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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68화 (68/375)

68화. 재수 없는 아이

환안은 단숨에 정철의 방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둘째 공자님, 소인은 환안입니다. 얼른 가서 저희 아가씨를 구해주세요. 아가씨께서 뱀에 물렸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정철은 급히 외투를 입으며 문을 벌컥 열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환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정철은 끈을 매는 것도 잊고 밖으로 걸어 나가며 물었다.

“셋째는 어디 있느냐?”

“소인을 따라오세요.”

환안은 정철을 급히 온천 쪽으로 데려가, 손을 뻗어 가리켰다.

“아가씨는 저 안쪽에 계세요…….”

정철은 환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미미―.”

정철의 눈에 무릎을 끌어안고 벌벌 떨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기척이 들리자 고개를 들었고, 그 눈빛에는 기쁨이 차올랐다.

“오라버니, 왔구나!”

정미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환안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억지로 참고 몸을 숙인 정철에게 작게 말했다.

“오라버니, 나 너무 아파.”

정철은 정미의 치맛자락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는,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미미, 뱀이 어딜 물었어, 오라버니한테 보여줘 봐!”

‘독뱀이라면 지금 바로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이 퍼져 미미가 위험해져.’

그러나 정미는 물린 곳을 말할 수 있을 리 없었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오라버니, 어서 날 업고 방으로 돌아가 줘. 도저히 못 걷겠어. 방에 돌아가서 환안이 약을 발라주면 돼.”

“어떻게 그래. 독뱀인지 아닌지 꼭 봐야 해!”

정미가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철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미미, 말 들어. 지금은 네 멋대로 굴어도 되는 상황이 아냐. 난 네 오라버니고, 무슨 상황이든 널 놀리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고.”

정철은 이미 정미가 뱀에게 물린 곳이, 말하기 불편한 곳일 수 있다는 걸 눈치챘다.

마을에도 의원이 있긴 했지만 남자 의원이었기에, 정철은 다른 사내에게 치료를 맡기느니 자신이 직접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심한 독을 가진 뱀에게 물린 거라면, 이미 물린 지 시간이 좀 지났으니, 의원이 오기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다급하고 초조한 정철에게 예법과 도덕 따위는 평소 자신의 겉치레를 위한 것일 뿐이었다. 여동생의 안전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자신의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했다.

춥고, 아프고, 무서운 정미는 오라버니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부끄러운 곳을 다치긴 했지만, 오라버니의 말이 맞아. 그 뱀한테 독이 있으면 어떡해? 오라버니의 말이니까, 물린 곳을 알려줘도 괜찮겠지?’

소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안색이 새파래졌다가, 새하얘졌다가 했다. 정철은 그 모습을 보다 더욱 다급해져 외투를 정미에게 걸쳐주며 말했다.

“미미, 어서 말해!”

정미는 두 눈을 꾹 감고 정철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

“오라버니, 나…… 용변 보는 곳을 물렸어. 이미 피를 엄청 많이 흘렸고…….”

“어떻게 거길…….”

정철은 갑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 그곳?’

그제야 정미가 말하는 곳이 어딘지 깨달은 정철은, 바보처럼 멍해졌다.

학식이 풍부한 정철은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피가 냇물처럼 철철 흐르는데, 이게 어떻게 뱀한테 물린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 뱀이 요괴가 아닌 이상!

정미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통을 참았고, 넋이 나간 듯한 오라버니를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라버니, 나, 오라버니한테 보여줘야 해?”

정철이 정미의 손을 뿌리쳤고, 정미의 이상한 눈빛에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진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미미, 이건, 이건 나한테 보여주지 않아도 돼!”

정철은 벌떡 일어났다가, 정미가 아직 바닥에 앉아 있음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허리를 숙여 정미를 안아 올렸다.

정미는 대충 짐작이 되었다.

‘오라버니는 분명 나에게 아무 약도 소용없다고 여기고 있을 거야. 지금은 아예 보지도 않고 돌아가려고 하니,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좋게 떠나보내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와 정미는 정철의 목을 끌어안았고, 눈물이 그의 어깨를 조금씩 적셨다.

정철의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애써 난처함을 숨기고 고개를 숙여 정미에게 물었다.

“미미, 많이 힘들어? 조금만 참아. 돌아가면 오라버니가 수습해줄게.”

‘수습이라고?’

정미의 몸이 굳었다.

‘설마 의원을 부를 필요도 없는 정도인가?’

아픈 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더해지니 소녀는 배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정철은 그녀를 안고 미친 듯이 달렸고, 정미의 귓가엔 바람 소리가 들려와 영혼까지 따라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 정미는 악몽이 떠올랐다.

자신과 둘째 오라버니가 말 위에 있을 때도 지금처럼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고, 귓가에는 바람 소리가 들렸었다.

‘안 되겠다. 내가 본 것을 오라버니에게 알려줘야겠어!’

“오라버니…….”

정미가 힘없이 말했다.

“왜 그래, 미미? 조금만 더 참아, 다 와 가.”

정미는 겨우 고개를 들고 정철을 바라봤다.

“오라버니, 나 곧 죽는 거야?”

정철은 휘청거리다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이미 충분히 난처한데, 여동생이 이렇게 무서운 말을 하다니. 내 마음은 아직도 더 강해져야 하는 걸까?’

“오라버니, 흥분하지 마. 사실……, 사실 나는 그렇게 무섭지 않아. 나는 그저 다신 오라버니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무서울 뿐이야…….”

