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90화 (90/375)

90화. 제일 친한 것도, 제일 소원한 것도 부부

쇄옥거 안, 정요도 교용에게 분부하고 있었다.

“나가서 거자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일을 알아봐.”

교용은 반나절 만에 돌아와 정요에게 고개를 저었다.

정요는 실망한 듯 한숨을 쉬었다.

회시는 늘 엄격했기에, 모든 거자는 입장할 때 머리, 옷, 신발, 바구니, 심지어 시험장에 가지고 들어온 간식에 대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정철은 당연히 벽에 부딪혀 자살하는 짓을 하지 않겠지만, 검사는 어떻게 피해간 거지? 설마 용모가 출중하고, 행동거지가 비범해 몸을 검사하는 사람이 소홀히 한 걸까?’

정요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고, 정미가 신발창을 남겨놓고 덧신만 선물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두 자매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생각은 같았다. 정철이 첫 번째 시험을 얼른 치고 나와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 * *

한편 염송당에서는 한 씨가 맹 노부인과 맞서고 있었다.

“미를 남안왕부에 시집보내겠다는 뜻입니까?”

한 씨는 이 늙은 할멈하고는 갈수록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나이로 따지면 남안왕은 정미의 아버지뻘입니다. 그리고 태자비 쪽을 생각한다면 정미는 그를 숙부라고 불러야 하는데, 어찌 혼사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맹 노부인이 한 씨에게 침을 뱉었다.

“넌 네 딸이 금지옥엽처럼 느껴지나 보구나, 친왕의 나이를 논하다니! 남안왕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한창 젊은 나이야. 정미가 만약 시집가게 되면 친왕비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쪽은 황가다. 남안왕이 정말 정미에게 마음이 있기만 하면, 항렬은 또 무슨 상관이냐? 남안왕이 혼인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그 여인의 성씨가 용(容)씨가 아닌 이상 황상께서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한 씨는 사랑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사람은 혼인에 대해 순수한 동경심이 있기 마련이라, 늘 좋아하지 않던 딸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내에게 시집가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게다가 최근 두 모녀의 관계는 점점 더 좋아지는 바였다.

‘정미는 아름다운 데다가 능력도 있으니, 나중에 큰 행운이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내에게 시집간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늙은 사내에게 시집갈 필요는 없어!’

한 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맹 노부인은 더욱 화를 냈다.

“내가 네 생각을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정미를 아비 없는 자식에게 시집보내려는 게지. 일찍이 그 마음을 접거라. 내가 죽고 난 이후가 아니라면!”

한 씨는 화가 나 벌벌 떨었고, 며느리의 신분으로 되받아칠 수 없어 그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저는 정미를 데리고 남안왕부에 감사 인사를 하러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거역하는 것이냐? 네가 이러면, 바로 둘째에게 너와 이혼하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거라!”

한 씨는 곧바로 멍해졌다.

맹 노부인은 한 씨의 태도가 마음에 든 듯 입꼬리를 저절로 올렸다.

‘봐, 내 그럴 줄 알았지. 애초부터 죽기 살기로 내 아들에게 시집오려고 했으니 굳이 시어머니의 권력으로 누를 필요도 없다!’

그저 이 시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아들이 그녀를 보지 않을 거라는 걸 알려주기만 해도 충분했다.

‘위국공부의 적장녀인게 뭐 어때서?’

맹 노부인은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라, 처음엔 한 씨가 들어왔을 때 그녀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속으론 두려워했다. 하지만 갈수록 한 씨를 점점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특히 한 씨처럼 고귀한 출신의 여인이 자신의 말에 꼼짝달싹 못 하는 것을 보면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알아들었느냐?”

맹 노부인은 눈꺼풀의 주름을 쓸어 올리며 한 씨를 쳐다봤다.

“잘 모르겠습니다.”

한 씨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정미를 데리고 남안왕부에 가지 않는다고, 나리께 저와 이혼하라고 하시겠다고요? 그럼, 그럼 태자비마마는 어떡합니까? 태자비마마께 이혼당한 어머니가 있으면, 태자 전하께서 마마를 파면하지 않겠습니까?”

한 씨는 늘 총명하던 노부인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사내에게 버림받는 것에 대해선 충격을 받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드러낼 뿐이었다.

맹 노부인은 당황했다.

‘이 애가 나를 협박까지 할 줄 알게 되었다니? 이, 이건 아니지!’

맹 노부인이 한 씨를 빤히 쳐다봤다.

사실 한 씨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태자비는 늘 태자의 총애를 받지 못했고, 태자는 진작부터 태자비를 폐위할 기회를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백부의 실질적인 집주인으로서, 절대 그런 일을 일어나게 할 순 없지.’

한 씨에게 그리 말한 것은 그저 겁을 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한 씨를 겁주지도 못하자 맹 노부인은 꽤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한 씨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 차갑게 웃었다.

“아주 잘났구나. 태자비마마께 이혼당한 어머니가 있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고, 내게 이렇게 맞서다니. 그래, 그래. 내가 늙었구나. 내 말을 아무도 말로 듣지 않으니. 아복, 가서 둘째 나리를 모셔오거라!”

이때 둘째 나리는 이미 일을 마치고 돌아온 상태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급히 달려와 물었다.

“어머니, 무슨 일로 아들을 찾으셨습니까?”

맹 노부인이 바로 웃었다.

“둘째야,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래서 너희가 늙은이를 귀찮게 여기는 바람에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맹 노부인이 한 씨를 흘겨봤다.

