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가정폭력
“날이 어두운데, 어떻게 신제 혼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정철이 팔근을 따라가게 했다.
그러자 곽 씨가 입을 삐죽였다.
“어린 계집이 사나워지면 사내놈들보다 사나운걸! 네가 숙부라고 그 아이를 감싸드는구나!”
그러고는 목청을 높여 불렀다.
“큰아가, 방 안에 있어서 뭐 하느냐. 신제가 나갔으니 어서 요리를 내오거라.”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수척한 부인이 찬을 내어왔다. 청화자기로 된 큰 그릇에 돼지고기와 두부, 그리고 당면이 담겨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붉은색과 흰색이 뒤섞인 고기 요리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부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수증기를 피해 고개를 살짝 비켰고, 음식을 상에 올린 후 옷에 손을 닦으며 말을 더듬었다.
“어, 어머님, 드세요.”
곽 씨가 꾸짖었다.
“모처럼 철이와 미가 왔는데, 누구 보라고 그렇게 고생하는 척을 하느냐. 어서 나가거라!”
정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그동안 태산과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망진을 통해 이 부인은 이미 회임한 지 2개월이 넘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인이 나가자마자 곽 씨가 정철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네 형수가 또 회임을 했다. 처음 회임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귀한 티를 내려 하는 게 정말 우습구나.”
정철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곽 씨는 그동안 많이 답답했었는지, 계속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계집아이를 연달아서 세 명이나 낳았는데, 다른 집이었으면 진작에 처가로 보냈을 거다. 그래도 우리 집이니 이 정도지…….”
정미는 곽 씨의 멈추지 않는 입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 안에서 금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것이 금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해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금니를 끼고 있다고? 설마…… 오라버니가 준 그 금땅콩으로 붙인 건 아니겠지?’
정미는 품위 있고 멋진 오라버니를 보다가, 또 입을 멈추지 않는 곽 씨를 쳐다봤다.
‘오라버니는 정말 우리 집에 양자로 들어온 게 맞나?’
그러다 곧 교양있는 정철조차 한계치에 다다라 곽 씨의 말을 끊었다.
“당숙모님, 정영이 당숙부님께서 편찮으시다고 하던데, 저와 정미가 뵈러 가보겠습니다.”
곽 씨는 바로 입을 다물고는 멍해졌다.
“늙은이는 지금 방에서 쉬고 있단다. 네가 영감을 늘 염려하고 있을 줄 알았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크게 아픈 게 아니라 무리하고 푹 쉬지 않아서 허리가 아플 뿐이다. 평소엔 괜찮은데, 한 번씩 잘못되면 며칠 누워있어야 나아지더구나.”
곽 씨는 말하면서, 정철과 정미를 정구백이 쉬고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정미는 정구백의 안색을 살폈으나, 그의 혈색은 둘째 오라버니보다도 좋아 보였다. 아쉽게도 그녀는 아직 침술과 부상에 대한 과목은 배우지 않았기에, 허리에 대한 병은 알 수 없었다.
“철이 왔느냐.”
그가 일어나려고 하자 정철이 급히 다가가며 말했다.
“당숙부님, 몸도 편찮으신데 그냥 누워 계세요.”
그의 안색이 더욱 붉어지더니 곽 씨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큰일은 아니다. 고질적인 병이야.”
“그럼 더욱 쉬셔야지요.”
곽 씨가 끼어들었다.
“그렇고말고. 철이 너는 모르지. 네 당숙부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 푹 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며칠도 못 버티고 밭일을 하러 가신단다.”
그녀는 말하면서 서쪽 방향으로 입을 삐죽였다.
“하지만 이게 영감 탓도 아니지.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먹고 살려면 영감이 어찌 누워서 쉬고만 있을 수 있겠니.”
그 말을 듣고 정미는 뭔갈 눈치챘다.
‘당숙모 말씀의 의미는, 또 오라버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거지? 어쩐지, 그 버섯 닭백숙이 그리 맛있지 않더라니!’
이 생각에 소녀는 화가 나 손을 뻗어 오라버니를 한 번 꼬집었다.
