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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7화 (7/375)

7화. 미녀는 대부분 박복하다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정미는 재빠르게 안을 훑었다.

모두 낯익은 얼굴이었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외조모,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 중인 사람은 작은 패왕의 어머니 증(曾) 씨인데, 정미의 이모나 다름없었다.

증 씨 얘기를 하니, 예전의 마음 아픈 이야기가 떠올랐다.

위국공 노부인에게는 원래 두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정미의 어머니인 한명주(韓明珠)이고, 차녀의 이름은 한옥주(韓玉珠)였다. 한옥주는 어려서부터 절색한 미인이었고, 열다섯 살 시집을 갈 나이가 되기도 전에 경중 제일 미인이라는 명성이 따라다녔다.

게다가 그녀는 무예에도 통달했고 성정도 쾌활하여, 수도의 규수들은 그녀의 미모를 질투하기는커녕 대부분 친하게 지내, 자주 같이 약속을 잡고 놀러 나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답청(*踏靑: 교외를 산책하며 화초를 즐기는 중국의 풍속)날, 길에서 마주친 괴한이 마치 수박을 가르듯 같이 온 시종과 호위를 찍어 넘어뜨렸다. 한옥주는 용감히 나서서 괴한과 맞서 싸워 벗들에게 도망갈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나, 자신은 그에게 잡혀가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옥주는 구조되었지만, 아름다웠던 명성은 더 이상 그녀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더 나쁜 소식은, 그녀가 회임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옥주는 여덟 달 후 아들을 조산했고, 허리띠 하나로 꽃과도 같은 생명을 스스로 마감했다.

증 씨는 그날 한옥주와 함께 외출한 벗 중 하나로, 한옥주가 자살한 이후 그녀는 스스로 위국공 노부인을 자신의 의붓어머니로 삼았다. 이후 시집을 가고 아들을 낳은 지금까지도, 노부인은 증 씨를 진짜 딸처럼 여겼다.

외조모 다음으로는 큰외숙모 도 씨, 둘째 외숙모 류(刘) 씨, 셋째 외숙모 조(赵) 씨, 어머니 한 씨가 있었고, 나머지는 도 씨의 처가 및 벗들, 그리고 사촌 자매들 몇몇이 있었다.

정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위국공 노부인이 기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정미야, 이 할미에게로 오려무나.”

정미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녀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방 안의 어른들에게 한 바퀴 인사를 올린 후, 위국공 노부인의 무릎 앞에 엎드려 인사했다.

“외조모님을 뵙습니다.”

노부인은 외손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키도 크고 살도 쪘구나, 보기 좋다.”

어르신들에겐 아랫사람이 살찌는 것이야말로 기쁘고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구석에서 열 살 남짓한 소녀가 피식 웃더니 옆의 소녀에게 소곤댔다.

“언니, 조모님께서 편애하시는 것 좀 봐. 정미 언니의 얼굴이 발효된 찐빵처럼 팅팅 부어있는데, 그 모습마저 보기 좋다고 하시네!”

다른 또래 소녀가 입을 삐죽대며 말했다.

“사람들이 정미 언니가 어릴 때 일찍 죽은 둘째 고모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했었어. 하지만 그땐 나도 너무 어려서 기억이 잘 안 나. 근데 저렇게 까맣고 뚱뚱한 모습 좀 봐. 분명 그 사람들이 조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아첨한 걸 거야.”

멀지 않은 곳에서 열여덟 살 남짓한 소녀가 두 사람을 노려보자, 두 사람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완(婉)아, 정미 좀 봐라. 갈수록 예뻐지지 않니?”

위국공 노부인이 고개를 돌려 증 씨에게 물었다.

이번엔 그 열여덟 살 남짓의 소녀도 조금 당황하며 증 씨를 동정하듯 쳐다보았다.

증 씨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세히 정미를 들여다보더니 웃었다.

“그러게요. 몇 년 후에 정미의 얼굴이 피면, 미모가 더 출중해지겠어요.”

이 말을 듣고 노부인은 마치 꿀을 마신 듯이 더 환하게 웃었다.

한 씨는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머니, 계속 그러시니 이 아이가 갈수록 세상 물정을 모르지요.”

“내가 뭘 어쨌단 말이냐?”

노부인의 표정이 굳었다.

“네 딸인데도 좋게 보지 않고, 내가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다니!”

방 안의 사람들이 조용히 정미와 한 씨를 쳐다보더니, 그 ‘사실’의 의미를 깨닫고는 고개를 숙여 웃음을 참았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앉은 진령운은 더는 참지 못해 정동에게 조용히 말했다.

