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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52화 (52/375)

52화. 마주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 설마 몰래 들어온 것이냐? 참으로 간이 큰 아이구나!”

손 양제는 정미의 표정이 계속 변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갑자기 의심이 솟아올라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엄한 목소리에는 은근한 불안감이 묻어나왔다.

‘이 소녀가 이리도 출중한데, 만일 태자 전하께서 보게 되시면, 설마…… 그래, 태자 전하께선 젊고 준수하시며, 신분도 존귀하시니, 이 여인은 분명 전하를 마주쳐 신분 상승을 할 셈이 분명해.’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손 양제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뒤의 궁녀에게 말했다.

“얼른 이 자를 포박해 금린위(錦鱗衛)로 넘겨라!”

정미는 정신이 들어, 목소리와 표정이 몹시 엄한 손 양제를 바라봤다. 그녀가 왜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차분하게 해명했다.

“양제마마, 신녀는 태자비마마의 여동생입니다. 예전에 뵌 적이 있습니다.”

“뭐라고?”

손 양제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아래위로 정미를 훑었다.

“그럴 리 없다. 자주 입궁하는 태자비마마의 두 아가씨들은 내가 모두 기억하고 있다. 한 사람은 외모는 괜찮지만 키가 이렇게 크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키는 너와 비슷하지만 덩치는 네 두 배만 했다. 내가 어찌 못 알아볼 수 있겠느냐? 사칭을 하려거든 태자비마마의 여동생을 사칭해선 안 되지!”

정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말을 너무 과장하네. 나는 그저 살이 좀 빠졌을 뿐이지, 예전에도 지금의 두 배만 하진 않았는데!’

손 양제가 또 사람을 부르려고 하자, 정미가 차분히 말했다.

“양제마마, 신녀가 바로 마마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입니다. 덩치가 두 배만한 그 사람이요.”

“그럴 리가!”

손 양제가 단호히 부정하며 정미를 노려봤다.

“네가 지금 나를 농락하는 것이냐? 이렇게 크게 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정미는 어이가 없었다.

“양제마마, 뚱뚱한 자들도 살이 빠질 수 있습니다.”

손 양제가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네, 네 말은, 네가 살이 빠져서 이렇게 된다는 말이냐?”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 더욱 자세히 살펴보더니, 흥분하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살을 뺀 것이지요? 살이 어찌 이렇게…….”

‘이렇게 딱 좋게 빠졌는지!’

정미는 약간 놀란 상태였다.

‘이렇게 바로 내 신분을 믿는다고?’

태도 전환이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말해보라니까!”

손 양제가 재촉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궁녀들에게 원래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 눈치주고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혹시 허리만 날씬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까?”

손 양제는 그렇게 말하며 정미의 허리를 바라봤다.

훤칠한 키의 소녀는 두 다리가 길고 가늘었으며, 엉덩이는 이미 풍만해지기 시작했고, 허리는 아찔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곡선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며, 이렇게 얇은 허리는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정미는 손 양제의 뜨거운 눈빛에 두피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나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 사람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그러고는 손을 뻗어 허리춤의 작은 물고기 염낭을 조용히 만지작댔다.

‘설마 내가 천신만고하여 수놓은 염낭이 마음에 든 건가?’

그때 정미는 여러 개의 염낭을 수놓았고, 이 차가운 하늘색의 염낭은 원래 정요에게 주려던 것이었다. 나중에 줄 필요가 없게 되어 교도로 잘라버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다.

그렇게 힘들게 수놓았는데, 이렇게 잘라버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저 정요에게 주려고 한 것이지 아직 주지 않았으니 여전히 내 것인 거야. 이후 내 모든 물건은 절대 정요에게 주지 않을 거야!’

“아이 참, 얼른 말해보세요!”

정미는 자신의 물고기 염낭을 움켜쥐고 우물쭈물했다.

“그건…….”

그녀가 살이 빠진 이유는, 기절한 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었다. 아혜도 ‘수신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허리만 날씬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아혜를 떠올리니 곧바로 아혜가 반응했다.

