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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특별한 삶 (73/75)

13. 특별한 삶

“소식은 아직인가요?”

니아 프레슬리는 염치 불고하고 한 번 더 물었다.

“네. 아직 국경에 도착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제대로 된 싸움은 시작도 전이라고요.”

“무엇이든 전갈이 오면 제게 꼭 전해 주세요. 제게, 꼭.”

“네, 네. 성녀님께 꼭.”

니아 프레슬리는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그녀가 진짜 신의 자식 이기라도 해서, 그녀의 축복이 효력이 있기라도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니아는 터덜터덜 신발을 끌며 복도를 걸었다.

오늘만 해도 니아 프레슬리는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은 이들을 맞이했다. 전쟁이 시작되니 사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신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겁니다. 모든 것은 평화롭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신탁이 내려왔어요.’

클라우디아 엘로이의 부탁으로 새로운 신탁을 만들었고, 니아는 곧이곧대로 외운 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에슬란 제국에는 영원한 축복이 함께할지니…….’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따듯한 목소리로 신탁을 외쳤다. 가장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은 니아 프레슬리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끝도 없이 신탁을 반복하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겨워서는 아니고, 제발 지금 그녀가 뱉는 이 말대로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이다.

“조안, 이리 와.”

저녁 무렵이 되어, 지친 몰골을 하고서 니아 프레슬리는 조안을 불렀다. 무언가를 쓰다듬지 않고서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성녀님, 울지 마세요.”

피로에 눈두덩을 쓰는 모습이 우는 것으로 보였는지 조안이 속삭이며 안겨 왔다. 니아는 아이의 얇은 머리칼을 살살 쓸었다.

“모두가 그랬어요. 어차피 이길 싸움이라고요.”

“세상에 반드시는 없어. 언제나 예외가 존재한단다.”

“예외요?”

“그래.”

니아 프레슬리는 조안의 정수리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조안이 간지러운 듯 웃으며 니아를 돌아보자, 풋내를 풍기는 아이의 눈망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울처럼 니아는 조안의 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였다.

“내 삶은 모든 것이 예외였어.”

돌아보니 그녀에게 삶은 언제나 그랬다.

나지막이 말하는 니아를 향해 조안은 순수한 얼굴로 물었다.

“궁금해요! 성녀님의 이야기.”

니아는 멋쩍게 고개를 저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거든.”

“그래도 해 주세요. 성녀님의 이야기니까요. 저는 듣고 싶은걸요.”

“그렇게 듣고 싶니?”

“네!”

아이가 해밝게 웃었다.

“그래.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어차피 오늘 밤은 쉬이 잠들지 못할 거다. 필릭스 쿠아란을 걱정하며 밤을 새우느니 아이를 끌어안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침대로 올라가자.”

니아 프레슬리는 조안의 손을 끌어당겨 침대로 향했다. 조안을 눕히고, 그 옆에 누워 동그란 머리를 매만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내 삶은 모든 것이 예외였단다. 내게 삶은 언제나 그랬어. 사람도, 사랑도.”

“왜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거든. 이제는 아니지만, 내가 태어났을 즘엔 이 세상은 내게 살아갈 만한 곳이 아니었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노래 가사들이 울려 퍼지는 곳이었단다.”

“음…….”

조안이 울상을 지었다. 니아 프레슬리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지금은 세상이 뒤집혀, 성녀가 되었잖니? 그럼 된 거야. 내가 이긴 거지.”

니아의 말에 따라 조안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어느새 조안은 키득거리고 있었다.

니아는 아이의 행동을 따라 했다. 과장되게 아이를 흉내 내다 보니 조안의 또래라도 된 듯 즐거워졌다.

“좋아요! 계속 얘기해 주세요.”

“그래. 나는 특별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마음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어. 특히나 사랑을 할 때만큼은.”

“필릭스 쿠아란 공작님 말씀인가요?”

조안이 여태까지 중 가장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그 얘기는 아직 멀었는데.”

니아가 조안의 코를 아프지 않게 잡고 흔들었다. 조안은 히, 하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난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어머니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셨다고 해. 그다음에도 나는 운이 아주 좋았지. 아주 사랑 가득한 가족을 만났거든.”

“우와! 성녀님께도 가족이 있어요? 처음 알았어요!”

“그럼, 가족이 있고말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와, 나를 길러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또 있단다.”

“그분들은 어디 계세요? 모두 사원으로 초대하면 좋을 텐데.”

“종종 들르고 계실 거야.”

조안이 기뻐하며 니아 프레슬리의 품으로 기어들어 왔다.

“저도 뵙고 싶은데요. 제가 사원을 안내해 드리고 싶어요.”

“아마도 알아서 잘 돌아다니고 계시겠지만……. 아, 그래.”

니아 프레슬리는 좋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들었다.

“내게 동생이 있거든.”

“동생이요? 성녀님께 동생이 있었어요?”

“그래, 남동생 한 명이 있어. 지금은 잠시 세상을 배우러 떠났는데, 그 아이가 제국으로 돌아오면 조안 네가 사원을 안내해 주렴.”

“와! 좋아요!”

니아는 레오를 생각하며 발을 꼼지락거렸다. 무릎께에 있는 이불을 슬슬 끌어 올리다 왁, 하고 조안 위에 덮었다. 그들은 이불을 천장 삼고, 니아 프레슬리의 이야기는 자장가 삼은 채 함께 뒹굴뒹굴했다.

“자, 다음 이야기를 해 볼까.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이야.”

“고난이라니…….”

“위대한 영웅은 반드시 고난을 거쳐야 하거든. 출생의 비밀과 특별한 능력, 무시무시한 고난과 역경, 조력자와의 만남, 사랑, 실패, 성공. 이 모든 것을 다 겪어야 해. 단 하나도 빠트려서는 안 된단다.”

“…….”

“영웅 한번 되기, 되게 까다롭지?”

니아는 고심하며 그녀의 아픈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조안이 놀라거나 충격받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일이 까다로웠다. 영웅이 되는 일만큼이나.

고심하며 말을 꺼낼 때마다 밤이 깊어 갔다.

“그래서, 조안……. 이런, 조안. 듣고 있니?”

“흠냐……. 그럼요…….”

“내 눈에, 이미 넌 잠에 빠진 것 같은데.”

“아니에요……. 그다음, 비정상에 대한 말…….”

“어차피 이제 곧 마지막이었어. 꿈속에서 들으렴.”

니아 프레슬리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벗어났다. 잠든 조안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베개 위에 올리고,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사이 조안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를 웅얼거렸다.

“내 삶을 비정상이라고 부르면 비정상이 되겠지만, 나는 그런 내 삶을 특별하다고 말해 주기로 했단다.”

니아 프레슬리는 아득히 웃었다.

“그리고 조안, 너의 삶도 그럴 거야. 정답은 없어. 누구의 경우에도 삶은 특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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