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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34화 (34/375)

34화. 확신

“알겠어. 그럼 내게 무슨 과(科)를 먼저 가르쳐줄 거야?”

「무슨 과?」

아혜가 차갑게 웃었다.

「네가 연이어 기절하고, 신체가 허약해진 탓에 이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 부의가 병을 고치는 데에는 부적을 만드는 것과 망진(望診)을 하는 것 둘 중 하나도 빠져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부적을 만드는 법을 안다고 하더라도 어떤 부수를 사용해야 할지 어찌 판단하겠어?」

정미는 아혜의 설명에 따라 점점 진지해져서 물었다.

“망진은 또 무슨 뜻이야?”

아혜의 말투는 좋지 않았지만, 참을성은 좋았기에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환자의 병세를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는 건 보통 의원들이 하는 사진(四診)법이야. 내가 네게 가르쳐줄 것은 이것과 다르지. 그저 보기만 하면 돼. 이 망(望)이 바로 환자의 얼굴 곳곳의 기색을 보고 오장육부에 병이 있는지 판정하는 것이지. 이 방법을 터득하려면 많은 환자 경험이 쌓여야만 실수하지 않을 수 있어. 말해봐, 지금 네 상황은 수많은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야?」

아혜의 말에 기분이 언짢아진 정미가 반문했다.

“어제는 분명 오늘부터 너에게 배우라고 했으면서, 지금은 왜 또 이것도 저것도 배울 수 없다고 하는 거야? 말로만 하는 건 증거가 되지 않아. 네 말이 진짠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혜에게 만약 눈이 있었다면, 눈알이 뒤집혔을 것이다. 아혜는 음흉한 말투로 말했다.

「천 가지가 넘는 부적의 사용법을 며칠 만에 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망진은, 얼굴의 세세한 변화마다 질병이 서로 다른데 이론만 배운다고 해도 단기간에 될 일이 아니야.」

이 모자란 계집이 놀라 도망갈까 봐, 아혜는 단념하며 말을 보탰다.

「하지만 열세 가지 중 네가 제일 배우고 싶은 과를 골라도 돼. 이론부터 먼저 가르쳐줄 테니까. 어때, 무슨 과를 배우고 싶어?」

정미는 눈을 감고 가족들이 죽어 나가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열세 살의 소녀는 차오르는 슬픔과 절망을 꾹 참고 방관자의 관점으로 열심히 고민했다.

환상 속에서 조모님은 병으로 돌아가셨으나, 어떤 병인진 알지 못했다.

‘큰 사촌 언니는 기둥에 부딪혀 죽었고, 어머니는 불에 타죽었고, 지 오라버니는 반송장이 되었지. 둘째 오라버니는 화살에 꽂혀 죽었고, 큰언니……, 큰언니는 난산으로 죽어서 배가 찢겼어…….’

정미는 어떤 것을 먼저 배워야 할지 깨달았다.

다른 가족들의 죽음엔 무력감을 느꼈지만, 최소한 큰언니만큼은 정미가 시도해볼 만했다.

아혜는 둘째 오라버니가 가장 먼저 죽는다고 말했지만, 환상 속에서 본 둘째 오라버니와 같이 있던 자신은 자란 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큰언니는 내년에 출산을 하니, 큰언니가 난산하여 죽는 것은 조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시는 것처럼 비명(非命)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가 걱정하는 가족 중 가장 먼저 죽는 것은 큰언니일 터였다.

‘게다가 큰언니는 태자비이니, 만약 살아남을 수 있다면, 미래의 그 악운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결정했어. 먼저 태산과를 배울래.”

정미가 한 글자씩 똑똑히 말했다.

「약도 없을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니었군.」

아혜가 보기 드물게 인정하는 듯싶더니, 목소리가 갑자기 신비하게 변했다.

「네가 방금 말로만 하는 것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 먼저 네게 간단한 걸 가르쳐주지. 새해 전에 휴양하는 이 기간을 틈타 태산과의 부법 이론을 배우면서, 부적을 그리는 것도 연습하면 되겠네.」

“무슨 부적?”

정미의 눈이 반짝였다.

「미백부(美白符).」

아혜가 으쓱하며 말했다.

