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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3화 (13/375)

13화. 눈 덮인 숲속에 이 몸을 피우니

한편 진령운은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다가 그저 주변인물이 되었지만, 이 정도 격차쯤은 잊어버릴 정도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상태였다.

“령운아, 왜 그래? 안색이 좋지 않네.”

정동이 조용히 진령운의 팔을 건드렸다.

진령운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안색이 끊임없이 변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술을 깨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어지러워서.”

‘내가 분명 잘못 본 걸 거야. 만약 이걸 입 밖으로 꺼내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믿지 않을 거고, 한추몽은 그저 내가 관심받기 위해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라고 할 게 분명해.’

정동이 피식 웃었다.

“너, 과실주를 많이 마셔서 그런 거야. 그것도 술이긴 마찬가지인걸.”

‘그래. 내가 분명 과실주를 많이 마셔서 잘못 기억하는 게 분명해.’

진령운이 묵묵히 생각했다.

“와, 빨리 보세요! 눈이 와요!”

나이가 가장 어린 한우는 형님 누이들의 논쟁엔 흥미가 없었고, 진작에 조용히 창문 앞으로 빠져나가 놀고 있었기에, 밖에 눈이 내리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의 말은 모두를 창문 앞으로 끌어당겼다.

창문 밖엔 백매가 가로로 경사져있었고, 은은한 향기가 떠다니며, 눈송이가 우수수 떨어지는 중이었다. 거침없이 떨어지는 모습이 생기발랄해 보여, 보는 사람의 기분이 이유 없이 경쾌해졌다.

도심이가 손뼉을 쳤다.

“술을 음미하며 눈을 감상하고 있자니, 시가 빠지면 아쉽지요. 그럼 이렇게 해요. 계속 격고전화 놀이를 하면서, 꽃을 받은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을 택할 수도 있고, 시를 짓는 걸 택할 수도 있는 거예요. 시는 그렇게 어려울 필요 없이, 매화와 눈을 주제로 하면 되겠어요. 눈이 조금 그치면, 눈 위를 거닐며 설경을 감상하며 매화를 보러 가도 되겠지요.”

이 제안은 즉시 모두의 찬성을 얻었고 빠르게 모두가 둘러앉아 놀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멈추자, 백매가지는 때마침 도심이 손에 있었다. 그녀가 일어나 말했다.

“기왕 제가 시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럼 먼저 미숙하게나마 시작하겠습니다.”

시녀가 종이와 먹 등을 올리는 틈을 타, 정미가 한추화를 건드리며 낮게 말했다.

“언니, 나 나가서 걷고 싶어.”

“정미…….”

“언니, 알잖아. 난 술도 못 마시고, 시도 못 짓고, 눈 내리는 날을 가장 좋아하는걸. 언니랑 다른 사람들은 마저 놀고, 나는 나가서 산책 좀 하다가 돌아올게.”

정미가 가까스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한추화는 이를 보고 더 이상 붙잡지 않으며 신신당부했다.

“그럼 옷을 잘 싸매고 손난로도 가져가렴.”

“응. 알았어.”

한추화는 고개를 돌려 시녀에게 명령했다.

“이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라. 미끄러지지 않게끔 주의하고.”

정미는 조용히 문을 나섰고, 시녀가 급히 우산을 들고 뒤따랐다.

한추화는 눈길을 거두고 한지에게 말했다.

“한지, 사실이 밝혀졌으니 내 생각에는 네가 정미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아.”

한지는 눈앞의 술잔을 보았다. 맑고 시원한 술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고, 술기운으로 인해 말하는 것이 예전보다 제멋대로였다.

“괜히 그 아이가 깊게 생각할까 봐……. 큰누님, 혹시 정미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한추화는 화가 나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녀는 한지를 한참 훑어보더니 말했다.

“한지, 내 생각엔 근 몇 년 동안 너야말로 더 이상해진 것 같아. 정미는 항상 이런 모습이었어.”

한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미가 변했는지 안 변했는지는, 용흔에게 물어보면 알게 될 겁니다.”

“덜 자란 어린아이에게 물어봐서 뭐하니. 사람을 볼 때는 본인의 눈으로 보는 거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덜 자란 아이?”