「허리만 날씬해지고 싶다고? 그건 쉽지 않아. 우선 수신부부터 배운 뒤 허리를 빼고 싶거나, 다리, 뱃살을 빼고 싶다면 부적을 만들 때 획을 조금 바꾸면 돼. 지금 네 허리에서 두 촌 정도 더 날씬해지면 확실히 더 절묘하겠군. 일찍이 너보고 수신부를 배우라 했거늘, 꿋꿋이 배우지 않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왜 또 흥미가 생긴 거야? 이 수신부 외에도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예를 들어 목소리를 더 좋게 하는 ‘열이부(悅耳符)’도 있지. 그것만 해도 수십 가지 음색으로 나뉘는데, 온유한 목소리, 청량한 목소리, 아리따운 목소리…….」

정미는 어두운 얼굴로 아혜와의 연결을 끊었다.

‘이 요괴는 역시 진짜 요괴였구나, 더 들었다간 정말 심신이 피폐해질 거야.’

그때,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손 양제는 이런 중요한 시점에 방해를 받으니 불쾌한 듯 눈썹을 치켜들고 쳐다봤다. 그러자 손 양제의 안색이 변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씨 가문의 셋째 아가씨, 우선 가보세요. 다음에 궁에 오면 제가 다시 당신을 찾도록 하지요.”

정미도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지만,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보지 못한 척하고는 ‘예’하는 대답과 함께 돌아갔다.

정미는 태자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치맛자락이 펄럭일 정도로 아주 빨리 걸어갔다. 하지만 뜻밖에도 멀리서 사내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손 양제, 셋째 소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길래 그리 즐거운가?”

정미는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손 양제는 입술을 깨물더니 웃음을 지어보이며 맞이했다.

“전하, 어찌 이곳에 오셨습니까?”

태자가 웃으며 손 양제를 바라봤다.

“바람을 쐬러 왔지. 양제와 셋째 소저는 무슨 얘길 하고 있었는가?”

손 양제는 무의식적으로 정미를 훑어보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셋째 아가씨를 만나, 잠시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태자가 가볍게 웃었다.

“양제가 셋째 소저를 알아봤다니, 짐은 방금 태자비의 처소에서 한참을 들여다봤다네.”

그는 말하면서 정미의 앞에 섰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며 얇은 허리를 지나 발로 꽂히자, 표정이 약간 변했다.

“발을 다쳤는가?”

정미는 고개를 숙여, 신발 등에 연한 붉은색이 자욱한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지통부의 단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상처가 더 심해져도 지통부를 쓰면 통증을 느끼지 못해, 발아래에 피가 흥건한데도 아무 느낌이 없던 것이었다.

태자가 한 발짝 다가가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프지는 않느냐?”

정미는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갑자기 느껴진 통증에 바로 눈에 눈물이 고여 고개를 들었다.

“조금 아프지만, 방금……, 방금은 양제마마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태자는 손 양제를 한 번 흘겨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을 다쳤으니 지체하지 말고, 어의에게 보여주거라.”

정미가 급히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어의를 번거롭게 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발은 얼마 전에 다친 것이라, 이미 딱지가 앉았습니다. 아마 상처가 벌어진 것 같으니 돌아가서 다시 싸매면 될 겁니다.”

태자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정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발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태자비를 보러 궁에 들어오다니, 자매의 정이 정말로 두텁구나. 하지만 상처가 벌어졌는데 어찌 돌아간 후에야 치료할 수 있겠느냐. 어의를 찾는 게 부담스럽다면, 의녀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가 정미를 부축해 건물 안으로 데려갈 사람을 고르려는 듯 사방을 둘러보았을 때, 마침 내시가 급히 달려오며 보고를 올렸다.

“전하, 경왕세손께서 전하를 찾으십니다.”

태자는 이 친척 동생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찾는다’라곤 했지만 보고를 기다리기도 전에 들어오려 했을 터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태자도 이미 적응이 된 바였다.

게다가, 화가 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경왕이 화가 나면 감히 그의 부황에게까지 욕을 하곤 했으니!

