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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5화 (35/375)

35화.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 법

“가서 말해. 내 몸이 좋지 못해 누워있으니, 돌아가라고.”

정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대답한 환안이 몸을 돌려 입구로 가는데, 교용이 이미 정요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 둘째 아가씨께서 아가씨를 보러 오셨습니다. 수선화도 가지고 오셨어요. 아주 예쁘게 피었답니다.”

교용이 안으로 걸어들어오며 말했다. 이후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귀신을 본 듯 소리쳤다.

“아, 아, 아가씨! 어떻게…….”

정요도 발걸음을 멈추고는, 놀란 표정으로 온 방을 환하게 비추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정미는 무의식적으로 정요를 피하려 했으나, 막상 만나고 나니 속에서 고집이 튀어나왔다.

‘속을 알 수 없는 것은 언니인데, 내가 왜 양보하며 피해야 해!’

“둘째 언니, 또 나를 보러 온 거야?”

정요는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품 안의 수선화를 꼭 잡았다.

“응, 정미야. 며칠 동안 보지 못했는데, 너…… 정말 하얘졌다…….”

정미는 눈을 돌려 거울을 보더니 미소지었다.

“그동안 계속 햇볕을 쬐지 않아서 그런가 봐.”

교용이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정미가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교용은 어찌 된 일인지 뒤에 하려고 했던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당황하며 몸을 돌려, 차를 따라 두 사람에게 바칠 뿐이었다.

정미는 웃는 듯 마는 듯 교용을 한 번 쳐다보며 찻잔을 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미야……, 이 수선화는 내가 직접 기른 거야. 꽃이 필 줄은 몰랐는데, 마침 네게 가지고 왔어. 몸을 회복하는 동안 이 싱그러운 꽃들을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야.”

회인백부에는 온실이 없었기에, 겨울에 꽃을 두려면 자신의 한 달 용돈으로 사 와야만 했다. 누구도 용돈을 그런 데에 쓰고 싶어 하지는 않았기에, 정요의 이 싱그러운 수선화는 꽤나 귀한 선물이었다.

정미는 수선화를 훑어보더니 입을 오므렸다.

“고마워, 둘째 언니. 하지만 나는 수선화를 좋아하지 않아. 방에 두고 보지 않으면 낭비가 되니, 언니 방에 두는 게 좋겠어.”

정미는 한때 정요의 말을 금처럼 귀하게 여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점점 잊어버리게 되고 말았다.

정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담박한 수선화와 백련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오직 눈과 맞서는 홍매와 천향국색(*天香國色: 고상한 향기와 제일가는 색깔이라는 뜻으로, 모란과 절세미인을 이르는 말)의 모란만을 좋아하곤 했다.

“정미…….”

정요는 환안과 교용을 훑어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선 시종들을 물러주면 안 되겠니?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정미는 화장대에 비스듬히 기대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이 아이들은 내 곁에 붙어있는 시종이니, 들어도 상관없어.”

정요는 갈수록, 정미가 그날 한지에게 밀쳐져 쓰러진 이후로 그녀와 소원해졌다고 느껴져 마음이 조급해졌고, 한지가 그녀에게 일으킨 피해에 화가 났다.

그녀는 정미가 자기 성질대로만 하는 아이란 걸 알고 있었다. 정미가 결정한 일에 맞서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미야, 그날의 일로 화가 난 것을 알아. 하지만, 나와 지 오라버니 사이엔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 나는 오라버니에게 그저 남매의 감정만 있을 뿐이야……. 나는 진심으로 너와 지 오라버니가 결실을 이루길 바랐어…….”

정미가 갑자기 키득 웃자, 정요는 멍해졌다.

“정미야, 만약 못 믿겠다면 맹세도 할 수 있어.”

“그럴 필요 없어.”

정미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곤 턱을 살짝 치켜 올리더니, 정요가 잘 아는 그 거만함을 보였다.