한지는 이 몇 글자를 되뇌더니,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는 용흔보다 한 살 더 많을 뿐이었다!

한추화는 실언한 것을 깨닫고 가볍게 기침한 뒤 진지하게 말했다.

“너는 이미 소성년식을 치루었으니, 당연히 다르지.”

한지는 마지못해 이 변명을 받아들였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매끄럽고 살짝 차가운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한추화가 그를 살짝 밀었다.

“가. 오늘 정미의 마음이 많이 상했을 거야. 너만이 그 아이를 달래줄 수 있을 테니까.”

한지가 아직도 망설이자, 한추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지, 조모님을 화나게 할 생각은 없겠지?”

한추화의 말에 한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었고 바로 울적해지고 말았다.

정미의 생일연회에서 그 소란이 일어난 뒤, 이 일이 어느 집이든 조모님이 된 사람은 그 계집아이가 경박하다고 느껴 크게 분노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오직 그의 조모님만이 기분이 몹시 좋은 듯 선물을 준비했다. 만약 어머니가 조모님을 필사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조모님은 관매(*官媒: 남녀를 중매하거나 혼인 등에 관한 일을 하는 관장)에게 두둑한 주머니를 주고 회인백부로 보냈을 터였다!

이를 저지당하자 조모님의 표정은 며칠 동안이나 좋지 않았고, 틈만 나면 혼담을 꺼냈다. 어머니와 그는 몇 달 동안 꼬리를 숨기고 살아가며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어떤 말, 어떤 단어가 또 조모님에게 그 일을 떠오르게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저 쌍란을 먹을 때에도 조모님은 혼담 얘기를 끌어왔기에, 요즘 정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열여섯 살의 소년은 이미 무수히 생각해온 바였다.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나. 사람을 죽였는가, 아니면 불을 질렀는가? 아니면 다른 양갓집 규수를 희롱했는가?

‘나는 그저 사촌 동생인 정미에게 남녀의 감정은 없었을 뿐인데!’

그 기간 동안 한지는 두 사람을 언급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했다. 한 사람은 정미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조모님이었다. 만약 둘 중에 누가 제일 무서운지 꼭 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조모님을 고를 것이다!

“지금 바로 갈게요.”

한지가 일어섰다. 아마도 너무 급하게 일어난 탓인지, 몸이 조금 흔들렸다.

“한지, 너무 많이 마신 것 아니니? 조심해.”

한추화가 빙그레 웃었다.

* * *

한지는 쏜살같이 걸어갔고, 입구에 도착하자 뭔가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그때 마침 어떤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그곳엔 정요가 매우 놀란 듯 당황하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서 있었다.

한지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소녀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때, 그녀의 귀가 붉어진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녀는 작고 귀여웠으며, 심지어 부드럽고 귀여운 솜털까지 보이는 것 같아 그의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지는 갑자기 솟아오르는 열기가 술 탓인지 아니면 그의 감정 탓인지 몰라, 살짝 땀에 젖은 손아귀를 움켜쥐고 발걸음을 떼는 것을 잊고 말았다.

마침 이때,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요 손에 떨어졌다. 정요 손에 떨어졌어!”

“정요 언니, 술 마실래, 시를 지을래?”

“……시 짓는 걸 택할게요.”

정요가 일어났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자신 있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시녀가 건넨 최고급 자색 토끼털 붓을 받아, 왼손으로 소매를 잡고 오른손은 현완직필(*懸腕直筆: 붓글씨를 쓸 때 팔목을 들어 바닥에는 대지 않고 붓을 곧게 쥐고 쓰는 자세)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한 글자 한 글자 수려하고 우아한 작은 글씨는, 마치 종이 위에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옆에 둘러싼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눈 덮인 숲속에 이 몸을 피우니, 먼지 낀 복사꽃 오얏꽃과 섞이지 않고 속세에 떠도는구나. 그러다 한밤중에 청신한 향이 피어나면, 천지에 흩날려 만 리가 봄이로다. (*氷雪林中著此身, 不同桃李混芳塵. 忽然一夜淸香發, 散作乾坤萬里春)”

한지는 이 매화시를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정요를 깊게 바라보다가 결심이 든 듯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눈 덮인 숲속에 이 몸을 피우니…… 천지에 흩날려 만 리가 봄이로다…….”

