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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6화 (6/375)

6화. 사촌 동생은 어쩌다 미움받게 되었을까

금색으로 글씨가 새겨진 붉은 대문은 여전히 웅장했고, 짐승 얼굴의 문고리는 근엄하고 맹렬했다.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소년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 미소가 옥처럼 눈부셨다.

익숙한 사람과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정미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 급히 걷었던 마차 휘장을 다시 내려놓았다.

“령운아, 머리를 다시 정리해줄게.”

정요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하면 돼.”

진령운의 옆에 앉은 정동이 말했다.

그러자 정요는 빙긋 웃으며 정미를 툭툭 쳤다.

“정미, 그럼 우리 먼저 내려가자.”

“그래.”

정미는 잠시도 마차 안에 더 있기 싫어 즉각 일어섰다. 허리를 숙여 치마를 들고, 마차 문 근처에 앉아 바삐 용모를 정돈하는 진령운의 옆을 지났다.

그들 마차 뒤로 시종들을 태운 마차가 아직 멈추지 않은 것이 보였다. 그러나 소년은 벌써 발을 떼 한 씨를 환영하고 있었다. 정미는 얼른 마차 벽을 짚고 뛰어 내려가다가,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무언가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당황한 나머지, 정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뒤로 뻗어 뭔가를 붙잡았다.

비명이 울리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꽂혔다.

정미는 정요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것만 보였고, 두 사람은 함께 아래로 넘어졌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언니보다 튼실한데, 이렇게 눌러버리면 언니가 잘 펴진 반죽이 되어버리는 거 아냐?!’

떨어지는 순간 정미는 급히 땅을 짚었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팔꿈치가 바닥에 쓸렸다. 왼쪽 손목의 팔찌가 청석(靑石) 바닥에 부딪혀 쩍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오랜만에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 잠시 울렸다.

「뭐 하는 짓이야, 죽으려고?」

정미는 그 목소리가 바깥의 상황을 거의 감지하지 못하고, 그녀와 말로만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신경을 껐다. 그녀는 괴로운 얼굴의 정요를 보며 급히 물었다.

“언니, 괜찮아?”

“아가씨, 괜찮으세요?”

정요의 시녀 포금(抱琴)이 허둥지둥 달려오자, 주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정미의 물음은 그 떠들썩함 속에 묻혔다.

한 씨를 맞이하던 소년의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곧바로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두세 걸음 앞에서 멈춰서더니 안색이 변했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자매 둘을 바라보더니, 입을 꾹 다물고 나서야 비로소 담담함을 되찾고 고개를 돌려 명령했다.

“얼른 두 아가씨를 일으켜드려라!”

뜻밖의 사고에 놀란 시종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급히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둘을 일으켜 세웠다.

“둘 다 괜찮니?”

정미는 팔꿈치의 쓰라림을 무시하고 무의식적으로 웃었다.

“지 오라버니, 저흰 괜찮아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사촌 오라버니 한지(韓止)의 눈빛은 전혀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온화하게 정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미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집이 센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들어 올려 차오르는 눈물을 억눌렀다.

한지는 정미가 갑자기 조용해진 것을 느끼곤 힐끗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저도 모르게 눈썹이 찌푸려졌고, 밉고 실망한 기색을 띠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정미는 순간 멍해져서 눈을 깜빡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몇 차례 위국공부에 왔을 때, 한지가 정미와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한 이유를 도무지 알기 어려워, 거듭하여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오늘 기회를 빌어 대화를 나누고 예전처럼 사이를 회복하려 했건만,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상대의 냉담한 태도와 드러나는 혐오의 감정을 정통으로 맞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멍해지고 말았다.

“정미, 괜찮아?”

정요는 시녀의 부축을 밀치고 정미를 잡아당겨 아래위로 훑었다.

“……난 괜찮아.”

정미는 대답하면서도 눈으로는 여전히 한지를 바라봤다. 훤칠한 키에 예전처럼 무덤덤한 표정을 보니, 마음속에 또 의혹이 스쳤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이때의 정미는, 사람들은 가끔 명확한 사실을 모른 척 회피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판단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믿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도.

정요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면 다행이다.”

그때 한지 옆에 서 있던 자색(紫色) 옷을 입은 소년이 참지 못하고 정미를 노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악랄한 여인은 처음 보는구나!”

“용흔(容昕)!”

한지가 경고하며 외쳤다.

이 자색 옷을 입은 소년은 경왕의 손자였고, 작은 패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언행이 거리낌 없었다.

이때 한 씨가 다가와 눈을 부라리며 정미를 꾸짖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고모님, 조카와 함께 먼저 들어가시지요. 제가 사람을 시켜 사촌 동생들에게 벌을 주라 하겠습니다.”

한 씨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딸을 꾸짖고 싶지는 않았기에, 한지의 말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미에게 경고했다.

“네 언니를 잘 따라다니고, 말썽 좀 그만 피우렴!”

* * *

일행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고, 정미는 환안의 부축을 받으며 길을 안내하는 시녀를 따라 꼭두각시처럼 걸었다. 그녀는 잘 꾸며진 객실에 들어섰고, 사계절 꽃이 피어있는 병풍 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에야 비로소 아픔을 느껴 소리를 질렀다.

“정미, 왜 그러니?”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정요가 이를 듣고 물었다.

정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팔꿈치의 핏자국을 바라보고는 의기소침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집에서 가져온 예비복으로 갈아입은 뒤 병풍 뒤에서 돌아 나왔다.

정요가 이를 맞이하며, 정미의 손을 잡고 침상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정미가 대답하지 않자, 정요는 고개를 들어 시녀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먼저 나가 있거라.”

