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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79화 (79/375)

79화. 미백부

마침 이때, 그 마차의 창이 살짝 열리며 어린 소녀의 수려한 얼굴이 드러났다.

소녀는 조금 놀란 듯 정철을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정철이 포권(抱拳)을 한 후 크게 말했다.

“소생은 회인백부의 둘째이고,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제 동생입니다. 조 아가씨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고는 앞으로 가 마차의 문발을 걷었다.

“미미, 내려와.”

정미는 정철이 건넨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위험한 마차에서 나오자 안심이 되었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친절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그 소녀는 정미의 아름다움에 놀라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미도 소녀에게 웃어 보이고는 정철에게 물었다.

“그럼 오라버니는 어떡해?”

“나는 걸음이 빠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팔근과 환안을 우리 마차에 따라가게 하고, 나는 네 마차를 따라가면 되지. 얼른 가봐. 조 아가씨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알겠어.”

정미는 앞에 멈춰선 마차를 향해 걸어갔고, 정철은 팔근에게 조용히 몇 마디 한 후 조 시랑의 마차 뒤로 갔다.

“아가씨, 감사합니다.”

정미가 마차에 올라타며 소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두 집안은 평소 교류가 없었기에, 이건 거의 첫 만남이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쾌활한 성정인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미를 살펴보다가 웃었다.

“회인백부에 이렇게 예쁜 여동생이 있을 줄 몰랐네.”

정미도 웃었다.

“저도 조 시랑 댁에 이렇게 의리 있는 언니가 계신 줄 몰랐어요.”

인연이란 참 신기했다. 그저 이렇게 서로 마주 보며 웃었을 뿐인데, 두 사람 사이에 마음이 잘 맞는 듯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소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다섯째고, 이름은 청공(晴空)이야. 동생은?”

정미가 대답했다.

“저는 셋째고, 외자 이름으로 ‘미’라고 해요.”

조청공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회인백부의 그 셋째 아가씨?”

사실 정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솔직함이 가장 중요했고, 그녀는 숨기는 것이 없었기에 떳떳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 언니의 말이 맞아요. 제가 바로 그 정씨 가문의 셋째 아가씨예요.”

조청공은 정미를 더 자세히 살펴봤다.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본 소녀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밝은 표정이었고, 입꼬리에는 평화롭고 옅은 웃음기가 묻어 있어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청공이 더욱 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을 진짜로 여겨선 안 되나 봐.”

정미가 웃었다.

“아예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니에요. 조 언니가 들은 그 이야기들 중 일부는 사실일 수 있지요. 하지만, 사람은 변하는 것 아니겠어요? 조 언니, 저와 오라버니가 성에 들어가면 백미재에 가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언니도 함께하지 않을래요? 적게나마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요.”

조청공은 숨지도 피하지도 않는 정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지만, 아쉬운 듯 말했다.

“내가 백미재의 양육갱을 아주 좋아하긴 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 우선 돌아가야 해. 나중에 시간이 나면 서신을 보내 같이 백미재에서 만나도록 하자.”

“좋아요.”

말을 주고받으며 잡담을 나누던 정미는 창의 문발을 살짝 걷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빠르다니. 곧 도착하겠어요!”

조청공이 피식 웃었다.

“이제 알았어? 내 마차는 다른 집안과 달라. 내가 전문적으로 개조해 안정적이고 빠르게 달리지.”

그러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었다.

“남안왕을 알고 있지? 그의 마차 중 하나도 내가 개조를 도와줬어.”

정미가 놀란 듯 물었다.

“조 언니는 마차를 개조할 줄도 알아요?”

좋아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조청공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내 조부님이 공부의 시랑이시잖아. 아버지도 공부에서 일하고 계시기에,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을 손보는 걸 좋아했어. 아쉽게도 어른들은 내가 그런 것들에 얽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셔서, 남안왕에게 개조해준 마차의 반은 내 공로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내주어야 했지.”

