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난-66화 (66/375)

66화. 비혼

정미는 구운 고기의 향긋한 냄새와 눈앞에 놓인 버섯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와 얼굴을 뒤덮자 가슴이 녹아내리는 듯했고, 가장 두꺼운 고기 조각을 집어 들어 먹고는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오라버니, 이리 와서 같이 먹어.”

정철은 잠깐 망설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마차에 사람이 많으면 마차 안에 냄새가 배서 나중에 괴로울 거야.”

“우리 둘뿐이잖아. 마차 안은 널찍한걸. 오라버니, 얼른 올라와. 나 혼자 다 못 먹어.”

환안은 주인의 입가가 기름진 것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였고, 스스로 마차에서 내려왔다.

정미가 계속 고개를 내밀고 기다리자, 날이 추워 고기가 빨리 식어 여동생의 속이 불편할까, 정철은 망설임을 떨치고 마차에 올라탔다.

남매는 마주 앉았고, 정미는 정철에게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숙이고 고기와 뜨끈한 탕을 먹었다. 그녀는 배가 부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귀찮을까 봐 간식을 가져왔어. 가면서 배를 채우면 되겠다.”

정철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깨끗한 접시를 흘끗 쳐다봤다.

‘방금 토끼 한 마리를 먹은 사람이 누구지? 깨끗이 먹어치우고는 또 얌전한 체하는구나.’

그러나 정철에겐 익숙한 일이었기에, 정미의 입가를 가리키며 닦으라는 눈치를 주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추운 날에 이리 멀리 떠나는 것이니, 찬 음식을 먹어선 안 돼. 만일 네가 아프면 나중에 어떻게 화서와 놀 수 있겠어?”

정미는 오라버니의 잘생긴 얼굴을 보다, 갑자기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중에 둘째 오라버니가 아내를 맞은 후에도, 지금처럼 나에게 잘해줄까?’

남 군주가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도심이가 둘째 오라버니를 좋아한다고 했지.’

정미는 도심이를 자세히 떠올려보았다.

‘도심이는 꽤 예쁜 아이였어. 살구 같은 눈과 복사 같은 뺨은, 내 치켜 올라간 눈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였지. 하지만…….’

정미는 조용히 정철을 흘끗 쳐다봤다.

하지만 둘째 오라버니가 더 잘생겼다. 그 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무래도 도심이보다는 더 아름다운 아가씨가 오라버니의 곁에 서 있어야 마음에 들 듯했다.

도심이는 재주도 좋은 편이지만, 정요만큼은 아니었다. 나중에 올케언니가 정요보다 재주가 뛰어나지 못하면, 정요가 더 의기양양해지지 않을까?

‘도심이의 성정은…….’

정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더욱 답답해졌다. 그간 두 사람은 교류가 적어 정미는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저 도심이가 정요와 친하다는 것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도심이가 내 올케언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정미는 또 몰래 정철을 흘끗 보고는 슬퍼하며 생각했다.

‘만약 오라버니가 좋아한다면, 반대하진 않을 거야. 그런데 만약, 오라버니가 오라버니만큼 예쁘지도 않고, 재주도 없고, 정요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면?’

정철은 아까부터 정미가 계속 흘끗거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일희일비한 정미의 표정에 어리둥절해져 고개를 돌려 물었다.

“미미, 왜 쳐다보는 거야?”

“둘째 오라버니가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아서.”

정철은 그 말에 멍해져서 귀를 붉혔고, 손을 뻗어 정미를 한 대 툭 쳤다.

“헛소리, 오라버니는 사내인데, 예쁘고 안 예쁘고가 어딨어.”

정미가 입을 삐죽였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얘기하네. 오라버니가 키도 작고 뚱뚱하고 까맸으면, 마음이 급하지 않았겠어? 키도 작고 뚱뚱하고 까만 사내가 오라버니의 말을 들으면, 화낼지도 몰라.”

정철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미, 이렇게 말솜씨가 뛰어나서야, 나중에 아무도 장가들려고 하지 않겠어.”

정미는 입을 꾹 다물고 조금 낙담했다.

‘역시, 오라버니는 내가 시집가지 않겠다고 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구나.’

