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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62화 (62/375)

62화. 찾아와 사과하다 (2)

세 사람은 곧 이연원에 도착했고, 시종이 보고하고도 한참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증 씨는 한 씨의 눈가가 살짝 붉은 것이 보이자, 의심하여 말했다.

“큰언니, 오늘 흔이가 언니에게 사과하러 왔어요. 그날 국공부에서 이 녀석이 너무 심한 말썽을 피웠습니다.”

그녀는 한 씨의 표정을 살피고는 물었다.

“셋째 공자는 괜찮지요?”

한 씨는 애써 담담한 모습을 하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얼굴에 상처가 나 조금 보기 흉할 뿐이지, 큰일은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에요. 넷째 아가씨는요? 여자아이인데, 용흔이 놀라게 해 큰일이 나는 것 아닐까 모르겠네요.”

한 씨는 최대한 숨기려 했지만, 결국 슬프고 처량한 마음을 드러냈다.

“괜찮아요. 돌아와서 안신탕(安神湯)을 먹이니 괜찮아졌어요.”

증 씨가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역시 아가씨들이 더 용감한 것 같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정미는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넷째 아가씨보다 훨씬 용감했는걸요. 저희 집 그 말썽꾸러기가 그렇게 장난이 심했는데도, 정미는 한 번도 놀란 적 없었지요. 큰언니, 저를 믿으세요. 용감한 아가씨가 복을 받기 마련이에요.”

이 말을 들은 한 씨는 마음이 아파왔다.

정미는 예전에 용흔에게 항상 놀림을 당했고, 가끔 엉망이 되어 백부로 돌아왔을 때도 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곤 했다.

하지만 정희와 정동 두 사람이 국공부에서 용흔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돌아오자, 나리는 이틀 동안 그녀를 곱게 보지 않더니, 오늘 이른 아침부터 웬일로 그녀의 방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한 씨는 마음속에 가득 찬 기쁨을 억지로 참았으나, 나리는 예전 일을 다시 꺼내며 정희를 이름에 올리자고 말했다.

그는 국공부에서 정희가 서자 출신임을 업신여겨, 이렇게 마음대로 괴롭히도록 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씨가 이에 동의하지 않자, 그는 바로 화가 나 옷소매를 뿌리치며 떠났고, 한 씨에게 쓸쓸함과 실망만 남겨주었다.

“어머니, 큰이모님,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그 아이들에게 사과하러 갈게요.”

용흔은 한 씨와 증 씨의 대화를 듣고 있기 싫어, 여동생을 끌고 밖으로 나가다가 입구에 멈춰서서 말했다.

“큰이모님, 정미는 비서거에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변하지 않았지요?”

“그래.”

“네, 그럼 저와 여동생은 가보겠습니다.”

두 남매가 떠나자, 증 씨는 시종을 물러나게 한 후 한 씨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며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큰언니,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요?”

“없었어요!”

한 씨가 곧바로 부인했다.

“혹시 형부와 다투셨어요? 큰언니,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얘기하세요. 부부 사이의 일은 남들이 참견해선 안 된다지만, 괴롭히게 두어서도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아니에요. 형부는 단정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저를 존중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어요.”

한 씨는 습관적으로, 정씨 집안의 둘째 나리를 좋게 말했다.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가 하신 말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그 차가운 청년을 만나지 못했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한 씨가 나중에 시집간 뒤에는 그녀의 성질대로 소란을 피워선 안 된다고 하셨다. 특히 국공부 적출 큰아가씨라는 신분을 가지고 남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사내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여인이 신분으로 자신을 짓누르고 체면을 구기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사내들은 모두 어린아이라 칭찬할수록 더욱 괜찮아지며, 원망할수록 정말로 마음이 식어 점점 상대방을 홀대할 것이라고.

한 씨는 종종 생각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했는데, 왜 그 사람은 자신에게 수십 년 동안 늘 차갑게 대했을까?

하지만 한 씨는 감히 태도를 바꿀 수 없었다. 바꿨다가 그 사람이 더욱 차가워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증 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의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일이야!’

