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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71화 (71/375)

71화. 항상 오늘 같기를

세 사람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용흔은 돌아가는 길에서 성질을 마구 부리고 있었다.

“화등이 뭐가 예쁘다고, 매년 똑같은데. 나는 정가(程家)의 둘째 형님과 창술을 더 연습하고 싶단 말이다!”

용흔은 당연히 왕부의 관리인에게, 자신이 감시하지 않으면 못난 계집이 화서와 아기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관리인은 이 도련님의 무법천지인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와 실랑이하지 않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세자비마마께서 세손을 걱정하고 계셔서 그렇지 않습니까.”

용흔은 관리인의 이런 태도를 더 보고 싶지 않았기에, 패천에게 말했다.

“이상하다, 어머니께서 내가 국공부의 온천마을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신 거지?”

두 시진 후.

경왕부 안, 경왕세자비 증 씨는 닭털로 만든 먼지떨이로 용흔을 혼내고 있었다.

“못된 놈. 갈수록 대담해지는구나! 한밤중에 여자아이의 방에 기어 들어가다니, 오늘 내가 너를 때려죽여야겠다!”

용흔이 달아나며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 때리지 마세요. 저는 한밤중에 여자애의 방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그저 정미의 방에 가서 정미를 보려고, 악!”

증 씨는 숨을 헐떡이며 화를 냈다.

“정미? 정미가 다 큰 아가씨라는 걸 아느냐, 모르느냐! 한밤중에 처녀의 방에 기어 들어가다니,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있었으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느냐? 정미를 처로 맞아 데려오기라도 할 셈이었느냐!”

“아닙니다!”

변명하던 용흔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증 씨를 바라봤다.

“어머니, 어머니의 말씀은, 제가 정미를 처로 맞이하면 정미의 방에 들어가도 저를 때리지 않겠다는 뜻이십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가능하…….”

증 씨는 갑자기 입을 다물더니, 이내 화가 나 얼굴까지 시퍼레진 채로 외쳤다.

“헛소리, 누가 정미를 처로 데리고 오라고 했느냐?”

“어머니께서 방금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증 씨는 먼지떨이를 옆으로 내던지고는 용흔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리 와보거라. 이 어미가 네게 할 말이 있다.”

증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 흉기도 옆으로 던진 것을 본 용흔은 잠시 안심하고 다가갔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십니까? 아이고, 살살, 살살하세요!”

증 씨는 방심한 용흔의 귀를 잡아끌고 내실로 들어가 다시 귀를 한 번 비틀고는 엄숙하게 말했다.

“기억하거라. 평소 네가 어떻게 소란을 피우든 심하게 널 벌한 적 없지 않더냐? 하지만 만약 네가 정미에게 품지 말아야 할 마음을 품은 거라면, 그것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용흔은 억울했다.

“어머니, 저는 못난 계집에게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정미는 못생기고 멍청한 데다, 가끔 심술도 부린다고요!”

아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자, 증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됐다.”

“저는 그저, 정미가 다른 사람과 아기를 낳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증 씨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고 물었다.

“너, 너 지금 뭐라 했느냐?”

“어머니, 흥분하지 마세요! 최소한 얼굴은 때리지 마세요!”

증 씨는 이제, 정말이지 아들을 혼내줄 기분마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녀는 늘 아들이 소란을 피우기를 좋아할 뿐,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도 젊은 시절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정미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겠지?’

증 씨의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고, 아들이 정말로 정미와 혼인하려 하면 두 모자가 어떻게 다투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었기에, 미리 경고했다.

“용흔, 이 어미의 말을 듣거라. 이 세상에 좋은 아가씨는 아주 많단다. 나중에 네가 누구를 마음에 들어하면, 신분이 낮더라도 나와 네 아버지는 네 뜻을 따르마. 하지만 정미만은 안 된다!”

“어째서요?”

용흔이 눈을 크게 떴다.

경왕세손은 어려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아왔고, 하늘의 달을 따다 달라 얘기라도 하면, 그 누구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정미가 다른 사람과 아기를 낳는 모습을 보기 싫고, 자기 자신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바로 행동에 옮길 아이였다.

“어머니, 항상 정미를 꽤나 좋아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정미는 안 되는 겁니까?”

“그건 별개의 일이다.”

“왜 별개의 일입니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증 씨가 용흔에게 물었다.

“그럼 꼭 정미와 혼인해야 한단 얘기냐?”

용흔이 당황하더니 고개를 젓자, 증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 일은 나중에 다시 말하자꾸나. 넌 아직 소성년식도 지내지 않았으니, 혼사가 급하지 않아. 그저 이 어미가 네게 알려주마. 한밤중에 마음대로 여자아이의 방에 들어가는 짓은 아주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아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생각에, 증 씨는 당장이라도 아들의 귀를 꼬집고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용흔, 너도 점점 크고 있으니, 어릴 때 무슨 소란을 피워도 괜찮을 때랑은 다르다. 생각해 보거라. 한밤중에 아가씨의 방에 들어갔다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어떻게 되겠느냐?”

용흔의 손이 떨렸다.

‘얻어맞고, 창술을 연습하는 척 그러다 또 얻어맞고…….’

“네가 아가씨의 방에 들어가면 그 아가씨의 청예(*淸譽:청렴을 지킨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야. 네가 그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처로 들이든 첩으로 들이든, 어쨌든 책임을 져야 하건만, 너는 어떻게 할 테냐? 만약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당당할 수 없을 게다. 그 아가씨와 아가씨의 집안이 어찌 생각하겠느냐?”

용흔은 말문이 막혔다.

