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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12화 (12/375)

12화. 이전에 두 아이는 서로 싫어하지 않았다

한지는 정요에게 살짝 웃어 보이고는 정미를 바라보았다.

정미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더 세게 깨물었다. 은은하게 피 맛이 느껴졌지만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한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확실히 의외긴 해. 용흔, 앞으로 내가 보는 앞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하지 마. 정미의 명예와도 관련되니.”

“그게 무슨 뜻이야?”

용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준수한 외모였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제멋대로 구는 것이 습관이 된 탓에,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까지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니, 용흔은 옥처럼 빛나는 한지보다도 더 눈부셨다.

“이게 앞으로 언급하고 말고의 일인가?”

용흔은 표독스럽게 정미를 노려보고는 한지에게 말했다.

“네가 이렇게 계속 용인해주는 것이야말로 저 아이를 해치는 것이다!”

“……아닙니다.”

그때, 본래 맑았던 정미의 목소리가 약간 어두워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 부정한 정미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한지를 쳐다봤다.

그런 진정한 ‘용인’과 ‘총애’는 그녀가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언제인지 모르게 그것들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 오라버니의 말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왜 기쁘지 않고 심지어 몹시 억울한 기분까지 들까?’

때문에 용흔이 이런 말을 하자, 그녀는 억울해져 이를 부인하는 말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느끼기에, 그 말은 그야말로 ‘용인’ 두 글자에 대한 조롱이며, 더욱이 그녀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미는 참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더욱 명확히 보고 싶었다.

상대방의 온기라고는 없는 눈빛에, 정미의 마음속에서 줄곧 믿어왔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갑자기 그녀는 자신의 억울함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여겼지만, 그가 그녀를 용인하며 품속에 가려준 것은 알고 보니 무관심이었던 것이다.

“못난 계집아, 뭐가 아니라는 거냐.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거야?”

용흔은 정미의 또렷한 눈이 갑자기 커지는 것을 보고는 고집이 조금 꺾였지만, 그녀의 어두운 얼굴에 당황하여 저절로 목소리를 높였다.

익숙하고 미운 목소리에 정미는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속상해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고 싶었으나, 눈물이 쏙 들어갔고 등도 꼿꼿이 세웠다.

아무리 울고 싶다고 한들 짜증 나는 정동과 용흔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싶진 않았고, 더욱이 큰 사촌 언니와 둘째 언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미 그녀를 냉대하며 경시하는 지 오라버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정미는 용흔을 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제가 무얼 인정하길 바라는 겁니까? 뭐가 어쨌든, 제가 고의로 둘째 언니를 해칠 리 없는걸요! 당신이 그렇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웃긴 일입니다!”

말을 마친 정미는 한지의 표정을 보지 않으려 몸을 살짝 돌렸다. 그러고는 한추화에게 말했다.

“언니, 여기 안이 좀 답답한 것 같아.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싶어.”

한추화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정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급히 몸을 돌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녀가 힘겹게 꾸며낸 당당함은 결국 그녀의 초라한 마음을 감춰주지 못했다. 조용히 그녀를 보고 있던 진령운이 저도 모르게 말했다.

“사실, 내가 본 건 정요 언니가 손을 뻗어 정미 언니를 잡아당기던 건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령운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는 괴로움에 머리로 땅을 치고 싶었다.

‘내 머리에 구멍이 뚫렸나? 분명히 웃음거리로 보기로 해놓고선, 어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을까! 방금 말한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닐 거야!’

진령운은 자기최면을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정잔을 들고 과실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한추화는 손을 뻗으려는 정미를 붙잡고 침착하게 진령운에게 물었다.

“진령운, 네 말은 네가 당시의 상황을 똑똑히 봤다는 거지? 정요가 정미를 잡아당긴 거라고?”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진령운의 안색은 점점 진지해졌다.

진령운은 주목받는 일에 익숙했다.

수도 근교에 있던 시절, 진 가문도 내로라하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아가씨들 사이에 유행하는 연지나 분가루, 옷 무늬 등은 수도보다 한두 철 늦긴 했지만, 그녀는 늘 친구들 중 가장 먼저 그걸 얻는 소녀였다. 게다가 충분히 자랑할만한 외가가 있었기에, 어딜 가든 여자아이들이 그녀를 둘러싸곤 했다.

그러나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서 지내게 된 이후, 진령운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오랫동안 자랑해왔던 큰 사촌 언니, 태자비는 그렇게 사람들이 선망할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줄곧 그녀를 당당하게 해줬던 외가는 사실 수도의 양갓집 중 가장 밑천이 얕은 가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껍데기뿐인 백부에서 얹혀살 뿐인 사촌 아가씨일 뿐이었다.

소녀들은 모두 예민하기 마련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둘러싸던 상황에서 아무 존재감 없는 작은 반딧불으로 변해버리니, 진령운은 아주 오랫동안 우울해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중시하고,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에 있게 되면, 그녀는 보통의 소녀들처럼 겁내고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이 붙어서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진령운은 마차에서의 상황을 자세히 떠올렸다.