“그건 정말 아쉽네요.”

정미도 당연히 같은 여인로서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특히 정미와 조청공 같은 규수들은 더 했다.

다행히 대량에선 예전과 달리, 이따금 여인들도 출류발췌(*出類拔萃: 평범한 부류에서 훨씬 뛰어남)하다면 여관(女官)까지는 될 수 있었다.

조청공이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쉽진 않아. 어쨌든 나는 이런 것들을 만지작거리는 걸 좋아하고, 그런 헛된 명성은 신경 쓰지 않으니까. 정가의 동생이 내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주기만 하면 돼.”

정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이걸 굳이 나한테 말할 필욘 없지 않나?’

조청공은 정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듯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누가 동생더러 그렇게 예쁘라고 했니. 내가 잘난 점을 찾아 내밀지 않으면 부끄러울 정도잖아.”

정미가 참지 못하고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 * *

두 사람은 말이 꽤 잘 통했고, 성에 도착한 뒤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정미는 정철을 따라 백미재에 가 배불리 먹었고, 손거울 하나를 선물 받고 나서야 백부로 돌아갔다.

날은 정월 열엿샛날이었다. 정철은 백부의 대나무숲 뒤에 있는 작은 정원으로 거처를 옮겨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정미는 의관이 문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계획을 더는 미룰 수 없어 미백부를 한잔 들고 한 씨를 보러 갔다.

* * *

“뭐라고, 네 셋째 숙부에게 의술을 배우고 싶다고?”

한 씨가 이상한 것을 보는 듯 제 딸을 살펴봤다.

정미는 한 씨의 급한 성정이면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바로 화를 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바로 미백부 부수를 탁자에 놓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 셋째 숙부님께 의술을 배우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저는 그저 간단한 의학 지식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니. 너는 여자아이인데, 그런 것들을 배워서 뭐 하느냐. 새어나갔다간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니?”

“당연히 같지 않습니다.”

정미의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처럼 밝고 아득하여, 보통의 소녀들과 다른 신비함이 느껴졌다.

한 씨가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 제게 부의의 재능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제가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건 부의입니다!”

한 씨가 크게 놀라더니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건 안 된다. 현청관에 들어가면 시집을 갈 수 없어. 생각도 하지 말거라!”

그녀는 정미가 마음을 접지 않을까 봐 한 번 더 공격했다.

“그때 네게 재능이 있다고 한 것은 그저 농담일 뿐이었는데, 사실로 받아들이다니, 정말 어린 아이로구나. 지금 네 오라버니는 공부를 해야 하고, 정요와도 놀지 않으니 혼자서 무료하다는 걸 안다. 이렇게 하자. 네 생일이 지나면 외가에 가 잠깐 지내거라. 그땐 화서도 돌아오고 큰 사촌 언니와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무료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 현청관에 갈 거라 말씀드리진 않았는걸요. 저희 집의 조상님도 부의 아니셨나요? 저는 그 가업을 계승하여 이 능력을 전수하고 싶어요. 안되나요?”

한 씨가 눈을 부라렸다.

“너 같은 계집은 가업을 전승할 수 없어! 게다가, 백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 조상 외에 정씨 가문의 누가 부의가 되었느냐? 그 제생당 뿐이었는데, 몇십 년 전엔 휴업을 할 뻔했지 않니. 만약 네 셋째 숙부가 아니었다면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지.”

한 씨는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어리고 연약한 아이가, 그 힘든 부의가 될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정미는 이 결정이 상도에 어긋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한 씨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어머니, 잘못 알고 계셔요. 저희 가문의 조상은 애초에 세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딸의 이름은 정교(程嬌)이었습니다. 그때 조상이 정한 후계자가 바로 그 정교입니다. 만약 그 애가 갑자기 병으로 죽지 않았다면, 그녀가 가업을 이었을 거예요.”

한 씨가 멈칫하자 정미가 이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지요. 부의는 재능이 아주 필요한 일이고 노력만으론 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원래 이 기술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여인과 사내를 가리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으니까요!”