회인백부의 사정도 좋지 않았기에, 정미도 한 달에 은 두 냥밖에 받지 못했다. 정철처럼 성인이 된 공자에게도 여섯 냥 정도가 다였다.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정철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정미가 물었을 때, 정철은 아가씨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고 선생의 제자이고, 고 선생이 그를 아껴 상을 많이 준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미의 생각엔 오라버니는 아직 일이 없었고, 과거를 보는 자들에게 떨어지는 보조금도 많지 않은데, 어찌 선생이 주는 상만 의지할 수 있는 건지 의뭉스러웠다. 은자가 있으면 보관해둬야지, 어찌 계속 아홉째 당숙부 일가에게 빼앗길 수 있겠는가!
정철이 정미의 손을 몰래 밀어내며 가볍게 웃었다.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말입니다. 아, 당숙모님은 치아가 좋지 않으신지요. 왜 가짜 이를 끼워 넣으셨어요?”
곽 씨는 잠시 당황하더니 조소했다.
“네 아홉째 형수가 굳이 나를 데리고 가서 해준 것 아니더냐? 그 아이의 효심은 정말 나도 어쩔 수 없더구나.”
곽 씨에겐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대배항(*大排行: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아버지 쪽의 종형제 자매, 그 위에 손자·증손자까지를 포함한 장유의 순서) 중 다섯 번째 항렬이고, 차남은 아홉 번째 항렬이라, 그녀가 말하는 아홉째 형수는 차남의 아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 이야기가 나오자, 정철이 물었다.
“참, 다섯째 형님과 아홉째 형님은요?”
곽 씨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네 다섯째 형님 그 못난 놈은 이른 아침부터 현성(懸城)에 가 일자리를 찾는다고 하더니,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 노름을 하러 간 것이겠지. 아홉째 형님은 네 형수의 친정에 일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
“됐다, 그만. 철이와 미더러 밥 먹으라 하시오. 밥이 식겠소.”
정구백이 말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너희에게 이런 얘길 해서 뭐하니.”
곽 씨는 다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먹으렴. 아무도 없으니 미는 내 옆에 앉고.”
식탁 앞에서, 정영은 곽 씨의 말을 듣고 기분 나쁜 듯 입을 삐죽였다.
정미는 곽 씨가 챙겨온 젓가락을 건네받다가, 아까 그 부인이 보이지 않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다섯째 올케언니랑은 같이 드시지 않나요?”
곽 씨는 눈꺼풀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 아이는 아이들과 주방에서 먹는다. 너희 먼저 먹거라.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이때 대문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말을 전하러 갔던 신제가 돌아왔다. 신제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곽 씨가 말했다.
“네 어미에게 가서 밥 먹거라. 손 꼭 씻고. 다 먹으면 미 고모에게 잠자리를 잘 깔아드리거라.”
“알겠습니다.”
신제는 상 위를 흘끗 쳐다보고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들어갔다.
* * *
그다지 맛있지 않은 밥을 다 먹고 난 후 정미가 자리에 누웠을 때, 갑자기 개 짖는 소리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국랑(菊娘), 상 차려줘…….”
그러고는 뒤이어 곽 씨가 조용히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죽고 싶구나. 이제야 돌아오다니, 또 노름을 하러 갔었지?”
“아이고, 어머니. 때리지 마세요! 노름이라니요! 진짜 일자리를 찾으러 간 거라고요. 배고파 죽겠는데, 먹을 건요? 국랑 그 게으른 여편네는 벌써 자는 건가?”
“목소리 낮춰. 오늘 철이가 제 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방금 쉬러 들어갔다. 네게 닭다리를 남겨놨어. 부뚜막에 데워놨으니 알아서 먹거라. 나는 족욕하러 가보마.”
정미는 이 집안의 상황을 급히 알고 싶었기에, 몰래 옷을 걸치고 문 옆에 다가가 문발에 귀를 붙이고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소리와 사내의 욕지거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점점 멀어져,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반주향(*약 15분)도 지나지 않아, 서쪽에서 갑자기 여인의 비명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수선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신제의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말소리가 멀리 있는 정미에게도 똑똑히 들려왔다.
