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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59화 (59/375)

59화. 풀로 만든 메뚜기

정미는 부적 공부에 몹시 몰두하는 바람에, 결국 아혜가 먼저 수업을 중단했다.

「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너무 오래 공부하면 너도 소화하지 못할 테고, 정신도 못 차릴 테니.」

정미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머리가 맑아.”

아혜는 몹시 불만스러웠다.

「네 말이 정확할까, 내 말이 정확할까? 넌 네 맘대로 해야 할까, 내 말을 들어야 할까?」

정미는 입술을 꾹 다물다가 정직하게 말했다.

“당연히 네 말을 들어야지.”

기술에는 전공이 있듯이, 정미가 아무리 아혜를 경계하더라도, 부의 공부에 있어서는 그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됐어.」

아혜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공부해야 할 땐 열심히 하고, 하지 않을 땐 신나게 놀아. 됐다, 오늘 너무 오래 가르쳐서 나도 피곤해. 쉬어야겠어. 괜히 나 귀찮게 하지 마!」

그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계집이 생각보다 진지하게 배울 줄은 몰랐네. 선생님의 위엄을 보이게까지 하다니!’

아혜가 머릿속에서 조용해지자 정미는 갑자기 한가해져 시종에게 외쳤다.

“화미, 꿀물 한 잔을 내와. 환안아, 넌 책장의 넷째 칸에 있는 그 책을 가져오고.”

두 시종은 동시에 대답하고는 꿀물과 책을 가지러 갔다.

정미는 이내 꿀물 한 잔을 들고, 침상 머리맡에 비스듬히 기대 무릎에 책을 펼쳐놓았다.

그러고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말했다.

“청가, 와서 책 좀 읽어줘.”

“네.”

청가가 달려와 한쪽의 작은 걸상에 앉아 책을 들고 낭랑하게 읽기 시작했다.

청가는 목청이 좋아 목소리가 꾀꼬리 같았고, 경쾌함이 묻어나와 듣는 사람도 덩달아 기쁘게 하였다.

정미는 둘째 오라버니가 상황을 얼버무리려고 가져온 이야기책에는 흥미가 없었고, 그저 시종의 낭랑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에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감탄하며, 나중에 둘째 오라버니가 《수경기》를 가지고 돌아오면, 청가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대추꿀차를 마시며 들으면 참 즐겁겠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둘째 오라버니는 언제 돌아오는 거지? 책을 우선 내게 달라고만 했지, 책을 어디에 숨겼는지는 안 물어봤네.’

그때, 문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미 언니, 왜 문지기조차 없는가 했는데, 환자 노릇이 아주 편해 보이네.”

정미가 눈을 들자 분홍색의 새 옷을 입은 진령운이 입구에 서서 웃으며,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미는 꿀물을 한쪽에 놓고, 청가와 다른 사람들에게 물러가라는 동작을 한 뒤 옅게 웃었다.

“환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니. 진령운, 나를 보러 온 거야, 아니면 나를 욕하러 온 거야?”

진령운이 눈을 부라렸다.

“나도 오고 싶지 않았는데, 내 오라버니가 꼭 와봐야겠다고 해서.”

그녀는 말하며 몸을 돌리고 손을 뻗어, 소년을 바깥방에서 끌어당겨 들어왔다.

“큰오라버니, 봐봐, 우릴 반기지도 않는걸!”

끌려들어 온 소년은 키가 꽤 컸고, 짙은 눈썹에 큰 눈, 그리고 조금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웃자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드러났다.

“정미―”

그러나 한마디 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그저 놀란 표정으로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취색(*翠色: 남색과 파랑의 중간색)의 생활복만 입고 있었고, 머리는 아무렇게나 묶어 올려 잔머리가 귓가에 늘어진 채였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 같은 피부의 소녀는 마치 수묵화에 그려진 사람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소년은 잠깐 멍해졌다.

진령운이 소년의 발을 질끈 밟고는 화를 냈다.

“오라버니, 바보가 된 거야?”

소년은 정신이 번쩍 들어, 까만 뺨을 붉혔다. 그는 여동생에게 웃어 보이다가 또 정미에게 부끄러운 듯 웃어 보였다.

“정미, 내가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어.”

정미는 똑바로 앉아 인사했다.

“서택(瑞澤) 오라버니, 령운아, 이리 와서 앉아.”

이 소년은 진령운의 오라버니, 진서택이었다.

정미는 이 친척 오라버니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교외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서택 오라버니는 수도의 귀공자처럼 세련되지 않았고, 오히려 생기발랄한 들국화처럼 쾌활함과 정직함이 느껴져 그와 함께하면 저절로 편안해지곤 했다.

하지만 지금 아름다워진 소녀의 앞에서 소년은 조금 어색해했고, 조심스럽게 의자의 가장자리에 앉아 소녀를 마주 봤다. 심장이 북을 치듯 뛰었고, 이와 같은 소리가 상대에게 들릴까 봐 급히 바닥을 쳐다봤다. 하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만약 정요처럼, 최소한 정동처럼 꽤나 예쁜 정도의 아가씨가 이 광경을 봤다면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이건 소년이, 상당히 아름다운 소녀를 봤을 때 자연스레 나타나는 반응이었고, 마음속의 수줍음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임을.

하지만 정미는 달랐다.

정미는 십 년간 못생겼었고, 평소 화장을 했을 때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싫어했기에, 누가 자신을 보고 가슴이 뛸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이런 대우는 소녀가 살아온 십사 년 동안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정미는 실눈을 뜨고 진서택을 자세히 살펴봤다. 소년의 얼굴이 점점 붉어질 때쯤 입을 열었다.