두 여인은 잠시 침묵했다.

* * *

용흔이 용남을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갔을 때, 용남이 궁금한 듯 물었다.

“오라버니, 셋째 공자와 넷째 아가씨에게 사과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 왜 비서거로 가는 거야?”

“정미를 보려고.”

용흔이 당당하게 말했다.

“설마 셋째 공자와 정동의 거처를 잊어서, 정미보고 데려다 달라 하려는 거야? 하지만 내가 알기론 정미는 발을 다쳤는걸. 시종을 불러서 가는 게 좋겠어.”

용흔은 바보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걔들의 거처를 잊었다는 거야. 한 번도 기억한 적이 없는데. 우린 정미가 발을 다쳐서 가보는 거야.”

“그, 그럼 사과하러 가지 않는 거야?”

“사과는 무슨 사과? 내가 가서 사과했다가, 걔네들이 또 놀라서 울면 어떡해? 빨리, 너 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용흔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용남을 잡아당기고 비서거로 향했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신신당부했다.

“맞다. 이따 정미를 만나면, 네가 오자 했다고 해.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응?”

“멍청하게 굴지 말고. 원래 나와 관련 없는 일이었는데, 네가 길을 몰라서 내가 널 데리고 와준 거잖아.”

* * *

두 남매는 비서거 안으로 들어섰다. 용흔은 방금 한 말을 바로 까먹고는 여동생을 밀어제치며 다가갔다.

“못난 계집, 듣자 하니 절름발이가 됐다며?”

용남은 오라버니에게 부딪힌 팔뚝을 만지작대며 조용히 눈을 부라렸다.

‘이러는데 날 데리고 와준 거라고 누가 믿겠어! 아니, 오라버니는 설마…… 정미를 좋아하는 건가?’

용남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 큰일을 깨달은 듯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용남은 입을 가리고 숨을 들이쉬더니, 낮은 침상 앞으로 다가가 용흔을 옆으로 밀어냈다.

“정미, 너, 너 왜 이렇게 변한 거야?”

그녀는 두 손을 뻗어 정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잡아당겨도 보며 흥분했다.

“인피(*人皮: 사람의 가죽) 가면이 아니잖아!”

정미가 용남의 손을 털어내고 그녀를 노려보자, 용남이 말했다.

“에이, 노려보지 마. 그저 궁금해서 그런 거야. 인피 가면을 얼굴에 쓰면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잖아.”

“《이지취담》에서 본 거죠?”

정미가 차갑게 물었다.

“맞아. 너도 봤어? 《이지취담》중 한 회가 바로 그 인피 가면 이야기잖아. 매구랑(梅九娘)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인피 가면을 써서, 천하제일의 미인이 되어 서생들 주위를 맴돌다가 마침내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

이후에 가면을 벗어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와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설이랑(薛二郞)이 그녀를 알아보고 두 사람은 끝까지 아름답게 살았지……. 에이, 설이랑 같은 사내가 정말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제 눈에는 똑같이 보이는 그런 사내가?”

“왜 없겠어. 너희 모두가 정미가 예뻐졌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그 못난 계집인데!”

여동생에게 옆으로 밀려난 용흔이 불만이 가득 차서는 끼어들었다.

용남과 정미는 의아한 듯 용흔을 바라보았다.

용흔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그는 방금 한 말을 돌이켜보고는, 바로 말을 더듬었다.

“못난 계집, 너, 너는 절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착각하지 마!”

정미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목소리를 높였다.

“환안아, 세손을 모시고 바깥방으로 가 차를 내어 드리거라!”

“세손, 가시지요.”

환안은 손님이 어떤 신분이든 간에, 아가씨의 명령만 들었다.

용흔은 잠깐 얼굴을 보자마자 내쫓기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 번도 이렇게 빨리 내쫓긴 적이 없었는데!’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뻔뻔하게 말했다.

“나는 목마르지 않다.”

정미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봤다.