“언니는 아직도 날 몰라?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사내를 내가 어찌 소중히 여기겠어! 그해 둘째 오라버니가 내게 선물한 백옥으로 된 빙어 벼루 기억나? 그때 내가 몹시 좋아했는데, 나중에 정동이 한 번 쓴 이후로는 싫어져버렸다고 했잖아!”

정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당연히 그 백옥의 빙어 벼루를 기억했다.

그때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의 아이들은 함께 글방에 다녔는데, 모두 자리가 정해져 있었고, 어느 날 정미의 책상 위에는 그 백옥 빙어 벼루가 놓여있었다. 넷째 정동은 둘째 오라버니가 정미에게만 주는 선물이란 말에 화를 냈고, 그 벼루로 글자를 쓰다가 정미에게 발각되었다. 이후 정미는 정말 그 벼루를 사용하지 않았다. 정미는 심지어, 그 벼루를 부수어버렸다.

“걱정하지마, 언니. 지 오라버니의 일로 언니를 원망하진 않아.”

정미가 정요를 원망하는 것은 전혀 지 오라버니 때문이 아니었다.

“그럼 됐어.”

정미의 웃는 얼굴은 억지스러워 보였고, 정요는 눈앞의 소녀를 점점 알 수 없다고 느꼈다.

정요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마음이 급해서는 안 되며, 예전의 관계로 회복하려면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들고 있는 이 수선화를 정미가 받는 것이야말로 관계회복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 방해하지 않을 테니 쉬어. 네가 수선화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다음엔 다른 걸 가져올게. 그런데 오늘은 그저 내가 이 수선화를 다시 들고 돌아가면 손이 시릴 것 같으니까, 언니를 봐서라도 받아줘.”

정미가 난감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언니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받을게. 환안아, 둘째 언니가 가져온 수선화를 창가에 두렴.

정요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옅게 웃었다. 그러자 곧바로 정미의 말이 들려왔다.

“둘째 언니가 내게 선물을 보내왔으니, 받을 수만은 없지. 내가 언니한테 선물 하나를 줘도 될까?”

여자아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친한 사람에게 주는 일은 자주 있었기에, 정요는 정미의 말에 속으로 기뻐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다고, 정미는 여전히 나를 가깝게 생각하는구나.’

“그럼, 정미가 주는 거라면 다 좋지.”

그러자 정미가 손을 뻗어 교용을 가리켰다.

“그럼 이 시종을 언니에게 줄게. 내가 보기엔 이 아이가 언니에게 꽤나 신경을 쓰는 것 같으니.”

교용의 눈에는 기쁜 기색이 순간 스쳤다.

‘당연하지요!’

회인백부의 셋째 아가씨가 약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바깥사람 누가 모르겠는가. 교용은 그녀의 몸종이었기에, 셋째 아가씨가 소문만큼 정신이 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만, 이런 소문을 가진 아가씨가 어찌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갈 수 있겠는가? 몸종인 교용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리 없었다!

더욱이 셋째 아가씨는 날이 갈수록 그녀에게 냉담해졌고, 최근 계속 그녀를 주방에 보내곤 했다. 몸종임에도 이미 수일 동안 자신의 주인을 보지 못하다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크게 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가씨는 달랐다. 둘째 아가씨는 비록 서녀였지만, 집안에서의 인상은 셋째 아가씨보다 훨씬 좋았다. 둘째 부인인 한 씨조차 친딸인 셋째 아가씨보다 둘째 아가씨에게 더 잘해주었고, 더욱이……, 더욱이 방금 둘째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위국공 세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둘째 아가씨였다!

‘만약 둘째 아가씨를 따라가면, 언젠가는 위국공부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위국공 세자의 온화하고 우아한 성품이 떠오르자, 교용의 가슴이 저절로 뛰었다가, 또 뒤엉켰다.

‘청수하고 귀한 둘째 공자님도 뛰어난데…….’

그만두자, 둘째 공자님의 신분이 위국공 세자만큼 고귀하지 않다는 것은 둘째 치고, 그는 셋째 아가씨의 오라버니였다. 셋째 아가씨의 몸종으로서 봐도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교용은 한참을 마음속으로 위국공 세자인 한지와 회인백부의 둘째 공자 정철을 저울질하다가, 표정이 빠르게 변하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얼굴에 드러난 기쁜 기색을 숨기고 허둥대며 말했다.

