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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78화 (78/375)

78화. 회경(回京)

그런데 뜻밖에도 정미가 조택의 대문에 다가갔을 때, 정미는 현기증이 나서 눈을 가렸다. 머릿속에선 갑자기 아혜의 목소리가 울렸다. 갑작스러운 아혜의 목소리는 더욱 날카롭게 들렸다.

「정미, 너 어디야?」

정미는 갑자기 닥쳐온 현기증을 참느라 아혜의 말을 한동안 알아듣지 못했다.

아혜는 조금 다급해졌다.

「말해. 너 지금 어디냐니까?」

정미는 그제야 반응을 보였고, 아혜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였다면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겠지만, 아혜의 물음에선 다급함과 흥분이 숨겨지지 않았다. 아니면, 답을 듣고 싶은 다급한 마음에 숨길 생각조차 못 했을지도 몰랐다.

정미는 아혜에 대한 경계를 한순간도 놓은 적이 없었기에, 지금 무언가 떠오른 듯 답했다.

‘온천마을에 있어. 며칠 전에 말했잖아. 화서를 보러 간다고.’

「온천마을이라고?」

아혜는 의심이 가득해 정미에게 생각지도 못한 요구를 했다.

「정미, 네 눈을 빌려서 보여줘. 어때?」

정미는 무의식적으로 그리해선 안 된다고 느꼈고, 아혜와 계속 이야기하려 할 때쯤, 정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미, 왜 그래?”

정미가 눈을 떴다.

“오라버니, 괜찮아. 계속 날 데려가 줘.”

정철은 정미를 걱정하며, 그녀를 데리고 대나무숲을 돌아 들어갔다. 그러자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정씨 가문의 종사야. 여기 올 때마다 이 종사의 뒤에 있는 집에 머무르게 되지. 하지만 그곳에 여인은 들어갈 수 없어. 저길 봐, 저건 부설한 가묘와 사숙(私塾)이야.”

하지만 이때, 정미는 이미 정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중이었다. 머릿속엔 아혜의 미친 듯한 재촉하는 목소리만 들려왔고, 결국 입술이 퍼레져서는 정철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나 몸이 안 좋아. 그냥 돌아가자.”

* * *

정구백네에 돌아온 후, 정미는 괴로움을 참으며 정철에게 몇 번이고 수도로 돌아가자고 했다.

정철은 거절했다.

“몸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길을 나설 수 있겠어?”

정미가 고집을 부렸다.

“오라버니, 그냥 돌아가자. 방금 머리가 어지러웠던 건 어젯밤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거야.”

정철은 그건 그럴 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 밤엔 둘째 할아버지 댁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자.”

그러자 정미는 아예 정철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애원했다.

“오라버니, 정말 더 이상 여기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그래. 여기는 온천마을보다 적응이 안 되는걸. 봐봐…….”

정미는 소매를 올려 정철에게 팔의 붉은 점들을 보였다.

“홍점도 많이 일어났잖아.”

눈처럼 흰 팔뚝에 손톱만 한 홍점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니, 마치 흰 눈 속의 홍매 같아 눈이 부셨다.

정철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했지만, 그래도 큰일인지 아닌지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해 다시 눈을 돌려 급히 살펴보고는, 그녀의 소매를 걷어내려 주었다.

“아마 너무 습한 곳에서 자서 뭐가 난 모양이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허리춤에 맨 작은 물고기 염낭에서 작은 병을 꺼내 환안에게 건네곤 말했다.

“이걸로 아가씨를 닦아드려라. 너무 많이 바를 필요 없고, 홍점 위에 얇게 바르면 된다.”

말을 마친 정철은 정미를 보지도 않고 급히 나갔다.

정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환안에게 약을 바르게 했고, 머릿속으론 아혜와 계속 대화를 했다.

‘아혜, 그만해. 보여 주지 않을 거니까.’

「왜?」

아혜는 화가 나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정미가 차갑게 웃었다.

‘왜냐니. 지금은 내 눈을 빌리고, 나중엔 내 손발까지 빌리려고 하는 거지? 습관이 되어선 안 돼!’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아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잠깐만 보면 돼.」

정미가 상대하지 않자 목소리는 갑자기 차가워졌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널 가르쳤는데, 이 정도 요구도 들어줄 수 없는 거야?」

정미는 생각했다.

