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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9화 (39/375)

39화. 뚱보는 지원군

정양은 원앙내권이 담긴 판을 쳐다보며 능숙하게 정미의 허벅지를 끌어안고 위로 올라갔다. 그 아이는 입안에 간식을 우물대며 말했다.

“셋째 형님은 할 줄 몰라. 형님은 책만 읽을 줄 알아.”

정미는 몹시 당황하여, 둘째 오라버니가 만든 간식이 전부 이 뚱보 녀석에게 넘어갈까 봐 걱정되어 급히 접시를 든 손을 높이 들었고, 다른 손으로는 치마를 붙잡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갑자기 찬바람이 느껴지더니, 치마가 뚱보와 함께 내려가 버렸다.

정미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여자아이의 본능에 따라 정양을 받을 생각도, 수중의 접시도 잊은 채 번개처럼 얼른 치마를 들어 올렸다.

접시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와 함께, 문 입구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양아!”

동 이낭이 달려 들어와 정양을 꼭 안고 눈을 들어 올리며 울부짖었다.

“셋째 아가씨, 양이는 아직 어려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아가씨가 안아주길 원했을 뿐인데, 아무리 싫더라도 아이를 밀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정동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동 이낭을 닮은 듯했다. 동 이낭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꾸짖는 것이었으나, 정양을 꼭 안은 채 벌벌 떨고 있는 데다가 목소리는 가벼우니, 그저 그녀가 아들을 지키려고 하는 절박함과 가련함만이 느껴졌다.

그에 반해 정미는 교만하고 제멋대로이며, 어린 남동생을 괴롭히는 누님으로만 보였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서 양이가 어떤지 살펴보셔요.”

정동이 달려 들어왔다.

두 모녀는 급히 품 안의 아이를 살펴봤다. 뚱보는 멍한 표정으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천지신명께 감사하나이다!”

동 이낭이 안도의 한숨을 깊게 들이쉬고 고개를 들어 정미를 쳐다봤다.

“셋째 아가씨, 앞으로 양이가 이렇게 아가씨를 좋아하는 것을 눈으로만 봐주시고, 다신 손대지 마세요. 이렇게 어린아이가 넘어져서 바보가 되는 일은 드문 일도 아니란 말입니다!”

정미는 입을 꾹 다문 채 동 이낭을 내려다봤다.

‘알았다, 이제 보니 양이를 여기 남긴 건 이런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였구나!’

“아버지, 어서 셋째 언니를 타일러주세요. 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무서워요. 양이는 아직 이렇게나 어린데…….”

아까 울었던 정동의 눈이 복숭아처럼 부어올라 더욱 가련해 보였다.

“동아, 그런 말을 해서 뭐 하겠니? 너와 양이가 어찌 셋째 아가씨와 비교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만약 셋째 아가씨를 타이른다고 해도, 부인이 계신데……”

동 이낭이 딸을 쏘아보았다.

만약 한 씨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둘째 나리가 참을 수 있었을 터였다. 동 이낭이 말한 그 거칠고 규율을 지키지 않는 여인이 떠오르자, 더 이상 참지 못한 둘째 나리는 새파란 얼굴을 한 채 손을 들어 정미의 뺨을 휘갈겼다.

정미의 고개가 돌아가며 ‘짝’하는 소리가 들렸고, 손바닥은 그녀의 뺨을 스쳐 어깨로 떨어졌다.

정미의 성정이 아무리 냉담하더라도, 어쨌든 닭 한 마리 붙들어 맬 힘도 없는 소녀였다. 뺨을 한 대 맞자 순간 몸이 휘청였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야 겨우 바로 설 수 있었다.

뼈를 찌르는 고통이 발바닥에서부터 밀려왔고, 정미는 다리에 힘이 풀려 화장대 앞 걸상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둘째 나리와 사람들이 있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치마를 올리고 발을 들어 살펴봤다. 통통한 잠자리가 수놓인 오른쪽 수면 신발에 깨진 접시 조각이 비스듬히 박혀있었고, 피가 쏟아져나와 신발 밑창을 붉게 적시는 것이 보였다.

둘째 나리의 눈빛이 굳더니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미야…….”

정미는 눈을 들어 차갑게 그를 흘겨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아무 말 없이 접시 조각을 발바닥에서 빼냈다.

