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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93화 (93/375)

93화. 당신의 평안만을 바랍니다

“미미, 그 젊은 거자와 아는 사이이니?”

“젊은 거자?”

오라버니가 ‘젊은’ 두 글자를 강조해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정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렇구나, 역시 아는 사이였어. 게다가 나한테 들키기 싫었구나!’

정철은 여전히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냥 추측한 거야. 미미, 그자의 몸이 좋지 않은 거니? 의관에서 만난 거지?”

‘아!’

정미의 눈이 갑자기 커졌고, 정철은 정미의 표정을 보고는 뭔가 깨달은 듯 한숨 쉬었다.

“공부만 중시하고 무예는 닦지 않은 탓이야.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하며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 인생살이에는 백 가지 방법이 있는데, 건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지. 미미, 오라버니 말이 맞지?”

정철은 감히 여동생을 노리는 그 자식을 몹시 견제했지만, 아쉽게도 정미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맑은 눈을 반달처럼 휘며 말했다.

“오라버니의 말이 당연히 맞지. 하지만 설융은 그런 게 아니야. 손을 다쳐서 글을 쓸 수 없었기에 의관에 간 거야.”

‘설융? 벌써 이름까지 알고 있는 건가?’

정철은 입가에 띤 웃음기마저 거뒀으나, 여동생은 동정하는 말투로 한숨을 쉬었다.

“오라버니는 모르지. 설융은 불쌍한 사람이야.”

“왜 불쌍한데?”

정철이 한 글자씩 또박또박 물었다.

‘만약 여동생의 동정심을 이용해서 불쌍한 척을 한 것이라면, 내가 그 자식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불쌍한 것인지 알려주지!’

정미는 당연히 정철에게 숨김없이 말했다.

“오른손을 다치는 바람에 붓을 쥘 수가 없어서 의관에 오게 됐어. 처음엔 우리 제생당이 아니라 맞은편의 덕제당으로 갔었는데, 그쪽 사람한테 쫓겨나서 셋째 숙부님이 치료해주신 거야.”

정철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왜 쫓겨난 건데?”

정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마 누구한테 죄를 지었다고 들었는데……. 여동생이 자기한테 여비를 마련해주기 위해 몰래 마흔이 넘은 백정과 정혼을 했대. 나도 여동생의 입장이지만, 나는 오라버니가 아껴주고 지켜주잖아. 하지만 그 사람의 여동생은 그렇게 불쌍한 처지인걸.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치료해줘서, 시험을 볼 수 있었던 거야.”

정철은 ‘나는 오라버니가 아껴주고 지켜주잖아.’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고, 여동생이 갈수록 예뻐지고 철이 든다고 생각했다.

“미미에게 언제부터 그런 재주가 있었어? 오라버니는 몰랐네.”

“오라버니―”

정미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저번에 북명진인께서 주신 그 부수에 감명 받아서, 나도 모르게 부의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 그러다 셋째 숙부님을 따라 적지 않은 의술을 배웠는데, 숙부님이 우리 집안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부법집록》을 내게 주셨고, 점점 조금씩 할 수 있게 된 것일 뿐이야.”

정철이 아무리 총명하다고 해도, 자신과 전혀 다른 분야인 부의라는 학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늘 가까이 지내왔던 여동생이 그를 속일 거라곤 당연히 생각지 못했기에 입을 열었다.

“그럼 열심히 공부해봐. 한 가지 재주라도 있는 건 좋으니까.”

정미는 왠지 모르게 정철의 이 말이 남들이 정가의 부의를 발전시킨다고 칭찬하는 것보다 훨씬 듣기 좋았고, 그 때문에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들킬까 봐 급히 입술을 깨물고는 성을 냈다.

“오라버니의 말은 마치 내가 예전엔 아무런 장점도 없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금기서화(琴棋書畵), 가무화차(歌舞花茶)에서 바둑 빼고는 나도 나쁘지 않거든.”