‘애초에 나한테 배우라고 강요한 게 누구더라? 나중에 이 요괴가 나한테서 어떤 이득을 취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은 부적을 배우기에 가장 중요한 때이기도 했다. 만약 아혜에게 미움을 받아, 정미 몰래 사람을 구하는 부수를 잘못 만들게 하기라도 한다면, 그건 큰일이었다.

정미는 결국 떨떠름하게 제안했다.

‘그럼 약속해. 잠깐만 보겠다고.’

아혜가 크게 기뻐했다.

「좋아!」

그 순간, 정미는 뭔가 오묘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눈인데도, 갑자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미가 다급하게 눈을 깜빡이자, 눈앞이 다시 맑아지며 아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씨, 너무 빠른 거 아냐? 아직 아무것도 못 봤다고!」

정미가 멍하니 있다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미안. 순간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랬어. 그럼 다시 해봐.’

잠시 후, 아혜가 이를 악물었다.

「긴장 좀 풀어!」

정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음, 이제 해봐.’

시선이 돌아가고, 정미는 다시 눈앞이 밝아져 그 불편함을 꾹 누른 채 아혜에게 물었다.

‘이제 됐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혜가 의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정미는 무고하다는 듯 답했다.

‘그래. 그리고 네가 갑자기 봐야 한다고 난리를 쳤잖아.’

「아니, 넌 절대 여기에 있지 않았어!」

정미가 곧바로 대답했다.

‘지금은 방 안에 있고, 방금은 방 밖에 있었어. 어쨌든 이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공간인걸.’

「그럼 왜 나한테 보여 주지 않았던 거야?」

정미의 어조가 차가워졌다.

‘아혜, 떼쓰지 마! 방금 네가 갑자기 난리를 피우고 시끄럽게 굴어서 내가 힘들어하니까, 오라버니가 나를 방으로 데리고 온 거야. 오라버니 앞에서 어떻게 네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어?’

아혜는 잠시 침묵했다.

정미가 이어서 물었다.

‘아혜,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니까?’

한참 후, 아혜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마 시골에 와서 나도 조금 혼란스러웠나 봐.」

정미는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해 봐도 그녀 집안의 조택이 어떻게 아혜를 건드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아까는 아혜에게 몸을 먹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직도 그 공포감이 남아 있을 지경이었다.

정미는 더 이상 이 정가촌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고, 약을 다 바르고 나가 정철에게 가자고 재촉했다.

정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응했다.

“여기에서 이틀 묵고 가자고 한 사람도 너고, 가자고 하는 사람도 너고, 정말 아이 같구나.”

정미는 오라버니에게 항상 입에 발린 말을 아끼지 않았고, 그와 팔짱을 끼며 헤실헤실 웃었다.

“역시 오라버니가 날 가장 아껴줘.”

정철과 정미가 떠나려고 하자, 정구백네 부부가 극구 만류했다.

특히 곽 씨는 아주 아쉬운 표정이었다.

“왜 벌써 가니. 내일이면 네 아홉째 형님네도 돌아오는데.”

정철이 웃으며 대답했다.

“미미가 도무지 적응을 못 해서, 몸에 붉은 점까지 생겼어요. 그리고 집에서 나온 지도 며칠 되었으니, 돌아가지 않으면 어른들께서 걱정하실 겁니다.”

“너희 형제가 어렵사리 모이는 건데, 정말 아쉽구나.”

곽 씨는 아무래도 보내기 싫은 얼굴이었다.

정철은 아무 무늬도 없는 염낭을 건네며 말했다.

“이번엔 급히 오느라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이건 조카의 작은 성의이니, 당숙모님께서 받으시고, 당숙부님과 다섯째 형수님께 몸에 좋은 걸 좀 챙겨드리세요.”

“아이고, 어찌 네 돈을 쓰겠니.”

곽 씨는 그제야 웃음을 띠었고, 말로는 사양하면서 손은 일찍이 뻗어 그 염낭을 꼭 쥐었다.

정미는 화가 나 이를 악물었고, 몰래 정철을 꼬집었다.

* * *

두 남매가 마차에 탈 때까지 정미는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미, 아직도 오라버니에게 화난 거야?”