아니나 다를까, 태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자색 옷을 입은 경왕세손 용흔이 보였다. 용흔은 눈 깜짝할 새 가까이 다가와 예를 갖추고는, 고개를 숙인 정미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 이 여자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정미는 작은 패왕의 놀리는 듯한 말투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낯선 아가씨에게 ‘이 여자애’라니?

‘날 보면 또 말끝마다 못난 계집이라 할 테지?’

정미는 고개를 들어, 용흔에게 찬양하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세손께서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용흔의 눈이 커지며 입을 쩍 벌렸다.

“너, 너는 못난 계집 아니냐!”

“허허.”

갑자기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태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두 사람을 살펴봤다.

“용흔, 네가 평소 셋째 소저를 이렇게 불렀던 모양이구나.”

용흔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태자를 향해 눈썹을 치켜떴다.

“그렇고말고요. 이 칭호는 오직 이 아이에게만 붙는 것입니다.”

정미는 몰래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당연히 내게만 붙지. 수도에 너처럼 밉살스럽고 횡포한 녀석이 또 있겠어?’

“어이, 못난 계집. 지금 그게 무슨 표정이냐?”

용흔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표했다.

“네가 예뻐졌다고 해서, 내 앞에서 우쭐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내 눈에 너는 언제나 못난 계집이니까!”

정미는 입을 삐죽였다.

‘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쓸 사람이 누가 있겠니?’

정미는 태자에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태자 전하, 세손과 일 보십시오. 저는 우선 태자비마마께 가보겠습니다.”

태자가 정미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지금 네 발로 더 걸어선 안 된다.”

그는 뒤의 내시를 흘끗 쳐다봤다.

“여봐라―.”

그러자 용흔이 태자의 말을 끊더니 말했다.

“못난 계집, 발이 어쨌는데 그러지?”

그는 정미 앞으로 두세 걸음 다가오며 무심코 태자를 옆으로 밀어냈고, 정미의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안색이 변했다.

“못난 계집아, 이건 또 누가 그런 것이냐?”

정미의 입술이 떨렸다.

‘정월 초이튿날처럼 이리 좋은 날에, 누가 이 녀석을 풀어준 거야? 그리고 또라니?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남들과 싸우고 다니는 사람인가?’

“피가 흐르는데.”

용흔이 허리를 숙이며 고개를 점점 낮췄다.

정미는 치마를 움켜쥐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손, 다 보셨습니까? 제게 볼일이 없으시다면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자, 용흔이 손목을 붙잡았다.

정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용흔이 잔뜩 화가 나 식식거리며 말했다.

“가긴 어딜 가느냐, 네 발이 이 지경인데!”

용흔이 곧바로 쪼그려 앉았고, 정미는 깜짝 놀라 용흔의 손을 뿌리치고는 치마를 꽉 움켜쥐었다. 용흔은 불쾌한 듯 물었다.

“뭐 하는 짓이냐?”

태자는 이 두 아이들의 실랑이에 방긋 웃었고, 태자의 위엄을 유지하는 것도 잊은 채 짓궂게 말했다.

“용흔, 셋째 아가씨는 네가 쪼그려 앉아 함부로 볼까 봐 걱정이 되는 거다.”

용흔은 갑자기 화를 냈다.

“뭐라고? 내가 함부로 본다고?”

작은 패왕은 모욕을 당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웃기는 소리. 만약 내가 보고 싶었으면 바로 벗겨봤을 거다. 굳이 이렇게 쪼그려 앉는 고생을 할 필요가 있겠어!”

정미가 숨을 들이마셨다.

‘이 염치도 없는 녀석! 어릴 때는 기껏해야 진흙을 내 머리에 묻히거나, 눈덩이를 내 목으로 밀어 넣는 정도였지, 지금은 이런 말을 당당하게 말할 정도란 말이야?’

용흔이 정미 앞에서 등을 돌린 채,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

“올라타. 내가 업고 데려가마.”

정미는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떠났다.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용흔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재촉했다.

“얼른, 네가 살이 빠졌으니 업을 수 있을 거다. 부끄러워 마라. 난 너를 여자아이로 보지 않으니. 더 지체했다가 네 발가락이 썩어 떨어져도 널 동정할 일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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