“할머니, 어서 와보세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걷어차서 피가 나요…….”
“뭐하러 소리를 지르느냐? 네 숙부와 고모가 깨면 널 가만두지 않을 테다!”
곽 씨는 문을 열고 발을 씻던 물을 밖으로 붓고는, 맨발로 달려온 신제를 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자! 정말 하나같이 나를 가만두질 않는구나!”
곽 씨는 서쪽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문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들은 조금 당황한 듯, 곽 씨가 들어오자 멋쩍게 말했다.
“어머니…….”
“이건 또 무슨 일이냐?”
곽 씨는 큰며느리가 바닥에 누워있는 것도 보았고, 아홉 살, 여섯 살 정도 된 두 여자아이가 큰며느리의 양팔을 한쪽씩 잡고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곽 씨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고, 큰며느리의 희게 바랜 다갈색 치마가 피로 얼룩덜룩해진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려 큰아들을 매섭게 노려봤다.
“거기서 뭘 멀뚱히 서 있어, 얼른 네 처를 토항(*土炕: 침상 아래 불을 때는 중국식 난방) 위로 올려라!”
그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급히 달려가 부인을 토항 위로 올렸다.
부인은 배를 감싸고 울부짖었다.
“어머님, 이,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냐고?”
곽 씨가 큰아들의 뺨을 철썩 때렸다.
“몹쓸 놈! 임부를 걷어차다니! 어찌 됐든 간에 배 속에 있는 건 네 아기다. 이 아이가 아들일지도 모르는데!”
정오랑(程五郎)은 곽 씨의 손을 피하며 반박했다.
“어머니, 고의로 그런 게 아니에요. 너무 화가 나서 걷어찬 거라고요. 정확히 배를 차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곽 씨가 화가 나 아들을 노려봤다.
그는 지지 않고 변명했다.
“저한테 닭다리를 남겨주셨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부뚜막에 가보니 고기 조각은 몇 개 밖에 없고 닭다리도 없었습니다. 분명 이 게걸스러운 여편네가 먹었을 텐데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곽 씨가 참다못해 부인을 노려봤다.
“닭다리가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몰래 훔쳐먹는 건 어디서 배워온 나쁜 버릇이냐?”
부인의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말했다.
“어머님, 저, 저는 정말로 먹지 않았어요……. 배가 너무 아픕니다……. 제발 어서 의원을 불러 아이를 지켜주세요…….”
신제가 무릎을 꿇고 곽 씨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할머니, 어서 의원을 모셔와 주세요. 어머니의 배 속엔 제 동생이 있는걸요. 그리고 닭다리가 없어진 건 저희 어머니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제가 훔쳐 먹은 거예요. 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의원을 모셔와 주시기만 하면, 절 마음껏 때리셔도 돼요!”
“신제야…….”
부인은 힘없이 딸을 쳐다보며,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나머지 두 여자아이도 신제 옆에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 언니는 먹지 않았어요. 언니가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가져왔는데, 어머니가 먹지 않고 다시 가지고 돌아가라 하시니까, 언니가 우리한테 나눠줬어요. 어머니와 언니를 탓하지 마세요. 저희 잘못이에요…….”
두 여자아이가 크게 울기 시작했다.
이때 정구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 어서 의원을 모셔와야지.”
신제와 아이들은 바로 울음을 그치고 어리둥절해졌다.
‘할아버지는 편찮으신 것 아니었나, 어떻게 일어나신 거지?’
곽 씨는 이를 깨닫지 못한 듯 뒤이어 말했다.
“네 아버지 말이 맞다. 어서 의원을 모셔오거라. 아이를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 보자꾸나.”
곽 씨에게 손자 손녀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큰아들에게는 세 딸이 있었고, 둘째 아들에게는 딸 하나와 두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큰아들에겐 여태껏 아들이 없었으니, 만약 배 속의 이 아이가 아들이라면, 잃게 되기엔 아주 아까웠다. 그리고 큰며느리는…….
‘치, 벌써 셋이나 낳았는데, 새댁도 아니고 유산이 뭐 별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