정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곧 흥미가 떨어진 듯 말했다.

“그게 태산과와 무슨 상관이야?”

아혜는 이 답답한 계집의 멱살을 잡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아무 상관없는 건 맞아. 하지만 미(美)와 관련이 있지! 아무리 어리다 해도, 너도 여인이잖아!」

“내 가족들이 얼마 후 연이어서 액운을 겪게 될 텐데, 아름답고 아니고가 나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

사실 정미는 말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렸다.

‘나와는 상관이 없어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이 있잖아!’

태자의 생모인 화(華) 귀비(貴妃)는 늘 큰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용모가 출중한 화 귀비에게는 모두가 아는 작은 약점이 있었는데, 피부가 조금 검단 것이었다.

만약 정미가 이 미백부로 화 귀비의 총애를 받으면, 큰언니의 생활이 나아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큰언니의 마음이 좋아지면 정미가 배운 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난산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정미는 마음속으로 이미 납득을 하고 있었지만, 아혜는 이 계집이 또 넋을 놓은 것 같아 화를 참으며 권했다.

「태산과는 한 몸에 두 생명이 있으니, 가장 복잡한 과야. 가장 간단한 부적을 배우는 것도 몹시 힘들 테니, 우선 미백부로 연습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내 말이 진짠지 가짠지도 알 수 있고.」

정미는 몰래 비웃었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아혜의 말에 응했다.

* * *

이날 이후 정미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며, 환안을 시켜 주사와 황지를 사 오게 했고, 방 안에 숨어서 미백부 그리는 법을 배웠다.

미백부를 그리는 것이 능숙해졌을 때쯤, 아혜의 지도 하에 주사에 손가락 끝의 피를 섞었고, 물잔을 향해 공중에서 온전한 부적을 그려냈다.

열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부적의 마지막 획을 그렸을 때, 물 위에 은은한 붉은 빛이 번쩍이며 깨끗하고 투명했던 물이 아주 옅은 분홍색을 띠었다. 아혜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됐다!」

정미는 비록 한동안 부법을 배웠지만, 이 물을 마시면 왠지 죽음도 두려울 것 같지 않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 물을 마시고 잠에 들었다.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잠든 정미는, 다음 날 아침 거울 속에서 맑고 흰 피부를 가진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정미는 입을 벌린 채 멍해졌고, 아혜도 몹시 놀랐다.

「이상하다. 이 미백부의 효과를 보려면 최소 보름의 시간이 필요한데, 넌 왜 하루 만에 이렇게 효과가 나타났지?」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정미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아 자신의 뺨을 계속 꼬집었다.

아혜는 자신의 능력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 잠시 사색에 잠겼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알겠다. 네 문제였어!」

“나,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데?”

「네 문제는…… 바로 네 피부에 원래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거야. 너는 원래 까만 피부가 아니었던 거지!」

정미는 피부가 희다 못해 은은한 빛까지 나는 모습을 보며 중얼댔다.

“그럼 난 왜 그렇게 까맸던 거지?”

「만약 후천적인 거라면, 보통 햇빛을 많이 보고 관리하지 않았거나, 혹은 음식 문제야. 예를 들어 부추, 팥, 땅콩, 건포도, 그리고 동물의 내장이나 게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을 오랫동안 먹으면 피부가 점점 까매져. 아, 맞다. 그리고 기름에 튀긴 음식들을 자주 먹으면 살도 잘 찌고 얼굴에 여드름도 계속 나지. 특히 네 나이 때부터는 더 그래.」

아혜는 정미의 눈을 빌려 거울 속 흠 없이 예쁜 소녀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정말, 네가 어떻게 예전의 그 얼굴로 용기 있게 살아갔던 건지 모르겠네.」

정미는 아혜가 비꼬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정요는 매일 살뜰히 정미를 챙겼었다.

- 정미, 내가 부추 도시락을 연구해봤어. 계란이랑 연두부도 넣었는데, 부추 만두를 안 좋아한다면, 이건 어떤지 한 번 볼래? 이건 팥전인데, 건포도도 넣었어. 맛이 아주 좋아. 정미는 땅콩을 싫어하지? 이 땅콩 간식을 먹어보는 건 어때?