“낯짝 두꺼운 것 좀 봐. 만약 내가 이런 칭찬을 들었다면 부끄러워서 도망쳤을 텐데!”

정동은 입꼬리에 계속 미소를 머금은 채 속삭였다.

“노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는데 그냥 들어주지 뭐. 여기 모두가 그러고 있는걸.”

그랬다. 위국공부의 노부인이 자신의 외손녀를 칭찬하는데, 옆 사람들은 그저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노부인이 외손녀가 하늘의 선녀 같다고 말해도 기어이 거기에 대고 ‘안타깝게도 얼굴은 땅에 갈린 것 같네요’하고 말해선 안 됐다.

이 중 한 씨만이 정미의 어머니로서 난처해하면서도, 딸이 갈수록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또 웃음거리가 될까 봐 겁이 나서 노부인과 말다툼을 한 것이다.

위국공 부인 도 씨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노부인이 가장 아끼던 한 씨가 굳이 고집하여 회인백부로 시집간 후 과부가 되었던 그 몇 년 동안, 노부인은 한 씨가 잘 지내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사람을 보내 데리고 오도록 했던 바 있었다.

그러나 한 씨는 열 번 중 여덟 번을 거절하고 오지 않았다. 친딸이라곤 이제 그녀밖에 없었으나, 그녀가 집에 와 노모를 달래드리지 않으니, 차츰차츰 모녀의 사이는 멀어졌다.

“어머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도 씨는 아들의 열여섯 살 생일에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얼른 노부인에게 알렸다.

“그럼 가자꾸나.”

노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미를 챙겼다.

“미야, 나를 좀 부축해주렴. 요 이틀 새 다리가 조금 아프구나.”

“다리가 왜요?”

정미는 걱정이 되어 급히 부축했다. 그러자 노부인이 슬쩍 눈짓하는 것을 보았다.

정미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고 왠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외조모는 자신에게 아주 잘 대해주시지만, 가끔은 아주 조금…… 못 미더운 부분이 있었으니까.

* * *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정미가 자신의 외조모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미는 여덟 살 때,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와 이복 남매 때문에 화를 견딜 수 없어 외조모 댁에 와서 지내곤 했다. 하루는 복잡한 마음에 나무에 올라가 복숭아를 따고 던지며 놀았는데, 그러다 하나가 그만 정원을 산책하던 외조모를 맞추고 말았다.

정미는 혼날 각오를 했다. 심지어 이 일을 핑계로 울고 불며 지난날의 괴로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외조모는 복숭아를 주워 한입 베어 물더니 다시 땅에 던지며 달지 않다고 말했고, 그녀에게 물었다.

“정미는 어떤 복숭아가 가장 달콤한지 아느냐?”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정미가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외조모는 치마를 걷어 올려 허리띠 안으로 집어넣더니, 두세 번 만에 나무 위로 올라와 나무 끝에 달린 커다랗고 붉은 복숭아를 따다 정미에게 자랑했다.

그러다 오래된 나뭇가지가 부러졌고, 두 사람은 시녀들의 비명 속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계절은 복숭아가 잘 익은 시기였기에, 복숭아가 비처럼 떨어졌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정미는 목욕을 세 번이나 하고서야 몸에 밴 복숭아향을 비로소 희미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래도 복숭아털이 씻겨나가지 않은 듯한 느낌이 계속 들어 밤새 시녀가 간지러운 곳을 긁어줬다.

이 일로 정미 마음속에 진 그늘이 더욱 커져서,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게 되었다.

* * *

정미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한 씨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어머니, 한지의 소성년식에 어찌 정미를 따라가게 하십니까!”

정식 관례와는 달리, 이 수도 일대에서만 유행하는 소성년식이라 하는 것엔 정해진 규율이 없었다. 하지만 사이가 가까운 여자아이라 하더라도 구경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부인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한 씨를 노려보고는 투덜댔다.

“너도 네 두 오라버니의 성년식 때 참석하지 않았느냐! 어찌 정미의 차례가 되니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고만 하는 게냐?”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가까이 있던 도 씨에게 다 들리고 말았다. 한 씨는 큰올케언니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느껴, 더는 어머니에게 대들 수 없었다. 그러고는 정미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여기 멀뚱히 서서 뭐하니! 가서 둘째 언니와 사촌들이랑 놀거라!”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몇 년 동안 자주 왕래했던 사람들이라 이 일을 그닥 개의치 않아 했고, 오직 그 열여덟 살 남짓의 소녀만이 사람들 뒤에 서서 동정하듯 정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정미는 노부인의 손을 놓고 눈을 떨궜다.