극심한 고통에 입술을 깨물자 피가 났고, 얼굴은 화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정양이 놀라서 크게 울기 시작했다.

“얼른 깨진 조각들을 치우고, 지혈 연고를 가지고 오거라!”

둘째 나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정미가 서슴없이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는 것을 보고는 놀라, 순간 앞으로 더 다가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미미, 가만히 있거라!”

정철은 비서거에 들어오자마자 둘째 나리의 고함소리를 들었고, 지혈 연고라는 단어가 들리자 몹시 놀라고 두려워 급히 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했다.

“아버지!”

정철은 예의 바르면서도 소원하게 외치고는 둘째 나리를 스쳐 지나가 정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라버니.”

정철을 보자 정미는 그제야 억울함이 밀려왔다.

“발이 아파.”

“괜찮아. 오라버니가 해결해줄게.”

정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도 않은 채, 지혈 연고를 가져온 환안에게 간결하게 분부했다.

“백주(白酒)와 수건, 그리고 면포를 가져오거라.”

“네.”

환안은 바람처럼 나갔다가 빠르게 돌아왔고, 손에는 쟁반과 백주, 면포, 수건, 심지어 은으로 만든 교도(*交刀: 가위)까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정철은 쟁반을 건네받고, 대뜸 동생이 사람의 장점을 참 잘 알아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환안이라는 시종은 확실히 심부름을 잘하는구나.’

정철은 쟁반을 화장대에 놓은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정미의 발을 치료해주려 했다.

그러자 정미는 발을 뒤로 움츠리며 고개를 들어 둘째 나리와 사람들을 쳐다봤다.

정철은 멈칫하더니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구나!’

그는 일어나서 몸을 돌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바깥으로 나가주십시오. 정미의 발에 상처가 있어 제가 치료해주려 하는데, 양이가 놀랄까 걱정됩니다.”

둘째 나리는 목이 탔다.

“미야, 그럼 우리는 다음에 다시 오마.”

정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필요 없습니다.”

둘째 나리가 쳐다보자 정미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이후 다신 오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미야, 그게 무슨 말이냐. 오늘 만약 네가 양이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아비가 어찌…….”

정미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제가 양이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아버지께서 보셨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께서는 저자들의 말만 듣지 않았습니까!”

정미는 외모도 성정도 판박이인 동 이낭 모녀를 훑어보며 비웃었다.

“속담에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고, 개가 개를 낳는다’는 말이 있지요. 정동, 분명히 너를 우리 어머니 이름에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든 촌스러운 티를 벗지 못하는구나. 그저 혀를 놀리며 속일 줄만 알지! 네가 눈물 몇 방울만 흘린다고 속일 수 있을 줄 알아? 그저 아버지가 눈이 먼 것만 믿고 있을 뿐이지.”

“미야, 아비는 아픈 너와 언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거라. 누가 아버지와 동생을 그렇게 말한단 말이냐? 네겐 조금의 효심도 없는 것이냐!”

“없습니다. 최소한 당신들에겐 없어요.”

정미는 평온한 표정으로 분명하게 말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 그리고 형제지간의 도리는 지킬 만큼 지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멀리 떨어져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이렇게까지 둘째 나리에게 대들었던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대드는 사람이 자신의 딸이라니, 순간 화가 나 얼굴이 새파래진 둘째 나리는, 정철에게 말했다.

“철아, 네 조모님과 숙모님 그리고 어머니를 모셔오거라. 네 셋째 여동생이 단단히 미친 것 같으니, 집에만 두어선 안 될 것 같구나. 새해 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마을의 가묘(*家廟: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에 보내 잠깐 지내도록 해야겠다.”

정철은 온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겨우 말했다.

“아버지, 우선 제가 정미에게 약을 발라준 후 다시 얘기하세요.”

둘째 나리는 이 값싼 아들에 대해 구설수가 떠돌아다니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그의 앞에서만큼은 엄격한 아버지의 태도를 보이기가 어려웠다.

“춘아, 양이를 데리고 먼저 돌아가거라. 나는 일이 해결되면 갈 테니.”

“예.”