“서택 오라버니의 얼굴을 보아하니, 몸이 아주 건강한가 봐. 심장이 왜 그렇게 빨리 뛰어서 얼굴이 이렇게나 빨개진 거야?”

이 말에 소년은 당황하여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실수로 의자를 넘어트려 큰 소리를 냈고,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그는 급히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정미의 손 근처에 놓으며 말을 더듬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온 선물이야. 가, 가지고 놀아. 얼른 회복되길 바랄게!”

말을 마친 소년은, 의자를 일으킬 생각도 못 한 채 몸을 돌려 황급히 달아났다.

정미는 손 근처의 작은 상자를 보고, 또 진령운을 보다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내가 태산과만 슬쩍 훑어봤을 뿐이지만, 어쨌든 어떤 이론은 기본적으로 통하기에, 망진만 했을 땐 서택 오라버니는 확실히 건강한 게 맞아. 내가 무슨 무서운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놀라워 저리 달아나는 거야?’

“정미, 너, 너 너무 심한 거 아냐? 내 오라버니를 괴롭히다니!”

진령운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며 정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정미는 화가 일었다.

‘왜 매번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은, 결국 나와 싸우게 되는 거지?’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뭐가 심했는데. 또 내가 언제 오라버니를 괴롭혔어? 진령운, 할 말이 있으면 확실하게 해!”

진령운이 정미를 노려봤다. 어차피 주변에 사람도 없으니, 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

“흥, 예뻐진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여전히 저리 미운데. 네가 예뻐져서 쑥스러워하는 걸 보고 놀리다니!”

정미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언제 오라버니를 놀렸어?”

“놀리지 않았을 리가! 너와 더 얘기하지 않을래. 오라버니를 찾으러 가겠어!”

진령운은 이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달려나갔다.

정미는 손을 들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가 예뻐진 게 왜 사람을 괴롭힌 게 된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갑자기 예뻐진 것에 나조차도 쑥스럽지 않은데, 다른 사람이 왜 쑥스러워 한단 거야? 다른 사람이 예뻐진 것도 아니고.’

그녀는 납득이 되지 않아 진서택이 준 작은 상자를 아무렇게나 열어봤다. 안에는 풀로 엮은 메뚜기가 열 몇 마리 정도 들어있었고, 형태가 제각각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 선물은 정미의 마음에 쏙 들었고, 그녀는 급히 환안에게 이 상자를 귀중품을 보관하는 선반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둘째 오라버니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미가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정철은 할 일이 있어 오지 않았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둘째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않았다니?’

정미는 실망하며 화미를 불러 자세히 물었다.

“팔근이 정말 그렇게 말했어?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이 국공부에서 나왔을 때, 오라버니는 가버렸다고?”

화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팔근이 바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미는 눈길을 거두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중얼댔다.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팔근도 데리고 가지 않은 거야?”

회인백부의 아가씨와 도련님들은 비록 큰 겉치레를 하진 못했지만, 외출할 때는 항상 시종이나 사동을 데리고 나가야 했다.

정철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사동이 바로 팔근이었고, 눈치가 빨라 평소 주인이 꽤나 중히 여겼다.

정미는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화미를 덥석 잡더니 손을 떨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뭘 타고 갔어?”

화미는 놀라 잠시 멍하다가 뒤늦게 반응했다.

“그건……, 그건 팔근에게 듣지 못했어요. 하지만 공자님들은 외출할 때 대부분 말을 타시지 않나요?”

‘말을 탔다고?’

정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악몽’ 속에서 오라버니는 그녀를 앞에 태우고 함께 말을 타 산과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밤중의 악몽으로 인해 몇 번이나 눈물로 베개 수건을 적셨고, 그런 장면은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회피하려 해도, 지친 말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고, 등 뒤 오라버니의 기척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아가씨, 발이…….”

정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어머니에게로 가겠다!”

* * *

한 씨는 눈앞에 나타난 차녀 정미를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미야, 어찌 왔니?”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정미의 발치로 꽂혔고, 크게 화를 냈다.

“이 꼴로 온 거니? 네 발이 필요 없는 게야?”

“어머니…….”

정미는 아주 빠르게 걸어왔고, 아침에 썼던 지통부는 이미 효과를 다 한 바였다. 때문에, 곧바로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느껴져 와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씨는 정미가 아까 말한 그 말 때문에 온 것인 줄 알고, 딸을 앉히고는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하니? 그래, 이번에 네가 한 말이 맞았다. 한지가 정말로 내게 부탁을 했어. 한지와 정요가 일찍이 감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상 당연히 그 아이의 말대로 정요를 적녀로 올리지 않을 거야.”

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은 딸을 보자 마음이 여려졌고, 손을 들어 헝클어진 딸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다가, 다시 편치 않은 듯 손을 거두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앞으로 너도 다신 네 사촌 오라버니를 마음에 두지 않도록 노력하거라. 나중에 어미가 네게 네 사촌 오라버니보다도 좋은 짝을 찾아줄 테니. 그럼 되었지?”

만약 정철이 제때 돌아오고, 한지와 정요가 함께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첫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정미는 당연히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오직 정철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었기에, 기쁠 새도 없이 손을 뻗어 한 씨의 소매를 잡아끌며 거의 간청하듯 물었다.

“어머니, 둘째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말을 타고 갔나요?”

한 씨는 조금 의아했다.

“그게 무슨 멍청한 질문이니? 네 둘째 오라버니는 외출할 때 늘 말을 타잖아.”

정미의 손이 떨렸다.

‘만약, 만약 꿈속의 일이 앞당겨지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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