정미는 정철을 더욱 세게 안았고,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다.

“오라버니, 꼭 조심해야 해. 전에, 꿈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화살을 쐈어…….”

정철은 실소했다. 악몽을 꿨던 것이로구나 생각하고는 정미를 다독였다.

“무서워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오라버니가 너를 지켜줄게.”

정미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무서워져, 정철의 옷깃을 꽉 붙잡고 계속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만일, 만일 나중에 그런 일을 마주치게 되면, 아무도 지키지 말고 오라버니 자신을 지키라는 뜻이야. 알겠어?”

“바보야, 허튼소리 하지 마. 조금만 더 참아. 금방 도착하니까. 만약 피곤하면 눈을 감고 있어도 돼.”

정철은 동생이 또 난처하고 슬픈 말을 할까 봐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한편, 용흔은 계속 뒤척이다가 도저히 잠들 수 없어 침상에서 내려왔다. 그러곤 바깥에서 자던 사동 패천을 걷어찼다.

“주인님?”

패천은 눈치 빠르게 일어나 앉아 눈을 비볐다.

“왜 그러십니까?”

“못난 계집과 약골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직접 보았느냐?”

패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요. 소인이 주인님의 명령을 듣고 계속 몰래 보고 있었는 걸요. 그 두 분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서야 돌아온 것입니다.”

“그럼 됐다.”

용흔이 가슴을 토닥이며 혼자서 중얼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치 않지?”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갑자기 펄쩍 뛰고는,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난 정말 멍청하구나. 걔네들이 그때 각자의 방에 들어간 게 무슨 소용이 있나! 그 약골이 얼마나 교활한데. 분명 우리가 잠든 후 못난 계집의 방으로 들어가 잤을 거야!”

패천이 숨을 들이쉬었다.

“주인님, 그럼 어떡합니까?”

‘정가네 셋째 아가씨께서 만약 다른 사람의 아기를 가졌다면, 주인님이 분명 내 살을 도려내실 거야!’

패천이 자신의 뺨을 연신 내려쳤다.

“주인님, 모두 소인의 잘못입니다. 소인이 왜 생각지 못했을까요?”

용흔이 그를 걷어차며 말했다.

“네가 나보다 총명할 리가. 됐다. 소란 피우지 말고 여길 지키고 있거라.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어, 주인님, 어디 가십니까?”

용흔이 목소리를 낮췄다.

“못난 계집에게 가보겠다. 만약 약골이 거기 있으면 그를 내쫓겠어!”

‘만약 없으면……, 흠흠, 몰래 거기서 자야지. 어쨌든 못난 계집한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용흔은 옷을 갈아입고 나가 사뿐히 정미 방의 문 앞에 도착했다. 안쪽에서 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고, 야등(夜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된 용흔은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밀었다.

뜻밖에도 문은 한 번에 열리면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깜짝 놀라 급히 문짝을 붙잡고 열린 틈으로 슬쩍 들어가서는 다시 문을 닫았다.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용흔은 미간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줄곧 담대하던 용흔은 방 안에 은은한 향기가 맴도는 것을 맡으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겨우 몇 걸음 내디뎌 휘장에 다가서기도 전에 손에는 땀이 축축하게 나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용흔은 손을 옷에 문지르며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저 약골 녀석이 여기 있는지 보러 온 것뿐인데, 뭐가 그렇게 긴장되는 거야? 이건 못난 계집을 위해서야. 못난 계집은 패천 같은 사동도 없으니, 사내와 같이 자면 아기가 생긴다는 것을 분명 알지 못할 거다. 그 계집은 아직 어린데, 만약 아기가 생기면, 대성통곡을 할지도 모르지! 맞아. 나는 정미를 구하러 온 영웅인 거야!’

‘작은 패왕’은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침상 앞으로 가 휘장을 걷었다.

그러나 휘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불조차 곱게 개어져 있어 아무도 자고있지 않는 듯 보였다.

용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못난 계집이 없으니, 그 약골 뜻대로 되지 않겠구나.’

그는 씩 웃더니 갑자기 펄쩍 뛰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못난 계집이 여기 없고, 약골도 여기 없다면, 설마…… 설마 못난 계집이 화서의 방으로 간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용흔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넋이 나가 침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못난 계집이……, 화서와 아기를 만들길 원한다는 거야?’

용흔은 늘 자기 것이라고 느꼈던 것을 남에게 빼앗겼을 때나 느낄 법한 분노감에 몸서리쳤다. 이런 기분은 정미가 한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침상에 멍하니 앉아 분통을 터트리며 손등을 깨물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를 갈며 벌떡 일어났다.

‘안 돼. 멍청하게 여기 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손등을 물어 뜯어버려도 못난 계집은 돌아오지 않을 텐데. 화서에게로 가 못난 계집을 빼앗아올 테다!’

용흔은 마음을 굳게 먹고 기세등등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방문이 열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작은 패왕’은 속으로 기뻐했다.

‘못난 계집이 돌아온 건가? 기척을 듣자 하니, 방문을 발로 찼구나. 그건 내가 아주 잘 아는 소리지! 그러니까, 못난 계집이 약골이랑 싸운 모양이로구나!’

용흔이 기뻐하며 입이 귀에 걸린 채 밖으로 나갔다.

이 재수 없는 아이는, 자신이 누구의 방에 있는지 완전히 잊어버린 듯했다.

용흔은 그렇게 정철과 정면에서 마주쳤다. 정철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세손이 왜 여기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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