- 정미, 이건 게살귤죽인데, 방금 만든 게 가장 맛있어. 천천히 먹어.

- 방금 게를 먹었으니, 이 닭다리 튀김은 다음에 먹자. 배가 아플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래, 약속할게. 내일도 만들어 줄게…….

정미는 그저 넋을 놓고 거울을 바라볼 뿐이었다.

거울 속 소녀는 아직 앳된 모습이었고,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는 맑고 시원했다. 콧대는 오뚝했으며, 입술은 얇고 붉었다. 약간 여윈 이후로도 보통 규방의 소녀처럼 연약해 보이지 않았고, 냉엄하고 도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매혹적인 풍채는 세상에 둘도 없었다. 정미는 그제야 비로소 그녀와 화서가 닮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막았다.

정미는 깨달았다. 단 걸 먹어도, 그게 꼭 꿀일 리는 없었다. 독을 품은 꿀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저 정미가 너무 빨리 삼킨 탓에, 안에 든 독의 맛을 느끼기도 전에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독은 그녀의 몸 안에서 기승을 부렸다.

“아가씨, 둘째 아가씨께서 또 오셨습니다.”

환안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정미는 고개를 돌리고 망설이며 환안을 불렀다. 이렇게 많이 변해버렸으니, 다른 사람이 요괴로 볼 수도 있었다.

그녀를 본 환안은 멍하니 있다가, 아름다운 눈에 어리둥절함을 띄우더니, 몸을 돌려 어지러운 듯이 나갔다. 환안은 문밖으로 나가서야 뭔갈 깨달은 듯 갑자기 몸을 다시 돌려, 정미의 곁으로 달려와 기쁘게 말했다.

“아가씨, 너무 예뻐지셨어요. 소인이 잘못 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정미의 뺨이 조금 뜨거워졌다.

“환안아, 네가 보기에…… 내, 내가 많이 변했어?”

환안이 열심히 훑어보더니 말했다.

“갑자기 봤을 땐 많이 변한 듯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아가씨는 원래 이렇게 생기셨던 것 같아요. 그저 예전보다 피부가 많이 희고 고와졌어요. 마치…… 응, 맞아요. 마치 검은 자두의 껍질을 벗겼을 때,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하지만, 다시 보면 자두임을 알아보는 것처럼요.”

환안은 자신이 아주 좋은 비유를 했다고 생각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정미는 마음을 숨기려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환안아, 앞으로도 일을 많이 하고, 말을 적게 하렴.”

환안은 입을 가리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정미는 몸을 돌려 계속 거울을 쳐다봤다. 거울 속 그 아름다운 소녀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정미의 마음속에 기쁨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 요괴가 말한 게 진짜였어!’

고생을 두려워 않고 열심히 요괴가 가르쳐주는 것을 최선을 다해 배우면, 최소한 가족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아가씨―.”

정미가 눈을 돌리자, 환안이 입을 가리고 말했다.

“소인이 마지막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말해봐.”

“둘째 아가씨께서 또 오셨는데, 들어오시라 할까요? 소인이 나가서 말씀드리지 않으면 가시지 않을까 봐요.”

정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문을 닫고 나가지 않던 나날 동안, 정요는 매일 아침마다 찾아왔고, 정미는 늘 정요를 피해 만나지 않았다.

환상 속에서, 지 오라버니는 둘째 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정미의 남편이 되었으면서도 정요의 편을 들었다. 정미는 이를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었지만, 둘째 언니가 그렇게 냉정하게 큰언니의 배를 갈라버리고 피범벅이 된 아기를 꺼내는 것을 본 뒤로는, 그 고비를 넘을 수가 없었다!

만약, 만약 그때 큰언니가 이미 죽은 상태였다고 해도, 정미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정요가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던 그 장면 때문에, 정미는 계속해서 정요를 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선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정미는 둘째 언니가 그렇게 한 까닭은 그녀들의 외조카를 구하기 위함이었고, 큰언니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둘째 언니를 무서워하고 혐오감이 들기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어려서부터 날 가장 아껴주던 둘째 언니였잖아!’

그러나 방금 들려온 아혜의 말에, 마음속에 남았던 양심의 가책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치 한지를 향했던 애정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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