맥이 빠졌지만, 지금 둘째 오라버니와 다투고 싶진 않았기에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오라버니는 올해 스무 살이나 되었는걸. 몇 달 안에 내게 올케언니가 생길지도 모르지.”

정철은 갑자기 웃음기를 거두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 아가씨야, 허튼 생각 하지 마.”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정철의 냉담하고 딱딱한 모습에 감히 다가가지 못했겠지만, 정미는 전혀 그런 걱정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오라버니, 부끄러워?”

정철은 여동생에게 당한 것 같아 난감했다.

‘내가 부끄러운 걸 어떻게 알아본 거지?’

“아니.”

정미가 손을 뻗어 정철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럼 왜 정색을 해? 조모님과 어머니가 춘시 이후에 오라버니를 정혼시키려고 기다리고 계시지 않아? 오라버니, 어떤 아가씨가 좋은지 빨리 생각해놓지 않았다가, 조모님과 다른 사람들이 오라버니가 좋아하지 않는 아가씨를 정해주면 어떡해?”

정철은 정미를 보며 가볍게 한숨 쉬었다.

“바보 같은 녀석아,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미리 생각해놓을 수 있겠어?”

그 말에 정미는 멍해졌다.

“하여튼 앞으로 그런 일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 년 안엔 혼인할 생각이 없으니.”

정미의 눈이 갑자기 커져서는 정철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째서?”

“이유는 없어.”

정철은 보기 드물게 여동생에게 설명해주지 않았고, 표정은 점점 냉담해졌다.

정미는 천천히 손을 놓고 마차의 벽에 기대어 조용히 생각했다.

‘오 년이 지나면 도심이가 스무 살이 넘을 텐데, 어떻게 해도 그 아이가 올케언니가 되긴 어렵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오 년 뒤면 오라버니에게 분명 더 좋은 아가씨가 나타날 거야. 정말 내가 괜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어.’

* * *

마차의 바퀴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두 줄의 긴 흔적을 남겨갔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옮겨가며 하늘을 노을빛으로 물들였다.

온천마을에 들어가자, 봄날이 앞당겨 찾아온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정미는 창에 달라붙어 밖을 바라보며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라버니, 봐봐. 밖이 정말 예뻐. 꽃이 아주 많이 폈어.”

정철은 흥미가 생기지 않았지만, 정미의 흥을 무시할 수 없어 창밖을 흘끗 쳐다보고는 물었다.

“미미는 겨울에 눈이 내리는 걸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정미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깥을 보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눈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세상이 온통 수를 놓은 비단 같은 광경도 나쁘지 않네.”

정철이 실소했다.

‘하긴, 세상에 얼마나 많은 풍경이 있는데, 여자아이가 어찌 한 가지만 좋아할 수 있겠어.’

마차가 한 마을에 멈춰섰다. 정미가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정철을 재촉했다.

“오라버니, 빨리 가자.”

“천천히 가. 발이 겨우 다 나았잖아. 이미 팔근에게 소식을 알리라고 했으니, 화서가 준비할 시간도 주어야지.”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아 정미도 발걸음을 늦추었다.

이곳 땅은 작지만 비쌌고, 위국공부의 재력치고는 그렇게 넓지도 않아서, 약 반주향(*半炷香: 향이 반 정도 타는 시간으로, 약 15분)정도 걸으니 입구에서 진홍색 피풍을 입은 소년을 만날 수 있었다.

정미는 정철의 손을 놓고, 화서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소년은 또 조금 야위었고, 키가 조금 더 큰 듯했다. 정미의 기억 속 화서는 그녀와 키가 그리 차이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이미 고개를 들고 쳐다봐야 했다.

화서도 마찬가지로 정미를 훑어봤다.

소녀는 보라색의 외투를 걸치고, 안에는 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피부는 눈처럼 희었고, 입술은 붉어 마치 눈밭의 홍매 한 점처럼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화서는 정미와 자신이 갈수록 닮아간다고 생각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웃으며 말했다.

“정미, 이제 천으로 가리지 않아도 되는구나. 오랜만에 봐서는 이렇게 열심히 살펴보다니,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의 말이 맞았다. 작년에 정미가 사고를 당하고, 깨어난 이후 천으로 눈을 가려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확실히 몇 개월 동안 그를 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네가 보고 싶으면, 거울을 보면 되지.”