“외조모님,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노부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한 씨를 힐끗 쳐다보고는 정미의 머리카락을 어여삐 쓰다듬었다.

“여기서 날 기다려 뭐하니. 네 사촌 오라버니의 성년식이 끝나면 네 외조부님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시러 가고, 우리는 연극을 보러 갈 거란다. 너희 여자애들은 연극 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먼저 청설림(聽雪林)에 가서 놀고 있거라.”

소성년식은 보통 관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작은 행사였기에, 보통 조부모 뻘은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지는 위국공의 자손이자, 장자이자, 적손이기에, 당연히 대우가 달랐다.

비록 그렇다 해도, 식이 끝나면 집안 어른들은 마음 가는 대로 모이거나 흩어지거나 했다. 한지의 벗들의 경우에는 오늘 위국공부의 유명한 청설림에서 모이기로 했다.

노부인은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그 열여덟 남짓한 소녀에게 눈길을 주었다.

“추화(秋华)야, 네가 한지 대신 동생들을 잘 돌봐주렴.”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제가 동생들을 잘 데리고 있을게요.”

노부인은 그제야 안심하고 몸을 돌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응접실을 나섰다.

곧이어 응접실 안에 소녀들만 남자, 분위기가 한층 풀렸다.

“어휴, 드디어 청설림에 갈 수 있게 되었네. 큰언니, 내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이 말을 한 소녀는 열다섯 살 남짓 되어 보였고, 분홍색 웃옷과 녹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커다란 눈과 복숭아 같은 뺨을 가진 그 소녀는 위국공 부인 도 씨의 친정 조카딸 도심이(陶心怡)였다.

“안달 난 것 좀 봐.”

도심이와 붙어있던 소녀가 입을 가리며 비웃었다.

그러자 도심이가 불평했다.

“남(岚) 군주(*郡主: 왕세자의 정실에서 난 딸의 봉작을 말함), 저를 비웃다니요! 저는 군주처럼 여기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한지 오라버니의 생일이 아니었으면 봄이 되고 나서야 올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도 씨의 본가는 가양(嘉阳)에 있었는데 수도와 먼 편은 아니지만 왕래하기에 수도에 사는 것만큼 편하지 않았다.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다니. 어머니께선 내가 자라니까 어릴 때와는 달리, 요즘엔 계속 자수만 시키신단 말이야. 여기 손가락에 바늘 찔린 자국 좀 봐!”

남 군주가 손을 쫙 펴 보였다.

정미도 궁금해져 이를 쳐다봤으나 그저 소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손가락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가 말한 바늘 자국은…… 미안하게도, 아마 멀리 서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 그렇네요. 하지만 군주께서는 그런 거 할 줄 몰라도 되잖아요.”

도심이의 말에 남 군주가 한숨 쉬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에 쓸 일이 없더라도 해야 할 건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 우리 오라버니는 부럽다. 어디서 소란을 피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니.”

알고 보니 남 군주가 바로 작은 패왕 용흔의 친동생이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왕세자인 데다, 오라버니 용흔은 왕세손이었다. 남 군주는 태어나자마자 경왕부의 다른 아가씨들보다 훨씬 존귀한 신분이었다.

남 군주는 손을 내리고 겸손하게 웃었지만 태도는 전보다 차가워졌다.

계속 잠자코 있던 한추화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얘들아, 일단 날 따라오렴.”

그러고는 일부러 손을 뻗어 정미를 잡아당기고는 정요를 보며 웃었다.

“정요, 심이와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잖아. 심이가 이전에 몇 번 궁금해한 적이 있어. 너희끼리 옛이야기를 좀 나누렴. 정미는 내가 데리고 다닐게.”

정요가 온화하게 웃었다.

“그럼 수고스럽지만, 저 대신 정미를 잘 돌봐주세요.”

“돌보고 안 돌보고가 어딨어? 내가 너희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은데, 같이 있으면 답답하고 지루하기만 할걸. 정미만 억울하게 된 거지.”

둘의 대화에 방 안의 여자아이들이 잇달아 가볍게 웃었다. 모두 피풍과 외투를 입고 평소 사이가 좋은 사람끼리 두세 명씩 모여, 위국공부 동북쪽 귀퉁이에 있는 청설림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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