정미와 정요의 사이가 아직 틀어지지 않았을 때, 깊은 자매의 정으로 정미는 늘 정요를 좋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사람의 천성은 타고나는 것이었고, 같이 자라서 같은 교육을 받은 정요가 자신보다 훨씬 우수하여 이름을 떨치는 것을 보고 종종 질투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질투심은 정요를 미워할 만큼 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따라잡게끔 하였다.

정미는 정요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점점 깨닫게 되었지만, 그 분야에 심혈을 그렇게나 많이 기울였기에 수도의 보통 규수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정철은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열네 살의 소녀는 한창 꽃이 필 때인지라 눈썹과 눈가에는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입가의 웃음기는 아름다운 봄날이 담긴 듯해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철의 마음에 기나긴 탄식이 스쳤고, 이내 웃음을 머금고 정미를 바라봤다.

“그런 건 교양일 뿐인걸. 물론 할 줄 알면 좋지만, 못해도 괜찮아.”

‘나는 미미가 금기서화에 능통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단이 있기를 바라. 나중에……, 나중에 시집을 간 후 내가 지켜줄 수 없을 때, 지금보다 쾌활하게 지낼 수 있기를. 하지만 뜻밖에 만난 젊은 사내는 경계하는 게 좋겠어!’

정철이 가볍게 기침했다.

“미미, 그 설융의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정미가 웃음기를 거두며 말했다.

“여동생이 어젯밤 목을 매 죽었대. 그 어머니는 너무 슬퍼서 기절하시곤 숨만 붙어있다고 하고. 오라버니, 설융이 얼마나 불쌍한지 봐. 어렵사리 나를 만나서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집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남은 두 시험은 잘 칠 수 없겠어.”

“확실히 운이 나쁘긴 하구나.”

정철의 눈에 사색이 스쳤다.

두 남매가 말하는 사이 제생당에 도착했고, 물어보니 설융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농부 같은 사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의관 안에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중얼댔다.

“이걸 어쩌나, 이걸 어째. 설씨 아주머니께선 아직 숨을 붙들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깨어나지 않으면 돌아가도 늦겠어.”

“집이 어디에 있는가?”

정철이 묻자, 그 사내가 멈춰 섰다.

“저희는 팔교진(八橋镇)에서 왔습니다. 수도에서 멀지 않습니다.”

“팔교진이라고?”

정철은 문득 이 일이 간단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에 부딪혀 자살한 수험생도 팔교진 사람이라 들었는데?”

그 사내의 표정이 곧바로 무너졌다.

“그렇습니다. 저희 능광현(凌光县)에는 총 세 분의 거인 나리가 나왔는데, 그중 두 분은 저희 팔교진 사람입니다. 원래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큰 호사였는데, 이렇게 될 줄은―! 아이고, 나리께선 모르시지요. 어제 그 정(鄭) 나리가 저희 진으로 옮겨졌을 때, 그 집 가족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요.”

사내는 정철을 흘끗 쳐다봤고, 그가 준수하고 온화하며 예의 바른 것 같자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희 진의 사람들은 정 나리가 부정행위를 한 것을 믿지 않습니다. 십여 년도 전부터 정 나리와 설 나리는 공부를 가장 잘했으며, 두 사람은 계속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고, 한 사람이 낙방하면 한 사람이 합격하곤 했지요. 정 나리는 가장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정철은 이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방금 너희 능광현에 총 세 명의 거인이 나왔다고 했는데, 다른 한 명은 누구인가?”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듣기로는 현승가(县丞家)의 공자라고 알고 있는데, 저희 시골 사람들은 이름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때 한 머슴이 문발을 걷고 들어왔다.

“둘째 공자님, 셋째 아가씨, 그 거인 나리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 사내가 달려들어갔다.