“아가씨, 소인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소인을 내버리시다니요!”

정요도 어안이 벙벙했다. 늘 온화하고 시원한 성정의 정요마저 말을 더듬었다.

“정, 정미야, 누……, 누가 몸종을 선물로 주니!”

정미가 눈썹을 찌푸리며 교용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짓이니? 내가 너를 둘째 언니에게 준다는 건, 당연히 네가 일을 잘하기 때문이야. 좋지 않은 것을 둘째 언니에게 줄 리 있겠어?”

그녀는 떳떳한 표정으로 정요를 바라봤다.

“언니, 맞지?”

“……네 호의는 잘 알았어. 하지만, 이 몸종을 내게 주는 건 역시 말이 되지 않아. 우리는 각자 두 몸종과 두 여종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한 명 더 늘고, 네게 한 명이 줄어드는 건 규율에 어긋나니까…….”

정미가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

“집안사람들 중에 둘째 언니가 가장 규율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 집안에 규율에 어긋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몸종 하나를 선물하는 걸 누가 뭐라 하겠어. 언니, 걱정하지마. 교용을 보내고, 월급도 내 쪽에서 낼 테니.”

정요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미야, 그런 뜻이 아니야…….”

“괜찮아. 언니가 필요 없다면 됐어. 수선화도 다시 가져가. 이 시종은…….”

정미는 치켜 올라간 눈을 가늘게 뜨며 교용을 주시하더니, 당연한 듯이 말했다.

“언니도 내 성정 알잖아. 보낸 선물을 어찌 다시 가지겠어. 언니가 필요 없다면, 이 아이를 백부님 댁에 보내야겠다. 어쨌든 난 더 이상 원하지 않으니까.”

“아가씨!”

교용이 놀라 창백해졌다. 높은 곳에 오르려던 마음도 사라져 연거푸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발 소인을 내쫓지 말아 주세요. 소인이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정미는 조금 불쾌해졌다.

“교용, 한 번만 더 헛소리를 하면 큰부인댁에도 보내지 않을 거야. 내가 언제 너를 내쫓았니? 둘째 언니가 너를 받지 않아서 큰부인댁에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큰부인은 관대한 분이시지. 넌 나를 몇 년 동안 따랐으니 안심해도 돼. 큰부인께 좋은 업무에 배정해달라고 말씀드릴 테니.”

교용은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머리를 들었다. 정요의 눈이 번쩍이는 것이 보이자, 구세주를 만난 듯 달려들어 정요의 발목을 잡고 울며 빌었다.

“둘째 아가씨, 둘째 아가씨, 제발 소인을 받아주세요. 충성하며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정미는 무표정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말을 정말 화나게 하는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갈팡질팡하더니, 언니에게 가서는 충성하겠다고?’

너무 모순적인 것 아닌가. 이렇게 오랫동안 시종 일을 해놓고, 항상 변함없이 충성해야만 주인의 마음에 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이 철없는 것을 보내는 것은 과연 옳은 결정이었다.

‘수선화는 보기 좋기라도 하지!’

정요는 발목이 교용에게 꽉 붙잡히자 온몸이 굳고 말았다. 거절할 마음이었으나, 정미의 불난 데 기름 붓는 듯한 태도와 이 시종의 애원에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고,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방금 내 머리가 어떻게 됐던 걸까? 왜 지 오라버니에게 남매의 정만 있다고 말했을까, 그것도 이 시종 앞에서!’

‘만약 이 시종이 정말로 큰부인댁으로 가 아무 일이나 하게 된다면, 그 말들은 새어나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내 명성은 모두 끝장날지도 몰라!’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정요는 몹시 절망스러워졌다.

그것은 서녀로서의 설움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미는 지 오라버니에게 고백한 일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명성에 조금이라도 흠이 생기면, 시집가기가 쉽지는 않아질 터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무래도 이 시종을 곁에 두어야 마음이 놓일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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