정미는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갑자기 또 악몽 같은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떠들썩한 징과 북소리가 들려왔고, 많은 손님이 예식장을 채운 채였다. 신방(新房)에는 용봉화촉이 가득 타오르며 촛농이 촛대에 가득했다.

침상 위의 새색시가 혼자 쓸쓸히 앉아 희포(*喜布: 결혼식 날 신부의 어머니가 신부에게 첫날밤에 사용하라고 주는 무명 수건)를 덮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바깥방의 침상 위에서는, 새신랑이 옷을 입은 채로 자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정미는 신방 안의 두 사람이 몇 년 뒤의 그녀와 한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화서를 보니 눈앞에 한지와 나의 신혼 첫날밤이 펼쳐지는 걸까? 느낌이 참 이상하네.’

이때, 신방 밖에서 소란이 일더니, 어떤 목소리가 애절하게 울려 퍼졌다.

“날 들여 보내줘, 사촌 아가씨를 만나야 해!”

이어 시종들의 꾸짖음이 들려왔고, 그중 하나가 특히 날카롭게 말했다.

“무슨 사촌 아가씨입니까, 지금은 세자 부인이 되셨습니다! 오늘은 세자와 부인의 첫날밤인데, 어떻게 들어가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정미는 알아차렸다. 지금 날카롭게 말하는 시종은 그녀가 정요에게로 보냈던 교용이었다.

“비켜, 꼭 사촌 아가씨를 봐야 해…….”

그 시끄러운 목소리는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고, 밖으로 내쫓겼는지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말투에 묻어나오는 절망은 뚜렷이 들렸다.

“사촌 아가씨, 아가씨, 들리세요? 얼른 소인을 따라 저희 공자님을 보러 가세요. 공, 공자께서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아가씨를 기다리며 힘겹게 버티고 계신걸요…….”

목소리는 여기서 끊겼다. 눈을 뜬 정미는 손가락 사이로 화서의 약간 당황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달려온 소년이 소녀의 어깨를 격하게 붙들었다.

“정미, 왜 그래. 눈이 또 아파?”

소년의 목소리에는 아직 풋풋함이 담겨있었고, 말 사이사이에는 숨을 가볍게 헐떡여 허약한 사람 특유의 무력감을 드러냈으나, 정미의 귀에는 천둥처럼 들렸다.

‘화서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지. 그럼 설마 몇 년 후에…….’

“정미, 말 좀 해봐! 몸도 편치 않으면서, 이렇게 먼 곳에 왜 온 거야!”

화서의 감정이 격해지자, 정철이 다가와 그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화서, 걱정하지 마. 미미는 괜찮아.”

“그럼 왜 또 눈을 가리는 건데? 철 형님은 모르지? 정미는 작년에 아무도 보지 않으려 했단 말이야!”

“괜찮다, 괜찮아.”

정철이 화서를 달랬다.

그러곤 그는 몸을 돌려 정미의 손을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미, 오라버니에게 말해 봐. 왜 이러는 거야? 눈이 아프면, 천을 가져와서 가려줄까?”

한참 뒤, 정미가 눈에서 조금씩 소녀의 고운 손가락을 떼어냈고, 또렷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그녀는 몰래 숨을 들이쉬고는 정철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아, 오라버니. 화서에게 그냥 장난쳐 본 거야.”

둘째 오라버니의 잔혹한 죽음도 본 지경이었으니, 그 어떤 참경도 그녀를 무너뜨릴 순 없었다. 또, 항상 걱정만 끼치는 역할을 맡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녀도 그녀 스스로를 견딜 수 없게 될 터였다.

“무슨 그런 장난을 치니?”

정철은 정미의 코를 꼬집으며 꾸짖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그는 여동생이 제멋대로 굴며 소란을 일으키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는야 훨씬 나았다.

이때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남매가 바라보자, 진홍색의 피풍이 훌쩍 지나가는가 싶더니, 화서가 아무런 말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두 남매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화서가 네게 화가 난 것 같지?”

“괜찮아. 오라버니는 기다리고 있어. 내가 달래러 가볼게.”

정미는 정철의 손을 놓고 화서를 쫓아갔다.

정철은 잠시 서 있다가, 눈을 떨구고는 묵묵히 응접실로 들어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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