“저는 이만 옷을 갈아입을 겁니다!”

그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자, 정미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작은 패왕’의 낯짝이 더욱 두꺼워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돌려 용남에게 웃으며 말했다.

“제게 《이지취담》모든 등장인물의 나무인형이 있는데, 볼래요?”

용남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지취담》의 나무인형? 정말이야? 왜 시장에서 본 적이 없지?”

“보실래요?”

용남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봐야지! 넌 모를 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 바로 《이지취담》이란 걸. 한수 선생은 어떻게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을까! 그 나무인형들은 어디에 있어?”

정미는 대답하지 않고 용흔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용남은 곧바로 오라버니를 팔아넘겼다. 그녀는 용흔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이, 오라버니, 얼른 바깥방에 가서 차를 마시라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께 정미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을 때, 나가기 아쉬워했다고 말할 거야!”

‘누가 나가기 아쉬워했다는 거야. 내가 그런 사람인가?!’

용흔은 여동생과 정미를 노려봤다.

그는 정미의 청량하고 차가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왠지 뜨거워져 갑자기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어 급히 밖으로 나갔다.

마침내 상황이 정리되자, 정미는 환안에게 《이지취담》의 나무인형을 가져오라고 했다.

용남은 나무인형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고,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어루만졌다.

“정미, 어디서 산 거야? 나한테 알려주면 안 될까? 가서 한 상자, 아니, 두 상자를 살래. 한 상자는 소중히 간직하고, 한 상자는 눈앞에 두고 볼 거야!”

정미는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건 팔지 않는 거예요. 제 둘째 오라버니가 직접 조각해서 제게 선물해준 거거든요.”

‘정말 밉구나. 오라버니 자랑 좀 안 하면 죽기라도 하나?’

용남은 화가 나 고개를 돌렸고, 마침 정미가 아무렇게나 침상 머리맡에 놓은 《수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건…….”

그녀는 책을 들고 놀라 소리쳤다.

“이, 이건 《수경기》의 하권 아니야?”

정미는 개의치 않고 웃었다.

“맞아요.”

“마, 말도 안 돼!”

용남이 갑자기 정미의 손을 붙잡았다.

“대체 어디서 얻은 거야?”

용남이 너무 격앙되자, 정미는 왠지 불편해져 무의식적으로 둘째 오라버니의 말투를 따라 했다.

“남 군주, 뭐가 그렇게 놀라워요? 이 《수경기》에 문제라도 있나요?”

용남은 정미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 쉬었다.

“큰 문제지. 육출화재에선 아직 《수경기》의 하권을 팔지 않거든. 한수 선생이 아직 다 쓰지도 않았다고!”

이번엔 정미가 크게 놀랐다.

‘이전엔 그저 둘째 오라버니가 베껴온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만약 한수 선생이 아직 다 쓰지 않았다면, 오라버니는 대체 이걸 어디서 베껴온 거지? 설마, 내가 하권을 보고 싶다고 해서 오라버니가 직접 뒤의 이야기를 지어낸 건 아니겠지?

어쩐지 하권이 상권보다 재밌더라니, 역시 오라버니는 대단해!’

소녀는 오라버니의 호의에 마음이 따뜻해져, 바보 같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미, 왜 그래?”

정미는 황급히 웃음을 거두고 정색하며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수경기》하권,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냐니까?”

정미는 적당히 둘러댈 이유를 찾지 못했고, 게다가 자신의 오라버니가 이런 재능이 있었다는 것에 여동생으로서 영광스러워 눈을 깜박이며 웃었다.

“남 군주, 제가 군주께만 말해줄게요.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마세요…….”

“좋아.”

용남이 정미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편, 용흔은 바깥방에서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었다.

바깥방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저 소녀의 침실에서부터 비단에 수를 놓은 병풍으로 칸을 나눈 것뿐이었다. 용흔은 정미의 말이 들리지 않아 급히 병풍에 가까이 다가가 몰래 엿들었고, 방 안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던 탓에 점점 더 병풍에 가까이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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