정미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무슨 화가 났다고. 그 은이 내 것도 아닌데!”

정철이 가볍게 웃었다.

“왜 아니야. 오라버니의 은은 다 미미에게 쓰는 건데.”

오라버니가 자신을 놀리자, 정미는 그를 흘끗 노려봤다.

정철은 여동생의 냉담한 모습보다, 보통의 여자아이처럼 활기차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좋아했기에, 웃으며 말했다.

“미미, 넌 구두쇠도 아니면서, 오라버니가 돈 쓰는 걸 왜 싫어하는 거야?”

“그게 뭐가 같아. 그자들은 오라버니한테 은자만 원하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돈으로 소란을 잠재우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 그들은 오라버니의 친부모잖아. 이렇게 오라버니를 대하는데, 오라버니는 속상하지 않은 걸까?’

“아홉째 형님네를 뵙지 못해서, 형님네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그래.”

정철은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정미의 어깨를 토닥였다.

“바보야, 그분들은……, 어쨌든 나를 잠시 키워주셨잖아. 그분들이 없었다면, 오라버니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어?”

정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 이따 수도에 들어가면 우선 네 선물을 사러 가고, 또 백미재(百味齋)에 가서 맛있는 걸 먹자. 어때?”

정가촌은 온천마을보다 수도에서 가까웠기에, 지금 출발하면 점심쯤에 도착할 것이고, 그때는 식사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양육갱(*羊肉羹: 양고기 스프)으로 유명한 백미재 이야기에 정미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 우리 우선 밥부터 먹고, 물건을 사러 가자.”

“그래.”

마차가 앞으로 나아가며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정미의 귀엔 더욱 경쾌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갑자기 멈춰 섰다.

“공자님, 마차가 고장났습니다.”

팔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철이 마차에서 내려 마부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마부가 마차를 살펴보더니 대답했다.

“수레바퀴의 비녀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헐거워져서 떨어진 것 같은데, 어디에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녀장이 빠진 것 자체는 큰일이 아니었지만, 없으면 마차가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팔근에게 명령했다.

“우선 튼튼한 나무를 골라와 보거라.”

지금 상황에선 그저 나무를 깎아 비녀장 대신 끼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튼튼할지는 알 수 없기에, 빨리 달릴 수도 없었고, 정미만 겨우 마차 안에 앉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정미만을 태운 마차가 도로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마차 옆으로는 많은 사람이 따라가고 있었다.

정미가 마차의 창을 열고 정철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나도 그냥 내릴래. 혼자 마차 안에 있으니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그래. 마차에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 나 때문에 또 고장 나면 골치 아프잖아.”

정철이 거절했다.

“네가 무거워 봤자 얼마나 무겁다고. 얌전히 차에 앉아 있으면 돼. 수도까지 아직 좀 더 가야 하는데, 몸도 편치 않다고 했으면서 오래 걸었다가 또 아프면 어떡해?”

정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차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더니, 한 마차가 지나쳐 갔다. 뜻밖에도 그 마차는 가다가 몇 장 거리 앞에서 멈춰서더니, 마차에서 장밋빛 비갑(*比甲: 옛날 중국에서 부녀자들이 입던 일상복)을 입은 시종이 뛰어내려 다가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건 어떤 집안의 마차인가요?”

정철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으나,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회인백부의 마차다.”

그 시종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 아가씨는 조가(趙家)의 소저이십니다. 조부님께선 공부(工部) 조 시랑(侍郞)이신데, 공자님께서 들어보셨을까요?”

육부시랑(六部侍郞)은 3품 고관이니, 정철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종이 이어서 말했다.

“방금 저희 마차가 지나가면서, 저희 아가씨께서 공자와 몇 사람이 마차 밖에서 걷는 것을 보시고는 마차가 고장 난 것이라 생각하셨고, 마차 안에 아가씨가 타고 있는지 여쭈셨습니다. 만약 타고 있다면, 저희 아가씨의 마차에 타서 같이 가도 된다고 하셨어요. 이 마차의 속도로는 오후가 돼서야 도착할 겁니다.”

정철은 이렇게 친절한 아가씨를 마주친 것에 대해 꽤 의아했기에, 앞에 멈춰선 그 마차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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