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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70화 (70/375)

70화. 어리석음

화서가 나간 후, 정미가 아혜에게 물었다.

“선천적으로 허약한 사람은 무슨 부적으로 치료할 수 있어?”

아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말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만들어진 병을 말하는 거야?」

정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응. 내 사촌 남동생은 조산으로 태어났거든.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외조모님이 아주 세심하게 몸조리를 해주었는데도 좋아지지 않아.”

좋아지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악몽 속에서 화서는 아마 열여섯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방금 자신에게 죽을 먹여 주던 사촌동생에게 이삼 년의 수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정미는 가슴이 찌르는 듯이 아파 왔다.

「그건―」

아혜가 말을 늘이자, 정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치료하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가장 어려운 병이지.」

“그게 무슨 뜻이야?”

아혜가 설명했다.

「그렇게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은 내증(內症)인데, 대방맥과(大方脈科)에 속해. 배원부(培元符) 하나면 치료할 수 있어.」

정미의 눈이 반짝였다.

“아혜, 그럼 그걸 나한테 가르쳐줘.”

아혜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혜?”

정미는 재촉했고, 아혜가 반응하지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예전에 부의의 열세 가지 과목을 하나하나 나한테 가르쳐준다고 했잖아. 그 배원부가 대방맥과에 속한다며. 왜 아무 말도 안 해?”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아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부적을 배우면, 네 사촌동생에게 써먹을 거지?」

정미는 ‘당연하지’라고 말할 뻔했지만, 순간 아혜가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고, 혹여 아혜가 가르쳐주지 않을까 말을 돌렸다.

“쓰고 싶긴 하지만, 어떻게 쓸지는 네 말을 듣고 봐야지.”

아혜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좋아. 그럼 먼저 약속 하나 하자. 네가 이 부적을 배운다고 해도, 어떻게 쓸지 결정할 때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그래.”

정미가 대답했다.

아혜는 너무 쉽게 대답하는 정미가 의심되어, 그녀에게 독촉했다.

「맹세해!」

그러자 정미는 아혜에게 더욱 경계심이 일었지만, 그저 불쾌한 척만 하며 말했다.

“부적 배우는데 맹세까지 필요해? 그래, 나 정미가 여기서 맹세할게. 배원부를 배우고 난 뒤, 만약 아혜의 말을 듣지 않고 함부로 쓰면 평생 시집가지 않을게!”

정미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 아혜에게 확인했다.

“이럼 됐지?”

아혜는 그제야 믿었다.

「네가 한 말을 잘 기억해 두면 돼. 그럼 알려줄게. ‘배원부’는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아. 네가 배운 보태부와 지혈생기부보다 훨씬 쉬울 거야. 하지만, 선천적으로 허약한 건 사실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병이야. 그런 사람들의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려면 삼 개월에 한 번씩 아홉 번 복용하게 해서, 총 2년 이상이 걸려.」

정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저 오래 걸릴 뿐인 거구나. 그럼 괜찮아.”

한동안 호통치지 않던 아혜가 다시 호통치기 시작했다.

「네가 뭘 안다고 괜찮대? 네가 부적을 만들 때마다 자신의 선혈을 주사에 섞어야 했지. 하지만 배원부는 달라. 처음엔 피 한 방울, 두 번째는 두 방울, 세 번째는 네 방울이 필요해. 이렇게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는데, 중단할 수도 없어. 중단하면 배가 되거든. 생각해봐, 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네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정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혼란스러운 듯 중얼댔다.

“하지만 내 사촌 남동생의 몸이 점점 나빠지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순 없잖아.”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네가 배원부를 배우고 마찬가지로 삼 개월에 한 번씩 복용하게 해도, 거기에 넣을 피의 양을 늘리진 말자고. 그렇게 하면 네 사촌동생이 보통의 사람처럼 회복하진 못하겠지만, 더 나빠지진 않을 거야.」

아혜는 소녀가 맹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봐 다시 한번 경고했다.

「앞으로 몇 년간 네가 배워야 할 부적은 수백 수천 가지고, 부적으로 사람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네 피는 한정되어 있잖아? 내 말을 안 듣고 배원부로 네 사촌동생을 치료하는 데에만 전념하여 다른 것에 영향을 주면, 후회하게 될 거야!」

이 경고는 당장 화서의 병을 뿌리 뽑으려는 정미의 다짐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당연히 화서가 완전히 좋아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었다. 만약 화서를 치료하기 위해서 큰언니와 외조모 등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지장이 생긴다면 분명히 후회할 터였다.

‘그렇다면, 우선 배원부를 배우고 화서가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한 뒤, 나중에 모든 것이 안정되면 다시 화서를 잘 치료해주도록 하자.’

정미는 속으로 계산했다.

‘큰언니의 죽음엔 누가 개입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외조모님이 무슨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는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 해. 그리고 아홉째 당숙부님이 왜 나중에 관직에 오르게 되었는지, 둘째 오라버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건지, 이 모든 것을 알아낼 방법을 찾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 * *

밤이 되자, 정철이 정미에게 사람을 보내 방에 남아서 밥을 먹을지, 아니면 같이 먹을지 물었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낀 정미는 당연히 방에 남아서 밥을 먹는 것을 택했다.

팔근이 이를 전하자, 정철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정미에게로 향했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안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정철이 두 번 불러도 답이 없었기에, 그는 깜짝 놀라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하던 정미는 바깥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고, 은침을 하나 꺼내 손가락을 찔러 피 한 방울을 짜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맑은 물 위로 떨어졌다.