동 이낭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고는 한 손엔 정양을, 다른 한 손엔 정동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정양이 갑자기 동 이낭의 손을 뿌리치고는 짧은 다리로 정미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허벅지를 끌어안은 채 울부짖었다.

“셋째 누님, 나 가기 싫어. 나는 누님을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뚱보는 ‘누님의 원앙내권을 좋아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순간 원앙내권의 이름을 까먹어 ‘좋아해.’라는 세글자만 세 번이나 훌쩍이며 말했다.

정미는 놀란 얼굴이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놀란 사람들의 침묵 속에서 차갑게 말했다.

“내가 널 밀었는데, 나를 왜 좋아해?”

그 간식은 땅에 떨어져 치워버린 후였고, 뚱보는 억울함을 견딜 수 없어 정미 옆에 바싹 붙어 그 새콤달콤한 우유향을 맡았다. 그러자 더욱 억울해져서 고개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발했다.

“셋째 누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 셋째 누님은 나를 밀지 않았어. 분명히 내가 누님의 치마를 당겨서 같이 떨어진 거잖아.”

정미의 입술이 휘었다.

“방금 못 들었어? 이낭과 넷째 누님은 내가 밀었다고 말했는걸.

정양은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아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지금 가버리면, 다시는 이 꽃처럼 아리따운 누님을 만나지 못할까 두려웠고,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그 맛있는 간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웠다. 아이는 정미의 말을 듣고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어머니와 넷째 누님도 분명 셋째 누님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정미가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워 고개를 돌려서 동 이낭에게 물었다.

“어머니, 맞지요?”

동 이낭은 화가 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양아,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것이야. 이 어미와 네 누이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어!”

정양은 억울한 듯 울었다.

“양이는 거짓말 안 했어요.”

정동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어린 동생이 또 무슨 놀라운 말을 내뱉을까 두려워, 급히 다가가 정양을 안으며 달랬다.

“그래, 양이는 거짓말 안 했어.”

정양은 너무 많이 운 탓에 딸꾹질을 하며 물었다.

“그, 그럼 누가 거짓말을 한 거야?”

정미가 살짝 치켜 올라간 길고 아름다운 눈을 가늘게 뜨자, 웃지 않고 있음에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는 둘째 나리에게 한 글자씩 똑바로 물어봤다.

“아버지, 말씀해보세요. 그럼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둘째 나리는 두 개의 물음에 양쪽 뺨을 한 대씩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점점 난처해졌다.

그는 동 이낭을 힐끗 노려봤다.

그동안 동 이낭과 둘째 나리 사이에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미와 정철 남매 앞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동 이낭의 아름다운 눈엔 눈물이 흐를 듯 말 듯했다. 사뿐사뿐 둘째 나리 앞으로 걸어간 동 이낭이, 부드럽고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나리,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이 양이가 셋째 아가씨에게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었는데, 어찌 떨어지던 모습까지 분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녀는 말하면서 정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러곤 태도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셋째 아가씨, 방금은 제가 잘못 본 것입니다. 제가 아가씨를 오해했습니다. 여기서 사죄드리겠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정미는 동 이낭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전히 둘째 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둘째 나리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말을 알아듣는 꽃 같은 줄 알았던 동 이낭이 이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 정미가 점점 압박하는 것에도 더욱 화가 났다.

‘제 아버지에게 조금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다니.’

조금 전 느꼈던 양심의 가책은 수치스러움과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그는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미야, 너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지 않느냐. 규수로서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덕목을 가져야 한다. 동 이낭이 사과했는데, 용서하지 않을 테냐?”

둘째 나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 이낭이 ‘쿵’ 하며 무릎을 꿇었다.

“셋째 아가씨, 아가씨께 머리를 조아리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아니, 저를 용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께서 넓으신 아량으로 양이와 동이에게 화내시지만 않으신다면…….”

정미는 그제야 동 이낭을 처음으로 쳐다봤다. 정미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눈썹은 살짝 치켜 올라갔다.

“‘화 이낭’, 나는 아버지와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인데, 네가 왜 끼어드느냐?”

동 이낭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눈빛은 흐려졌다.

‘또 나를 화 이낭이라고 부르다니, 또 화 이낭이라 부르다니!’

“나리!”

온갖 굴욕을 받자 그녀는 더 이상 무릎을 꿇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둘째 나리의 품에 안겨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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