드디어 아들이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자, 증 씨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으면 됐다. 가서 씻거라. 따뜻한 수건으로 얼굴을 잘 문지르고! 퉁퉁 부어있구나!”

용흔은 마침내 긴장이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어머니, 그럼 아들은 가보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옳다. 앞으로 다신 함부로 여자아이의 방에 들어가지 말아야지. 특히 좋아하지 않는 여자아이에게는, 절대 석 장(丈) 거리 안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테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애라면? 이건 당연히 상황을 봐서 생각해야지. 만약 내가 좋아하는 아가씨가 다른 집안의 며느리가 된다면, 남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내 아내로 들이고 봐야지!’

증 씨가 아들이 그녀의 말을 이렇게 응용한 줄을 알았다면, 울며 기절했을 것이다.

* * *

원소절(*原宵節: 정월 대보름)날, 수도의 길거리는 시끌벅적했고, 길의 양쪽에는 각양각색의 등이 달려있었다. 남녀노소 모두 새 옷을 입은 채 달이 뜨기도 전에 나와 등을 구경했고, 부잣집 가문의 여식들은 현청관에 가거나, 사원에 가 소원을 빌었다.

황성 안에는 더욱 많은 등이 달려있었고, 그곳에는 황제와 황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귀족 가문 그리고 관리와 그의 가족들까지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도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온천마을 안엔 사람이 적었지만, 마찬가지로 떠들썩했다.

정미는 자신의 작은 토끼등과 화서의 비단잉어등을 보다가, 정철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우리에게 등을 하나씩 만들어 줬잖아, 그럼 오라버니 등은 어떤 등이야?”

정철이 웃었다.

“오라버니는 어른인데, 무슨 등이 필요하겠어?”

이 말에 정미와 화서의 맘속에서 불만이 일어났다.

화서는 어리지만 내성적인 성정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정미는 불평하며 말했다.

“원소절을 지낼 땐 원래 등을 들어야 하는 거야. 환갑이 넘은 노인도 등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걸 본 적 있는데, 오라버니는 왜 안 드는 거야?”

그녀는 토끼등을 화서에게 넘기고는 당부했다.

“들고 있어. 잠깐 갔다 올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미는 손에 등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가까이 와서야 정철과 화서는 그 등이 호박으로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몇 년 전에, 오라버니가 내게 호박등 하나를 선물해줬던 거 기억나? 그 모양이 꽤 예뻐서, 마침 어제 환안에게 주방에 가보라고 했더니, 호박이 있더라고. 그래서 진짜 호박으로 등을 만들어봤는데, 정말 될 줄은 몰랐어.”

정미는 호박등을 각각 정철과 화서에게 건넸다.

화서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내 것도 있어?”

“당연하지. 나와 오라버니는 너와 명절을 보내러 온 거잖아.”

화서는 눈가가 뜨거워져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가족이 함께하니,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정철은 한쪽에서 걸으며 입가에 옅은 웃음기를 띠고는, 정미가 화서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눈동자에는 맑은 달빛이 가득 담겨 있었기에, 그 한층 아래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등을 들고 산책하며 월계수 옆까지 걸어갔고, 정미는 준비한 색끈과 붓을 꺼내 정철과 화서에게 건네고는, 높이 있는 나뭇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새해 소원을 적어서 이 나무 위에 걸어두자. 내가 보기엔 이 나무가 수도의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정미는 이미 무슨 소원을 빌지 생각해놓았기에, 금방 이를 다 써서는 돌에 묶고 위로 던졌다. 운 좋게도 한 번 만에 높은 나뭇가지 위에 끈이 걸렸고, 크게 기뻐하며 정철을 쳐다봤다.

“오라버니는 무슨 소원을 빌었어?”

정철이 끈을 가리며 웃었다.

“누가 보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정철이 말을 마친 뒤 돌을 묶어 힘차게 던지자, 색끈이 높게 날아오르더니 아주 높은 나뭇가지에 걸렸다.

정미는 둘째 오라버니의 소원이 뭔지 알 수 없게 되자 아쉬운 한숨을 쉬며 화서를 쳐다봤다.

화서는 이미 소원을 다 쓴 상태였기에, 정미가 이쪽을 쳐다보자 급히 경고했다.

“보지 마!”

정미가 입을 삐죽였다.

“안 볼게. 얼른 던져. 얼른 돌아가서 탕원(*湯圓: 중국 원소절에 먹는 전통 음식)을 먹자.”

화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끈을 돌에 묶은 뒤 나무 위로 던졌다.

그는 몸이 허약해 힘이 없었기에 조준력이 별로 좋지 않아, 제대로 나무에 걸리지 못한 돌은 자꾸만 떨어졌다. 마지막엔 정미의 발치에 떨어져 소원이 펼쳐졌다.

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년에는 철 형님과 창술을 연습하고, 정미가 또 내게 호박등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기를.>

정미가 색끈을 주워서 정철을 보다가, 또 화서를 바라봤다.

화서가 다가와서 색끈을 빼앗고는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누가 봤으니, 이 소원은 이제 이루어지지 않는 거 아냐?”

그는 정미가 자신을 달래줄까 봐 저도 모르게 정철을 쳐다봤다.

정철은 손을 뻗어 그의 손에 있던 색끈을 가져와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더 선명한 색끈을 건네며 방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바보야.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좋은 소원을 써서 올리면 되지.”

잠시 멍해 있던 화서의 얼굴에는 점점 미소가 떠올랐고, 곧 소원을 다시 써서는 정미와 정철의 응원 아래 마침내 던져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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