핏방울이 흩어지며 맑은 물은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정미는 이미 보태부의 복잡한 필획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혈과 주사를 섞어 쓰는 것만 해보면 됐다. 한 방울의 피로는 한 장의 부적만 만들 수 있었지만, 여태까지 부적을 배운 경험으론 수십 장을 그려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웠기에, 다시 은침을 들어 손가락을 찌르며 아픔을 참고 핏방울을 짜내었다.

정철은 걸어들어오다가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멍해졌고,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미미, 뭐 하는 거야!”

그는 서둘러 다가와서 정미의 손가락에 맺힌 핏방울과 아래의 핏물을 보았다.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 그는 정미를 덥석 붙잡고 화냈다.

“미미, 관리인 할멈이 말해줬잖아. 달거리는 여인의 정상적인 현상인데, 어찌 이렇게 자해를 할 수 있어! 설마 손가락에서 피를 내면 달거리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야?”

정미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라버니는 어쩜 이렇게 자상할까, 내게 이런 절묘한 핑계를 찾아주다니.’

그러고는 정신이 번뜩 들어 미묘한 말투로 말했다.

“오라버니 말이 맞아……. 앞으로 다신 이러지 않을게.”

“많이 아프지?”

정철은 정미의 손가락을 잡고 살펴보았고, 정미는 급히 손을 빼내며 정철에게 이상한 눈빛을 보내더니 씩 웃었다.

“아파.”

‘오라버니에게 어찌 손가락의 바늘 자국들을 보여줄 수 있겠어!’

“그렇게 아픈데도 웃니!”

정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정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정미가 급히 숨었다.

“오라버니, 때리지 마. 앞으로 이러지 않을게.”

정철은 정미를 빤히 쳐다보다가 힘없이 말했다.

“미미, 와서 앉아봐.”

정미가 순순히 앉자, 정철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관리인 할멈이……, 너에게 뭐라고 말했어?”

그러자 정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워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철의 마음은 더더욱 놓이지 않았다.

‘그 관리인 할멈이 도대체 미미에게 뭐라 말했길래……. 제대로 말했다면 미미가 바늘로 손가락을 찌를 리 있을까.’

“미미, 난 널 놀리지 않을 거야. 그저 관리인 할멈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네가 오해하고 있을까 봐, 그래서 또 어리석은 짓을 할까 봐 걱정돼서 묻는 거야.”

정미는 잠시 멍했다가, 먼저 물었다.

“오라버니는 뭐든 알아?”

정철은 그 물음에 정말이지 죽고만 싶었고, 여동생에게 곤혹한듯한 눈빛을 보내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연히 뭐든지 아는 건 아니지!”

그래, 사실 잘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동생에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미미가 나중에 시집가게 된 후, 여인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오라버니가 떠오르면, 날 뭐라 생각하겠냐고.’

“그럼 뭘 걱정하는 거야? 할멈이 오라버니보다 많이 알 텐데.”

정미는 어젯밤 관리인 할멈이 해준 이야기들을 듣고 난 후, 오라버니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부끄러워졌기에 이 말로 정철의 입을 막으려 했다.

정철은 말문이 막혀 입을 뻐끔거리다가 한참 후에야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미가 정말 많이 컸구나. 그래, 그럼 묻지 않을게. 네가 이해했으면 됐어. 며칠 동안 푹 쉬고, 찬 기운 쐬지 말고, ……좋아지면 다시 돌아가자.”

정미는 후련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정철이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환안이 들어왔다.

정미가 불쾌한 듯 물었다.

“환안, 어디 다녀온 거야? 방금 둘째 오라버니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단 말이야!”

환안이 들고 있던 찬합을 정미 앞으로 바치며 답했다.

“아가씨, 아까 사촌 공자께서 사람을 시켜 족발을 삶아 아가씨께 드리라 하셨답니다. 한참 삶아서 말랑말랑해졌을 때야 보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아 결국 제가 직접 받으러 가느라…….”

정미가 크게 화냈다.

“족발이 네 주인보다 중요하단 거야?”

환안이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 그럼 이 족발은 버리겠습니다!”

“잠깐!”

정미는 족발에서 나는 향기를 깊게 맡고는 말했다.

“버리면 이 음식은 낭비되는 거잖아. 이왕 가져왔으니 조금 먹지 뭐. 하지만 앞으로 다신 이러면 안 돼!”

“예, 알아들었습니다.”

환안은 족발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게 찬합을 열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붉은 족발을 정미 앞에 놓아주었다.

* * *

다음 날.

정미는 정철과 화서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용흔이 없는 것을 보고 정철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용흔은?”

여동생이 그 녀석을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물으니, 정철의 말투가 냉담해졌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인 걸 떠올리더니, 화등 구경을 하러 급히 돌아가던데.”

화서는 찬을 집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의아한 듯 정철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분명 오늘 아침 경왕부에서 온 사람이 세손을 모시고 돌아가려 했고, 세손은 죽어도 가기 싫어하면서 정미를 봐야 한다고 소란을 피우기까지 했는데. 철 형님은 왜 저렇게 말하지?’

정미는 용흔이 돌아간 이유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기에, 젓가락을 쥐며 화를 냈다.

“아직 용흔과 끝장을 보지 않았는데. 오라버니, 내가 이제야 말하지만, 그날 밤 용흔이 왜 내 방에 기어 들어온 거야? 또 내 이불 안에 벌레랑 쥐를 넣으려고 한 거 아냐?”

그 말에 화서의 젓가락에 있던 찬이 떨어졌다. 두 사람이 화서를 쳐다보자, 화서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손이 미끄러졌어.”

그러고는 속으로 화를 내며 생각했다.

‘나중에 관리인에게 전해야겠군. 앞으로 이 마을에 경왕세손과 들개, 들고양이 모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얼른 밥 먹어, 미미. 세손은 아직 어리니, 그 아이와 굳이 논쟁하지 마.”

정철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정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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