소녀의 당당하고 차분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한 씨는 잠시 얼떨떨해졌다.

‘눈앞의 소녀가 정말로 그 장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내 딸이 맞나?’

한 씨는 갑자기 이 일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눈부신 삶을 살았으면 했고, 능력 없고 추한 외모로 자신의 많은 실패를 떠오르게 만들지 않았으면 했다.

한 씨가 조금 누그러진 듯 하자, 정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 소진 도사도 여인이잖아요. 북명진인은 사내지만, 제자가 사내든 여인이든 개의치 않으시지요. 어머니께서도 같은 여인으로서 딸에게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삶을 살길 원하시는 겁니까?”

한 씨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네가 그런 걸 배워서 뭐하겠니. 사내처럼 사숙에서 공부를 가르칠 수도 없지 않느냐?”

“어머니, 우선 배우면 쓸모가 있을 거예요. 병이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마지막 한마디는 확실히 한 씨의 마음을 움직였으나, 한 씨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허락한다면 딸 대신 몰래 준비를 해 놓아야 했다. 만약 딸이 그저 헛소리를 한 것이고, 애초에 부의의 재능이 없는 것이라면 괜히 성가신 일이 될 터였다.

“미야, 네 말이 맞지만, 부의의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미가 들은 몇 마디 말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니.”

정미는 한 씨가 허락할 마음이 있으나, 그저 아직 염려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그 미백부 부수를 들고 한 씨의 앞으로 건넸다.

“어머니, 제가 기절했을 때 북명진인이 한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부수는 그의 말을 따라 만든 것이고, 피부가 하얘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약 믿지 않으신다면, 한번 시도해 보세요.”

한 씨는 그 노을 같은 연한 분홍색의 부수를 들고 망설였다.

‘어미에게 알지도 못하는 걸 마시게 하다니!’

“한번 시도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정미가 반쯤 고개를 들어 한 씨를 바라봤다.

“어머니, 저는 예전처럼 상스럽고 고집스럽고, 또 한 사람만을 좋아하면서도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며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좋아지고 싶어요. 남들이 저를 비웃은 걸 후회하게요. 그리고 전 더 이상 그를 절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정미는 사실 한지와 더 뒤얽히기 귀찮았다.

하지만 정미는 한 씨가, 이러한 깨달음은 그때 정미의 뺨을 때렸을 때 나온 것이라는 걸 신경 쓰리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큰외숙모의 비웃음과 조롱을 아주 신경 쓰는 사람이지.’

역시나 이 말은 한 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 씨는 잔을 들고 부수를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그러고는 조금 불편한 듯 입술을 꾸물대며 속에서 올라오는 역함을 억눌렀다.

“그럼 한 번 기다려 보도록 하지. 만약 이 부수가 정말 효과가 있다면, 내가 네 셋째 숙부에게로 가 앞으로 매일 반나절씩 따라다니도록 해주게 하마. 하지만 가서 아무렇게나 얼굴을 드러내선 안 된다.”

정미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예전엔 한 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정미는 지금에서야 어린 소녀가 무슨 일을 하려면, 어찌 되었든 간에 어머니의 지지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아요. 어머니, 이 미백부는 3일 동안 매일 마셔야 효과가 있어요. 그러니 내일도 한잔 가지고 오겠습니다.”

사실 한 사람의 피부가 환골탈태하듯 변하려면 보름 동안 매일 마셔야 하지만, 한 씨가 보름 동안 마셔서 정미처럼 변하게 되면, 사람들이 크게 놀라 성가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미에겐 공부에 전념할 시간이 가장 모자랐기에, 성가신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원치 않았다.

‘3일이면 근 몇 년간 조금 어두워진 어머니의 피부를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거야.’

정미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떠났고, 남은 한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체 모를 것을 두 잔이나 더 마셔야 한다고? 최근에 내가 너무 상냥한 어머니가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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