시험을 준비해왔잖아. 이번 회시는 뭇사람의 촉망이 쏠려있는 일인데, 어떻게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어!’

정철은 멍한 표정의 어린아이를 발치에 내려놓고 정미를 끌어안았다.

“바보야, 그게 뭐가 중요해.”

정미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을 땐 울지 않았지만, 당장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오라버니, 모두 내 잘못이야. 내가 배웅나오지 않았다면, 오라버니가 날 구하려고 시험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정철이 손을 들어 정미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그가 놓친 시험이 육 년간 준비한 그 시험이 아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잔치 정도였다는 것처럼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바보구나. 오라버니가 시험을 보는데 네가 어떻게 배웅을 안 나와? 그저 시험일뿐이야. 이번을 놓쳐도 다음이 있어. 삼 년 후에도 오라버니는 수많은 거자 중에서 가장 젊고 가장 준수한 수험생일걸. 걱정 마.”

정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같지 않아.”

사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의 죄책감은 무수한 칼날이 그녀의 가슴을 찌르는 듯 괴롭게 했다.

정철이 정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같지 않은 건 없어. 설마 미미는 오라버니에게 다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세상 사정이 이런 걸 어떡해. 오라버니가 또 삼 년을 기다리는 동안 분명 기죽을 일이 많을 거야.”

정미가 어찌 오라버니의 난처한 처지를 모르겠는가.

“걱정 마. 다시 삼 년을 기다릴 일은 없을 거야. 올해 가을에 무고(武考)가 있잖아. 기껏해야 스승님에게 조금 혼날 뿐이야. 오라버니가 무장원이 되는 걸 보여줄게.”

사실, 정철은 소설로 돈을 벌어서 여동생에게 쓰는 나날도 나쁘지 않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 마음대로 굴지 말고 시험이나 잘 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대량은 이미 안정된 지 오래되었고, 무관들은 점점 비주류화 되어 무장원이라 해도 탐화랑만큼의 영광이 없었다. 정미는 백부에 돌아가면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칠지 벌써부터 눈에 훤했다.

이때, 누군가 정미의 다리를 붙잡았다. 고개를 숙이자 어린아이가 고개를 들고 입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아이는 이내 목청을 높여 엉엉 울었다.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청색 나무문이 열렸고, 푸른 꽃무늬 천을 머리에 두른 부인이 함지를 들고 나와 문턱에 서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욕했다.

“당신 부부는 도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서로 애정표현만 하기 바쁘고 아이가 울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다니. 우리 집 암탉이 알도 못 낳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밝은 대낮인데, 세상 꼴이 아주 잘 돌아가는군요!”

말을 마친 부인은 물 한 바가지를 뿌렸고, 정철은 급히 정미를 잡아당겨 피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눈을 부라리고는 몸을 돌려 쾅 하고 문을 닫았다.

정미는 화가 나 이를 갈았고 달려가서 그 나무문을 걷어차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내가 이리 젊은데 어찌 애 딸린 부인이라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결국 참아낸 정미는 허리를 숙여 끊임없이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다 순간 손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트릴 뻔하다, 급하게 고쳐 잡았다.

아이는 깜짝 놀라 입을 막고 울음을 멈추었고, 포도알처럼 크고 빛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정미를 바라봤다.

정미는 그제야 양팔이 저려와 시리고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정철이 아이를 건네받고 물었다.

“손이 아픈 거야?”

“응, 방금 계속 달릴 땐 몰랐는데, 지금에야 느껴지네. 오라버니, 이 아이는 어떻게 하지?”

“일단 물어보자.”

두 남매는 골목 밖으로 나가면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아이의 이름이 ‘아보(阿寶)’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정철은 어쩔 수 없이 정미를 데리고 시험장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는 길에 두 사람은 시험장 방향에서 달려오는 사람과 스쳐 지나갔고, 아역(*衙役: 관아에서 사사롭게 부리던 사내종) 무리가 그 방향으로 몰려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엄마!”

한동안 조용하던 아이가 갑자기 크게 외치자, 정미는 또 창피한 말을 들을까 봐 급히 막았다.

“조용히 해. 나는 네 엄마가 아니라고!”

“아보야!”

그때, 한 부인이 정미의 옆을 스쳐 아보에게 달려들었다.

“엄마…….”

아보는 양팔을 벌리고 부인의 품에 안겼고, 부인의 가슴을 더듬으며 놓지 않으려 애썼다.

정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들이 제 아이를 구해주신 것이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제가 머리를 조아리겠습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감격한 부인은 아보를 안은 채로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

“부인, 어서 일어나세요.”

정철이 부인을 일으켰다.

“거리가 혼잡하니, 어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은인님. 감사합니다…….”

부인은 연거푸 감사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제, 제겐 두 분께 보답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매년 사원에 가 향을 피우며 기도할 때, 두 분의 백년해로와 평생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부인은 이내 깍듯이 절을 하고 아이를 안은 채 급히 떠났다.

“어, 부인, 잠시만요!”

정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기도를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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