한편 도심이는 시를 한 번 더 중얼거리고 읊으며 푹 빠져있었다. 한참 후,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정요를 보며 말했다.

“정요, 네 시는 정말 기가 막히는구나.”

그녀는 말하면서 몇 걸음 걸어가 창밖에 휘날리는 눈과 백매를 바라보았다.

“이 숲의 이름이 ‘청설’이지만, 사실 ‘설’은 눈이 아니라 백매를 말하는 것이었지. 하지만 하필 오늘 또 눈이 내리니 정말로 명실상부한 ‘빙설림’이 되어서, 백매의 기품이 더욱 드러나네.”

“정말 좋은 시로군.”

말을 이은 것은 도심이의 오라버니 도약연(陶躍然)이었다.

도약연은 도심이보다 두 살 많았고, 여태까지 줄곧 가양에서 공부를 하다가 명사 고 선생의 제자가 되고자 이번에 수도에 왔다. 하지만 고 선생이 제자를 데리고 멀리 떠나, 오늘날까지도 돌아오지 않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고 선생을 따라간 그 제자는, 바로 정미의 둘째 오라버니 정철(程澈)이기도 했다.

도약연이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

“특히 마지막 두 구절. 사람을 꽃으로 표현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절묘해.”

‘천지에 흩날려 만 리가 봄이로다’라는 구절은, 틀림없이 앞선 그녀의 행동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었다.

남을 위해 희생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원망의 말도 하지 않는 것.

도약연은 어려서부터 힘들게 공부하여 그의 여동생처럼 자주 위국공부에 오지 않았기에 정씨 가문의 자매들을 그리 잘 아는 편이 아니었고, 가끔 모일 때에도 늘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잊고 눈을 반짝이며 정요를 극찬했다.

“이런 여동생이 있다니, 과연 정씨네 둘째 형님이 고 선생의 제자가 될 법합니다.”

“큰오라버니!”

도심이가 그를 흘겨봤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요는 원래 수도 제일가는 재녀인데, 이게 다른 이와 무슨 상관이에요?”

짧은 시간에 놀라운 시를 지어낸 정요는 여전히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심이, 그 말의 뜻은 내 둘째 오라버니는 재능이 없다는 겁니까?”

도심이는 다급해졌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정요의 야유하는 듯한 눈빛을 받자, 도심이의 머릿속엔 소나무 같은 한 사내가 스쳤고, 그러자 귀가 살짝 붉어지는 바람에 찍소리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 사람이 이렇게 언급되면, 도심이는 그저 그 이름을 한 번 더 들은 것만으로도 기뻐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요는 그런 도심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도심이와 정요의 사이가 이렇게 좋지는 않았다.

예로부터 문인들은 서로를 경시했고, 이는 여인들이라 해서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도심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아주 많이 읽었고, 그 지역에서 꽤나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고모님 댁에 와서 잠깐 지낼 때면, 사람들이 늘 회인백부의 그 수도 제일 재녀라 불리는 정씨네 둘째 아가씨를 언급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이 없었다면 괜찮았겠으나, 하필 정요도 국공부의 사촌 아가씨에 포함되었고, 자주 오가다 보니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원래 도심이는 정요에게 작은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사이가 좋아진 거지?’

도심이는 이에 별로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작년에, 우연히 정요가 그녀와 작은 비밀을 나누었고, 그녀도 자연스럽게 정요에게 자신의 작은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그때부터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 듯했다.

정요는 적당한 정도에서 그치는 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도심이가 조금 부끄럽고 분해하는 것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

“그럼 계속하지요.”

도심이가 불평했다.

“뭘 계속해. 이렇게 네 훌륭한 시문이 앞에 있으니,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을 거야. 아까 정미와 한지 오라버니가 차례로 나가는 걸 봤어. 우리도 간식을 먹고 술도 마셨으니, 날이 아직 밝을 때 가서 설경과 매화를 감상하자.”

도심이 말은 모두의 호응을 받았다. 그리하여 다들 외투를 걸치고 우산을 들고, 두세 명씩 짝지어 건물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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