정철은 정미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모의 휘장을 내려 얼굴을 꽁꽁 가린 것을 보고서야 여동생을 데리고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최자겸(崔子謙), 최자겸―”

설융은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며 어딘가 아픈 듯 껄껄 웃고 있었다.

“설 나리,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나리의 어머님께서 나리를 기다리고 계신걸요. 여동생의 시체는 아직 침상 위에 있습니다. 어떻게 안치할지 나리께서 결정해주셔야지요!”

설융은 그 사내를 보며 눈을 굴리다가, 갑자기 선혈을 뿜어냈다.

그 사내는 얼굴과 몸에 피가 잔뜩 묻은 채 잠시 멍해졌다.

정철은 의관의 머슴에게 사내를 데리고 나가라고 눈짓했다.

“일단 밖에서 기다리게. 이 대형(大兄)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으니, 내가 한번 얘기해보겠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사내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더니 넋이 나간 채 방을 나갔다.

“미미, 너도 나가 있어.”

하지만 정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정철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휘장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정철은 여동생의 애원을 느꼈기에 한숨을 쉬고는 그녀를 내보내지 않았다. 그저 설융의 곁으로 다가가 앉아서는 손을 뻗어 그의 등에 있는 혈을 두드려주었다.

“설 형제, 진정하시오.”

설융은 등의 경혈이 두드려지자 가슴에 맺혀있던 울분을 꽤 풀 수 있었고, 마침내 이성을 되찾고 통곡했다.

“어머니, 동생아―”

그러고는 정철을 밀고 일어나 나갔다.

“설융, 잠깐 기다리세요.”

문 앞에 다다른 설융은 곧바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처참하던 표정에 갑자기 화색이 돌더니, 몸을 돌려 다시 돌아왔다.

정철은 이를 보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 자가 여동생을 건들기만 하면 우선 걷어차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일이 생겼다는 것이 내 동생을 건드릴 이유가 되진 않지!’

“선생님!”

가까이 다가갔을 때, 설융은 바로 무릎을 꿇었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듯 말했다.

“제 손을 고쳐주셨으니, 제 여동생도 구해주실 수 있지요? 그렇지요?”

이 행동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었고, 시선이 정미에게로 집중되게 만들었다.

정미가 급히 한쪽으로 피했다.

“제가 신선도 아닌데, 어찌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겠습니까. 설융, 어서 일어나세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더라도 이렇게 충동적이어선 안 됩니다.”

“선생님이 치료해주실 수 없는 겁니까?”

설융의 안색이 한순간에 어두워졌고, 정미는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습니다.”

설융은 일어나 비틀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정미가 그를 부르려 하자, 정철이 이를 막아 세웠다.

“여동생이 죽고 어머니가 아픈 건 큰 불행이니, 그저 가게 두거라.”

오라버니가 이리 말하니, 정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와 설융은 이번을 포함해서 그저 두 번 만난 사이였고, 그의 처지를 동정한다고 해도 그저 그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여동생이 고집부리며 쫓아가려 하지 않자, 정철은 잠깐 안심하고는 팔근에게 분부했다.

“설 거인을 모시고 팔교진에 한번 다녀오거라. 일 처리를 좀 도와주고, 만약 설 거인이 무슨 충동적인 행동을 하면 막거라. 무슨 일이 생기면 소식을 보내고.”

“알겠습니다.”

팔근이 나가자 정미는 유모를 벗고 궁금한 듯 물었다.

“오라버니, 저 사람한테 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는 거야?”

정철이 웃으며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미미, 네 마음속 오라버니는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이었구나?”

“아니야.”

정미가 고개를 저었으나 여전히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친절하다고 해도, 우연히 만난 사람을 이 정도로 도와줄 수 있나? 잠깐, 설마 오라버니가 설융이 젊은 것을 보고 방하착서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절대 안 되지. 설융은 멍한 성정에 옷소매로 입을 닦기까지 하는데, 내가 절대 좋아할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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