“네, 아가씨.”

포금이 살짝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한 후 등을 돌렸을 때, 환안이 자리에 서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당겼다.

“환안, 얼른 나갑시다.”

환안은 무표정으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여 꼭 얼이 빠져 보였다. 그러더니 포금을 향해 고개를 젓고는 정미를 바라보았다.

포금의 주인인 정요는 보통의 서녀와 대우가 달랐기에, 그녀도 체면이 있는 시종이었다. 포금은 환안을 보고는 조금 화가 나 손에 더 힘을 준 뒤,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환안, 듣지 못했나요? 아가씨께서 저희보고 나가라 하셨습니다.”

환안은 태연하게 그녀를 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말했다.

“아가씨께선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죠?”

포금은 정말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둘째 아가씨의 말씀을 못 들었다고요?”

두 시종의 실랑이가 아가씨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정요가 얼굴을 굳히고 꾸짖었다.

“포금, 어쩜 갈수록 철이 없니. 감히 우리 앞에서 말다툼을 하다니, 얼른 나가지 못해!”

정요는 평소에 아주 상냥한 사람이었기에, 포금은 이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억울함에 변명했다.

“아가씨, 소인은 말다툼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이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그렇습니다.”

환안은 포금보다 더 억울해 떳떳하게 말했다.

“그런 적 없습니다. 저희 아가씨께선 저에게 자리를 물러나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포금, 둘째 아가씨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은 얼른 나가보세요. 아가씨께서 화내시겠습니다.”

포금은 멍하니 있다가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아가씨, 이 계집 좀 보세요!”

정요는 난감한 듯 정미를 바라봤다.

줄곧 말이 없던 정미가 환안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라리면서도 알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둘째 오라버니 말고도, 다른 사람과는 관계없이 내 말만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소녀들은 대부분 이랬다. 몹시 화가 나다가도 별거 아닌 일에 그 감정을 잠시 잊기도 하는 법이었다. 이는 정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미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목소리가 밝아졌다.

“환안, 나가보렴. 언니와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그러고는 정요의 체면을 세워주기는커녕 변명하며 말했다.

“언니도 저 아이에게 화내지 마. 원래 좀 둔한 아이야.”

정요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환안은 그제야 발을 떼 포금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도중에 말했다.

“포금, 제가 좀 둔합니다. 그러니 제게 화내지 마세요.”

포금은 입술이 덜덜 떨려 한 마디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화가 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고, 콧방귀를 세차게 한 번 뀌며 눈을 부라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사람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고개를 돌렸고, 걸음을 멈출 새도 없이 포금은 문틀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포금은 몹시 당황해 얼굴을 가리며 문을 밀고 나갔다. 환안은 가볍게 문을 닫고 나갔고, 문밖으로 아득히 두 시녀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포금, 제 손수건 비단이 참 부드러워요. 저희 아가씨께서 주신 건데, 이걸로 얼굴 닦을래요?”

“필요 없어요!”

“하지만, 얼굴에 문틀 자국이 남았는걸요? 진짜 안 닦을 거예요?”

“그 입 다물어요!”

이후 둘의 기척이 사라지자, 정요는 처음으로 정미 앞에서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한 탓에, 웃음거리가 되었네.”

“아니야, 어찌 고작 시녀 하나와 언니를 비교해.”

정미는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었고, 그에 정요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깨달았다. 아무리 다른 이들의 눈에 차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내면의 자부심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정미의 내면처럼…….

심지어 어려서부터 쭉 같이 자란 여동생인데도, 정요는 이제야 이를 깨닫고는 그녀의 당당한 자부심이 무척 부러우면서도…… 밉다고 생각했다.

정요가 조금 이상해 보이자, 정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마치 날카로운 발톱을 집어넣은 고양이처럼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 앞에서는 위협을 거두고 온순함만 남긴 모습이었다.

“게다가, 나는 절대 언니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는걸.”

정요는 또 멍해지더니, 그윽이 정미를 바라보고는 평소처럼 웃었다.

“맞아. 정미가 나에게 제일 잘해주지. 우리 어서 가자, 늦겠다.”

“응.”

정미는 몸을 일으켜 정요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고, 문 앞에 다다르자 멈춰서서는 머뭇거렸다.

“정미, 왜 그래?”

정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큰언니는 저 멀리 궁에 있어 친자매들 간의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이 없었다. 둘째 오라버니는 은사님을 따라 회성(薈城)에 가 연말에나 돌아올 수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둘째 언니인 정요뿐이었다.

“언니, 한지 오라버니가 날 싫어하는 거 맞지?”

“그게 무슨 말이야?”

정요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까먹었어? 어렸을 때, 그 많은 사촌 동생들 중에서 오라버니는 너와 가장 잘 놀았는걸.”

“하지만 오늘 오라버니가 날 보던 눈빛이 마치…… 내가 정동을 보는 눈빛과 같았단 말이야!”

정미가 정동을 미워하는 것만큼, 한지 오라버니도 자신을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듯 아파왔다.

“네가 잘못 본 거겠지.”

정요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오라버니 나이대의 사내들은 가장 수줍음이 많을 때래. 그래서 지난 2월의 그 일 때문에 너를 피하는 걸 거야.”

정미는 그제야 안심하고 입을 꾹 다물고 웃었다.

‘언니도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잘못 본 게 틀림없어.’

“이제 마음이 놓이지? 가자, 지각하면 지 오라버니가 정말로 화낼지도 몰라.”

두 사람은 문을 밀고 나갔다. 그들은 복도에서 기다리던 길을 안내하는 시녀를 따라, 각자의 시녀와 함께 여자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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