당시 정미가 그녀의 옆을 지나갔고, 정요는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진령운은 몹시 화가 나 매섭게 정미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중이었고, 정미가 그대로 땅으로 넘어져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술법이라도 부린 듯, 진령운은 정미가 앞으로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정요가 재빨리 손을 뻗어 정미를 붙잡아주는 것을 봤다.

여기까지 떠오르자, 진령운은 내심 감탄했다.

‘정요 언니는 정말 정미 언니에게 잘해주는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진령운은 기억에 편차가 있는 것 같아 조금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열심히 기억을 떠올리던 중, 그녀는 작은 양가죽 장화가 정미의 발밑을 가로지르는 장면까지도 기억해냈다.

진령운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표정이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을 떠올린 것처럼 이상해지자, 모두의 호기심이 일었다.

한추화가 더는 참지 못하고 추궁했다.

“령운아, 도대체 뭘 봤길래 이래?”

“제……, 제가 본 건…….”

두리번거리던 진령운은 당황한 듯 정미를 보았다. 또 그녀와 제일 사이가 좋은 정동과 정요를 번갈아 살피더니, 아래로 시선을 떨궜다.

정요의 담홍색 치마 아래 반쯤 가려진 양가죽 장화는 전체가 다 보이지 않았고, 신발의 앞코만 보였다. 분명 겨울에나 어울리는 신발이었지만, 꽃신처럼 우아한 느낌이 있었다.

정요 언니는, 언제나 늘 우아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진령운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부러운 감정 대신,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설마 정요 언니가 발을 걸어 정미 언니를 넘어트린 건가? 아니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진령운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이러한 움직임은 사람들을 아리송하게 했고, 한추몽은 결국 비웃으며 말했다.

“한참 동안 생각하는 걸 보니, 분명히 보지 못한 거겠지. 주제넘게 관심을 받으려고 이런 게 분명해!”

“절대 그저 관심을 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당시 정미 언니와 정요 언니가 바로 제 옆을 지나갔어요. 제가 똑똑히 봤는걸요!”

일전에 그녀에게 난처함을 준 사람 앞에서 진령운은 얕보이고 싶지 않았다.

“똑똑히 봤다고?”

한추몽이 입을 삐죽였다.

“그럼 왜 멍하니 고개를 젓고 있어?”

“좀 자세히 떠올리려고 하는 것도 안 되나요?”

진령운이 눈을 희번덕거렸고, 한추몽은 그 모습을 비웃었다.

“그럼 말해봐. 똑똑히 본 게 맞는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당연히 똑똑히 봤죠. 아까 말하지 않았나요? 정미 언니가 마차에서 내려가다 넘어질 때, 정요 언니가 손을 뻗어 정미 언니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정미 언니보다 먼저 넘어지게 되었다고요!”

진령운의 말투는 아주 결단력 있는 데다 단호했던 터라,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정요를 보는 한지의 눈빛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랬구나. 내가 진작에 예상했어야 했는데…….’

정요가 예전에 말했듯이, 그녀는 정미 대신 그녀 자신이 다치기를 바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미가 넘어지는 걸 보았는데, 그런 정요가 어찌 옆에서 팔짱 끼고 보고만 있었겠는가?

용흔은 난처했고, 정요에게 자신도 생각지 못한 말을 했다.

“그런 것이었군. 정요 누님은 어찌 일찍 말하지 않은 거야? 또 정미가 소란을 피운 줄 알았잖아.”

그는 그러면서 정미를 쳐다봤다.

정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살짝 잠긴 목소리로 정요에게 물었다.

“둘째 언니, 그때 왜 날 잡아당겼어?”

정요는 빙긋 웃고는 손을 뻗어 정미의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따뜻하게 말했다.

“네가 넘어지는 걸 봤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정미는 분명 정요보다 키가 머리의 반 정도나 더 컸기에, 몸을 살짝 기울인 채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말했다.

“그럼 내 밑에 깔리지라도 말지! 아프잖아!”

정미는 다친 제 손목은, 움직이기만 해도 매우 아프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 언니가 자기보다 더 심하게 넘어진 것을 생각하면 창피해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별로 안 아파.”

정요가 부드럽게 말했다.

서로 아껴주는 두 자매를 보니 한추화의 표정이 묘해졌다. 잠시 침묵하던 한추화가 말했다.

“그런 일이었으면 정요도 조금 명확히 했어야지. 아니면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큰누님!”

한지가 놀라서 한추화를 바라봤다.

한추화가 살짝 웃었다.

“왜 그러니?”

“……아니, 사실이 밝혀졌으면 됐습니다.”

한지는 장녀인 누님을 상대로 그녀의 말이 은연중에 정요를 탓하고 있는 것을 원망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한마디만 했다.

한추화가 웃었다.

“물어보지 않으면 어찌 알 수 있겠어? 정요, 그렇지?”

정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사촌 언니의 말씀이 맞아요. 사실 제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어요. 정미가 알면 속상해할까 걱정한 탓이에요.”

도심이는 남 군주 외에도, 정요와의 관계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요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남을 대신해 다쳐놓고는 그 사람이 알면 속상할 걸 걱정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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