“네 며느리 얘기다. 정미가 오늘 외출했다가 길이 혼잡하여 지나가던 남안왕께서 백부로 데려다주셨단다. 내가 내일 정미를 데리고 남안왕부에 가 감사 인사를 드리라고 하니, 절대 말을 듣지 않는구나. 이게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이냐?”

말을 마친 맹 노부인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눌렀고, 더욱 처량한 말투로 말했다.

“만약 다른 집 며느리가 이렇게 대들면 시어머니가 진작에 뺨을 내리쳤을 것이야. 우리 백부에선 며느리의 장녀가 태자비마마이고, 고귀한 국공부 출신이라 어쩔 수 없지.

내 아들아, 그때 내가 네 혼사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렇게 고귀한 귀녀가 우리 집에 시집오게 되면, 네 기가 죽어 고개를 못 들까 봐 그랬던 것이야. 지금 보거라. 네 고개만 들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고개도 들지 못하게 하는구나!”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린 거요?”

정씨네 둘째 나리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수염은 단정하고 깔끔하게 길러 한눈에 봐도 시와 책을 많이 읽는 문인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한 씨에게 말하니, 전쟁터를 종횡무진하는 무장처럼 차갑고 무정하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 한 씨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평생을 바친 남편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서로 목숨을 건 적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한 씨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쟤 좀 봐라, 쟤 좀 봐!”

맹 노부인은 화가 나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쳤다.

“어머니, 화를 가라앉히세요. 아들이 데리고 가서 잘 타이르겠습니다. 내일 꼭 모녀가 남안왕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한 씨는 정신이 들어 제 남편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절대 가지 않을 겁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씨의 얼굴이 돌아갔다.

“당신, 그 입 다무시오!”

맹 노부인의 눈에 통쾌함이 스쳤다.

“둘째야, 들어보거라. 정미도 내 손녀 아니냐. 그런데 이 며느리는 마치 내가 정미를 불구덩이에 미는 것처럼 구는구나. 남안왕은 친왕이다. 인품, 외모, 신분, 모두 최고가 아닐 수 없지. 만약 그가 장가를 들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귀녀들이 줄 서서 시집가려고 할지 모르는 일이지. 나는 남안왕이 두 번이나 정미를 백부로 데려다 주었길래, 혹시나 정미를 다르게 보는 것일까, 정미가 이런 좋은 혼인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 나는 태자비의 친조모인데, 설마 손녀를 팔아 영예를 구하려 하겠느냐?”

“어머니, 노여워 마세요. 어머니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늘 잘 몰라서 그럽니다. 이 사람 때문에 화가 나서 스스로를 해치게 하셔선 안 됩니다. 내일 다시 어머니께 사과하러 오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나리는 멍하니 오른쪽 뺨을 쥐고 있는 한 씨를 데리고 이연원으로 돌아갔고, 한 씨의 손을 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정말 나를 실망시키는군!”

한 씨는 정신이 들어 눈을 깜빡이다가, 맑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붉게 부은 뺨을 따라 흐른 눈물이 난초가 수 놓인 옷깃에 스며들었다.

둘째 나리는 그 하얗고 가는 목덜미에서 시선을 거두며 불편한 듯 눈을 피했다.

최근 그는 왠지 모르게, 한 씨를 떠올리면 혐오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얼굴을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을 잊곤 했다. 옷깃에 가려진 부분도 이렇게 뽀얀 피부일까 생각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둘째 나리는 갑자기 조금 전 내리친 따귀가 조금 심했던 것 같아 가볍게 기침하고는 말했다.

“어머니께선 연세가 많이 드셨소. 젊으실 때 고생하시고, 지금에서야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셨는데, 어찌 어머니께 그리 대할 수 있는 것이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정미가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뿐입니다!”

둘째 나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어머니께 대들어야 했소? 내일 정미를 데리고 한번 나갔다오면 되는 것 아니오. 설마 어머니께서 따라나설 거라 생각한 것이오?”

한 씨는 멍해졌다.

“나리―”

둘째 나리는 말투가 조금 따뜻해졌다.

“정미와 남안왕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 하물며 남안왕은 줄곧 혼인 계획이 없었는데.”

정미의 그런 성정이라면, 황가에 시집간다 하더라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태자비의 아버지라는 신분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만약 남안왕의 장인까지 된다면, 신분이 너무 과해 그의 벼슬 일이 여기서 그칠까 두려웠다.

“알아들었습니다.”

한 씨는 남편이 그녀의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고, 마음속으로 깊이 감동하여 얼굴의 화끈한 통증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둘째 나리가 입꼬리를 휘며 웃었다.

* * *

다음 날, 한 씨는 정미를 데리고 외출했다.

하지만 마차는 남안왕부를 지나 은루(銀樓)로 향했다.

기분이 좋아진 한 씨는 직접 정미에게 홍옥과 순금으로 만들어진 귀걸이를 골라주었고, 굳이 정미에게 끼워주려 했다. 정미는 이런 한 씨가 적응이 되지 않는 듯 그녀를 경계하며 빤히 쳐다보았다.

“어머니, 오늘따라 기분이 유난히 좋아보이시네요.”

한 씨는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성을 냈다.

“귀걸이를 사주면 그냥 끼면 되지. 뭐 그리 말이 많니?”

정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주었다.

‘어머니가 이러시는 건, 분명 아버지가 또 뭔가 잘 대해주셔서겠지.’

사실 정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수염도 길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직 화 이낭만을 좋아하지 않던가? 정미였다면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

‘지 오라버니가 아버지보다 젊고 준수하긴 하지만, 난 오라버니가 정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뒤로는 다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졌는데. 하지만 어머니는 왜 그렇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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